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남 다른 놈(2) 회상 편
"너희들이 포기한다 해도 난 절대 포기 안해! 아니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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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같이 날카로운 얼굴의 소년. 그의 교복에 달린 이름표로 시선을 옮겨 본다. 유 진호.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니 우리가 다다른 곳은 학교 건물 옥상이었다. 애시 당초 도망가거나 피할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행여나 내가 내 뺄까봐 양 쪽 겨드랑이를 깊게 파고들어 단 디 붙잡은 채로 옥상으로 끌고 왔다. 진호를 따라 온 친구 하나가 바짓단을 걷어 올리자 양말 한 쪽에 숨겨둔 담배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진호는 라이터를 꺼내 담배의 불을 붙이고는 깊게 연기를 빨아들인다.
"후우우~~전학생 한대 빨래?"
"아니 괜찮아. 담배는 몸에 해로운 거잖아. 너희는 언제부터 핀 거야? 난 우리 또래가 담배 피는 거 처음 봐."
나의 한 마디에 진호를 포함한 그의 일당들이 배꼽을 부여잡고 웃는다.
"프하하하 어디서 이런 모범적인 새끼가 나타난 겨? 너의 아버지 옆 집 아지매랑 바람피울 때부터 폈다."
아이들은 진호의 말에 입 속 치아를 전부 드러내며 크게 웃음 지었다.
“나 아버지 안 계신데.”
"헉...미...미안."
내 대답에 당황하며 담배를 두어 번 더 깊게 빨아들이는 진호. 이내 담배꽁초를 건물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조금 전 웃고 있던 표정을 싹 날려 버리고, 무게를 잡기 시작했다.
"그건 그거고..흠. 문 잠가라."
진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반 아이 하나가 급하게 달려가 옥상 문을 걸어 잠그고는 문 앞에 섰다.
"음...일단 아버지 건든 건 사과하마. 뭐 어쨌든 전학생 네가 도망갈 곳은 없다. 혹시나 이게 지금 뭐하는 상황인지 궁금해? 눈치가 없는 녀석 같아 보이진 않는 데 말이야. 음 내 친절하게 덧 붙여 말하자면 전학생 환영회 같은 거야. 같은 부류 속 위계질서를 확립을 위한...간단히 말해서 서열정리 같은 거지. 음 어디 보자."
진호는 어렵사리 설명을 늘어놓더니 이내 나를 둘러 싼 아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음. 적당한 상대가...OK!!! 너로 정했다. 민석 아 오랜만에 실력 한 번 발휘하자."
진호의 입에서 거론된 남자. 큰 키에 허우대가 멀쩡한 사내가 실내화를 질질 끌며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새끼 전학 오자마자 운도 없고만. 난 중안 중학교 불도저 서민석이라고 한다. 통칭 삼 짱 이라고들 부르지.”
내 정면에 마주 선 친구가 목과 어깨를 풀며 크고 단단해 보이는 주먹을 만지작댔다.
“룰은 간단해. 전학생 네가 이 녀석을 쓰러뜨리면 전학 오자마자 넌 서열 3위에 랭크되는 거야. 아참...싸우기 전에 내 소개부터 하는 게 순서인가?”
진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팔을 걷어 부처 자신의 알통을 과시하며 말했다.
“난 이 곳 중안 중학교 넘버 투, 유 진호라고 한다. 아까 교실에서 인사한 네 짝꿍. 개가 우리학교 TOP이지.”
선생님한테 무차별 체벌을 당하던 친구. 그 친구가 이 학교의 TOP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뒤를 잇는 넘버 2라 소개하는 4분단 끝 열의 맹수 얼굴의 사내. 서열이라? 사실 난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다. 그냥 더 많은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얼굴 붉히는 일 없이 반 아이들 전체가 고루 친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야 점심시간에 더 많은 친구들의 도시락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아. 슬슬 배가 고파지려고 한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진호의 신호가 떨어지자 아이들이 일제히 나와 서열 3위의 덩치 주위로 몰려들어 벽을 만든다.
"낭 심을 걷어차거나 머리털을 잡는 행위. 눈알을 손으로 잡는 반칙 이외에는 어떠한 신체 부위를 때려도 좋아. 어디 한 번 잘 싸워봐. 네가 민석이 잡으면 단 번에 서열 3위에 오르는 거다."
" 그런데 진호야. 난 원동식이라고 해. 전학생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친근하게 똥식이라고 불러도 좋아."
진호는 나의 여유로운 모습에 살짝은 당황하는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이내 불같이 화를 냈다.
"아. 이 긴장감이라고는 없는 새끼를 봤나! 상황 판단이 안 되지? 민석아 조져!."
진호의 호령이 떨어지자 덩치가 좋은 민석이가 내게 달려들었다. 그의 거대한 덩치가 밀물처럼 몰려 들어 왔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내 목덜미를 잡으려는 그의 움직임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보여 졌기 때문이다.
"오호~ 전학생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데? 자 지금부터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민석이는 우리학교 유도 부 출신 에이스 였거든. 한 번 잡히는 순간...어?"
민석이는 결코 느린 아이는 아니었다. 큰 덩치에 비해 날렵하고 단순히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스타일은 아닌 듯 했다. 그는 자신의 유도를 바탕으로 각 종 기술을 시도하며 나를 공격해 왔다. 다만 나의 움직임이 그보다 보다 빠를 뿐.
"헉헉...이 쥐새끼 같은 놈...그만 피해 다니고 정면 승부를 하자."
"승부?....난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친구잖아. 친구끼리 얼굴 붉히지 말고 그만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떡볶이를 진짜 좋아 하거든. 지금 마침 배도 고프고..."
민석이는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 가뜩이나 찌푸려진 인상에 한 줄의 주름을 더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친구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일로와!!!"
흥분한 민석이의 동작이 조금 전보다 커지고 훨씬 더 위협적이었지만 그 만큼 스피드가 줄어들었다. 그는 내 안 쪽으로 파고들어 하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세웠는지 신체의 중심을 낮추며 내 오른 다리를 노렸다. 휴. 거기서 내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무릎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민석이의 턱을 정통으로 가격한 것이다. 절대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 평화주의자인 나의 위험을 감지한 본능적인 감각의 발휘였다.
쿵~~~
185의 키에 0.1톤의 무게를 자랑하던 중안 중학교의 불도저는 그렇게 내 무릎공격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순간 진호와 나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의 초점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몹시도 흔들린다.
"미....미안. 나..나도 모르게 그만....."
바닥에 쓰러져 개 거품을 물고 있는 민석이의 모습에 난 몹시도 당황했다. 정말로 실수였다. 싸움이라고는 해 본적 없는 나의 타고난 격투 센스 정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디서 나오는 타고난 센스인지 모르겠지만 싸움이라는 게 나름 매력 있다고 느끼는 건 함정.
"그...그렇지!!! 이건 단순히 운이야...민석이 가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만큼 맷집이 약한 놈이 아니 거든. 니들도 봤잖아. 승범 이랑 붙었을 때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쓰러지지 않던 녀석을 말이야."
진호는 몹시 당황했는지 자신의 목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에 서늘한 기운을 감지하며 침 넘기는 행동 하나에서도 긴장의 맛을 혀끝으로 느끼고 있었다.
“꿀꺽!”
그 때 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어? 벌써 4시네! 진호야 미안한데...내가 빨리 집에 가봐야 해. 할머니를 도와 드려야 될 시간이거든...."
내 말에 자신의 교복을 벗으며 전투태세를 취하던 진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그래? 너 되게 운 좋다. 집에 가봐야 한다고? 네 녀석과 한 판 붙어 보려 했는데...하지만 우리가 양아치도 아니고 집안 일 때문에 바쁘다는 친구를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지...안 그래 애들아?"
진호가 뭐가 불안했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그렇지!!!”
진호는 생각보다 착한 녀석 인듯 했다. 선 뜻 길을 만들어 주는 그의 모습. 역시 맹수 같은 얼굴과는 다르게 매우 상냥한 녀석인 것 같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녀석도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 할 인물 중 하나.
"고맙다 진호야 그리고 친구라고 불러줘서 더 더욱 고마워."
난 그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챙기고 옥상 문을 향해 달렸다.
"우우웃..."
문을 지키고 있던 친구 녀석이 혼자서 발을 헛디디며 뒤로 나가자빠진다.
"내일보자 친구야."
내가 옥상을 빠져 나가고 진호와 그의 일행들은 여전히 옥상에 남아 학교 정문을 향해 달리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진호야. 저 놈 되게 빠르다 그치?"
진호는 멀어지는 내 뒷모습과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손자국 때문이었다.
"뭐야 도대체 저 괴물 같은 놈은..."
"이 것이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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