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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메뚜기 영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07
최근연재일 :
2019.05.04 14:53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958
추천수 :
18
글자수 :
168,894

작성
19.04.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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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화. 근본 없는(1)

DUMMY

온전히 따뜻한 오후였다.


재하는 제 휴대폰에 찍힌 발신자 이름을 보고는 살짝 당황했다. 해남에 사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연수였던 것이다. 자신과는 터울도 제법 나고, 또 오래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재하와 달리 연수는 오빠인 재하를 어려워했던 것이다. 게다가 연수는 성격상 그렇게 살가운 편도 아니었기에 먼저 재하에게 연락하는 법도 좀처럼 없었다.


졸업 축하 인사 겸해서 여동생과 최근에 통화를 한 게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바로 어제였는데, 연수가 먼저 자신에게 전화를 한 것에 재하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던 것이다.



“어, 그래. 연수야.”

“여보세요.”

“아, 네. 여보세요?”

뜬금없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에 살짝 당황한 재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실례지만 이 전화 주인분의 오빠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누구...?”

“아, 네. 저, 119 구급 대원인데요.”

“네?”

순간, 다친 연수 모습이 재하 뇌리에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은 반갑지 않게도 오히려 적중할 때가 많았다. 해남 시내에 나갔던 엄마와 연수가 길거리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말이다.


연수는 가벼운 부상을 입었지만, 노령인 엄마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병원에 연락해서 담당 의사와 빨리 상의해 보라며 병원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재하는 허겁지겁 구급 대원이 알려준 번호로 연락했다. 간호사가 받았다. 조금 전 뺑소니 사고를 당한 환자의 가족이라 말하고 상태를 물었다. 잠시 기다리는 말이 끝나자 이내 의사인 듯한 남자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재하는 서울이라 당장 병원에 가 볼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의사가 난처한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환자의 심각한 부위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듯했지만 재하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도 알아보고는 있는데, 가급적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말만 귀에 쏙 들어왔다.



전화를 끊은 재하는 필사적으로 회장실로 달려갔다. R 대학병원 원장을 잘 안다는 차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회장님. 도와주세요. 네?”

“아니 이게 무슨?”

다짜고짜 집무실로 쳐들어와 도와달라는 재하에 차 회장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재하를 쫓아 따라 들어온 김 비서의 표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재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그의 손끝마저 떨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크게 다쳤데요. 그래서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데. 회장님이 R 대학병원에 말씀 좀 해 주세요. 네?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제발.”

“네?”

양손을 비비는 재하에 차 회장이 놀란 얼굴로 김 비서를 쳐다봤다.


“어, 언제요?”

“그, 그건 잘 모르겠어요. 조금 전에 구급 대원이라면서 전화가 왔었는데.”

재하는 고개 돌려 김 비서에 답하다 말고 차 회장에 눈길을 재빨리 옮겼다. 그의 눈가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회장님. 시간이 없데요. 빨리 좀.”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여기 앉아서 좀 더 자세히 말해 봐요.”

차 회장이 재하 가까이로 다가가며 말했다.



재하는 차 회장에게 토로하듯 설명하고 절절히 간청했다.


“우리 엄마만 살려주신다면,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죽으라면 죽고, 네?”

“아, 알겠으니까. 잠시 기다려 봐요.”


차 회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하 시선이 차 회장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차 회장의 표정을 봐서는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재하는 마른침만 연거푸 삼키며 차 회장의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해 주시겠다고 하네요.”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재하가 벌떡 일어나 넙죽넙죽 절했다.


“지금 바로 헬기를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해남으로.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하 이사는 병원에 가서 어머님 맞을 준비나 하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호호호. 우리 사이에 무슨.”


환하게 웃는 차 회장에 지켜보던 김 비서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 도착한 재하 엄마와 여동생은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재검 절차를 밝은 후 재하 엄마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일반 병실인 1인실로 옮겨진 동생을 확인한 재하는 곧장 수술실로 가서 그 앞을 지켰다. 지루하고 초조한 시간이 끝없이 흘렀다. 수술실 문이 열릴 때마다 재하는 벌떡 일어나 그 앞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기다리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렸지만 재하는 영영 살아있는 엄마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어느덧 재하가 앉아있는 곳은 수술실이 아닌 장례식장 분향소 앞이었다. 재하 혼자 쓸쓸히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조문 오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회사 직원들뿐이었지만.


“많이 힘드시겠지만, 기운 내세요.”

조문을 마친 김 비서가 슬픈 눈빛으로 재하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 주셔서.”

“아니에요. 좀 더 일찍 와 봤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별말씀을.”

“회장님은 벌써 다녀가셨죠?”

“네. 와 주신 것 만해도 감사한데, 장례비용까지 다.”

재하가 씁쓸하게 웃었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김 비서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저... 이건 이사님만 알고 계세요.”

“네? 무슨.”

“뺑소니 사고 말이에요.”

“그런데요. 혹시, 뭐 아시는 거라도.”

“이건 완전히 제 짐작인데요... 아무래도 사고 배후에 회장님이.”

“네에? 회장님이라면 우리, 차 회장님요? 에이, 설마요... 뺑소니범도 이미 잡혔다던데.”

재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 비서도 확신을 못하겠는지 덩달아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윤주 씨가 왜 그런 생각을.”

“그, 그냥요. 회장님이 통화하는 걸 우연히 엿들은 것도 있고. 그때 해남이라는 말이 나왔었거든요. 이상하잖아요? 하필 해남이라니. 우연치고는 왠지. 그리고 또.”

“또 뭐요.”

“아, 아니에요.”

“분명히 해남이라고 말했어요?”

재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묻자 김 비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남 인근 공원묘지 납골당에 어머니 유해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온 재하는 회장실로 찾아갔다. 명목상 감사 인사차 들른 거지만 재하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덕분에 저희 어머니 장례 잘 치렀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생 많으셨네요. 좋은 곳에 가셨을 거예요. 훌륭한 아드님 덕분에.”

“회장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또 그 소리. 동생분은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좋은 병실에서 편하게 잘 지내고 있고요.”

“다행이네요. 하 이사도 얼른 마음 추스르고, 기운 내세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네, 그래야죠.”


차 회장은 할 얘기가 끝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하도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앞으로 가는 차 회장의 등에 대고 재하가 말했다.


“아 참! 회장님께 여쭤볼 게 있었는데.”

“뭐죠?”

“최근 해남에 가신 적이.”

“아, 아뇨. 제가 거길 왜. 그건 왜 묻죠.”

“아, 김 비서... 아, 아닙니다. 저, 회장님. 혹시 태식이파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태, 뭐요?”

처음 듣는 듯 되묻는 차 회장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태식이파요. 아세요?”

“아뇨. 제가 그런 것까지. 왜 그러시죠?”

“아, 그게... 뺑소니범 있잖아요. 그 사람 주소지가 서울 망원동이라네요. 게다가 조폭 일원이라고 하더라고요. 태식이파.”


재하와 차 회장이 뜻하지 않게 눈싸움을 벌였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두 사람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때 익숙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차 회장이 사용하는 대포폰이 분명했다. 자신과 은밀히 연락하던 폰이라 재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차 회장이 놀란 표정을 하며 재하 눈치를 살폈다.


차 회장이 대포폰을 집으려는 순간, 재하가 재빠르게 휴대폰을 낚아챘다. 발신자 이름은 망원동이었다. 차 회장이 버럭 화를 냈다.


“뭐, 뭐 하는 짓이에요? 남의 폰을 가지고.”

“아, 죄송. 제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빼앗다시피 손에 넣은 대포폰을 든 재하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저 석진인데요.]

“끊어. 나중에 전화할 테니까.”

재하와 거리를 둔 차 회장이 큰소리로 말했다.


[아, 지금 전화 받기가 곤란하신 모양이네요.]

“아, 아니에요. 말씀하세요.”

재하가 가성을 써가며 여자 목소리를 흉내 냈다.


[네? 아, 예. 다름이 아니라, 저희 형님께서 비용을 좀 올려주셨으면 하는데요. 갑자기 사람이 죽어버렸으니, 잡혀간 애 형량도 커지게 됐다고.]

“잡혀... 가다니요?”

[해남에서 사고 내고 잡혀간 애 말입니다.]


석진은 여전히 가늘게 낸 재하 목소리를 차 회장인 줄 알고 말했다. 차 회장의 얼굴은 이미 사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 네... 다시 전화 드릴게요.”

재하가 가느다랗고 여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왜, 왜 그랬어? 응?”

“뭘.”

“이게 끝까지.”

재하가 죽일 듯이 노려보며 차 회장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몰라. 난 모르는 일이야.”

“당신. 내가 가만히 놔둘 것 같아? 당장 죽여 버릴 거야.”


재하는 차 회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제 혼을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재하는 티 나지 않게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엉뚱한 생각하지 마요.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것 같아요. 난 강 회장과 다르다고!”

차 회장은 왼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차 회장의 손목에 실로 짠 팔찌가 보였다. 재하는 궁금한 듯 물었다.

“그게 뭐.”

“어린 양의 피. 그 피로 염색한 실이지. 당신 혼이 내게 들어오지 못한다고.”

“뭐?”


어쩐지, 재하는 분했지만 물러서야 했다.


“당신. 두고 봐. 내가 세상에 다 까발려버릴 테니까. 당신이 강 회장, 차 지점장 죽인 거 다. 알았어?”


재하가 집무실을 떠나자 차 회장이 털썩 주저앉았다.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했다. 마음을 추스르듯 평정을 찾은 차 회장은 힘겹게 일어나더니 급하게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차 회장은 자신의 대포폰을 귀에 대고 천천히 창가로 움직였다.


“여보세요.”

[아, 네. 회장님. 안 그래도 지금 전화 드리려.]

“당신 미쳤어?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 전화하지 말라고 했지? 지금 뭐하자는 거야!”

차 회장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흥분한 말투로 화를 냈다.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저희 형님이.]

“형님이고 자시고 내 말 잘 들어. 다시 한 번 더 이런 식으로 전화했다간, 그땐 내가 당신들 가만히 안 둬. 알겠어?”

[아, 예.]

차 회장의 살벌한 기세에 상대방은 주눅 든 목소리였다.


“그리고 당신 형님이라는 분한테 전해. 돈은 원하는 대로 다 줄 테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말라고. 대신, 지금 내가 부탁하는 일을 무사히 끝내고 나면 준다고.”

[무슨...]



통화를 끝낸 차 회장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감돌았다.

“근본도 없는 것이 어디서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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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7화. 근본 없는(2) 19.04.26 195 1 11쪽
» 7화. 근본 없는(1) 19.04.25 124 0 12쪽
25 6화. 가진 자의 품격(4) 19.04.23 13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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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6화. 가진 자의 품격(2) 19.04.20 137 1 15쪽
22 6화. 가진 자의 품격(1) 19.04.19 15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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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화. 나쁜 생각(3) 19.04.11 168 0 13쪽
15 4화. 나쁜 생각(2) 19.04.10 17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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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화. 어린 양의 피(2) 19.04.06 152 0 11쪽
10 3화. 어린 양의 피(1) 19.04.06 185 0 15쪽
9 2화. 딴생각(4) 19.04.05 169 1 12쪽
8 2화. 딴생각(3) 19.04.05 19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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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화. 딴생각(1) 19.04.04 2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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