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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메뚜기 영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07
최근연재일 :
2019.05.04 14:53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957
추천수 :
18
글자수 :
168,894

작성
19.04.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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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화. 근본 없는(2)

DUMMY

다음 날.


저녁 늦게 연수가 머물고 있는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하는 으레 간호사라고 생각하며 허공에 대고 답했다.


“어, 윤주 씨. 이 시간에 어쩐 일로.”

간이침대에 누워 TV를 보던 재하가 벌떡 일어났다.


연수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김 비서가 찾아왔던 것이다. 초췌한 얼굴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제가 좀 늦었죠?”

“아, 아니에요. 연수야, 인사해. 오빠 회사에 같이 일하시는 분.”

“아, 안녕하세요.”

“네. 많이 좋아지셨다고.”

김 비서가 재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재하는 불편해하는 김 비서를 데리고 병실을 나왔다.


불 꺼진 병원 로비는 보호자 몇 명만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 고요했다. 단둘이 대화를 나누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재하가 작심한 듯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거죠? 그렇죠?”

“후. 그래 보이나 봐요?”

김 비서가 재미있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예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차 회장이 재하가 무심코 흘린 말을 놓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비밀을 누설한 걸로 생각한 차 회장은 김 비서를 바로 해고시켜 버렸던 것이다. 미안해하는 재하에 김 비서는 오히려 잘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퇴직금을 두둑하게 챙겨줬다며 차 회장에 고마워했다.


“그럼, 이제 뭐 할 건데요?”

“글쎄요. 천천히, 알아봐야죠.”

“차 회장. 굳이 자를 거까지야.”

재하는 속상한 듯 제 입술을 깨물었다.


“제 걱정 하지 마시고, 이사님 걱정이나 하세요.”

“흥. 저야 머.”

“조심하세요. 회장님 성격에, 순순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체. 그래 봤자죠.”

재하는 콧방귀 뀌며 대수롭지 않게 흘러들었다.



재하가 김 비서를 병원 앞 큰길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젊은 남자가 재하에게 다가와 사투리를 섞어가며 병실 위치를 물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길이 낯설 거라 측은하게 생각한 재하는 병실 입구 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별관 쪽이었다.


“저기 보이시죠. 저리로 들어가서 물어보면 됩니다.”

“아이고, 고맙심미더.”


재하가 손을 내리며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재하 뒤에 서 있던 그 남자가 수건으로 재하 입을 틀어막는 것이 아닌가.


“읍!”


순간적으로 발버둥을 치는 것도 잠시, 재하 몸에 힘이 쑥 빠져버렸다. 그리고 의식이 꺼져버렸다.


덜커덩, 제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재하가 가늘게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앞은 캄캄했다. 흐릿한 빛이 비치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숨을 들이 마실 때마다 천이 입술에 달라붙었다. 재하 얼굴에 검은 헝겊이 씌워져 있었던 것이다.


재하 양옆으로 남자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재하 팔은 이미 뒤로 꽁꽁 묶여져 있었다.


“누, 누구.”

재하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제대로 입도 떼지 못했다.


“이 새끼. 이제 정신이 들었는갑네. 그라몬, 그냥 조용히 아가리 닥치고 있거라. 안 그라모 내가 입을 확 찢어버릴지도 모른데이.”

남자는 재하 목덜미를 툭툭 때리며 말했다. 자신에게 길을 물었던 그 남자 목소리였다.


“대패 저 새끼 저거. 하여튼... 무식한 새끼가 말을 해도 꼭 저렇게 살벌하게 한다니까. 입만 살아가지고.”

“에이, 갈치 행님도... 자꾸 저한테만 와 그랍미꺼?”

“어라. 저 새끼가 죽을라고. 눈깔에 힘 안 뺄래? 나랑 한번 뜰까?”

“아입미더. 제가 어떻게.”

“언제든지 말해, 새꺄. 상대해 줄 테니까. 쫄리면 네 거나 잡고 가만히 있던가.”


주변에서 지켜보던 똘마니들 입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야, 이 새끼들아. 재밌냐, 재밌어? 지금 우리가 어디 놀러 가냐? 이 새끼들이 진짜. 돈 몇 푼 받고 손에 피 묻히러 가는 주제에 뭐가 좋아서. 그냥 조용히 가자. 응?”

“예. 형님.”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진동하자 차 안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들 세계에서 용팔이라는 불리는 행동 대장이었다.


용팔이는 어두운 이 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참이었다. 돌파구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그에게 돌파구는 오직 돈이었지만, 그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용팔이는 여전히 기분이 더러웠다. 오늘 또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야 했으므로.



재하는 몸이 뒤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산, 재하는 공기를 마시며 주변을 파악하려 했다.


‘이번엔 물이 아닌가?’

재하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다른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덜컹거리며 한참을 오른 차가 거친 소리를 내며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재하 몸이 누군가에 끌려 땅바닥에 던져졌다.


한 남자가 재하 어깨를 누르고 무릎을 꿇게 했다. 찬바람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재하 귀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발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가려진 헝겊 너머로 불빛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사, 살려주세요. 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네?”

재하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처절한 발악이었다.


“그러게. 우리도 목숨이 걸린 일이라. 미안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우릴 너무 원망하지는 마.”

“목숨만 살려주시면, 제가 뭐든지 다 할게요. 제발요.”

“그건 좀 곤란해. 말했듯이 우리도 살아야 해서. 얘들아.”

“네.”


‘이건... 기름 냄새?’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재하 머리 위로 액체가 뿌려졌다. 재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자, 잠깐! 잠깐! 정 그렇다면, 내가 숨겨 둔 돈과 금괴만이라도 병원에 있는 동생에게 전해주시오.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소?”

“뭐? 금.. 괴?”


사뭇 결연하기까지 한 재하 태도에 용팔은 잠시 솔깃했다. 구미가 당기는 것이 분명했다. 전달하기는커녕 제 놈들이 가질 게 뻔한 일이었다.


“흥. 그깟 게 얼마나 된다고... 그냥 묻어두지, 머.”

“모아둔 1킬로짜리 금괴가, 사십 개는 족히 넘을 건데... 묻어두기엔 너무 아까지 않습니까? 현금도 그렇고.”

“그..래?”

“어차피 살기 힘들 거면, 남은 동생만이라도. 그보다 이거나 좀.”

재하가 불편한 듯 보자기 씌워진 머리를 흔들었다.


잠시 알 수 없는 정적이 감돌았다. 썰렁한 냉기에 재하는 몸을 움츠렸다. 속느냐 마느냐,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


“야. 벗겨줘.”

“네? 아, 안됩니다.”

석진이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 여자가, 절대 벗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너 이 새끼. 그년이 네 보스라도 돼? 그년이 죽으라면 죽을 거야?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냐! 이 새끼가 확, 같이 묻어버릴라... 빨리 안 벗겨?”


죽일 듯이 노려보는 용팔에 석진이 어쩔 수 없이 재하에게 다가갔다.


보자기가 휙 벗겨지자 재하 눈에 장작을 품은 드럼통 화덕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타닥타닥 소리 내는 장작은 제 몸을 태우며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를, 저렇게 태우려고?’


재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단단한 몸을 가진 장정 대여섯이 주변에 고목처럼 뻣뻣하게 서 있었다. 그들 뒤로 모래와 돌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마치 채석장인 듯도 했고, 아무튼 주변에 깎이다 만 듯한 산등성이가 여럿 보였다.


용팔이 지포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하며 재하에게 다가왔다. 주변 눈치를 살핀 용팔이 슬그머니 무릎쏴 자세로 재하 곁에 앉았다.


“그래, 어디 있는데? 금괴 말이야.”

“금괴요?”

“그래.”

“그게, 그렇게 궁금해?”

재하가 비릿하게 웃으며 용팔이를 꼬나봤다.


“뭐? 이 새끼가.”

용팔이 벌떡 일어나는 순간 재하가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어?”

주변에서 지켜보던 똘마니들이 웅성거렸다. 그중에 석진이 성큼 재하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어라. 이 새끼, 완전히 뻗었는데요.”

“뭐? 그 새끼, 쇼하는 거 아냐?”

“아닌 거... 같은데.”

“야. 야. 일어나. 괜히 쇼하지 말고.”

대패라는 자가 재하 머리를 발로 툭 툭 차며 말했다.


“야. 그만해!”

혼이 재하인 용팔이 대패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대패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갈치를 쳐다봤다. 갈치가 궁금한 듯 대뜸 나서며 물었다.


“형님. 어디라고 하던데요? 금괴 있는 곳 말입니다.”

“뭐?”

혼이 재하인 용팔이 굳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새끼...가 말도 하기 전에 쓰러졌어. 나도 몰라.”

“네에?”

“진짜야. 진짜라니까!”

혼이 재하인 용팔이 갈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여전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그냥 가. 어차피 얼어 죽겠지.”

혼이 재하인 용팔이 지포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예에? 그건 안 됩니다 형님. 괜히 그랬다가 나중에 문제라도 생기면, 큰형님한테 우린 모두 다 죽습니다. 그냥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혼이 재하인 용팔이 등을 돌리려고 하자 갈치가 말리고 나섰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대패가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그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냥 가. 응? 왜 굳이 더러운 꼴을 보려고 그래. 가자!”

혼이 재하인 용팔이 한껏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등을 휙 돌린 혼이 재하인 용팔이 앞장서 승합차 쪽으로 향했다. 그러면 그들도 따라올 거라 기대했던 것이다.


몇 걸음 채 내딛기도 전에 혼이 재하인 용팔이 등 뒤로 뜨거운 불길이 확 느껴졌다. 혼이 재하인 용팔이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제 육신은 불길에 휩싸인 후였다.


“이런!”

혼이 재하인 용팔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똘마니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승합차 쪽으로 걸어갔다. 되돌아오는 그들의 손에 삽이 들려 있었다. 또 다른 똘마니들이 합세하여 곡괭이로 딱딱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해. 시간 없다. 형님은 추우신데 차에 들어가 계시죠?”

불타는 제 육신을 지켜보는 혼이 재하인 용팔에게 갈치가 큰소리로 말했다.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그랬어?”

“아이고, 저 행님. 자꾸 와 저랍미꺼. 우리는 그냥 큰형님 시키는 대로 하는 꺼 뿐인데. 아이고 마. 갈치 행님이 좀 가서 저 행님 어찌해 보이소.”

대패가 갈치에게 투정을 부리고 헥헥거리며 땅 구덩이를 다시 계속 팠다.


혼이 재하인 용팔이 점차 불길이 사그라지는 제 육신에서 차디찬 허공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떡 벌어진 입에서 입김이 공중으로 퍼져나갔다.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혼이 돌아갈 제 육신이 없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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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7화. 근본 없는(3) 19.04.27 122 1 10쪽
» 7화. 근본 없는(2) 19.04.26 195 1 11쪽
26 7화. 근본 없는(1) 19.04.25 123 0 12쪽
25 6화. 가진 자의 품격(4) 19.04.23 138 0 13쪽
24 6화. 가진 자의 품격(3) 19.04.21 158 2 11쪽
23 6화. 가진 자의 품격(2) 19.04.20 137 1 15쪽
22 6화. 가진 자의 품격(1) 19.04.19 154 0 13쪽
21 5화. 어쩌면(4) 19.04.17 150 0 15쪽
20 5화. 어쩌면(3) 19.04.16 182 0 13쪽
19 5화. 어쩌면(2) 19.04.15 211 1 11쪽
18 5화. 어쩌면(1) 19.04.13 20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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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화. 나쁜 생각(3) 19.04.11 16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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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화. 어린 양의 피(1) 19.04.06 185 0 15쪽
9 2화. 딴생각(4) 19.04.05 169 1 12쪽
8 2화. 딴생각(3) 19.04.05 19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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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화. 딴생각(1) 19.04.04 2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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