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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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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8,714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6.01.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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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
추천
12
글자
10쪽

수중전 - 8

DUMMY

**


질척질척한 마운드 위에서 계속하는 승부.


지혁은 마운드의 상태가 계속해서 신경 쓰여 타자에게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잠깐 연습 투구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마운드 보수를 요청할지 고민된다.


그러나 이미 1볼 2스트라이크로 리더스의 2번 타자 박두희를 몰아넣은 상황.


일단 눈앞에 있는 저 타자를 잡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지혁은 마운드 보수는 그 다음에 해결하자고 결정했다.


포수 추웅의 요구는 바깥쪽 낮게 빠지는 노심 패스트볼.


높은 공으로 스윙을 유도했던 첫 타석과는 달리 이번에는 철저하게 낮게 승부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방금 지혁의 그 높은 공이 실투였다지만, 그래도 구위가 갑자기 너무 나빠졌다는 판단에서였다.


체력이 문제이든 정신이 문제이든 결국 타순이 한 바퀴 돈 시점에서 구위가 갑자기 떨어진 것은 명백한 현실.


일단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했다.


‘한 개 정도 빠진 볼에서 나중에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가게…….’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공도 제법 가볍게 던질 수 있었고 힘도 남아돈다는 느낌이었는데, 하필 갑자기 마운드에서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그런 푸념과 함께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던져진 공이 다시 한 번 사고를 쳤다.


결국 제구가 완벽하지 않고 속구에 의존하는 투수.


정신이 산만해진 터라 위력이 형편없어진 그 패스트볼이 평소와 달리 제구까지 안 되어 몰렸다.


그것을 놓칠 상대 타자가 아니었다.


확신하며 배트를 내밀은 타자가 정확하게 때려낸 공이 그대로 중앙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내야의 정중앙으로.


“……!”


마운드에 서 있는 지혁이 놀란 두 눈을 통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던 것은 자신을 향해 쏘아진 타구였다.


퍼억!


“윽!”


순식간에 날아온 타구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라운드 위로 쓰러졌다.


젖은 흙과 몸이 맞닿으며 축축한 물소리가 들렸다.


그보다 더 크게 관중의 비명이 들렸다.


문제의 뺑소니 타구는 그 직후 높이 솟아올라, 신속하게 내야로 뛰어 들어온 유격수 주원찬의 글러브에게 그대로 체포되며 동시에 타자 또한 아웃이 되었다.


아웃 선언 이후, 일어나지 못하는 지혁의 모습에 주심이 즉시 타임을 외치고 3루 측 타이푼즈 벤치에서 코치진과 구단의 팀 닥터, 그리고 내야의 선수들이 곧장 마운드로 달려갔다.


[박두희 타자는 주원찬 선수의 수비에 아웃이 됐습니다만, 이지혁 선수 일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맞기 직전에 본인의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게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각종 인원이 모인 마운드에서 놀란 얼굴로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지혁을 보여주던 중계화면은 이윽고 리더스의 덕아웃을 동시에 비추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냉랭한 무표정이거나 아쉬운 게 있는 듯한 표정만을 하고 있던 리더스의 수석코치 이우진이다.


그러나 지금은 두 눈이 커질 대로 커진 채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운드를 향해 뻗은 손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자기 자식을 향해 덕아웃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기색이었지만, 도저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


침착함이 결여된 그의 그 상태는 여태까지의 이우진을 생각할 때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불안한 모습이었다.


[이우진 수석 코치, 많이 걱정되는 모습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죠, 예. ……저도 한 명의 아버지로서 너무나도 공감됩니다.]

[이지혁 선수를, 아들을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고 했던 그 말이 너무나도 와 닿습니다.]


그 이후 중계진은 타구에 강타당하여 부상이 있었던 그의 경력 등을 떠들었으나, 지금은 그다지 필요한 정보들이 아니었다.


한편, 마운드 위의 지혁은 주변의 그런 반응들에 비해 외견상으로는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머리로 타구가 향했던 것치고는 천만다행인 상황.


팀 닥터의 주도로 글러브를 빼내었을 때 지혁의 그 왼손은 약간 부어올라 있었다.


“어때요?”

“……등이 축축해요.”

“네? 등?”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의한 게 아닌, 얼굴에 계속해서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이 기분 나빠 얼굴을 찌푸리며 지혁은 마저 대답했다.


“네. ……나머지는 괜찮아요. 공도 잘 막았고. 봐요, 손 멀쩡하네.”

“지금이니까 이런 거지, 이게 부러졌는지 금이 갔는지 여기서 보고 어떻게 알아요?”


앞선 사례가 여러 번 있었던 만큼 그는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


금방 조치할 수 있었던 선수들의 부상들이 처치가 늦어져 돌이키기 힘들게 됐던 것들을 옆에서 질리도록 봐왔던 그였다.


그는 이런 식의, 선수들의 과도할 정도의 자기 과신과 투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각종 자기 혹사가 정말이지 진절머리 날 정도로 싫었다.


“아니. 정말 안 아픈데…….”

“당장 이번 주에 한규철 선수도 똑같은 말 했다가 지금 2군에서 뭐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런 말 해요!?”

“…….”


그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


선수들이 말 안 들어서 벌어진 일도 결국 그 책임의 화살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팀 닥터는 필사적이었다.


지혁이 그런 그의 말에 대답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축축한 땅바닥이 싫어서 몸을 일으켰을 때, 그렇게 앉아있는 지혁에게 말을 걸어오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지혁이, 괜찮으냐?”


조금은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그 말투의 주인공은 타이푼즈 수석코치 신재중이었다.


“예, 코치님!”


지혁은 그런 재중의 물음에 구세주가 나타난 것처럼 고개를 돌리며 즉시 대답했다.


주변을 보니 코치 몇 명만 나와 있었지 감독인 김수룡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수석코치인 그에게 맡기겠다는 뜻.


2군 감독을 맡고 있던 그 시절부터 지혁에게 강한 믿음을 보내주던 그라면 자신을 강판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지혁이었다.


재중은 지혁의 손과 얼굴을 순서대로 시야에 담은 뒤 말을 이었다.


“……너 많이 준비한 것 같더라.”

“예.”


순간 1회 종료 이후 덕아웃에 복귀했을 때 경악하고 있던 수룡, 투수 코치 연강훈과 대조되게 웃고 있었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던질 수 있겠어?”

“예. 던질 수 있습니다.”

“너 그랬다고 놔뒀다가 크게 다친 거면 그 책임은 누가 지라고?”

“그건…….”

“사실 그 정도는 내가 욕먹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 남은 야구 인생은 나도 책임 못 져.”

“…….”


고작 손일 수도 있고, 하필이면 손을 다친 것일 수도 있다.


쓰지 않는 쪽이라고 할지라도.


피칭이라는 건 그만큼 민감한 운동이니까.


남은 경기는 많다. 지금 이 경기는 넓게 보아 그저 시즌 중의 한 게임뿐일지도 모른다.


괜히 무리했다가 평생 달고 가는 귀찮은 증상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지혁도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남은 경기가 많다고 해서 그게 자신이 나설 경기가 많다는 뜻은 아니라고.


자신이 1군에 진입한 것은 반쯤은 운이었다. 그 운이 이어져서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 그때 이미 판단하지 않았었는가?


올해 지금까지의 이지혁은 실패작이라고.


2군에 있었던 쟁쟁한 동기들이 떠오르고, 자신보다 먼저 올라갔다 온 실적이 있던 선배들이 생각났다.


만일 지금 내려가게 된다면 자신이 다시 이들을 넘어서서 금방 올라올 수 있을까?


갑자기 새삼 떠오르는 2군과 3군 시절.


자신보다 잘난 사람 많고 해온 것 많은 사람이 잔뜩 있던 그곳에서 과연 자신에게 올라설 기회는 있을까 하는 남들과 똑같은 고민을 남모르게 했던 그때.


이제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겨우 매일매일 반가워할 수 있는 연인과 가족이 있는데.


지금 이 마운드를 내려갔다가 정말 다친 것으로 나온다면 이곳에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는가?


그러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지금 당장 멀쩡한 모습을 다시 보여서 지금 자신이 당한 이것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활약상을 남겨, 자신이 이 팀에 필요한 자원임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지금 가나 끝나고 가나 결국에는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할 테고, 만일 그 결과 자신이 이 무대에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 전에 뭐 하나는 보여줘서 감독과 코치진의 머릿속에 자신의 존재를 새겨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혁은 해야 한다면 무릎이라도 꿇겠다는 심정으로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던질 수 있습니다. 던지고 싶습니다. 던지게 해주십시오!”


아버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겠다거나, 친구들과 다시 야구를 한다거나, 연인과 가족의 슬픈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그 생각들은 이제 모두 다음의 것으로 밀려났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투수의 마음속에서 제일 우선이 되는 것은 바로 ‘마운드에 대한 욕심’이었다.


“흠…….”


그런 지혁의 모습과 경기 진행을 재촉하는 심판, 그리고 주변에 모인 선수단과 코치들을 보고 잠시 고민하던 재중은 끝내 결단을 내렸다.


“그래. 손도 다시 괜찮아지는 것 같고 이제 아픈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일단은 던져보자. 던지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내려오기로 하고. ‘끝까지’ 던질 수 있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겠지.”

“문제가 없다니요!? 그냥 오늘만 사는 무모한 짓이겠죠!”


재중의 결정을 들은 팀 닥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알아요, 알아. 나중에 정밀 검사는 보낼 겁니다.”


굳이 이런 말을 해줘야 하느냐고 한 뒤 그는 그렇게 마운드를 물러나기로 했다.


“……응?”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기니 발밑에서부터 전해지는 기분 나쁜 촉감.


그 땅을 몇 번이나 더 밟고서야 수석 코치는 그 행동을 그만두었다.


그 뒤 한숨을 쉬고 마지막으로 지혁을 혼냈다.


“이 녀석아! 상태가 이러면 바로바로 말했어야지!”


그 후 마운드의 보수까지 끝마치고 경기는 재개됐다.


작가의말

춥습니다.

어렵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타…… 항상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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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3 +2 16.02.12 533 12 9쪽
6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2 +2 16.02.11 459 13 8쪽
6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1 +8 16.02.05 613 15 6쪽
60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0 +2 16.02.04 558 11 8쪽
59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9 +8 16.02.03 690 12 9쪽
58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8 +6 16.02.02 619 11 7쪽
57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7 +3 16.02.01 778 12 8쪽
56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6 +2 16.01.30 615 12 9쪽
55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5 16.01.29 534 14 7쪽
54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4 +2 16.01.28 581 10 9쪽
5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3 +2 16.01.27 639 12 8쪽
5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2 16.01.26 502 10 9쪽
5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 16.01.25 812 17 9쪽
50 수중전 - 11 +2 16.01.23 671 14 8쪽
49 수중전 - 10 +2 16.01.22 635 18 9쪽
48 수중전 - 9 +4 16.01.21 560 15 9쪽
» 수중전 - 8 +2 16.01.20 750 12 10쪽
46 수중전 - 7 +2 16.01.19 653 16 10쪽
45 수중전 - 6 +2 16.01.18 715 16 8쪽
44 수중전 - 5 16.01.16 555 17 11쪽
43 수중전 - 4 +2 16.01.15 632 21 9쪽
42 수중전 - 3 +2 16.01.14 692 15 9쪽
41 수중전 - 2 +2 16.01.13 658 17 10쪽
40 수중전 - 1 16.01.12 522 19 14쪽
39 너무나 먼 출발선 - 13 +2 16.01.11 840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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