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이세계 러브
26.나도 둑흔둑흔 이세계 러브
콩닥콩닥.
죄인에게만 로맨스가 있는가.
______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딴 놈이 내 절친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놈에게만 로맨스가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나도 있다.
뭐....
나 홀로 현재진행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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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하솔
현재 - 아르센
아마 28세에 죽었을 것이다.
과거의 일 따위 신경 쓸 정도로 현재의 난 여유롭지 않다.
“정말 죄송합니다!”
자기가 커피 쏟아 놓고 왜 쏟았냐며 지랄 떠는 진상고객님.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나, 이 호텔 사장 친구야!“
여왕 특별 대접 안해준다는 이유로 항의하며 갑질하는 또 하나의 진상 손놈 아니 고객님.
”김치 왜 없어요? 이런 고급 호텔인데 없을리가 없잖아요!!“
스테이크 포함 양식 코스요리에 김치 내놓으라고 고집 피우는 김치년 아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고객님.
그렇다. 난 당시 8년차 호텔리어 이하솔이었다.
만나는 손놈들마다 다 거지 같았는데
이 망할 직장이라는 곳도 원래 블랙이라 매일 매일 야근과 잔업은 필수였다.
하루종일 구두 신고 서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일의 특성 상 휴게 시간 강제 반납 당한 채 매일 일하는 건 중노동과 다름 없었다.
난 그동안 뭘로 이런 육체 중노동을 견뎌 왔을까.
전생에서의 로맨스는 딱 한번 있었다.
물론 그것도 거지 같았다.
틈만 나면 지각, 믿고 돈 빌려줬더니 무한 잠수, 입만 열면 거짓말, 심지어 너무 힘들어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사실 적시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전화 협박까지.
“헤어질 땐 이제 남남이고 내가 연상이니 이제부턴 반말하지마. 그리고 그 때는 실수로 폰 액정 망가뜨린 거 봐줬지만 이제 헤어졌으니 변상해.”
놀랍게도 이게 헤어질 때 내게 한 말이었다.
헤어진 후에도 돈 안갚기 위해 거짓말로 밑밥 깔려는 시도와
“나 이제 군대가야 해서...”
“응? 뭐라고? 예준이 말로는 너 공익이라고 하던데?”
뚝-
나와 연애 도중 몰래 바람 피웠다는 사실과 함께 매달 상환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은
“아... 그거?? 걔 새로운 여친 생겼는데 매달 여친 월세 내주고 있던데?”
현(現)여친에게 너무 헌신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생긴 건지 그 새로운 여친에게 돈 퍼주느라 안 갚은 게 아닌 ‘못’ 갚은 거였다. 정말 답답하고 한심 그 자체인 남자였다. 그것이 내 첫 연애이자 마지막 로맨스였다. 일상도 뭐 같은데 기대했던 사랑도 이 따위이니 당연 세상 모든 것이 다 거지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거지 같다면 적어도 적성에 맞는 일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어느 만화 캐릭터의 명언이 생각났다. 그래서 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겠지.
내 서비스에 만족해서 좋은 하루가 되었다던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 되어 좋은 기억으로 남은 덕에 친구들에게 소개해 또 다른 손님으로 데려오는 등 나름 뿌듯함이 있었다. 그것도 없다면 난 계속 버틸 수 있는 원동력 따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매일 거지같고 개 같은 쳇바퀴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최악의 이벤트가 발생했다.
“크히히히히힛!!!”
광대가면에 식칼을 든 남자.
윤수창, 현재 베아트리스였다.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 해! 특히 너 같은 ‘배신자’는..... 크힛히히히히히히.....”
스스로에게 온갖 변명과 핑계를 갖다 붙이며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최악이었다. 적어도 왜 연서를 죽였냐며 저항 한번 쯤이라도 해보고 죽을 걸. 난 아직도 연서를 볼 면목이 없다. 그렇기에 난 스스로를 나약하면서도 비겁한 쓰레기라 여기며 살아왔다.
끝없는 자기혐오.
난 나를 용서할 수 없다.
난 나를 죽이고 싶다.
난 다시 태어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래서....
강해지고 싶었다.
강한 육체와 힘만이 나를 구원하고 모든 것을 지켜줄 거라며
그렇게 가치관이 변했기에
지독하게 매달렸다.
예전엔 돈 돈 돈
지금은 힘 힘 힘
돈만 있음 뭐든 괜찮아져.
적성이 맞는 직장에서의 뿌듯함이
전부를 채워줄 수 없다면 남은 건 금융치료 뿐
하지만 현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강력한 힘을 가진 귀신 앞에서는
그 무엇도 바꾸거나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수천 아니 수만 그 이상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돈만 많이 있음 다 될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그래
그래서 그 때
자기 절친도 구하지 못한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돈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
이젠 그를 지킬 힘이 필요해
난 아직도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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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자기 단련에만 미쳐 살았었던 과거.
잠시 먹고 자는 거 말고는 쉬지도 않고 단련만 해댔었다.
자기 시간이 없어 불쌍해 보여도
정신차리고 적응하다 보면 그것이 곧 자기 시간이 되니
나름 할만한 루틴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날 유심히 지켜보았던 그 남자.
“어?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남들과 다르게 유난히 자기 단련에만 미쳐 사는 내가
너무 신기해서 일부러 다가왔다는
검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칸’이라는 이름의 남자.
현생에서 15세일 때 알게 된 남자였다.
나와 같은 일족의 남성으로 창술이 뛰어난 개 인간이었다.
현재의 내 창술도 그에게로부터 배운 것이다.
말그대로 검은 털의 리트리버 같은 남자였다.
생긴 건 늑대같이 생긴 주제에 하는 짓은 리트리버 같이 항상 해맑은 성격과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몸만 큰 대형견이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하지만 그 야생적인 카리스마도 아예 못쓰는 건 아닌지 진지할 때는 확실히 진지해지더라.
거짓말 아니고 정말로 리트리버가 아닌
야수와 같은 눈빛으로 한번만 더 날 힘들게 하면 가만 안두겠다는 대사와 함께
날 껴안고 노려보며 으르렁 대는 그 모습이 되게 반전이었다.
그래서 의외로 매우 인상적.
뭐야... 얘 이중인격이야??
음....
되게 맘에 들어.
‘이성적인 매력’ 으로서는.
그래도 내면적인 성숙미는 무시못한다.
기대 안 했는데 의외로 되게 어른스러운 녀석이었다.
마법소녀로 발탁되어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을 때
온갖 내부 비리와 은폐들로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너무나도 많았다.
1급-야크샤(Yaksha)
2급-아몬(Amon)
3급-페리톤(Peryton)
4급-프레타(Preta)
5급-페넥스(Phenex)
3급이라 하면 2급이고
2급이라고 하면 1급.
잘못해서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으면
나몰라라 하며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대상화 하며
옆에서 술이나 따라보라는 일반인들의 조롱
이제는 생체실험으로 만들어졌었다는 충격적인 진실과 동시에
뭐 조금 맘에 안 들었다는 이유로 누명을 씌워 죽이려고 하는 그런 직장도 뭐고
모든 것이 너무나도 밉고 증오스러워
나름 사람들을 지키며 얻는 그 보람과
그 경험으로 강해져 성장할 수 있다고 버텨온 내 긍정이
그 신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 대체 뭘 위해 싸우며 버티고 있는 거지?”
난 이제 더이상 올바르게
살 수도
싸울수도
관철하는 것도
불가능해지는 걸까.
[아메바 같은 놈들]
아메바는 원래 뇌가 없는 단세포 동물이다.
그러니 생각이라는 것도 불가능 한 것들이겠지.
그래서
아메바.
“전부 내려놓고 부셔버리고 싶어...”
그 때
내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뻗어 내 눈을 가렸다.
난 뻔한 대사를 예상했다.
아마
‘누구게?’
라고 예상한 찰나.
“아무것도 보지마.”
난 냄새와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칸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듣지마”
그는 내 귀를 가리며 말했다.
“그 무엇도 맡지마.”
대체 무슨 의도인건지
내 코를 가리며 말했다.
“나만 보고 내 목소리만 듣고 내 냄새만 맡아.”
“??”
“그리고 내 손만 잡아. 너가 괴로워하지 않게, 어긋나지 않게...”
“칸?”
“내가 이끌어 줄게. 항상 밝은 곳으로만. 너 요즘 많이 힘들지? 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 왜 웃지 않는거야?”
“칸 저기...”
“왜 나에게 기대지 않는 거야?”
“?!!”
그는 언제부터 어떻게 눈치챈 건지 모르겠지만 날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며 말한 걸까.
순간 얼어붙었던 심장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만의 어른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난 그런 그 특유의 어른스러움이
그 자상함이
싫지는 않았다.
그 때 내가 한 대답은
“미안, 나 혼자 아파할 생각이었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넌 너무 상냥해서...”
********
전에 유스가 하빌리스로 현실조작을 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범세계적 지명수배자가 되어 개고생 했었지.
그 때 더럽게 힘들었다.
진짜 뭐같은 같은 직장 같으니라고
그는 내 소식을 듣고 걱정된 나머지 일부러 산에서 내려와
나를 찾아 도시를 떠돌아 다녔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날 찾을 수 없자
그는 휴대 전화로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에 그에게 내 연락처를 공유한 적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그럼에도 난 널 믿어. 부탁이니 내게 돌아와 줄래?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런 거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렸을 때
오직 그 만이 나를 유일하게 믿고 기다려 주었다.
그러니 내가 반할 수 밖에.
나 혼자 설레는 거지만
그래도
나 홀로 이세계 러브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그와 이루어질 수 있기를.
- 작가의말
베아는 안됐는데 아르센은 잘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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