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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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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작품등록일 :
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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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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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그리고 인성 2

DUMMY

룬하임에 도착하고 대신전으로는 고속도로처럼 막힘없이 이동한다.

이번에는 전처럼 막히는 게 전혀 없다. 신전 경비들의 개소리.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합니다, 같은 개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으며 성녀님은 바쁘십니다, 같은 헛소리도 없다.

왜냐.

돈을 넣었으니까.

이 폐쇄적인 종교 국가이자 협곡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 국가에서는 다른 나라의 귀족가는 당연하고 왕이라 할지라도 알아서 조용히 지내야 한다. 한 나라의 왕 정도 되면 대접을 받기야 받겠지만, 기본적으로 신 앞에 평등합니다, 같은 헛소리가 기본 개념인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대접을 받느냐.

돈을 찔러 넣었으니까. 성녀를 만나기 위해 여기 대신전을 관리하는 대사제와 그 아래 끗발 좋은 신관들에게 돈을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 돈은 아니다. 내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알아서 엎드리는 제국의 차기 황제 폐하가 있으므로.

여기 룬하임에 온 공식적인 이유 역시 국가와 국가간의 외교다.

앞으로 마왕인지 마족인지를 상대하기 위해 제국이 주축이 된다면, 룬하임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하지만 썩은 음식 같은 룬하임은 필요 없다. 이제 제국이 물리적으로 집어 삼킬 건데 먹고 탈 나면 좋을게 없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제국을 대변하는 외교관으로써 뭔가 큰 사명감과 막중함 임무를 띠고 온 건 아니다.

여기에 온 이유는 외교가 아니다. 당연히 거래도 아니다.

통보다. 우리가 이렇게 할테니 너희는 알아서 와라, 라는 단 하나의 결과만 존재한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막말로 제국은 깡패다. 그것도 주먹이 아니라 칼로 무장한.

마차에서 내려 대신전으로 올라간다.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고행이 필요하다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논리로 인해 대신전은 산 중턱에 지어졌다.

크고 넓고 우람하게 무슨 테마 파크 마냥 지어졌는데 올라가는 길은 꼬불. 꼬불. 계단 하나니 그야말로 죽을 맛.

아니, 나는 상관없다. 체력이 넘치니까.

네인이 문제다.

“흐억. 허억. 헉. 헉.”

“···.”

침대 위에서 뒹굴때도 저 정도로 숨을 내쉬지는 않았다. 확실히 힘들긴 힘든 모양.

“그러게 그냥 아래 있으라니까.”

“으허. 으헉. 허억. 죄, 죄송···.”

전에 왔을때는 네인을 그냥 아래에 두고 혼자 올라다녔다. 네인도 굳이 이 정신 나간 계단을 오르려 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먼저 올라가 버렸다. 한두살 애도 아니니 어련히 알아서 잘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대신전. 전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치스럽고 반짝거리는 곳.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신. 엘린의 호화찬란한 동상이다. 그리고 온갖 대리석 기둥들에 높은 지붕들. 온 사방에 뿌려진 싱싱한 꽃잎들과 여기저기 그림처럼 위치한 그림 같은 건물들은 확실히 여기가 신성하고, 성스러우며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럼 뭘 해. 그 신에 그 신도들인데.”

“어서 오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신도의 대가리가 나타났다.

좋은 표현은 쓸 필요가 없다. 우두머리라거나 리더라거나 머리라거나 대장. 보스. 뭐 이런 수식어보다는 그냥 대가리.

이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퉁퉁한 몸.

그야말로 악덕 사장의 표본 같은 모습으로 얼굴에 탐욕에 찌든 기름이 절절 흘러넘치는 게 거꾸로 뒤집어 탈탈 털어보면 금화와 먼지가 풀풀 떨어지게 생겼다.

실제로도 그렇다. 문제는 이 돼지 같은 게 룬하임의 수도이자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여기 대신전의 대사제라는 점.

‘엉덩이 무거운 게 돈을 좀 찌르니 벌떡 일어나는구만.’

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다르게 나온다.

“반갑습니다, 대사제님.”

“글렘이라고 합니다.”

“예, 글렘 대사제님.”

말과 생각을 따로 한다. 말이야 존댓말이지만 머릿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걸 여기서 잡아 멱을 따서 돼지 두루치기로 만들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

룬하임의 문제는 부패한 교단이다.

일단 성왕. 사실 성왕은 다 늙어서 오늘 내일 하므로 제외. 소설에서도 비중이 없고 내가 만날 일도 없다.

그리고 성녀.

여주인공이며, 그 직책에 맞게 착하고, 착하고, 또 착하다. 성녀는 문제가 없다.

물론 아주 없는건 아니지만 부패한 교단을 바로 잡으려고 하니까.

그다음 내 눈앞의 글렘 대사제.

이놈은 죽여야 한다.

긴 설명 필요 없다. 죽여야 한다. 소설에서처럼 뭐 벌을 줘서 정신을 차리네, 아니면 뭐, 원래 심성은 착하네 그런거 필요 없다.

죽인다. 죽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 대신관.

이놈도 죽일 것이다.

즉, 신전을 관리하는 사제들의 대가리인 대사제.

신관들의 대가리인 대신관.

이 두놈이 문제다. 그리고 이 두놈은 룬하임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이미 단두대로 목을 쳤다.

살인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죽을 놈은 얼른 죽이는 게 나를 위해서,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도 좋다.

하지만 여기서 죽였다간 보통 문제가 터지는 게 아니므로 일단은 참았다.

“이쪽으로 드시지요.”

“예.”

일단 나는 라인하텐 제국. 일리안의 대리 자격으로 여기 와 있다.

즉 차기 황제의 대리다. 일리안은 아직 공식적인 황제는 아니지만 사실상 황제. 뒤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대 놓고 편의를 봐주고 있고 강력한 라이벌이자 걸림돌인 두 공작이 죽었으므로 그야말로 막강한 철권통치를 할 수 있다.

룬하임을 비롯해서 다른 나라들이 이걸 모를리가 없다. 심지어 드래곤이 나타나 그런일을 벌였으니 더더욱.

그러니 대사제는 이렇게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물론, 찔러 넣은 돈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리고 도착한 곳은 거짓말 안 보태고 제국 황궁의 응접실보다 더 넓고 더 화려한 응접실.

앞에는 음료를 비롯해서 온갖 것들이 놓여져 있고 거기 마주 보고 앉았다.

“서신은 이미 받았습니다. 오늘 찾아오신 이유가 저희 교단을 제국에 제대로 전파하고 싶으시다고.”

“예.”

오늘 찾아온 공식적인 이유.

제국을 주축으로 마족과 악마놈들의 군대를 상대하게 한다면 룬하임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하니까.

하지만 다 썩어빠진 거 말고 제대로 된 것으로.

“그래서 성녀님은?”

“성녀님은···.”

“저는 성녀님과 약속을 잡았으니 말입니다.”

“아, 성녀님은 준비중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뭔 수작질을 부리는 듯하다.

아니 안 부릴 수가 없다.

룬하임은 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자기네 교단을 전파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지난 전쟁에서 제국이 너른 영토를 차지하면서 좁아터진 룬하임은 제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으며 어디 다른 데로 나가려면 무조건 제국의 땅을 거쳐 지나가야 한다.

물론 제국이 룬하임을 상대로 우리땅 지나가지마, 라면서 양아치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제국에도 신전들이 지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일단 황실에서 신을 별로 안 믿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태도.

게다가 귀족들. 영주들 역시 신전이 있고 신관이 있고 그들을 써먹기는 하지만 굳이 자기가 신을 믿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니 룬하임은 발만 동동 굴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제국에서 알아서 우리나라에 교단을 전파하시라고 하니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삼파전이었지. 성녀. 대사제. 대신관. 칼자루를 쥔권 성전 기사단을 거느린 성녀지만 성격이 그래서 못 휘두를 거고. 아니 뭐, 내가 휘두를 거니까 상관 없나.’

잠깐 룬하임의 스토리를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대사제에게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좀 기다리죠. 1시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십니까? 그럼 저와 잠시···.”

“아! 밖에 네인이라는 친구가 아직 못 올라왔는데, 오면 제 쪽으로 안내 좀 해주십쇼. 성녀님을 만나기 전에 그 친구와 의논할 게 있는데 영 체력이 부실해서 말입니다. 그 친구가 오기 전까지는 좀 쉬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 방은 어딥니까?”

완벽한 선긋기.

그러나 글렘 대사제는 웃으며 말하고 돌아간다. 역시 자기 속을 남에게 드러내는 초보적인 실수는 안 한다.

뭐, 그것도 하건 말건 아무 상관 없다.



***



안내받은 방 역시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 부럽지 않은 방이다.

물론 안의 가구들이야 현대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하나하나 비싼 것들임은 뻔하다.

여기서 잠깐 쉬고 있자니 네인이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고 지쳤다는 듯, 의자에 앉았다.

“네인.”

“예?”

“아니 일어서지 말고. 저기 저거 보여?”

널찍한 방의 한켠. 거기에 문이 하나 있다.

“샤워실이야. 얼마나 돈을 퍼부었는지 이런 데다가 샤워실을 만들어 뒀어.”

마법이란게 기가 막히게 발달한 곳이라지만 이런 산으로 물을 올릴 펌프에 수도관까지 기가 막히게 발달한 건 아니다.

잘사는 집. 보통 귀족들이야 하인들을 시켜 물을 길어오게 하고 샤워실을 관리하게 하는 하녀도 있다.

방마다 샤워실을 하나씩 두는 건 정말 가진 자들의 여유다.

검소한 레볼턴 후작의 저택에는 가족이 다섯인데 샤워실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방마다 있는 것이다. 마치 호텔처럼.

그러자 네인이 말했다.

“신을 믿는 자들치고는 좀 과한 것 같긴 합니다.”

“신을 믿는 자들이 가난할 이유는 없어. 하지만 이건 좀 과한 것도 사실이지.”

“예.”

“다른 나라에 내다 팔 것도 없는 조그만 도시 국가에서 이 정도 사치를 부리려면 뭘 해야 할까?”

“그건···.”

“물론 신을 믿어 자발적으로 돈을 바치는 자들도 있긴 하지. 많은 수는 아니지만, 제국 귀족들도 좀 보이는 거 같고.”

“예.”

“뭐,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그보다 일단 샤워부터 하지.”

“···.”

네인은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정확하게 말했다.

“들어가서 씻어.”

“예? 아, 하지만 제가 먼저···.”

“먼저 들어가. 곧 따라갈 테니.”

“···아.”

그제야 네인은 이해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다음 옷을 벗는다. 이쪽을 흘끔거리면서.

물론 나는 아직이다. 그냥 조용히 보는 중이지.

잠시 후 네인은 알몸이 돼서 쭈뼛거리며 샤워실로 들어갔고, 나는 물이 철벅거리는 소리가 꽤 작게 나고 나서야 일어나 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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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 그리고 인성 2 +13 20.08.24 17,160 426 11쪽
42 신성, 그리고 인성 1 +17 20.08.22 17,981 4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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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드래곤 일지도 모른다 1 +17 20.08.17 17,539 50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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