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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사담 님의 서재입니다.

메뚜기 영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체프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07
최근연재일 :
2019.05.04 14:53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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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168,894

작성
19.04.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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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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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딴생각(4)

DUMMY

어느덧 5월이 되었다.


노는 날이 너무 많은 달이었다. 그래서인지 회사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경영혁신팀이 있는 15층 사무실에서 나온 재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업기획팀이 있는 7층까지 내려갔다. 7층 복도에서 내린 재하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티, 팀장님!”

“아, 재하 씨. 왜 이제 와? 이 부장 부탁한 거, 박 대리한테 맡겨놨으니까 찾아가. 난 바빠서.”


재하를 발견한 영업기획팀장이 서두르며 말했다. 재하는 계단 쪽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그의 등 뒤에 대고 인사했다.

“아, 감사합니다. 다녀오십시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재하는 박 대리 자리로 향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재하는 그의 책상 위를 훑으며 문서를 만지작거렸다. 재하가 찾던 문서를 발견하고 막 집어 드는 순간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 경계하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재하가 움찔하며 문서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돌렸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은비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재하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하, 너.”

“헤... 오랜만. 잘... 지냈어?”

재하가 멋쩍게 웃으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재하 목에 걸린 ID카드를 뒤늦게 발견한 은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여기 다녀?”

“어. 그렇게 됐어.”


재하는 ID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은비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 어떻게. 아니 언제부터?”

“얼마 안 돼. 한... 삼사 개월? 헤헤헤. 많이 놀랐나 보네?”

“아니, 머.”


은비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필 직장에서 예전 남자친구를 만나다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게다가 재하가 같은 직장에 다닐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지 않은가. 왠지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언짢아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은비는 애써 표정 관리하느라고 힘들었다.


“잘됐네.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아, 그게.”


재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때 제 자리로 돌아오던 박 대리가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두 사람, 아는 사이였어?”

“아, 네.”

재하가 얼른 답했지만 은비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 그럼 그렇지. 어쩐지... 했네.”

박 대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살짝 귀에 거슬린 은비는 박 대리를 기분 나쁘게 꼬나봤다. 무덤덤하게 자리에 앉은 박 대리는 문서를 뒤적거렸다. 재하에게 문서철을 건네며 박 대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거 맞지? 가져가.”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재하가 넙죽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은비와 마주한 재하는 ‘또 봐’라며 속삭이듯 말하고 그녀를 비켜 지나갔다. 은비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화난 사람처럼 서 있었다.


“배 대리는, 안 가? 나한테 뭐, 볼 일이라도 있어?”

박 대리가 불편한 눈빛으로 은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 아까 그 말?”

“응? 무슨 말?”

박 대리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은비의 눈초리가 살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사람하고 제가 아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잖아요?”

“아, 그거?”

“네, 그거요!”


박 대리가 난처한 기색으로 머뭇거렸다. 은비는 살벌한 눈빛으로 꼬나보며 박 대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을 듣기 전에는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저 사람 뒤에 강 전무님이 계시거든. 그리고 알다시피 배 대리도 강 전무님이 여기 꽂아 준거고. 그래서 머, 서로 잘 알겠거니.”

박 대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끝을 흐렸다.


“강 전..무님이요?”

의외의 대답에 은비는 상기된 눈빛으로 재하가 사라진 쪽을 쳐다봤다.


퍼즐이 어느 정도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재하가 태주 그룹에 입사한 것과 자신이 뜬금없이 정직원으로 본사로 발령 난 것도. 강 전무 정도의 배경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혹시, 재하가 아직도 날?’

쉽게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도 은비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흘렀다.


헤어진 여자 친구를 몰래 챙겨주었다는 건, 아직도 미련이 남았다는 건데. 복잡한 감정이 은비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날 저녁.


재하는 동네 한 술집에서 은비와 마주 앉았다. 사무실에서 재하와 어설프게 헤어진 후에 은비가 먼저 사내 전화로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몰랐다며, 진작 알았다면 밥이라도 같이 먹었을 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속이 빤히 보이는 소리였지만 재하는 싫지가 않았다.


재하는 그런 은비에게 은근슬쩍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주말이기도 했고, 은비의 의중을 대충 알 듯도 했기 때문이다.


“정말 반갑다야. 그런 데서 널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은비가 해맑게 웃었다.


“그러게, 헤헤헤. 나도 그래.”

재하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재하는 은비와의 지난 일들을 끄집어내며 어색한 분위기를 덮으려 애썼다. 한때는 서로 살을 섞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헤어지고 나니 처음 만난 사람보다 더 어색했다. 하지만 술잔을 부딪칠 때마다 두 사람은 점점 과거의 연인으로 변해갔다.


“재하 너, 내 생각하기는 했어?”

“그럼. 했지. 엄청 많이.”

혀 짧은 소리로 은비가 묻자 재하는 마냥 좋아서 빠르게 답했다.


“치. 거짓말. 욕 안 했으면 다행이겠다.”

“아냐. 욕은 무슨! 너 같이 착한 애한테 왜.”

은비가 부끄럽게 빤히 쳐다보며 묻자 재하는 손사래를 쳤다.


“착하긴.”

“그래서 말인데. 미안.”

“뭐가?”

“내가 심하게 말했던 거.”

“난, 잊었는데. 우리 그런 재미없는 얘기 말고, 딴 얘기 하자, 응?”

“그, 그래.”

“너, 사귀는 여자 없어? 있지?”


은비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은 듯 화제를 급하게 돌렸다.


“없어. 너랑 헤어지고 쭉.”

“거짓말.”

“진짜라니까. 보여줘?”

“뭘?”


재하 시선을 따라 은비의 눈길이 아래로 향했다. 재하가 능글맞게 웃으며 허리띠를 풀고 바지춤을 잡았다.


“아, 야아! 취했나 봐. 미쳤어.”

“주인을 못 만나서 옛날 그대론데, 볼래? 넌 보면 알잖아?”

“어머머, 얘가 미쳤나 봐.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은비는 발그레 달아오른 제 얼굴을 만지며 쑥스럽게 말했다.


“내 말 믿지? 안 그럼 보여주고.”

“아냐, 믿어. 믿으니까 하지 마. 제발.”

“진작 그럴 것이지.”

“야한 소리 잘 하고, 여전하네. 하나도 안 변했어.”

“칭찬이지? 변할 게 뭐 있어야 변하지. 가진 것도 없고.”


시무룩하게 말하는 재하에 은비는 빙그레한 미소를 띠며 바라봤다.


“우리, 술 한 잔 더 할래?”

“좋지. 어디 갈까?”

“음... 회사 사택이긴 한데, 내 아파트 어때?”

“그래도 돼?”

“그럼. 지금은 나 혼자 써.”

놀라 묻는 재하에 은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재하는 은근히 설렜다. 집으로 남자를 들이는 건 순전히 술이 목적이 아니지 않은가. 잘 하면 잘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재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뜨거워졌다.



은비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한 두 사람은 술을 제대로 마시지도 못했다. 재하가 너그럽게 은비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만무했다. 은비가 이미 눈빛으로 허락했고, 그걸 모른 척한다는 것은 남자 된 도리가 아니라고 재하는 생각했다. 더구나 서로는 오래전에 여러 차례 관계를 가졌던 사이가 아니던가. 재하는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서로의 몸에 익숙했던 터라 부끄러울 것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술이라는 핑곗거리도 만들어놓았지 않았던가. 행여 다음날 민망해지기라도 한다면 술기운이었다고 둘러대면 되었다.


그날 재하는 밤새도록 은비와 한 침대에서 뒹굴었다. 지칠 법도 한데, 재하는 은비를 떼어놓기 싫었다. 은비 생각은 달랐지만.



날이 훤하게 밝았지만 재하는 침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모래알을 씹은 듯 입안은 거칠었다. 안 뜨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주변을 살폈다. 은비는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다 되어갔다. 재하는 겨우겨우 침대에 몸을 세우고 멍하니 앉았다. 정신을 차려야지, 고개를 저어가며 굳은 몸을 깨웠다.


밖에서 인터폰 소리가 들렸다. 뭐지, 재하가 눈곱도 못 떼고 있는 사이 은비가 방으로 들어왔다. 은비는 다급한 얼굴로 속삭이듯 말했다.


“나오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

“왜.”

재하가 묻는 말에 대답도 않고 은비는 문을 닫고 나갔다.



쾅. 쾅. 쾅.

“나가요.”


은비가 소리치며 현관 쪽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재하는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뭐 해. 빨리 안 열고.”

“화장실. 화장실에 있었어요.”

“누구랑 같이 있어?”

“아뇨.”


낯익은 목소리였다. 재하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던가. 누구지, 재하는 금방 남자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냈다. 차지철. 강남 지점장이었다.


‘저 자식이 여길 왜? 둘이 아직 안 끝낸 거야?’

밖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재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얼른 옷이나 입어. 아직 아침 안 먹었지?”

“갑자기 왜요. 어디 가게요?”

“가 보면 알아.”

“어딘지는 알아야.”

“집 보러.”

차 지점장이 어슬렁거리며 시크하게 말했다.


“네? 무슨 집요.”

“언제까지 회사 사택에서 살 순 없잖아. 여기 찾아오는 것도 성가시고.”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 이촌동에 좋은 집 봐뒀으니까, 같이 가서 보자고. 왜, 싫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그러니까.”

“잔말 말고, 어서 옷이나 갈아입어.”


은비를 재촉한 지점장은 식탁 의자 등받이에 한쪽 팔을 걸치고 앉았다. 재하가 있는 방을 살짝 흘겨본 은비는 기다리라 말하고 옷 방으로 들어갔다.


차 지점장이 은비가 들어간 방을 힐끔 쳐다보고는 소리 안 나게 의자에서 일어섰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재하가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달칵, 손잡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잡고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 문틈 사이로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안으로 고개를 삐죽 집어넣은 차 지점장이 방 안을 둘러봤다. 방 안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지만 하얀 변기가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바닥에 물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차 지점장은 방문 닫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게 닫고는 거실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불을 켜고 과감하게 문을 열었다.


“아직 안 씻었지?”

“네. 씻어요?”

“아냐. 그냥 가.”

굳어 있던 지점장의 얼굴에 겸연쩍은 미소가 흘렀다.


발자국 소리가 울리고, 신발 신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어느새 현관문이 닫혔다. 한순간에 집 안 전체가 조용해졌다.


샤워 부스 안 바닥에 퍼질러 않아있던 재하는 무릎을 접어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이마를 무릎 위에 대었다. 어찌나 쪽팔리던지. 제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던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지 않은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덮친 남편을 피해 숨은 남자, 자신이 영락없는 그 꼴이었다.


“체. 내가 당했네.”


재하는 잠시나마 딴생각을 했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바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은비의 농락에 놀아난 것을 알고 재하는 못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하긴, 사귈 것을 전제하고 같이 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강요는 없었고, 선택은 온전히 자신 스스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분했다. 한 몸이 되어 뒹굴 때는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재하는 분한 눈으로 그들이 사라진 쪽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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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8화. 고독한 해결사(1) 19.05.01 116 0 9쪽
29 7화. 근본 없는(4) 19.04.29 113 1 12쪽
28 7화. 근본 없는(3) 19.04.27 122 1 10쪽
27 7화. 근본 없는(2) 19.04.26 194 1 11쪽
26 7화. 근본 없는(1) 19.04.25 123 0 12쪽
25 6화. 가진 자의 품격(4) 19.04.23 137 0 13쪽
24 6화. 가진 자의 품격(3) 19.04.21 157 2 11쪽
23 6화. 가진 자의 품격(2) 19.04.20 137 1 15쪽
22 6화. 가진 자의 품격(1) 19.04.19 153 0 13쪽
21 5화. 어쩌면(4) 19.04.17 150 0 15쪽
20 5화. 어쩌면(3) 19.04.16 181 0 13쪽
19 5화. 어쩌면(2) 19.04.15 211 1 11쪽
18 5화. 어쩌면(1) 19.04.13 202 0 11쪽
17 4화. 나쁜 생각(4) 19.04.12 169 0 12쪽
16 4화. 나쁜 생각(3) 19.04.11 167 0 13쪽
15 4화. 나쁜 생각(2) 19.04.10 170 0 14쪽
14 4화. 나쁜 생각(1) 19.04.09 192 0 14쪽
13 3화. 어린 양의 피(4) 19.04.08 226 1 15쪽
12 3화. 어린 양의 피(3) 19.04.07 214 1 10쪽
11 3화. 어린 양의 피(2) 19.04.06 151 0 11쪽
10 3화. 어린 양의 피(1) 19.04.06 184 0 15쪽
» 2화. 딴생각(4) 19.04.05 169 1 12쪽
8 2화. 딴생각(3) 19.04.05 192 0 11쪽
7 2화. 딴생각(2) 19.04.04 189 1 12쪽
6 2화. 딴생각(1) 19.04.04 225 0 10쪽
5 1화. 이상한 노인네(5) 19.04.03 229 1 15쪽
4 1화. 이상한 노인네(4) 19.04.03 262 1 9쪽
3 1화. 이상한 노인네(3) 19.04.02 320 1 13쪽
2 1화. 이상한 노인네(2) 19.04.02 29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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