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꿈틀대는 희망(1)
"너희들이 포기한다 해도 난 절대 포기 안해! 아니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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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내가 가르쳐 준 것들...그 것들은 확실할거야."
동식은 못 미더운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확실해요?4169 아저씨 진짜 맞죠? 에이..설마...아저씨 진짜 거짓말 하는 거 아니죠?"
"내가 이 시국에 자네한테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뻥을 쳐서 뭐하겠나?"
6개월 전 작은 쪽지로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는 나름대로 친밀해져 있었다. 어쩌면 남자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겉모습은 수염과 머리 스타일만 다르다 뿐이지 백 장관과 눈 코 입 얼굴형까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아저씨 백 장관 님 쌍둥이 형 맞아요?"
식사를 하고 있던 죄수번호 4169는 동식의 끝없는 의구심에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고 말았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 나 쌍둥이 맞다 고!!!"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밥알이 건너편에 앉아 있던 죄수의 식판 속 국물로 다이빙을 하고 말았다. 그 순간 교도소 식당 안을 채우고 있던 죄수의 반의 반 정도 되는 인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들이 미쳤나! 감히 누구한테 시비를 걸고...오늘 장기 털리고 싶어 환장했지?"
하필이면 동식과 4169 죄수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주먹. 조직 폭력배 출신 김 두식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말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있었지만 그의 수하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동식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죄수가 동식의 뒤통수를 후리며 그대로 식판으로 동식의 얼굴을 뭉개 버린 것이다. 교도관들도 분명히 그들의 행동을 봤다. 하지만 김 두식이라는 존재는 교도관들도 어찌 할 수가 없는 대한민국 지하세계의 명실상부한 대통령과 같은 존재였다.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도 용서해 줄까 말까한 판국에 이 새끼들이 히죽거리면서 식사를 쳐 하고 있어?"
동식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에는 콩나물이 물려 있었다.
"4169스승님...그 동안 했던 말들이 사실이 확실한 거죠?"
4169는 동식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지금 한 번 저질러 보던가...뭐 보아하니 상대가 상대인 만큼 교도관들도 눈 감고 넘어 갈 것 같은 데 말 야..."
동식은 4169의 말을 듣고,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목과 어깨, 그리고 손목, 발목으로 이어지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허! 이 자식들이 진짜 미쳤나? 퍼뜩 무릎 안 굽히지! 상황판단이 안 될 만큼 돌대가리냐?"
동식의 머리통을 후려쳤던 남자가 동식의 오금 부위를 향해 로우 킥을 날렸다. 그 때였다.
"아아아....내 다리...."
도리어 자신의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바닥을 뒹구는 남자. 동식을 공격한 남자가 쓰러지자 다른 일행들이 동식을 향해 모여 들었다.
"오? 아저씨 이거 진짜 뭔가 되는 것 같은데요.."
동식을 바라보며 천천히 미소를 짓는 남자.
"당연하지 그 놈이랑 나랑 합쳐서 IQ 430이 만들어 낸 인생 최고의 걸작인데..."
"그럼..어디 한 번 제대로 사고 한 번 쳐 볼까요?"
동식이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상상 하더니 이내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순식간에 식당 끝 까지 이동했다.
"뭐...뭐야?? 저 자식..."
동식도 놀라고 있었다. 그 전부터 노량진 볼트라는 별명을 가지며, 뛰어난 달리기 실력을 발휘해 왔던 그이지만 지금 움직임은 역대 스피드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형님들 죄송하지만 오늘 제가 크게 사고를 쳐야 해서요."
식당 끝에 서서 식당 전체가 울리게끔 큰 목소리로 외친 동식은 이내 사람의 동체 시력을 뛰어넘는 스피드로 김 두식의 하수인들을 쓰러뜨렸다. 불과 몇 초 만에 일어난 사건. 교도관들을 포함해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 전설의 주먹 왕 이라는 김 두식도 윗 턱과 아래턱이 분리된 사람 마냥 입을 저억 벌린 채 눈앞에 상황에 치를 떨고 있었다.
"우와! 아저씨...저 이제 아저씨 믿을래요."
"아따 그 놈 자식 참. 그 동안 속고만 살았나...내 분명히 말했잖아. 이 아저씨만 믿으라고. 모든지 생각하렴. 무엇을 생각하든 네 녀석은 상상이상을 행하게 될 거야. 그게 내가 육 개월 이라는 시간 동안 가르친 수업의 전부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교도소 내 모든 교도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두식의 하수인들은 자신의 대퇴부를 움켜쥔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7777 7일간 독방..."
동식에게 떨어진 처벌은 일주일 간 독방 신세를 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4169와 동식의 의도된 계획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20시간 전 동식과 4169는 어김없이 햇볕을 쬐며 낮잠을 청하는 척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몇 달을 같은 행동을 취하다 보니 본인마다 노하우가 생겨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정말 낮잠을 자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그렇게 6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은밀하게 대화하며 정보를 주고받고, 가르침을 주고하고 있었던 것.
"바깥세상이 너무 혼란스럽더구나. 이제 때가 된 게지. 뭐 내 더 이상 너한테 알려 줄 것도 없고..."
"까지 것 지금 당장 교도소를 때려 부수고 밖으로 나가 버릴까요?"
"안 돼. 넌 대통령을 죽인 범죄자야..이대로 요란하게 탈출한다면 넌 또 다시 사람들의 눈에 낙인찍히겠지. 대통령을 죽인 살인 탈주범으로 말 야.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그 사실은 변함없을 테니..그러니 최대한 조용하게 나갔다가 와야 해."
"그럼 어떻게 해요..."
"자식....너는 아직도 나의 능력을 의심 하냐...이리로 가까이 와봐. 내가 다 준비해뒀지."
동식은 독방에 갇힌 채 벽면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양 손을 이용해 빈틈없이 철저하게 모든 벽면을 만지고 밀어 본다.
"아...설마 이 방이 아닌가..."
아무리 만지고 눌러 보아도 4169가 말한 비밀통로라는 출입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 그들이 갇혀 있는 교도소의 독방은 3개였던 것. 안타깝게도 동식이 들어 온 방은 4169가 말했던 그 방이 아니었다. 그렇게 동식은 독방에 갇혀 일주일을 허비하게 생겼다.
“으악 이 아저씨!!!역시 믿을 게 못 되네..”
동식의 절규가 교도소에 울려 퍼지고, 4169는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다가 자신의 귀를 후벼 팠다.
“누가 내 욕을 하나...귀가 왜 이리 간지럽지..”
동식이 허무하게 날리고 있는 시간. 그렇다고 시간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기간 동안 그의 친구 진호는 목숨이 코앞에서 들락거리는 공포를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해! 이 개잡놈아...으으으.."
진호는 전봇대에 매미마냥 메 달려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일본 무사투구를 쓴 존재가 칼을 휘두르며 전봇대를 베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근과 콘크리트로 세워진 전봇대는 쉽사리 베어지지 않았다. 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체불명의 존재는 본능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기를 벌써 삼십분이 지나가자 진호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들기 시작했다. 놈은 전봇대에 기어 올라오지 못하고 전봇대는 쉽사리 베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버티고 있는 동안 살육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시민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도대체 경찰들은 뭐하는 거야? 대한민국 군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민들이 이렇게 쓰러져 가고 있는 건데. 이런 엿 같은!!!’
진호의 말처럼 그 살육의 현장에 그 아무도 국민의 편이 되어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자기 자신에 대한 한없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되어 몰려 왔다. 일본 무사갑옷의 존재. 그 존재를 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 역사를 통해 배웠던, 일제 치하의 억압을 받던 그 때의 모습들이 반복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젠장 할 쪽 바리 새끼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 양키 고 홈!!!"
화가 난 진호는 양키고 쪽 바리고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습과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그 때였다. 그대로 버틸 것만 같았던 전봇대가 기울기 시작했다. 무사 같은 존재가 휘두르는 칼날에 철근도 한계에 도달했던 것이다. 진호가 메 달린 전봇대는 또 하필이면 괴물 같은 존재가 칼을 휘두르고 있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마음먹었다. 어차피 죽게 될 것. 마지막으로 대항이라도 한 번 해보고 죽자고. 그의 마음속에 결심이 섰을 때 마침내 전봇대가 넘어졌다.
"죽어라!! 왜 놈아!!!"
그는 커다란 포효와 함께 투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 것이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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