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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메뚜기 영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07
최근연재일 :
2019.05.04 14:53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950
추천수 :
18
글자수 :
168,894

작성
19.04.03 13:36
조회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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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1화. 이상한 노인네(4)

DUMMY

몸이 바뀐 것이 아니라면 더 큰일이지 않은가. 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죽는다고 했는데. 취직이고 뭐고 재하는 우선 제 몸부터 찾아야 했다.


“설마 죽은 걸로 알고 냉장고에 집어넣은 건 아니겠지?”

강 전무 몸인 재하는 속이 탔다.


후다닥 집무실 밖으로 나간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재하의 이력서를 비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바람에 날려가지 말라고 마우스를 올려놓기까지 했다.



19층 복도로 뛰쳐나간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휴대폰부터 꺼내들었다. 제 몸을 업고 나간 동주부터 찾아야 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동주 휴대폰 번호를 떠올려 보았지만 헛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제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동주가 제 몸 근처에 있다면 분명 전화를 받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받아라, 받아. 제발.”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신호음이 울리는 수화기에 대고 계속 중얼거렸다.


[예. 여보세요.]

잠시 후 갈라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 흔히 들었던 동주 목소리였다.


“아, 하재하 씨?”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아, 아닌데요. 재하가 지금... 전화 받기가 좀 곤란한데. 무슨 일이신요?]

“아... 택배. 택뱁니다. 여기, 본인이 직접 수령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갖다 드려요? 어딘데요?”

[여기 목동 제일 병원인데.]

“아, 그럼 안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필요한 내용을 듣자마자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제 몸이 있는 곳을 알아냈으니 빨리 가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태주 그룹 본사 건물 로비에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나타나자 안내 데스크에 있던 직원들이 부리나케 일어섰다. 그들은 일제히 강 전무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시선을 회피한 채 입구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어?”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당황한 얼굴로 멈칫했다.


본사 건물 입구에 익숙한 검은색 세단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 전무의 전용차였던 것이다. 혼이 재하인 강 전무를 발견한 경비원은 자동차 뒷문을 열고 그를 기다렸다.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자동차 뒷좌석에 오른 것을 확인한 장 기사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강 전무 몸인 재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태주 그룹 본사 건물이 점점 멀어질 즈음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차분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죄송한데, 목동 제일 병원으로 가 주실래요.”


당연하다는 듯 짧게 대답한 장 기사는 방향 지시등을 켜고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장 기사의 눈치를 살피던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지갑을 꺼냈다. 강 전무 지갑에 백만 원 권 수표가 여러 장 있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 이거.”

신호에 차가 잠깐 멈춘 사이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그의 어깨너머로 수표 두 장을 내밀었다. 어차피 자기 돈이 아니니까 아까울 것은 없었다.


“아이고, 이렇게 많이. 가, 감사합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장 기사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돈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쓴웃음을 삼키며 혼이 재하인 강 전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장 기사님.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장 기사의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저녁 9시 23분.

장 기사가 목동 제일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주차장 시계에 표시된 시간이었다.


장 기사가 어슬렁거리며 응급실 안을 살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병원 응급실은 한산해 보였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는 젊은 남자와 할머니, 그렇게 두 사람뿐이었다. 할머니 곁에는 할아버지가 앉아있었고, 마주 보는 침대에 젊은 남자가 홀로 누워있었다.


응급실 안을 어슬렁거리던 장 기사가 ‘하재하’라고 적힌 명찰이 달려있는 침대 곁에 멈춰 섰다.


“저기요. 여기 이분 보호자, 어디 갔나요?”

장 기사는 재하가 누워있는 침대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모르겠는데요.”

간호사는 차갑게 답하고는 곧장 보고 있던 차트로 눈길을 돌렸다.


더 이상 묻기를 포기한 장 기사는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가 재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며 장 기사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장 기사는 고개를 획 돌렸다.


“누구..세요? 혹시, 택배 기사님?”

담배를 피우고 막 돌아온 동주가 물었다.


“아, 아니요. 재하 외삼촌인데, 재하가 여기 있다고 해서.”

장 기사는 강 전무가 일러준 답변을 늘어놓았다.


동주는 재하의 친인척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홀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연락을 한 거지? 병원인가? 문득 궁금증이 들었지만 동주는 일단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재하 친구, 김동주라고 합니다.”

“아, 그래. 그래. 고마워요. 고생 많았죠? 여긴 이제 내가 있을 테니까, 가서 볼 일 봐요.”

대뜸 악수를 청한 장 기사는 잡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장 기사는 재하에게 어떤 짓도 하지 못하도록 잘 지키라는 강 전무의 지시를 떠올렸다. 새벽이면 정신을 차릴 거라는 말까지. 상관의 명령이었고,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 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친척이 가라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동주는 주섬주섬 제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저, 그럼. 아까 의사 선생님이 좀 더 지켜보자고는 했는데.”

“아. 그래, 그래. 알았어요. 얼른 가요, 가.”

장 기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동주는 가방을 가리키며 말하고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 시간,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택시를 타고 재하 집으로 향했다. 장 기사와 함께 병원 응급실 근처까지 갔었지만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홀로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만에 하나 몸이 서로 바뀐 거라면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 재하 몸인 강 전무가 혼만 재하인 강 전무를 보고 난리를 칠 게 뻔하지 않겠나. 상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일단 맞닥뜨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했던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 원룸으로 가는 길에 장 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 전무 몸인 재하는 제 몸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을 놓았다. 의식만 없을 뿐이지 호흡과 맥박은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어찌 됐든 강 전무의 혼이 제 몸으로 들어간 건 아니었다. 서로 몸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혼이 강 전무의 혼을 지배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궁금증을 품으며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장 기사에게 재하를 잘 지켜봐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원룸 안으로 들어간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전신 거울에 비친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막상 닥치고 보니 썩 마음에 드는 외형은 아니었다. 제 모습이 그리웠던 것이다.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양복저고리를 천천히 벗었다. 미처 몰랐던 양복의 가치가 그의 손끝을 통해 전달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옷걸이를 찾아 반듯하게 양복을 걸었다.


“나 참.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 안 하던 짓을 내가 다하고.”

강 전무 몸인 재하는 넥타이를 풀며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옷이란 옷은 아무렇게나 벗어 놓던 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행동하는 자신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강 전무 몸인 재하는 보란 듯이 넥타이를 휙 집어던졌다. 손끝을 떠난 넥타이는 의자 등받이에 운 좋게 걸치는가 싶더니 주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혼이 재하인 강 전무는 개의치 않고 침대로 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제 혼이 어떻게 강 전무의 육신으로 들어가게 된 건지 천천히 곱씹어 봤다. 정말 그 노인네가 준 액체 때문일까. 이유야 어쨌든 간에 결과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싶었다.


‘만약 이렇게 강 전무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막상 그렇게 살라고 한다면 선뜻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겉모습만 강 전무일 뿐 속은 아니지 않은가. 회사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 당할 게 눈에 선했다.


‘아니지. 까짓것 하라면 또 못할 것도 없지. 안 그래?’

그렇게 문득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강 전무 몸인 재하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상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흘렀다. 그것도 잠시, 이내 뭉글뭉글 피어나는 불길한 예감에 강 전무 몸인 재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던 강 전무 몸인 재하는 스르르 선잠이 들고 말았다.


기나긴 하루가 겨우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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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7화. 근본 없는(2) 19.04.26 194 1 11쪽
26 7화. 근본 없는(1) 19.04.25 123 0 12쪽
25 6화. 가진 자의 품격(4) 19.04.23 137 0 13쪽
24 6화. 가진 자의 품격(3) 19.04.21 157 2 11쪽
23 6화. 가진 자의 품격(2) 19.04.20 137 1 15쪽
22 6화. 가진 자의 품격(1) 19.04.19 154 0 13쪽
21 5화. 어쩌면(4) 19.04.17 15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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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화. 나쁜 생각(3) 19.04.11 168 0 13쪽
15 4화. 나쁜 생각(2) 19.04.10 171 0 14쪽
14 4화. 나쁜 생각(1) 19.04.09 193 0 14쪽
13 3화. 어린 양의 피(4) 19.04.08 226 1 15쪽
12 3화. 어린 양의 피(3) 19.04.07 21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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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화. 어린 양의 피(1) 19.04.06 184 0 15쪽
9 2화. 딴생각(4) 19.04.05 169 1 12쪽
8 2화. 딴생각(3) 19.04.05 192 0 11쪽
7 2화. 딴생각(2) 19.04.04 189 1 12쪽
6 2화. 딴생각(1) 19.04.04 225 0 10쪽
5 1화. 이상한 노인네(5) 19.04.03 229 1 15쪽
» 1화. 이상한 노인네(4) 19.04.03 263 1 9쪽
3 1화. 이상한 노인네(3) 19.04.02 320 1 13쪽
2 1화. 이상한 노인네(2) 19.04.02 29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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