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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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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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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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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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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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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5

DUMMY

“그래도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준비해야 해.”

“네?”


지혁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르는 추웅의 대답에 잠시 당황했다. 마치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듯한 말투. 자신의 지금 질문을 이미 예상하던 것일까?


추웅은 그런 지혁을 바라보지도 않으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야. 언제 어떤 경기에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까 항상 대비해야지. 그 ‘어떤 경기’가 어떤 경기인지는 말하지 않겠다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라.”

“……?”


어떤, 언제, 어떻게, 이런 말들을 썼지만 지혁은 아무리 들어봐도 이번 주에 있을 목요일 경기를 말하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은석은?


물론 지혁이야 어느 팀이나 상황에 따라 맞춰 넣는 자리인 제5선발이다. 필요하면 계투로 써버리고 가끔 아무나 집어넣으면서 머릿수만 챙기면 되는 그런 자리. 최근까지야 그런 보직 파괴 없이 선발 투수로만 등판하며 전반기를 끝내가고 있었으나, 그것도 저번 윈즈와의 경기 중 중간 투입이 이루어지며 어느 정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을 누군가는 토종 5인 로테이션이라는 이상적인 야구의 한계라고 하며, 누군가는 그 설계도는 좋았으나 사용된 재료가 나빴다고 얘기한다.


아무튼, 그런 5선발인 지혁이야 언제 어떤 경기에서 무슨 보직으로 써 먹혀도 이상하지 않은 투수였지만, 은석은 다르지 않은가? 나가떨어져야 한다면 자신이 먼저 아닌가?


아니 그보다, 애초에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에겐 아직 그 어떠한 얘기조차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포수는-직접 말하진 않았다 해도- 분명히 일어날 일이라며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었다. 투수 운용에 변수가 생길 것이라고.


지혁의 그런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 말 없던 지혁을 이상하게 느껴 잠시 바라본 추웅은 그런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식 웃고는 재차 강조했다.


“나는 이번 주에 뭐가 어떻게 될 거라고는 한 마디도 얘기 안 했다? 그저 언제라도 붙을 가능성이 있는 상대니까 금진이나 준화가 준비하는 김에 너한테도 얘기해두자고 생각한 것뿐이야. 은석이야,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행동이 뭔지 어련히 깨닫고 있을 테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건 그건 네 자유다만, 상황이 닥친 뒤에 후회하면 늦는다. 하지만, 언젠가 갑자기 나서야 할 상황은 반드시 올 테고, 그때 거기서 네가 듬직한 모습을 보인다면 누군가가 있던 그 자리는 이후 네 자리가 될지도 모르지.”


두고 보라고 경고하는 것 같은 그 말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감이 느껴져, 지혁은 그저 추웅이 시키는 것을 곧이곧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7


전반기 마지막 주의 화요일. 전반기 마지막 6연전의 첫 번째 경기가 펼쳐질 오늘.


저녁때가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후끈한 열기가 굳건하게 머무는 그 무더운 하늘 아래의 그라운드에서, 타이푼즈의 선수들이 각자의 방식에 따라 몸을 풀고 있었다.


어제 월요일 오후, 지정 병원에서부터 ‘이상 없음’이란 진단 결과를 받은 지혁 또한 드디어 몸을 쓸 수 있게 되어 그라운드에서 가볍게 롱토스를 하는 중이었다.


상대는 팀의 선배이자 자신과 비슷한 1군 막내 라인 중 한 명인 우완 중간계투 김성준. 지혁이 던진 공을 받고 나서 다시 던지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내내 그의 표정은 심각할 정도로 나빴다.


상당히 긴장한 기색. 그 모습을 믿음직하게 여기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필승조의 일원 중 하나인 그의 그런 모습은 그렇기에 선발 투수조에 속한 지혁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성준의 지금 모습을 공감할 수 있을 테다.


‘20세기였다면 컵라면이나 생수통이 날아다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겠는데…….’


반쯤 농담으로, 지금 그라운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야유는 청각장애인조차 낫게 해줄 수준이었다.


야구에 관해서 극성인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게 지금 이 경남 지역의 야구팬들인데, 그 사람들이 단체로 뿔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제아무리 팀 내부에서는 더는 언급하지 말자고 한 채 억지로 끝낸 얘기라고 할지라도, 바깥에 있는 팬들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드러난 정보들만을 보자면 그렇게 넘어가기 힘든 문제인 게 사실이었고 말이다.


머물게 될 호텔 앞에서부터, 잠시 연습하기 위해 양해를 구했던 근처 고등학교의 야구장에 이르기까지. 기자들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타이푼즈를 지켜보려 따라다녔고, 그런 사람들이 보여줬던 반응들은 결코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야 이 파렴치한 새끼야!”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냐!”

“팍 떼버려라, 인마!”


홈 어드밴티지 수준을 넘어서, 아예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적이 된 듯한 광경. 간간이 들려오는 원색적인 비난의 욕설들이 귀를 찔러올 때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느낌이 소름 끼치도록 더러웠다.


아무리 각오했다고 한들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주눅이 들어있는 성준처럼 지혁의 마음 또한 지나칠 정도로 무덤덤해 보이는 겉과 달리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이런저런 욕설과 야유들이 귀를 때릴 때마다 그곳에서 이어진 뇌, 아래로 이어지는 심장, 무형의 마음마저 심하게 요동쳤다. 온몸에서 열이 끓어오르고 진정할 수가 없었다.


투쟁심이 샘솟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두고 보자고!’


이 열기를 잠재워버리면 정말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을 원정 경기에서 등판을 할 때마다 하곤 했던 그다. 오늘은 그런 평범한 원정지들의 반응과는 달리 원색적인 적개심이 섞여 있는 상황. 듣고 있으려니 뭔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이지혁 너도 그러는 거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마 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웨일스 연고 지역의 고교야구 스타이자 그 지역 토박이 출신인 김광진과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지혁을 향한 반응 또한 매우 좋지 않았다. 그 당시는 그 누가 보았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자신이 피해자일 텐데도 말이다.


‘너무할 정도로 내 편이 없다고는 생각했는데, 저런 생각들을 할 줄은 몰랐다. 정말!’


자신이 거기서 한 대 얻어맞았어야 했다고까지 억지를 부리는 이 화상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냥 좋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제 추웅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감독인 수룡으로부터 이번 주중 3연전의 마지막 경기인 목요일의 선발 등판을 준비해두라고 통보받은 상황. 지혁은 그 경기를 통해 여기 모인 이 관중들의 입을 어떻게든 다물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혁이 너, 상당히 침착하다? 대단하네.”


경기의 시작이 가까워져 연습을 갈무리하고 원정 덕아웃으로 향하는 중. 자신과 같이 롱토스를 했던 성준이 옆으로 다가오며 그렇게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체격 조건과 경력, 여태까지의 구력도 모두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선배의 그런 칭찬. 기쁘다면 기뻤지만 그렇게 신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내심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 자기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투수란 그래야 한다고 보고 자랐으니 말이다.


가슴 깊은 곳은 휴화산처럼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맹렬한 열기로 가득했지만, 결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있는 지혁.


그가 생각하는 투수란 언제든 침착해야 했다. 그 원래 성격이 어떠하든 마운드 위에서는 언제나 자신의 속에 있는 감정을 표현해선 안 됐다. 투수란 몇만 명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2배에 달하는 눈들에 감시당하면서도 당당해야 하는 존재였다. 마운드 위에 오른 이상 피할 곳은 없었고, 피해서도 안 됐다. 투수가 지는 순간 경기는 기울어지고 말 테니까 말이다.


지혁이 보고 자랐던 그 전설적인 투수는 언제나 그랬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도 잘 되진 않지만.’


[자, 전반기 마지막 주의 첫 번째 경기. 이제 그 경기의 첫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겠습니다. 원정팀 타이푼즈의 1번 타자는 중견수 이태화!]


지혁을 비롯한 타이푼즈의 선수들이 1회 초를 나서는 이태화의 뒷모습을 응원하며 지켜보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야유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없이 상쾌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속 시원하게 웃고 있는 그 불량한 외모에 야유가 따라붙자 정말로 악당 같은 모습이었다. 대중들의 분노를 즐기는 사악한 악역 그 자체였다.


어제 월요일 밤이 다 끝나가도록 사라지지 않았던 태화의 그 숙취. 그로 인해 끙끙 앓고 있던 그는 오늘 아침 거짓말처럼 갑자기 사라진 그것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다시 태어난 느낌. 당사자의 말에 따르자면 전에 번호를 교환했던 그 여자 아나운서가 꽤 걱정했다는 모양이다. 전화까지 하면서 상태를 묻는 그 다급한 목소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고.


[하하! 이태화 선수. 이런 말씀을 전해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위기에 웃고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입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요? 정말 악당 같아 보이지만, 지금 상황이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좋은 일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보는 저까지 기분 좋아집니다. ……그런데 공을 보곤 있는 걸까요?]


순식간에 볼 없이 2스트라이크를 허용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실실 웃고 있는 그 모습을 웨일스의 우완 선발 투수 제라드 로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올해로 한국 야구 2년 차인 로빈은 몇 번 태화와 맞붙은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기분 나쁠 정도로 가벼워 보이는 얼굴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 인간 공을 안 봐. 바로 죽이자.’


하나 바깥쪽으로 유인구를 던져보자는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저으며 로빈은 그대로 몸쪽에 붙는 속구를 요구했다. 우완 투수와 좌타자의 승부이고, 이 타자에게 이렇게 바로 승부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고 의견을 내보는 포수였지만 투수는 묵묵히 자신의 요구를 관철했다.


‘……그래, 그럼. 1회부터 화나게 하는 것도 곤란하니 한 번 기 좀 살려주고 가야지.’


포수는 경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듯한 로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쩔 수 없이 투수의 바람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실력만큼은 확실하니까.’


아무리 화나 보여도 분명 자신이 있기에 이런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투수의 요구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던진 제3구.


흠잡을 곳 없이 정확하게 날아오는 그 공을 포수는 흡족하게 기다렸다. 이대로 자신이 확실하게 포구하고, 심판은 시작부터 화끈한 제스쳐를 취해줄 것이다. 지금 이 뿔난 관중들의 야유는 웨일스를 향한 환호로 바뀔 테고 그럼 시작부터 경기장의 분위기를 완벽히 장악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시야에 방망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


포수가 꿈꾸고 있던 밝은 미래는, 갑자기 들이닥친 악당의 나무 몽둥이에 의해 무참하게 박살 났다.


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코스의 공을, 태화는 정말 교과서에 실어야 할 정도로 깔끔하고도 완벽한 중심 이동을 보이며 받아쳤다. 그 과정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웃는 얼굴은 변함없었다.


투수가 경악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외야로 시선을 향하고, 포수가 저도 모르는 새에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타구를 바라보았다. 악에 받친 채 지르던 관중들의 야유는 절망에 찬 비명으로 바뀌었다.


전광판을 그대로 맞추는 자신의 타구를 확인하며, 평소 홈런을 칠 때의 진중한 모습과는 달리 너무 밝게 웃으며 베이스를 도는 타자의 모습은 매너가 없다고 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스크린 직격! 이태화의 솔로 홈런! 타이푼즈가 1회 초부터 1점 앞서나갑니다!]

[……그 공을, 저기까지 보내나요?]


홈플레이트를 밟은 뒤, 곧장 덕아웃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관중석을 향해 자신의 양팔을 한껏 펼치는 태화의 그 모습은 마치 ‘욕하려면 맘껏 욕해라, ‘나한테’!’ 하고 어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말

이번 편을 세세하게 쓰려니 또 몇 편이나 잡아 먹을 것 같아서 쓱 지나가봤는데 어떨까 싶습니다.

언제나 의견 환영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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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4 16.02.16 519 14 8쪽
6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3 +2 16.02.12 533 12 9쪽
6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2 +2 16.02.11 459 13 8쪽
6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1 +8 16.02.05 612 15 6쪽
60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0 +2 16.02.04 558 11 8쪽
59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9 +8 16.02.03 690 12 9쪽
58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8 +6 16.02.02 619 11 7쪽
57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7 +3 16.02.01 778 12 8쪽
56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6 +2 16.01.30 615 12 9쪽
55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5 16.01.29 534 14 7쪽
54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4 +2 16.01.28 581 10 9쪽
5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3 +2 16.01.27 639 12 8쪽
5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2 16.01.26 502 10 9쪽
5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 16.01.25 812 17 9쪽
50 수중전 - 11 +2 16.01.23 671 14 8쪽
49 수중전 - 10 +2 16.01.22 634 18 9쪽
48 수중전 - 9 +4 16.01.21 560 15 9쪽
47 수중전 - 8 +2 16.01.20 749 12 10쪽
46 수중전 - 7 +2 16.01.19 653 16 10쪽
45 수중전 - 6 +2 16.01.18 715 16 8쪽
44 수중전 - 5 16.01.16 555 17 11쪽
43 수중전 - 4 +2 16.01.15 632 21 9쪽
42 수중전 - 3 +2 16.01.14 692 15 9쪽
41 수중전 - 2 +2 16.01.13 658 17 10쪽
40 수중전 - 1 16.01.12 522 19 14쪽
39 너무나 먼 출발선 - 13 +2 16.01.11 840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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