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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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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8,702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6.01.30 13:24
조회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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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9쪽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6

DUMMY

“자만심만 가득해가지고! 노력은 너만 해? 연습을 너만 해? 절박해? 절박해야지, 그게 추해 보이냐! 별거 아닌 것 같아?”

“왜…….”

“재능이랄 것도 없고 노력도 대충 해서 고교야구 투수라는 놈이 사회인에서도 낮은 수준이었던 대회에서 홈런 맞은 게 너야! ……그걸! 죽도록 노력해서 프로에서 먹히도록 만들었으면 스스로 칭찬할 줄 알아야지! 내가 가르쳤어? 팀에서 몸이라도 바꿔줬어? 네가 한 노력이고 네 결과고 네 거야!”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말의 주제가 뒤섞이고 도중에 바뀌어서 이게 혼내는 것인지 칭찬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때는 분명 홈런이 아니라 2루타였다…… 같은 말은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저 아버지에게 압도당했다. 지혁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이고…… 나이 먹어서 화내려니 이거.”


자신에게 이토록 목소리를 높인 채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 아버지가 낯설었다. 이런 일이 있었나 싶었다.


낯설고, 조금 두렵고…… 그렇지만 기분 좋았다.


아버지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나에 대해 화내고 있다. 나를 지적하고 있었다. 나보다 나에 대해 냉정하다. 분명 칭찬도 했다.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말하고 있었다.


……즉, 나에 대해 생각해 왔다.


“하하~!”


그런 결론에 다다르자 다시 또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 지혁. 자신이 말을 너무 심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던 우진은 자기 아들이 갑자기 웃는 그런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가끔 이 아들을 이해 못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대체 자기 아들의 정신은 강한 건가, 약한 건가?


뭐가 됐든 이 말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숨을 다 고른 우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혁이 너, 많이 노력했다. 넌 그냥 너야. 네가 한 것 다 네 결과야. 물려받긴 뭘 물려받아? 재능이 뭐야? 내가 그런 공 던진 적이 있었나? 내가 제대로 알려준 게 뭔데? 네 몸, 네 공, 네 위치. 다 네가 이뤄낸 거다.”


그러자 입가의 웃음이 지워지지 않는 아들의 그것이 조금 보기 좋았다.


“그리고…… 당연히 절박해야지! 못하면 내려가는 게 이 세계야. 다들 똑같아. 네가 보기엔 느긋해 보이는 사람들도 다 안 보이는 곳에서 죽어라 노력하고 있거든? 지금 프로라는 명함 달고 있는 사람 중에 학생 시절 천재 소리 안 들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런 말 듣고 평생 야구만 하고 살아온 사람들도 1년도 못 버티고 수십 명씩 방출되는 게 이 리그야. 거기서 밑바닥에서 될 대로 되라고 뽑은 신인이 데뷔 해에 1군에 올라왔어. 지금은 1군 선발 투수래. 용병을 쓸 줄 알았던 그 빈자리에 너를 올려놓고 키우고 있는 거야. 기대하고 있고, 신인왕 후보래.”


주변에 들리던 빗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대단해. 지혁이 너 정말 대단한 거다 그거? 그런 애가 매일 절박하게 연습하고, 훈련하고 만족하지 않고 더 위를 향하겠다고 하네? 그래, 이 아빠가 말을 잘못 했다. 자만심은 없지. 그런 게 있었으면 묻지도 않았겠지. ……기특하다.”


줄어든 빗소리의 크기에 아들에게 향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하늘을 완벽하게 뒤덮었다고 생각했던 그 구름. 하지만 알고 보니 비어있고 군데군데 구멍이 있었는지 구름 틈새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홍빛 빛줄기가 한두 갈래씩 지상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빛의 영향일지, 우진의 얼굴은 매우 밝아 보였다. 정말 웃는 얼굴이 눈부실 지경이었다.


“기특한데, 너무 급하다. 자신을 칭찬할 줄도 알아야지. 뭐가 급해서 매일 그렇게 스스로 몰아붙여? 힘도 좀 빼고. 만족하지 않는 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그렇게 자기 구박하고 그러면 나중에 다치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얻을지도 모른다? 목표가 작아졌다고 하기보다는…… 현실적이 된 거지. 냉정해진 거야. 무턱대고 열정적인 것보다는 그게 좋다. 아들……, 많이 컸네.”

“그렇지만, 주변의 시선들이 말이에요……!”

“눈치 좀 그만 봐.”


어느새 우산을 접은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에 자신의 두꺼운 손을 올렸다.


“입으로 손으로 밤낮없이 떠드는 사람들이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너 대신 야구 해주는 것 아니야. 기대하는 게 당장 그만큼 잘하라는 게 절대 아니다? 응원은 그냥 고맙다고만 생각하고 넘겨 버려. ……당장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잘 해봐. 그게 완벽해지면 다른 길이 알아서 보일 테니까.”


어깨에서 뗀 그 손은, 문제없을 것이란 아들의 왼손을 어루만지려다가 흠칫하고 멈추었다. 만지면 깨질 약한 공예품을 대하는 손길이다.


“‘The Pitcher’는 뭐고 그 아들은 다 뭐냐! 내가 언제 그런 빠른 공들을 던졌다고? 여태 해야 할 것들만 착실히 잘 해왔더니 코쟁이 스카우터들 몇 명이 모범적인 투수라고 입 털어준 게 어쩌다가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 거쳐서 부풀려진 거지. 그 새끼들 결국 나 데려가지도 않았잖아? 아버지 봐라. 국내용이다. 네 애비는 스카우터들을 감탄하게 했던 적이 없어요.”

“…….”


아니, 그건 분명 계속 결혼이 늦어지고 짝도 못 찾다 보니까, 그 와중에 외국은 무슨 외국이냐면서 관심도 없다고 직접 말했던 게…… 외국 나가서 살 생각만 해도 외로워서 죽어버릴 것 같다고…….


그런 대답이 지혁의 목을 타고 올라와 입안을 맴돌며 빠져나가려 애썼지만, 결국 그는 그것들의 탈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아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자기 예전 자신의 선수 생활이 떠올라서 낄낄 웃던 우진은 이내 웃는 것을 멈추고 다시 지혁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누구보다 잘하겠다, 이런 생각은 그만하자. 괜히 그러다가 무리하지 말고, 오버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만 해. 그러다 보면 너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을 거야. 간만에 몸 멀쩡한 특급 유망주가 출현했는데 괜히 다치면 그거 얼마나 아까운 일이냐?”

“……네.”


자신을 인정해주는 대답. 자기 노력의 가치를 알아주는 대답. 항상 스스로 노력한 결과들이 모두 아버지의 이름 아래 가려진다고 생각해왔던 지혁이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이우진의 아들’이 아닌 ‘이지혁’을 바라봐주길 원했었는데.


결국,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건 아버지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지금보다 저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해보게 된 그는, 이제 그 잘하고 싶다는 게 ‘어떤 식’으로 잘하고 싶다는 건지 스스로 알 수가 없었지만.


그렇기에 지혁은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기대기로 했다.


“그렇지만…… 역시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박수쳐주고, 응원해주는 그런 투수가 되고 싶어요. 믿고 인정해주는 그런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걸 노력하는 건 네가 해야 할 일이지. 지금도 사람들이 응원은 해주지 않니? 오늘 너 인기 많던데?”

“그러니까 그 노력이라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그런 응원 말고, 그런 것 있잖아요? 이 사람이면 이겨줄 거다, 안심할 수 있다. 우승할 때 마운드에 있던 아버지나 우리 팀 에이스처럼……!”

“글쎄다, 새파란 신인을 믿어야 하는 팀이 과연 멀쩡한 팀인지 이 아버지는 그것부터 걱정되는데. 그래도 인화처럼 되고 싶다는 그 당찬 포부는 좋구나? 무지막지 노력해야겠다, 참.”


하지만 뱁새가 황새 따라 하다가는 가랑이만 다칠 뿐이라고, 그런 냉정한 발언과 함께 우진은 계속해서 대답을 이어갔다.


“사실 이런 것을 해야 하는 게 그쪽 코치나 트레이너들일 텐데……. 그래, 뭐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뭘 하고 싶은지부터 알아보자. 인화 같은 ‘꿈’ 말고, 당장 급한 것부터. 아들한테 제일 필요한 게 뭐야?”

“필요한 거요……?”


정말 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필요한 것. 항상 부족해서 아쉬운 것. 그런 거야 뻔하지 않은가? 이미 우진도, 다른 모든 구단들도 파악하고 있는 지혁의 최대 단점.


‘아,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결국 깨닫고 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랬다. 사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것부터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컸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더니 자신의 목표가 정말 주제넘게 커져 있었다.


지난주, 그리고 이번 주에 헌터즈와의 경기를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지혁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그랬었는데 대체 자신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눈이 돌아갔던 걸까?


그 사람의 저주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을 정리하고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오래 던지고 싶어요.”


그리고 오늘 가슴속에 자리 잡은 그 하나의 욕심,


“……그래서, 마운드를 내주지 않고 싶어요.”


작가의말

연참 대전 결국 끝까지 달렸습니다.

좋은 경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좀 느긋하게 써야지.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언제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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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외나무다리 걷어차기 - 1 16.03.05 564 7 7쪽
65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5 16.02.21 481 13 12쪽
64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4 16.02.16 519 14 8쪽
6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3 +2 16.02.12 533 12 9쪽
6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2 +2 16.02.11 458 13 8쪽
6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1 +8 16.02.05 612 15 6쪽
60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0 +2 16.02.04 558 11 8쪽
59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9 +8 16.02.03 690 12 9쪽
58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8 +6 16.02.02 619 11 7쪽
57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7 +3 16.02.01 778 12 8쪽
»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6 +2 16.01.30 615 12 9쪽
55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5 16.01.29 534 14 7쪽
54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4 +2 16.01.28 581 10 9쪽
5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3 +2 16.01.27 638 12 8쪽
5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2 16.01.26 501 10 9쪽
5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 16.01.25 811 17 9쪽
50 수중전 - 11 +2 16.01.23 670 14 8쪽
49 수중전 - 10 +2 16.01.22 634 18 9쪽
48 수중전 - 9 +4 16.01.21 560 15 9쪽
47 수중전 - 8 +2 16.01.20 749 12 10쪽
46 수중전 - 7 +2 16.01.19 653 16 10쪽
45 수중전 - 6 +2 16.01.18 715 16 8쪽
44 수중전 - 5 16.01.16 554 17 11쪽
43 수중전 - 4 +2 16.01.15 632 21 9쪽
42 수중전 - 3 +2 16.01.14 691 15 9쪽
41 수중전 - 2 +2 16.01.13 658 17 10쪽
40 수중전 - 1 16.01.12 522 19 14쪽
39 너무나 먼 출발선 - 13 +2 16.01.11 839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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