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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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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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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가짜 전쟁 6

DUMMY

그날 늦은 밤. 바닥이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화려한 리텐의 수도. 룰르즈의 야시장에 두 남녀가 나타났다.

남자쪽은 귀족임을 과시하듯 여러 장신구로 온몸을 치장했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미 어디서 한잔. 아니 두세 잔은 걸치고 온 모양인지 비틀거리기 바빴다.

반대로 여자 쪽은 좋은 옷을 입었으되 수수해 보였고 미인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고개를 푹 숙여 다니니 부끄럼을 많이 타 보이기도 했다.

술에 취한 남자는 여자 쪽에 기대있었고 꼬부라진 소리로 사치를 부렸다.

수도의 고급스러운 가게들. 비싼 옷. 비싼 보석. 비싼 음식. 뭐가 됐든 비싼 것으로 사기 시작했고 비싼 손님을 받은 가게 주인들은 입이 귀까지 걸리기 시작했다.

상인들의 눈에 이 두 남녀는 이렇게 보였다.

‘잘사는 귀족가 자제가 어디 수수한 영애 하나 꼬셨구나.’

하지만 보통 잘사는 귀족가 자제가 아니었다.

“최고로 가지고 와. 지금 발렌할 가문을 무시하는 거야?”

발렌할.

레이튼 발렌할.

그 이름을 계속 들먹거리며 오로지 최고급 최고품만을 가지고 오라는 발렌할의 망나니.

상인들의 눈이 휙 돌았다. 쉽게 말하면 진상 손님인데 돈이 아주 많은 진상 손님이었다.

발렌할의 망나니에 대한 명성은 여기까지도 뻗쳐 있었으니까.

돈을 펑펑 뿌려댔고 여자는 그걸 받아 걸치기 바빴다.

그뿐인가. 지나가는 행인에 시비를 거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냥 행인이다. 귀족도 아니고 그냥 길가던 시민.

헌데 왜 쳐다보냐는 식으로 시비를 걸었고 급기야 지나가던 병사들이 말리고 나서야 사태가 수습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먹을 맞은 병사도 존재했다.

그렇게 시장에 금화 수십 수백개를 뿌리고 진상을 부리고 난 이후에 둘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아주. 아주아주 비싼 고급 여관에 들어섰다.

여관이지만 일반 여행자나 용병들이 머물며 맥주를 마시는 곳이 아니다.

산중턱에 위치한 이 여관의 이름은 설원화. 은빛산에서만 피는 꽃의 이름을 그대로 딴 여관으로 수도의 귀족들도 찾아 고급스럽고 감미로운 음식을 즐기고 은밀한 밀회를 즐기는 곳이다.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창문으로 자연과 건물이 어우러진 수도의 전경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서 오십시오.”

끝이 살짝 구부러진,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지배인이 나와 맞이한다. 그리고 젊고 건방진 귀족 손님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꼭대기층~ 하나.”

금화가 내밀어진다. 그것을 채 받아 챙기기도 전에 다시금 꼬부라진 목소리가 날아든다.

“잔돈은 필요 없어.”

“감사합니다. 허면, 여기 이름과 서명을.”

“그거 꼭, 써야 하나?”

“예.”

밀회를 즐기는 귀족들은 자기 흔적을 남기기 싫어한다. 그것을 알고 있으니 사실 이름을 기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름을 적어달라 말한 것은 지배인이 보기에 이 귀족 커플의 나이가 어려보였기 때문이며, 어쨌든 이름과 서명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이 적힌다.

-레이튼 발렌할-

그 이름에 지배인은 깜짝 놀랐다. 발렌할이라는 이름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숙련되고 노련한 지배인은 놀랐다는 감정을 그리 내색하지 않았고, 눈치 좋게 여성쪽의 이름은 요구하지 않은채 예의 그 미소를 잊지 않으며 말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은 주변 종업원들에게 뭔가 손가락으로 지시를 내린 뒤, 곧바로 앞장섰다.

그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따라 오르고 곧, 전망 좋은 꼭대기층 방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서자 지배인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좋은 방이다.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어떻게 보면 딱딱한 발렌할 저택보다 더 고급스러웠다.

그 안에는 방금 막 준비한 듯한 고급 와인과 꿀에 절인 과일. 쿠키 등의 먹을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거기서 나는 기다렸다는 듯 갑갑한 옷을 풀어 버렸다. 이 귀족들의 옷은 화려하긴 하지만 예복이란 것이 그렇듯 갑갑하고 답답하다.

그 다음 지쳤다는 듯 푹신한 몸을 일단 소파에 파묻었다.

네인은 별다른 행동 없이 그냥 서 있다.

잠깐 묘한 침묵이 흐른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네인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 상황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질문은 없었다.

그녀가 본 것. 겪은 것. 지하 감옥에서 일어난 일.

그러니 이렇게 질문할수밖에 없다.

전부 알고 있었다. 마족. 레이튼. 지금까지 일어난 일. 앞으로 일어날 일 역시.

이 모든 일을 같이 계획했으니 모를수가 없다.

가짜로 상처를 만들어 낸 기이한 능력.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안광. 그건 분명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장으로 나가 여러 상인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것도 계획의 일부였다.

여기 고급스러운 여관에 오는 것 까지도 전부.

앞으로 벌어질 일도 알고 있다.

프리암 백작은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다른 나라와 싸우는 게 아니라 내전이다.

그는 마족과 내통했다. 그러나 완전히 속아 넘어갔고 결국 자기 스스로 북쪽과 내통했음을 인정이라도 하듯 군사를 일으킬 것이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제 자기 자신이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네인은 복잡한 머리로 재차 질문했고 나는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툭, 탁자 위로 던져 주었다.

“그 안에 돈이 좀 들었어. 오늘 사준 보석들도 전부 가져가. 그 정도 돈이면 어딜 가서 살든 부족함 없이 살수 있겠지.”

“···.”

“내일 아침이 되면 떠나. 여기서 본건 전부 잊어버리고.”

“그렇, 군요.”

“자유로운 삶이지. 서로 모른 척 하고 살자고.”

이걸로 됐다. 네인은 남에게 말 못 할, 말한들 믿어주지 않을 비밀을 가지고 떠날 것이고 멍청한 프리암 백작과 북쪽 간첩들은 알아서 자멸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작은 제국으로 압송될 것이고 거기서 제국의 마족과 같이 자멸할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제가 이것들을 들고 떠나면, 밤에 당신이 나타나 제 입을 막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죠?”

“뭐?”

“저는 비밀을 알고 있고, 보통 이런 경우엔···.”

“내가 널 죽여서 입을 막는다고?”

“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거 아니냐?”

“드라마?”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도 아니고 갑자기 여기서?

보통 드라마나 영화의 위기 상황에서 여성의 반응은 두개다.

제발 살려주세요, 라며 온갖 약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혹은 갑자기 없던 용기가 생겨 맞서 싸운다거나.

이 경우에는 후자다. 물론 무기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최대한 침착하게 말로 해결하려 하고 있지만.

이쪽은 당연히 죽일 생각 없다. 미친 살인마도 아니고 뭣 하러 죽이겠는가. 아니, 아주 솔직히 죽여야 하나? 하는 무서운 생각도 했지만, 사람을 죽인다니? 그럼 위험한 건 생각으로만 끝나지 현실로는 실행하기 어렵다.

네인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면 모를까.

“그래서? 내가 뭐, 널 안 죽인다고 뭐 각서라도 써 주랴? 아니면 명예를 걸고, 신께 맹세코 너한테 털끝 하나 안 건드린다고 해야 하나?”

사실 답이 없는 문제다. 이쪽에서 아무리 말해본들 믿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냥 붙잡아서 저기 던져놓고 아예 신경 안 쓰고 사는게 답일 것이다.

설령 네인이 자기가 겪은 모든걸 여기저기 말하고 다녀도 상관 없다.

어디서 나타난지도 모를 여자 말을 믿어 줄 사람은 없다. 그녀는 귀족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고 다니다가 네로운 펠 남작의 피붙이인게 드러나면 죽는건 자기 자신이며, 그게 아니더라도 발렌할 가문의 사람을 모함했으니 귀족 모독죄로 죽는게 자기 자신일 뿐이다.

“뭐 어쩌라는거야?”

뭐 다른 방법 있으면 말해 보라는 듯 묻자, 네인은 몸을 살짝 떨더니 몸에 걸친 보석 장신구들을 하나 둘씩 벗어 탁자위에 올려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인이 다시 말했다.

“저는 혼자 살 힘이 없습니다.”

“뭐?”

“천박한 신분에 불우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평생 눈치를 보며 남이 시키는 것만 해왔죠. 제대로 시작한 일이라는 것도 잡아 가두고 감시하고 고문하는것 뿐. 여기서 이 많은 돈을 가지고 어딜 간다해도 표적이 되기 십상일 겁니다. 수상하죠. 혼자 나타난 여자가 많은 돈을 가졌으니. 어쩌면 도적때에게 습격당하거나, 마을 주민들에게 털리고 밭 한가운데에 비료로 묻힐수도 있을 겁니다. 돈을 안 가지고 떠난다 해도 농사를 지어 감자 하나도 혼자 만들줄 모르니 결국 가진건 이 몸뚱아리 뿐이라 술집으로 가거나 뒷골목 창부로 전락할 겁니다.”

“그, 너무 비관적인거 아니냐?”

대체 뭘 하고 살았길래. 아니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지만 너무 비관적이다.

“게다가 비밀을 가지고 떠난 사람은 언젠가 그 비밀 떄문에 죽게 마련이죠. 특히나 이런 일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할까요?”

그 어떠한 의심이나 의문도 없는 아주 단도직입적인 질문.

네가 원하는걸 하겠다.

솔직히 이건 멍청한게 아니다. 리텐의 정치적 상황에 연관되어 자의든 타의든 알면 안되는 비밀을 알고만 천한 신분의 여자.

그 일이 끝나자 떠나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사실 그냥 조용히 떠다는게 오히려 더 멍청한 짓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네인을 아래 위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서 무엇을 느낀걸까. 아니, 이건 모를수가 없다.

여자들은 이런 시선에 특히나 더 민감하다. 이런 시선을 즐기는 여자들도 있다.

네인의 경우는 즐기는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았다.

종종 동료 간수들도 보내온 눈빛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몸에 대한 욕정보다도 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네인 펠은 그리 비중있는 여주인공이 아니다.

레나. 니아 벨린. 카를린 올펜이나 제국의 공주인 일리안같은 여주인공들에 비하면 공기나 마찬가지다.

사실 정의라는걸 표방하는 주인공에게 네인의 경우는 비중 없이, 아주 종종 지저분한 일만 슥, 처리해주는 그런 조연.

아니 솔직해지자.

구구절절 이리저리 말해본들 그냥 여자가 필요하다. 이 여자의 필요성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 없다.

마음만 먹으면 연예인 뺨치는 여자도 안아들수 있었는데 여기 와서는 본의 아니게 금욕적 생활을 했으니까.

“이리 와.”

네인을 불렀다.

가까이 온다.

“더 가까이.”

그 말대로 더 다가온다. 그렇게 바로 앞에 네인이 서자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었다.

‘툭.’

뭔가 풀리는 소리.

좋긴 하지만 수수한 드레스의 끈을 풀어내고 어깨 끈을 흘려 내리자마자 옷 전체가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 시점에서 이제 옷이라고 불러줄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하나 남은. 가장 소중한 부위를 가려주던 천조각 마저 끈을 잡아 당겨 풀어낸뒤 아래로 떨궈냈다.

고급스러고 넓은 방. 화려한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밤의 경관 역시 대단하지만 내 눈에 그따위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와, 시발.’

미친거 같았다.

한국인으로써 이거보다 더 위쪽의 감탄사는 없다. 그냥 미친거 같았다.

동시에 머리속에서 난리가 났다. 불우한 과거는 순식간에 머리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 이걸 보고 있는데 불우하다니?

‘이건 안 먹으면 진짜 병신 호구다.’

자기 합리화가 시작된다.

여주인공은 많다. 그중 레나를 비롯해서 카를린과 니아 벨린 등등은 이미 떨궈냈다. 스토리는 이미 꼬여 있으니 이 상태로 가면 마지막에 가서 여주인공들 때문에 죽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네인은 그 많은 여주인공 중에 하나. 고작 한명.

겨우 한명이 아닌가.

내 삶은 여자가 모자란 삶은 아니었다.

급을 따지자면 A급의 여자들만 만났다. 외모. 몸매. 성격. 나이. 사회적 위치. 뭐 하나 모자름이 없는 그런 여자들.

배우. 모델. 아이돌. 연예인. 레이싱걸까지.

그런 여자들을 죄다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정신나간 몸이 눈 앞에 있다. 감히 말하건데 동양계에서는 저런 몸이 나올수가 없다.

머리는 이미 합리화를 끝낸 상태였다. 게다가 여자를 안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여기에 와서 산지는 고작 몇개월이지만 그것도 길었다.

게다가 원래의 몸도 젊었지만 지금은 더 젊은 몸이 아닌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이미 아래쪽은 피가 몰리며 아주 솔직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란 어찌 이리도 슬픈 생물인가.

그러나 먼저 움직인 것은 이미 머리가 아랫도리에 지배당한 내가 아니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네인이 먼저 움직였다. 발치에 꿇어 앉은 것이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내 옷을 스스로 벗겨내기 시작했다.

‘어우야. 시벌.’

이런건 익숙하다. 놀랄일도 아니다.

하지만 저정도 몸으로 밀어 붙이면 이런 자극이 온다.

낡은 표현으로 뇌에 전기가 오는 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마다 세차게 텐트를 치는 자랑스러운 물건. 남자의 상징. 조용태로 다시 돌아가라 하면 돌아가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

그리고 네인은 거기에 달라붙어 오더니 서늘한 손으로 슬그머니 어루만졌다.

처음에는 서늘한 손으로. 그 다음은 가슴으로 쓸어온다.

그리고 잠시 후에 키스하듯 부딪치는 입술과, 그 이후 느껴지는 미적지근한 따뜻함.

“으, 음.”

미약한 여성의 신음소리.

거기에 이성이고 뭐고 그냥 죄다 던져버린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네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



다음날 아침.

끔찍할 정도로 뻐근한 몸을 조용히 일으켰다.

감상을 말해보자면 여기 와서 처음으로 신에게 감사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없던 신앙심이 무럭, 무럭, 자라났다.

대놓고 말해서 정력.

물론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 당연히 지치지만, 과거와는 달랐다.

죽여줬다. 마치 17에서 18살의 그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죽여준다.

심지어 지금도 죽여줬다.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손으로 툭, 치자마자 힘차게 원위치 하는 주니어를 바라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거지. 이게 인생이지.’

세상에 잠을 거의 안잤는데도 쌩쌩한 몸이라니.

그리고 바로 옆. 완전히 흐트러져 모로 누워 있는 네인을 바라본다.

지하에서 나오지 못해 햇빛을 보지 못한 피부는 차가울 정도로 하얗다.

하지만 엉덩이와 가슴은 발갛게 물들어 있다. 어젯밤의 흔적. 혹은 불과 몇시간 전의 흔적.

그걸 보자마자 또 음심이 미친 듯 솟구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어젯 밤, 지시를 받고 간 프리암 올펜. 그 멍청한 작자가 일을 벌렸다는 증거다.

“일어나.”

네인의 커다란 엉덩이를 찰싹, 치며 말했다. 그러자 네인의 몸이 움찔, 떨리더니 조심스래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일어나는걸 보자마자 나는 침대로 나가 가운을 걸쳤다.

그 다음 복도로 나가자 저기서 지배인이 방마다 돌며 손님들을 깨우는게 보였다.

지배인과 눈이 마주친다. 그러자 그가 부리나케 달려오며 말했다.

“소, 손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무슨 일인지는 알지만 모른 척 묻자 지배인이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밖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같은 기사와 병사들끼리?”

“싸운다고?”

“예, 예! 일단 창문과 문을 전부 닫아둔 상태고, 기, 기사들과 병사들이 민간인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아이고 세상에···.”

내전. 지배인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있다. 그런데도 도망가지 않고 손님을 챙기니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 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일단, 밖으로 나갈수는 없는 건가?”

“예? 예! 지금 나가면 죽습니다, 죽어요!”

“그럼 여기 있어야겠네. 여기 경비는 믿을만 한가?”

“고, 고용한 용병들이 지키고 있긴 합니다만.”

“그럼 용병들에게 가서 전해. 아무래도 내전이 일어난거 같으니 창문과 문을 단단히 틀어 막고 있으라고. 기사들과 병사들이 민간인을 공격할리는 없으니까 나가지 말고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내, 내전?”

“같은 기사들끼리 싸운다며? 그러니 내전이지. 아무튼 나가지 말고 잘 지키라고 전해. 그리고 여기 나 말고 다른 귀족 손님들도 있지?"

"예!"

"그 귀족 손님들한테 호위 기사 좀 내 달라 그래. 정중히 부탁하면 자기 몸 지키려고 기꺼이 내줄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지배인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다시 부리나케 뛰어 아래로 내려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흐아아, 하고 하품을 한 뒤, 문을 닫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연기가 피어나지는 않는다. 찢어지는 비명이 터지기는 하지만 저 멀리 어렴풋이 들려올 뿐.

적군이 쳐들어 온게 아니니 방화나 민간인 약탈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저 거리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싸우고 있을 뿐이다.

지키는 쪽과 빼앗으려는 쪽.

‘가장 치열한 곳은 왕성이겠지?’

눈을 들어 저 멀리 산에 위치한 왕성을 바라보자 거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프리암 백작은 충실히 군대를 움직였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귀족들을 종용해 이대로 누명을 써 죽느니 차라리 새로 시작해 보자고 급진적인 귀족들을 끌어 들였을 테니까.

거기에 낚인 불쌍한 자들은 군대를 일으켰을 것이고.

게다가 발렌할 가문과 제국이 자기네 편인줄 믿고있다.

하지만 저들은 실패할 것이다. 이미 실패해 있다.

이 소식을 듣고 눈이 돌아간 레볼턴 후작이 군대를 끌고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멍청한 귀족파의 군대는 그게 아군인줄 알고 있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자라면 이따위 내전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병자의 발상이니까.

하지만 눈이 돌아간 프리암 백작은 그렇게 못할 것이다. 그는 명령을 받았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맹목적인 명령을.

즉, 이제 기다리면 알아서 다 끝날 상황이다.

이걸로 리텐 왕국에서의 일은 다 끝났다. 조금 남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 할수 있는건 없다.

“시작됐군요.”

하얀 가운을 걸친 네인이 옆에 와 서서 중얼 거렸다. 그리고 나는 이 내전이 알아서 끝날 시간동안 할걸 생각해 냈다.

네인의 어깨에 손을 두른다. 그 다음 뒤에서 껴 안 듯 안으며 가운을 슬그머니 풀어 해쳤다.

“아···.”

엉덩이 사이에 닿는 물건을 느끼며 네인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 상태 그대로 커다란 창문을 열고 발코니 난간까지 밀어낸다. 네인은 양 팔로 난간을 잡았고 당황해 말했다.

“자, 잠깐. 여기서 이런···.”

그러나 나는 그녀의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다.

“저게 너랑 내가 벌인 일이야. 묘하게 흥분되지 않아? 겨우 말 몇마디와 거짓말로 저런 일을 벌이다니.”

“···.”

“비밀을 알고 있으니 죽기 싫다 그랬지? 그럼 내 일을 앞으로도 도와준다는 뜻인가?”

“···예”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겠지?”

“···.”

네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뒤로 돌렸던 고개를 앞으로 보냈고 잠시 후에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참으려 입을 앙다물었을 뿐이다.

지난 밤 내내 들렸던 살 부딪치는 소리가 기사들과 병사들의 고함과 병장기 부딪치는 쇳소리를 뚫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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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지름길 4 +11 20.08.04 18,540 481 13쪽
30 지름길 3 +16 20.08.03 18,691 490 16쪽
29 지름길 2 +9 20.08.02 18,651 496 13쪽
28 지름길 1 +20 20.07.31 20,709 510 15쪽
» 가짜 전쟁 6 +49 20.07.29 19,928 59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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