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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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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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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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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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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 1

DUMMY

넓고 화려한 방.

온갖 장식품들. 사치품들. 누가 봐도 부유한 귀족의 집이었으며 주변에는 말끔히 차려입은 하녀들이 줄지어 먹음직한 음식을 너른 탁자 위에 내려두고 돌아간다.

그렇게 모든 음식과 좋은 술이 차려지고 하녀들이 방을 나가자 탁자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번쩍거리는 값비싼 옷을 입은 게 두 명. 남은 한 명은 깨끗하긴 하지만 두 명과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옷을 입었다.

이들은 귀족이 아니었다. 계급을 말하자면 평민이다.

평민은 하녀를 둘 수 없으니 방금 음식을 내려두고 간 여성들은 노예들이다. 다만 차려입은 옷과 좋은 혈색들을 보면 알 수 있듯 꽤 좋은 대우를 받는 노예들이다.

평민이 좋은 저택에서 값비싼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노예를 하녀처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탁자에 둘러앉은 세 사람이 어지간한 귀족 부럽지 않은 부자였기 때문이다.

대부호. 대상인.

제국 내 상인들의 연합. 황금 조약돌 상회를 굴리는 자들.

이들이 여기 모인 이유는 단순히 저녁 식사를 같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식사와 함께,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다.

최근 제국에서 벌어진 일은 이 상인 연합의 대부호들을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공주의 실종.

전쟁 위기.

무쇠 바위 길드를 중심으로 한 용병 탄압.

루멘 해방군 와해.

두 공작의 죽음.

드래곤.

그리고 새로운 황제.

이 모든 문제를 오늘 전부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일이 터질 때마다 모임을 가져왔고 오늘 다시 모인 이유는 새로운 황제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 화려한 녹색 옷을 입은 길버트가 먼저 말했다.

“전에 나눈 대화긴 하지만, 일단 루멘 해방군은 완전히 끝났어. 여기서 뭔가 더 말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러자 검은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셀턴. 그리고 평범한 옷을 입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루멘 해방군에 대주던 자금을 완전히 끊어버렸고. 그와 관련된 것들을 철저하게 지우기도 했지. 물론 무쇠 바위 길드나, 이든이 이끌던 루멘 해방군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사실 끝난 거와 다를 바가 없을 거야.”

그러자 호리호리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인상의 셀턴이 말했다.

“레이튼 발렌할. 촌구석 리텐의 어린 귀족이 꽤 잔인하게 일을 처리했지.”

“그래. 말이 좋아 리텐과 라인하텐이 동맹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발렌할 가문의 사람을 데려다 그런 일의 앞잡이를 시킬 정도면 이건 동맹이 아니라 속국이라 봐야 할 거야. 좋은 일은 제국이. 안 좋은 건 리텐에 시키는 거지. 하지만 제국 전역에서 벌어지던 루멘 해방군 사냥도 이제 잠잠해졌고, 새로 바뀐 귀족들한테 줄을 댈 필요가 있겠어.”

새로운 줄. 이게 바로 오늘의 핵심 주제였다.

제국에서 귀족들의 도움 없이 이 정도로 큰 상인회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돈이란 것은 합법적인 일 보다는 불법적인 일이 더 잘 벌린다.

물론 황금 조약돌 상회가 불법적인 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건실한 상인들이 모여 제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

제대로 된 장사는 길버트가. 불법적인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은 셀턴. 그리고 평범한 옷을 입은 올리버는 제국 내 최고의 대장장이로 수많은 귀족을 단골손님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즉위식 빼고 다 했다는 말이 나돌고 있으며 두 공작의 죽음 이후 귀족들의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실권을 잡은 공주가 사람이건 물건이건 오래된 것들을 새것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률까지도.

그러니 새롭게 바뀔 유망 귀족들에게 미리 줄을 대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뇌물도 좋고 대접도 좋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노릴 건 젊은 귀족들이야. 두 공작이 죽었고 젊은 귀족들이 비어있는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새로운 황제에게 굽신거리고 있거든.”

셀턴의 말에 길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젊은 귀족들 중에는 이미 우리 손님들도 꽤 있어. 운 좋게 귀족으로 태어난 골빈 것들이 가게 단골이지.”

셀턴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용히 고기만 뜯던 올리버가 말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손님이 많아. 너희가 방금 말한 그 젊은 귀족들이 주문하거든. 공주님께 선물할 거라면서 많이들 찾아오지.”

올리버가 만드는 물건들은 검이었다. 다만 살상용 무기가 아닌 예장용. 혹은 장식용 검이다.

올리버의 대장간에서 화려하고 멋들어지게 만들어지는 그 검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것으로 확실히 다른 선물들에 비해 가치가 높았다.

덕분에 올리버는 평민에 대장장이라는 신분치고는 제국 귀족들. 특히 기사단의 단장들과 꽤 친분이 있었다.

식사는 계속 이어지고 길버트는 줄을 대야 하는 귀족들의 이름을 주르륵 적어 하나씩 말했다.

어느 가문의 자제. 어느 가문의 영애. 젊은 귀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망해 보이는 어느 자작이라거나.

새로운 황제는 즉 새로운 기회를 뜻한다. 황금 조약돌 상회도 그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식사가 마무리되고 달짝한 디저트를 마무리로 입가심을 할 무렵, 셀턴이 말했다.

“드래곤에 관한 것도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드래곤?”

“너희도 소문들은 들었잖아. 뭐, 그게 드래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알아봐야지.”

“드래곤··· 근데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보지?”

“뭐 소문이라면 충분히 차고 넘치지만.”

드래곤. 제국에서 사람 둘 이상 모이면 무조건 나오는 얘기가 바로 이 드래곤에 관한 일이다.

“그 드래곤이 머리 위에 공주를 태우고 왔잖아.”

“아니 그건 그냥 소문이지.”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특히 외곽을 수비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들은 걸 봤다고 착각하는 거야. 그건 말도 안 돼. 하지만··· 알아봐서 나쁠 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네 일에 드래곤에 관한 뭔가 필요한 거야 셀턴?”

길버트의 말에 셀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라인하텐을 드래곤이 수호하니 뭐니 하면서 내 사업을 방해하는 좀 멍청한 놈들이 있거든. 이런 일은 드래곤이 수호하는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너희는 이 땅에 살 자격이 없다거나 하는 뭐 그런 것들.”

“저런.”

길버트는 쓰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셀턴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았다. 최근 들어 제국에는 드래곤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고 그들 중 일부는 꽤 극단적인 성향을 띄어서 거리의 부랑아들이나 좀 허름한 사람을 쫓아내며 배척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셀턴이 하는 일은 부적절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셀턴이 운영하는 창관에 실제로 몰래 찾아오는 귀족 손님도 많으니까.

“네 말을 들으니 확실히 알아봐야 할 것 같긴 해. 사실, 그 드래곤을 위한 신전을 짓는다는 말도 귀족들 사이에서 좀 나오는 편이니까.”

“신전을?”

“그래. 사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네 말을 들으니 알아봐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어쩌면 이걸로 또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겠지.”

새로운 황제. 젊은 귀족. 그리고 드래곤.

몇 가지 의논과 의견이 오가고 아주 가끔은 목소리가 좀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자기주장이 강한 것일 뿐.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 오늘의 모임은 이걸로 마무리되었다. 귀족들에게 줄을 대고 드래곤에 관해 알아보는 것으로.

이제 각자 화려한 마차를 타고 돌아간다. 물론 올리버의 경우는 마차 없이 그냥 말을 타고 돌아갔다.



***



팔칸 왕국.

물론 지난 전쟁으로 사라진 나라다. 팔칸 왕국의 땅은 진작에 제국으로 흡수되었고 왕을 비롯한 왕족은 전부 죽었고 살아남은 귀족들도 몇 없다.

남아있는 것은 팔칸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딴 도시 하나뿐.

그리고 이 도시는 문자 그대로 온갖 범죄의 온상이었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를 부랑아들.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용병들. 도망친 범죄자들과 부적절한 노예상들이 모이는 범죄자들의 도시.

심지어 여기는 다스리는 영주도 없다.

하지만 이런 도시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바로 셀턴이었다. 예전에는 이든과 루멘 해방군의 도움을 받아 이 무법천지의 도시를 관리했으며 여기서 만들어낸 상품들. 이종족 노예라거나 암살 의뢰. 혹은 수상쩍은 약 같은 것들을 비롯해서 온갖 불법적인 사업으로 제국 전역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루멘 해방군이 사라지고 이든은 죽었다. 황금 조약돌 상회는 루멘 해방군과의 연결점을 모조리 끊었다.

그렇게 되자 치안에 문제가 생겼다. 원래부터 좋지 않은 치안이었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었는데 위에서 누르던 돌이 사라지자 정신 나간 범죄자들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골목길에서 꼭 시체 하나씩은 발견이 되는 것이다.

셀턴은 그걸 수습해야만 했다. 원래부터 치안이 안 좋은 건 맞았고 시체 한둘 치우는 건 일상이지만 분위기 자체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건 돈으로 해결 못 할 문제다. 루멘 해방군은 그래도 신용이 있어서 돈을 주면 뒤통수를 치지는 않았지만 지금 날뛰는 것들은 그 최소한의 신용도 없는 사기꾼 범죄자들이니까.

하지만 이런 셀턴의 고민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후우.”

마차에서 내린다. 무법 천지의 도시. 하지만 도시 전체의 거리가 지저분하고 부랑자들이 넘치고 뒷골목에 시체 하나쯤은 쉽게 발견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도시의 대로 만큼은 그래도 봐줄 만 했다. 독한 향수 냄새와 술 냄새가 끈적하게 퍼지고 있으며 수상쩍은 남자들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북적거리며 웃음소리가 넘치는 술집도 있었고 평범하게 손님을 받는 장사꾼도 있으며 용병 길드도 있다.

어쨌든 제국 병사들이 주둔하는 막사도 있고 그들이 이 거리 만큼은 그래도 사람 사는 거리처럼 만들어 주고 있다.

셀턴은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저택으로 들어갔다. 저택 입구를 지키는 것은 용병들이고 하녀처럼 입은 노예들이 인사한다.

그리고 자신의 넓고 화려하고 깨끗한 방으로 들어간 셀턴은, 자신이 누워 자던 침대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돌아왔습니다.”

미친놈도 아니고 침대에 인사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그 침대 위에 사람이 있다.

상당히 이상한 옷차림. 일단 옷에 천이라고 부를만한 게 거의 없다. 황금을 끈과 사슬로 꼬아 만든 듯한 이상한 것을 몸에 걸치고 그걸로 중요 부분만을 최소한도로 가리고 있다.

어디까지나 최소이기 때문에 조금만 몸이 틀어지면 훤히 보이지만, 어쨌든 조금이나마 가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방바닥에는 비어있는 술병들이 늘어서 있고 거기에는 전라의 여자들도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다.

이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쉽게 짐작 가능하다.

그리고 침대 위에 엎드린 여성은 셀턴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드래곤에 관한 건?”

“알아보고 있습니다.”

셀턴은 긴장된 목소리로 답했다.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야. 그게 정말 드래곤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아봐야지.”

“···예.”

“그게 일리안인가 하는 년을 머리 위에 올려두고 왔다며? 그럼 그년을 잡아 알아보면 될 거 아냐?”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일리안 라인하텐 아델리안은 이 나라의 공주이자 차기 황제로 제가 잡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침을 꼴딱 삼키면서도 셀턴은 조리있게 말했다.

저 침대 위의 여자가. 마족이. 마음대로 죽이고 부수는 그런 게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쯧.”

혀를 차며 짜증을 낸다. 하지만 그 후에 다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

“예.”

셀턴은 짧게 답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침대 위에 엎드린 마족의 몸. 침대 아래 눌려있는 그 커다란 가슴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곡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침을 다시 한 번 삼켰다.

“뭐해. 나가 봐.”

“예.”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셀턴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뒤 작게 중얼거렸다.

“값은 치뤄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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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줄 1 +11 20.09.02 16,692 40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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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신성. 그리고 인성 5 +20 20.08.28 16,062 441 16쪽
45 신성. 그리고 인성 4 +19 20.08.27 16,330 432 17쪽
44 신성. 그리고 인성 3 +16 20.08.26 16,395 443 12쪽
43 신성. 그리고 인성 2 +13 20.08.24 17,159 426 11쪽
42 신성, 그리고 인성 1 +17 20.08.22 17,980 442 12쪽
41 드래곤 일지도 모른다 2 +27 20.08.19 17,821 492 13쪽
40 드래곤 일지도 모른다 1 +17 20.08.17 17,539 50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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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두 공작 5 +19 20.08.13 16,957 457 12쪽
37 두 공작 4 +7 20.08.12 17,148 444 13쪽
36 두 공작 3 +17 20.08.11 17,581 467 16쪽
35 두 공작 2 +15 20.08.09 17,733 47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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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지름길 2 +9 20.08.02 18,651 496 13쪽
28 지름길 1 +20 20.07.31 20,709 510 15쪽
27 가짜 전쟁 6 +49 20.07.29 19,928 59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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