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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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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8,710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6.01.16 11:15
조회
554
추천
17
글자
11쪽

수중전 - 5

DUMMY

[너, 너클볼! 너클볼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보셨습니까!? 토우진 선수가 너클볼을 던졌습니다!]

[이지혁 선수도 그러더니 두 선수가 갑자기 시작부터 이런 깜짝 쇼를 보이나요!?]


뭐야?

그냥 아리랑 볼 아니야?

저걸 왜 못 쳐……?

오오, 너클볼……!

저거 잘만 던질 수 있으면 다시 메이저 가는 것 아니야?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 공으로 인해 구장에는 순식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해졌다.


그렇게, 토우진은 단 1구를 통해 구장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생각보다 잘 움직였어.’


너클볼의 데뷔전은 아주 성공적이었다며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포수가 던진 공을 다시 받았다.


무덤덤한 표정인 포수한테도 잊지 않고 다시 한 번 엄지를 척 들었다.


방금 백업 플레이도 그렇고, 지금 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낸 너클볼도 그렇고 정말 이 팀의 저 포수는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타석을 벗어나,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가벼운 스윙을 두어 번 반복하는 타자를 보며 투수는 다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번 보인 이상 분명 대비하겠지. 투구 자세의 차이가 분명한 만큼 던지기 전부터 진즉에 파악할 게 분명하다. 주자는 뛰겠지.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컨트롤할 수 있고, 이게 얼마나 잘 먹히느냐다.’


이윽고 다시 타석에 들어서는 카이트의 눈빛을 보며 토우진은 온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던질 테면 다시 한 번 던져보라는 표정.


‘타자의 입장에서는 요행이나 바라는 꼼수로 보일 테니 말이지.’


당대와 그 이전의 너클볼 투수들을 보고 물으며 조금씩 너클볼을 연습해왔던 토우진은 그렇기에 이 공을 대하는 타자들의 자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던지는 입장에서도 던지는 순간 나머지는 세상에 맡겨야 하는 공.


변수로 먹고 살지만, 투수는 그 변수를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통제해야 하는 공.


‘그래. 차라리 그런 자세가 좋다.’


자신의 그 춤추는 공을 박살 내버리겠다는 타자의 눈빛에 토우진은 맞서서 의욕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포수의 사인도 자기 생각과 일치.


‘어차피 이 타자를 잡기 위해선 이것밖에 없다.’


각오를 다지며 다시 투구 모션에 들어갔다.


발을 떼는 그 순간 주자가 뛰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른 것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 끝장이다.


다시 한 번 세상 속에 자기 자신을 거리낌 없이 내보이는 그 공을 던지고, 토우진은 모든 결과를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흐느적흐느적, 이리저리 맘대로 움직이던 그것은 다시 한 번 요령 좋게 카이트의 방망이를 피해 미트 속으로 들어갔다.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의 타자를 보며, 투수는 가슴 속에 무엇인가가 가득 들어차는 기분이 들었다.


진즉에 뛰었던 1루 주자 주원찬은 그 순간 이미 2루에 안착한 다음이었다.


[2구도 너클볼이었습니다! 맥킨 카이트 이 공을 전혀 건드리지 못합니다! 주원찬은 도루 성공!]

[정말 움직임이 어마어마한 공입니다!]


‘이게 뭐야. 나는 신경도 안 쓰잖아?’


그런 빈틈투성이의 폼으로 언제까지 던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잽싸게 뛰었던 원찬이었지만, 투수는 아예 자신을 생각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좋다, 이거야. 한 번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두고 보자.’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원찬은 베이스에서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투수는 여전히 아예 2루 쪽에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


주자인 원찬의 입장에서는 정말 다음 베이스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견제 한 번 정도는 하는 게 어때?’


그런 원찬을 보며 그렇게 신호를 보내는 포수에게


‘뛰라고 놔둬. 잘 될 때 계속 던지고 싶다.’


토우진은 상관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고 하고 싶지만!’


하지만 지금 이 고개 젓는 것은 가짜.


그는 잽싸게 몸을 돌려 2루로 공을 쏘았다.


‘야, 반칙!’


순식간에 일어난 그 사태에 원찬이 급하게 2루로 다시 귀루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먼저 베이스에 닿는 것에 성공하여, 견제사라는 최악의 아웃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만 붙어 있어 주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원찬을 보고 공을 다시 돌려받으며 토우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


2루로 돌아갔던 주자는 뭐가 좋은지 웃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리드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신경 쓰인다 이거지? 어디 한 번 또 그 정신 나간 놈을 던지나 두고 보자.’


견제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원찬은 오히려 처음보다 더 베이스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네가 허세면 나도 허세다.’

‘죽고 싶나? 아예 죽여 달라는 자세고만?’


그렇게 멀어지고 있으려니 주자는 별안간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투수와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전혀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렇게 잠깐 펼쳐진 기 싸움.


그러면서도 되려 한 발자국 더 멀어지려는 그의 모습에 토우진은 잽싸게 다시 한 번 2루에 견제구를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생존.


원찬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진해지는 것이 보였다.


‘일부러 3루 쪽을 건드리는 번트도 그렇더니 정말 투수를 짜증 나게 만드는 주루 스킬이군……!’


토우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든 원찬을 루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방금 2번의 견제를 통해 자신은 이 주자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뛰려는 게 아니야. 자기를 무시하니까 뛰려는 거다. 지금 타석에 있는 건 저 팀의 클린업…… 굳이 무리해서 3루까지 뛰려고 들진 않을 거다.’


오히려 이 이상 견제를 하다가는 아예 이후 주자에게 완벽히 자신의 동작이 읽힐지도 모르는 만큼, 이젠 포기해야 했다.


그저 단타를 맞았을 때 홈으로 바로 뛰어들어올 수 없을 리드 폭을 만드는 수밖에.


‘어쨌든 2스트라이크 잡았다.’


투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포수의 손가락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래. 정말 이것밖에 없지.’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승부를 보고 싶었지만, 사실 모두 자신이 없다.


지금 타석에 서 있는 타자가 그런 인간이라는 것 이전에 심리적으로 전혀 편할 수가 없었다.


빠른 공이 당연히 가장 치기 힘들 것이라는 걸 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은 자신의 가장 느린 공 중 하나를 던져야 한다.


‘호세 블루티스타한테 슬로우 커브도 던져봤는데 못 던질 게 뭐가 있겠어? 그래. 할 수 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2번 된 게 3번도 되리라는 기대뿐.


‘잘 잡을 수 있겠어?’

‘제대로 던지기나 하시지.’


확인하는 자신을 재촉하는 포수의 그 모습에 토우진은 왠지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다시 한 번 세트 포지션으로 2루를 바라보고, 토우진은 다시 한 번 공을 밀었다.


[3구 연속!]


한 번 더 주자를 견제한 다음, 주자가 나올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바로 다시 바람에 실어 보낸 너클볼.


움직이려 하지 않는 공의 실밥이 또렷하게 보이고, 화가 난 듯 눈매가 매서워지는 타자의 얼굴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윙! 스윙 삼진! 토우진이 너클볼 3개로 카이트를 잡아냅니다!]

[놔두었으면 볼이 됐을 공인데 타자 조금 흥분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마치 매섭게 돌아가는 방망이의 풍압마저 변수가 되는 듯한 움직임의 그 공은 다시 한 번 방망이를 피해 자신이 가야 할 곳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아아, 그래. 나도 그래. 그런 눈빛을 하지 않아도 나도 알고 그렇게 나도 생각한다고. 빨리 돌아가 제발.’


삼진을 당한 카이트의 “실망했다!” 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에 토우진은 일부러 그와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다시 돌려받은 글러브 속의 공만을 바라보려 애썼다.


그래. 요행이 맞다. 반칙도 맞다.


자신은 지금 이런 것에까지 매달려야 살아남을 정도로 이제 퇴물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리 공이 느리다는 소리를 들어도 자신의 제구력과 무브먼트로 어떻게든 승부를 겨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창 잘 나갈 때는 그렇게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니 뭐니 하는 말을 들으며, 영화를 개봉하더라도 항상 좋은 결말로 끝이 나서 ‘해피엔딩 극장’이란 말도 들어왔었다.


허나 이제 슬슬 안 되는 것이다.


제구니 뭐니 아득바득 욱여넣고, 가끔 피하려고 한두 개 빼도 그걸 괴물같이 받아쳐서 넘기는 타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타자가 등장한 게 아니다.


자신이 약해진 것이다.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올 때까지 온 이상 살아남을 수 있을 때까지 살아남아 보자고, 할 수 있는 건 후회 없이 뭐든지 다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선택은 바로…… 이거다!’


[아, 여기서 박호승 선수를 거르나요? 리더스의 배터리, 고의사구로 박호승 선수를 내보냅니다!]

[1회부터 철저하게 가는데요.]


이제 고작 1회 말부터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일어나는 포수와 당연하다며 그것을 따르는 투수를 바라보며 4번 타자 박호승은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별수 없이 1루로 걸어나갔다.


‘거 참……, 나도 한 번만 좀 보여줄 것이지.’

‘작년도 올해도 당신이 제일 귀찮아서 말이야.’


겉보기에는 1선발과 5선발의 맞대결.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은 전자의 팀이 수월하게 이기는 것일 테다.


허나 현재 리더스는 이지혁을 그저 단순한 5선발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올라와 있는 그 순간만큼은 독보적인 모습에 1점 승부를 걸어야 하는 투수.


그리고 한 번 불붙으면 식을 줄을 모르는 강타선.


투수가 타이푼즈 타선을 최대한 막는 동안 타자들은 어떻게든 적 팀의 선발투수를 끌어내릴 계획이었다.


“……1회도 결국 공이 좀 많았고, 저 투수랑 팀이 하는 걸 보면 2회도 계속 달라붙기만 할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할지 지금 미리미리 생각해둬라.”

“예.”


그렇게 자신의 팀이 2아웃을 잡힌 이후, 투구 감각을 유지하고 어깨가 식는 것을 막기 위해 덕아웃 밖에서 추웅과 가볍게 공을 주고받고 있던 지혁은 클린업 트리오의 마지막 타자 브렛 히트까지 삼진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며 다시 마운드를 향했다.


작가의말

이제 이틀 안에 델리아를 80으로 만들어줘야겠습니다.


언제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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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3 +2 16.02.12 533 12 9쪽
6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2 +2 16.02.11 459 13 8쪽
6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1 +8 16.02.05 612 15 6쪽
60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0 +2 16.02.04 558 11 8쪽
59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9 +8 16.02.03 690 12 9쪽
58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8 +6 16.02.02 619 11 7쪽
57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7 +3 16.02.01 778 12 8쪽
56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6 +2 16.01.30 615 12 9쪽
55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5 16.01.29 534 14 7쪽
54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4 +2 16.01.28 581 10 9쪽
53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3 +2 16.01.27 639 12 8쪽
52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2 16.01.26 502 10 9쪽
51 피할 수 없는 그 자리 - 1 16.01.25 812 17 9쪽
50 수중전 - 11 +2 16.01.23 671 14 8쪽
49 수중전 - 10 +2 16.01.22 634 18 9쪽
48 수중전 - 9 +4 16.01.21 560 15 9쪽
47 수중전 - 8 +2 16.01.20 749 12 10쪽
46 수중전 - 7 +2 16.01.19 653 16 10쪽
45 수중전 - 6 +2 16.01.18 715 16 8쪽
» 수중전 - 5 16.01.16 555 17 11쪽
43 수중전 - 4 +2 16.01.15 632 21 9쪽
42 수중전 - 3 +2 16.01.14 692 15 9쪽
41 수중전 - 2 +2 16.01.13 658 17 10쪽
40 수중전 - 1 16.01.12 522 19 14쪽
39 너무나 먼 출발선 - 13 +2 16.01.11 840 1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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