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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님의 서재입니다.

악역 레벨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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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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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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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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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그리고 인성 3

DUMMY

“후우. 후.”

거친 숨소리. 온몸을 덮어 아래로 흐르는 땀.

어깨에 짊어진 커다란 바위. 그걸 지탱하고 있는 건 그냥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이다.

놀랍게도 이건 고문이 아니었다. 혹은 광인의 기행도 아니다.

운동이다. 어깨에 바위 짊어지고 기마 자세로 서 있는 그야말로 미친 운동.

하지만 이런 정신 나간 운동을 하는 게 누구인지 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갈만하다.

아이린 성녀. 성왕국 룬하임 최고의 신성력을 보유했으며 최고 무장 집단인 성전 기사단의 주인.

규칙적인 생활과 더불어 꾸준한 운동으로 탄탄한 근육과 늘씬한 키가 잘 자리 잡은 기가 막힌 몸매를 가졌다.

“흡!”

쿠웅 하고 내려지는 바위. 몸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이런 바위를 들 수 없으니 당연히 신성력의 도움을 받은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목적은 운동이기에 적당히 조절해서 사용한다.

그렇게 강도 높은 운동을 끝내고 이제 다음 운동을 시작하려는 찰나, 아이린 성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튼튼한 갑옷과 결혼할 때나 입는 드레스를 적절하게 섞으면 나올까 싶은 단단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흐늘거리는 복장의 단발머리 여성.

성전 기사단 단장 디아나였다.

“무슨 일이야?”

성녀가 상관이지만 말투는 옆집 친구를 부르는 듯 친근하다.

아이린의 물음에 디아나는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제국에서 외교관이 찾아왔습니다.”

“전에 말했던?”

“예.”

활짝 펴지는 얼굴.

“하지만 서두르셔야 합니다. 글렘 대사제가 뭔가 하는 것 같습니다.”

“으엑.”

대놓고 찡그러지는 얼굴.

동시에 디아나 역시 영 표정이 안 좋다.

적어도 글렘 대사제가 이 두 여자에게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알 수 있다.

“얼른 준비해야겠어.”

“예.”

오늘 운동은 이걸로 끝이다. 성녀는 몸의 땀을 닦아내며 운동을 마무리했다.



***



잠깐 성녀라는 여자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여자는 일단 여주인공. 그것도 핵심이다.

온 사방에 여주인공들이 있지만, 그 모든 등장인물을 전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쓸 수는 없다.

이를테면 네인의 경우가 바로 그 비중 없는 조연. 반면 일리안이나 여기 아이린 성녀 같은 경우가 바로 비중 있는 조연.

그리고 이 성녀의 경우가 바로 모든 능력 있는 남자들이 원하는 바로 그런 여자다.

어디가 어떻게 이쁘다고 말하기도 힘드니 외모는 넘어간다.

그리고 성녀는, 아마 능력 있는 남자들이 원하는 최고의 이상형이다.

순진하다. 바보라는 뜻은 아니고 백치미도 아니지만 자비롭고 자애롭고 순종적이고 말 잘 듣고.

냉혹한 현실을 들어 얘기하자면 사회의 특권 계층이나 엘리트. 부족함 없는 남자들이 원하는 바로 그런 여자.

30살 넘은 잘나가는 검사가 동기인 30살 넘은 여검사를 원할까?

아니다. 능력 있는 남성이면 20살 젊은 애. 그리고 순종적인 여자를 원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부족함이 없으니 무조건 이쁘고 젊은 애들로 찾았다.

덕분에 이혼 경력이 꽤나 있고 그 탓인지 얼굴 이쁜 것들은 얼굴값 한다는 말을 뼛속 깊이 새겼지만 일단 여기 성녀는 아니다.

제국에 있는 일리안보다 낫다. 물론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보자면 다루기 쉽다는 뜻이다.

순진무구.

단 한마디로 정리하겠다.

그리고 지금, 그 성녀를 만나고 있다.

약속된 장소. 안내를 받아 도착한 깔끔한 방.

응접실이야 당연히 깨끗하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장식품이 있긴 하지만 그림과 꽃 정도가 전부.

거기 마주 보고 앉는다.

성녀는 디아나 성전 기사단장을 대동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직업이 하나 열리는 걸 확인했다.


-새로운 직업을 선택 가능합니다.


새로운 스토리의 시작. 그래서 새로운 직업이 하나 열렸다.

하지만 곧바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필요할 때, 필요한 걸 선택하기 위해

“레이튼 발렌할이라고 합니다.”

“아이린 입니다. 그리고 제 뒤쪽은 디아나 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일단 가벼운 인사.

그리고 나는 얼굴의 미소는 지우지 않았으나 사무적인 자세로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이건?”

“약속된 자리고 서로가 왜 왔는지는 알지 않습니까. 일을 빨리 진행하도록 하죠.”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하면 된다.

“이게 그 라인하텐에 세울 신전들과···.”

“바로 그겁니다. 한번 보시죠.”

그러자 디아나가 두루마리를 들어 펼쳤다.

그다음, 하나씩 소리 내 읽기 시작했다.

“첫번째. 라인하텐에 세워질 신전에 관한 규모. 만들어질 자리는 룬하임에서 살피고 결정하며 비용은 제국이 부담한다.”

“두번째. 신전이 세워질 장소는 라인하텐 제국 수도 렌부르크. 한센. 샹 드빌. 푸론크. 벨 바덴. 이상 다섯개 대도시이다.”

“세번째. 신전이 세워진 도시는 엘린의 이름하에, 룬하임의 도움으로 마족과 악마에 관련된 사건 사고가 없어야 한다. 만약, 마족, 악마와 관련된 사고가 발생 시 이 책임은 룬하임에 있다.”

“네번째. 라인하텐 전역에서 벌어지는 마족, 악마와 관련된 사건 사고에 룬하임은 조건 없이 라인하텐을 도와야 한다.”

“다섯번째. 신전에 주둔하는 병사와 기사는 룬하임의 병력을 사용하지만, 룬하임의 기사들과 병사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음을 고려하여 라인하텐에서 병사와 기사를 지원한다.”

“여섯번째. 룬하임은 라인하텐의 강력한 동맹으로써 서로 간의 국가에 위급한 상황 발생 시 군사적 도움을 줄수 있다. 이것은 서로의 신뢰 문제이며 라인하텐은 군사력으로 신뢰를. 룬하임은 신의 힘. 신성력으로 신뢰를 줘야 한다.”

이상 여섯 개 조항.

“어떻습니까?”

“뭔가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읽어보시죠.”

한 번 더 읽어보라 했지만, 문제없다. 아무 문제 없는 내용이다. 작은 글씨로 뭔가 이상한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성녀가 두루마리를 들고 그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렇게 뚫어지라 본들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상식이 적혀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걸 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아직도 문서를 들여다보는 둘에게, 나는 커흠 하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날아오는 두개의 시선. 그 시선을 받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글렘 대사제는 썩었더군요.”

“···.”

“···.”

둘다 침묵. 하지만 기분 나쁘다는 얼굴은 아니다. 좀 놀랐다는 그런 얼굴이다.

그런 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저도 바보는 아닙니다. 이 정도로 중요한 일을 진행하는데 사전 조사도 없이 왔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

“···.”

이번에도 침묵.

물론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아무리 싫어도 자기네 나라의 고위 관직자. 그것도 대사제인데 어떻게 어머 어머 그 말이 맞아요~ 라고 철없는 동네 아줌마처럼 동조하겠는가.

하지만 이건 동조를 바라고 한 게 아니다.

총대를 맨 거다.

성녀를 만났다. 그리고 같이 돌아다니며 교단의 부정부패에 대해 걱정하고 어쩌고저쩌고 뭘 해야 할지 며칠간 걱정하고 고생하고 그럴 생각은 없다.

문제는 명확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설프게 걱정하면서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아는 일이다. 권력을 지닌 자들이 부정부패를 일으키면 그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광장에 단두대를 설치하는 일이란 걸.

물론 이게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엿이나 먹으라지.

그러니 내가 총대를 멘다.

아니 여기에는 총이 없으니까 칼자루를 쥔다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제가 알 정도니 두 분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한번 상기하고 가자면, 일단 글렘 대사제는 여성 신도들을 상대로 신성력을 팔아 몸을 취하고 있군요.”

“···그건.”

“그 뚱뚱한 몸 아래 깔린 여자도 참 안된 일이지만 그래도 몸을 허락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맹목적인 믿음이란 무서운 법이죠.”

“저기···.”

“뭐 믿음을 이용해 재산을 갈취하기도 하지요. 불행한 일을 당해 신전에 찾아온 사람에게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면 돈을 바치라느니 뭐니. 그러면서 그 여자를 하룻밤 안고 내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지만 그것도 신의 뜻이니 대사제의 말만 들어보면 엘린도 참으로 째째하군요. 신답지 않게.”

“···.”

침묵. 성녀는 당황한 표정이고 디아나는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참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능청스럽다.

“실례. 물론 저도 신을 욕보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글렘 대사제가 하는 작태가 워낙 가관이니 말입니다. 아! 그리고 로마노 대신관은 제국의 고급 술집에서 좀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대체 그런 많은 돈이 어디서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신관이 제국에 관광 온 건 아니다. 당연히 전도 때문에 온 거다.

다만 전도는커녕 돈을 펑펑 쓰며 진탕 노느라 바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디아나. 결국 순진한 성녀 대신 말을 꺼낸 것은 디아나였다.

그녀에게 말한다.

“솔직하게 얘기해 봅시다. 여기에는 듣는 귀도, 보는 눈도 없습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지금의 룬하임은 범죄자들의 소굴 아닙니까.”

너무 대놓고 말한걸까. 디아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니 이제 성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성녀님은 교단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길 원하고 계시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필요한 거라면···.”

“설마 진실된 믿음과 더불어 인내와 고행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시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

뭔가 말하려던 성녀. 입모양을 보아하니 진··· 까지 말했다.

그리고 이 두 여자에게 정답을 보여주었다.

손을 들어 목을 그어 보이며 말해주는 것이다.

“죽입시다.”

죽인다. 극단적인 답에 성녀는 놀라며 말했다.

“주, 죽인다니? 그런···.”

그런 성녀에게 다그치듯 말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사제부터 대신관이 권력을 탐하고 돈을 밝히고 여자를 사들이는데 아래 것들이 갑자기 믿음이 충만해져서 아, 신을 위해 이러면 안 되겠구나. 지금부터 정신 차려야지, 라고 하겠습니까?”

“···.”

“그래, 뭐 아래 있는 것들이 정신을 차렸다고 칩시다. 그 아래 있는 것들이 모여서 자기 윗사람을 내 쳐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되겠습니까?”

불가능하다.

“아니, 그래도 죽인다니. 그런, 그건···.”

“못할 이유는 뭡니까?”

“예?”

“분명 신을 욕보이는 죄이니 벌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제가 신이라면 분명 그랬을 겁니다. 세상을 지키라고 자기 힘을 나누어 줬더니 그걸로 자기 배만 불리고 있지 않습니까. 신이란 분은 어디까지 자비로운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언젠가 바닥을 보일한테고 그때가 되면 신이시여 왜 우릴 버리셨나이까, 하고 기도라도 할 생각입니까?”

“···.”

“제 생각에, 신이라는 분이 아직까지도 천벌을 내리지 않는건 성녀님 같은 분이 그래도 좀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녀님께서도 저들의 작태를 방관만 하고 있으니 제가 신이라면 참으로 실망할 것 같군요.”

“······.”

점점 고개가 숙여지는 성녀. 그야말로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다.

“저도 살인이 나쁜지는 압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겠죠. 사형이 안 된다면 감옥이라도. 감옥이 안되면 근신 처분이라도 받아야 하는겁니다.”

“하지만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

뭐, 성격을 생각하면 이럴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애초에 허락 구하려고 한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조항를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인하텐에 신전을 지으려면, 먼저 교단이 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로는 안됩니다, 직접 증거를 보여야 하죠.”

“그 증거라는게···.”

“일곱 번째 조항입니다. 대사제와 대신관을 죽이십시오. 감옥을 보내는 것도, 파면도 안됩니다. 죽이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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