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계절은 바뀐다(1)
"너희들이 포기한다 해도 난 절대 포기 안해! 아니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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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핑크림이 잔뜩 올려 져 있는 꿀이 발라진 식빵. 포크를 들어 정사각형 모양으로 잘게 나누어진 빵 조각을 집어 올리려는 찰나 건너편에서 날아든 또 다른 포크가 그의 행동에 훼방을 놓는다.
"동식 씨!!! 센스 없게 참..."
동식의 포크를 가로막은 지선의 포크. 그녀는 테이블에 올려 진 핸드폰을 들어 카메라 기능을 실행 한다.
"찰칵 찰칵..."
동식은 지금 괴롭다. 무척이나 괴롭다. 먹고 싶어 죽겠는데 그녀의 셀프 카메라 질은 끝날 생각도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마지막 한 조각을 목구멍에 넘기고 있을 타이밍인데...여전히 바라만 보고 있다. 사정없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침들. 언제 쯤 그녀의 행동이 끝이 날지 마냥 기다리는 동식의 모습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애완견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이제 드셔도 되요."
지선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흰 접시위에 빵 조각을 향해 달려드는 동식의 포크. 걸신들린 사람마냥 빵을 집어 삼킨 동식 탓에 식빵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접시 위에서 사라졌다.
"우적우적...쩝....와!!!! 진짜 개 꿀맛!"
기쁨에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 반달눈이 된 동식의 표정이 한편으로는 귀여우면서도 볼이 터질듯이 가득 음식물을 입에 넣고 히죽 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 있는 정 마냥 떨어질 것 같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지선이었다.
"동식 씨 별명 먹 개비죠? 그 유령 영화 속 캐릭터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뵈네. 어떻게 이렇게 잘 먹을 수 가 있지? 차라리 먹방 방송을 해봐요. 요새 그게 그렇게 핫 하고 돈도 된다고 하던데."
동식이 해맑게 웃으며 지선을 바라본다. 여전히 그의 입에 물려 있는 식빵을 어느 정도 소화했다고 판단한 지선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동식 씨 정말 신 차석 회장을 몰라요?”
신 회장에 대해 묻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동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그리고는 손에 들려 있던 포크를 천천히 테이블에 위에 내려놓고는 조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지선을 바라본다.
"제가 어떻게 그 사람을 모를 수가 있겠어요. 그 자 덕분에 지금 제가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 건데..."
동식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지선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일산(파주)일대는 원래 논, 밭 이었어요. 대형신도시 바람이 불기 전에는 말이죠. 그리고 계획과 함께 불어 온 개발은 순식간에 동네를 탈바꿈 시켰죠.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한 채가 올라서고 있을 정도로 빠르게.... 지선씨도 아까 저희 동네에서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그 곳은 정말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낙후되어 있어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주변 모습과는 다르게 작은 동산 위에 질서 없이 늘어선 판자 집들....그래요. 저희 동네 사람들은 무분별한 개발의 피해자들입니다. 우리는 강제적으로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듯이 그 곳에 모여 든 거 에요. 그리고 이 모든 개발의 중심엔..........."
동식은 이야기를 하다가 커피숍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주상복합물을 가리켰다. 그 모습이 어찌나 크고 웅장한지 동식의 손가락을 향해 시선을 이동하던 지선은 현기증이 마저 느꼈다.
“저 건축물, 바벨시티..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본 따 만들었다는 그 건물, 저것이야말로 신 회장의 탐욕의 정점을 보여주는 결정체라고 동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지선은 평소에 절대 보지 못했던 동식의 진지한 모습. 그리고 그 모습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에 어느새 빠져 들고 있었다.
(동식의 회상)
차가운 바람이 매몰차게 불어대는 날씨 탓에 허허벌판을 걷고 있는 두 꼬마의 콧구멍에서는 하염없이 맑은 콧물이 흘러 내렸다.
깡~ 깡~
그들이 걷고 있는 벌판을 기준으로 전후방 좌우할 것 없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도시 개발 계획이 통과됨과 동시에 동네에 분 재건축 바람. 대형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두 꼬마아이의 양 옆으로는 덤프트럭이 왔다 갔다 한다. 하늘에 짙게 깔리는 노을 빛. 태양의 마지막 줄기가 고층 건물에 가려 씁쓸한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여전히 두 꼬마는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더 추워지겠지???"
그들의 손에는 붕어빵 한 마리가 들려 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꼬마의 손에는 장갑 따위는 없었다. 아마도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붕어빵 한 마리. 그 것이 그들의 장갑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듯 했다. 하교 길에 학교 앞에서 산 붕어빵이었지만 그 것을 먹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들이 붕어빵을 산 이유는 배가 고파서 혹은 먹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하교 길에 조금이라도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작은 붕어빵의 온기로 손난로를 대신하고자 한 것이다.
"이제 먹어도 되겠다.. 쩝...."
어느새 차갑게 식어 딱딱해진 붕어빵. 마지막 온기라도 짜내고 싶은 지 꼬마는 그 붕어빵을 바로 먹지 않고 몇 차례 더 손등에 비벼본다. 하늘에 어느새 짙게 깔린 어둠이 앞으로 더 날씨가 추워질 것이라 말해준다. 그런 상황을 알기에 붕어빵의 부재가 꼬마 동식에게는 그저 아쉽기만 했다. 손을 모아 자신의 입김을 불어 넣어 보기도 하고 손바닥을 비벼 마찰을 일으켜 보기도 하지만 동장군은 그 기세를 꺾기는커녕 더욱 거세게 꼬마동식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부터 혼자 걷고 있다. 하교 길 동무가 되어 주었던 다른 꼬마 녀석과는 해가 떨어지자마자 이별한 상태였다. 가로등 하나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혼자 걷기에는 동식의 나이는 이제 막 아홉 살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인용해 본다면 동식은 또래 친구들 보다 훨씬 성숙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한 가지를 더 덧붙인다면 신체적인 능력도 또래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절대 우위를 점할 만큼 특출 난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다른 아이들이었으면 벌써 질질 짜고 말았을 이 곳을 꿋꿋하게 걸어 나가고 있다. 게다가 동식이 입고 있는 겉 옷. 그 것은 아까 헤어진 친구가 입고 있던 오리털 파카 잠바에 비하면 몇 배는 가벼워 보인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뛰어난 신체능력과 성숙도를 자랑하는 꼬마라 해도 그는 이제 갓 아홉 살이 된 꼬마 일 뿐이었다.
'나도...학교가 집이랑 가까웠으면 좋겠어.....'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동식은 그렇게 한 발 한 발을 앞으로 내 딛고 있다. 걷고 또 걷고, 걸음을 옮긴 결과 하교 길에 들어 선지 한 시간이 넘은 시각. 동네에 다다랐다.
문을 열어 "할머니" 부르면 맑은 미소로 자신을 반겨 줄 그 모습을 상상하며 집으로 향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동식의 눈에 들어 온 풍경은 자신의 집 대문을 둘러 싼 정체 모를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각목이나 쇠 파이프 등을 들고 자신의 집 철문을 세차게 내려치고 있었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할멈!!! 도대체 언제까지 찾아오게 만들 건데 엉?"
오늘도 역시나 마찬가지. 동식이 기대했던 모습은 단지 상상일 뿐이다. 벌써 한 달 전 부터 해만 지면 찾아오는 사람들. 동식은 주변을 둘러본다. 한 달 전부터 하교 길에서 모으기 시작한 폐휴지나 종이 상자들을 쌓아 둔 장소. 그 곳을 향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얼마나 기다려야 들어 갈 수 있을까?'
동식은 최대한 몸을 움 추린 채 신문지를 구겨 뭉친다. 그리고는 그 것들을 자신의 옷 안에 밀어 넣는다.
“아저씨들이 대문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는 절대 집으로 들어와선 안 돼.”
할머니의 당부가 뇌리를 스친다. 불이 꺼진 동식의 집. 그리고 그 앞을 점령한 채 위협을 가하는 남자들. 언제쯤 이 생활들이 정리가 될까?
"하나...둘....셋....넷...."
꼬마 동식은 자신이 만든 임시 거처에 잔득 몸을 수그린 채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그의 바램 은 하나뿐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적은 숫자를 샜을 때 집에 들어가고 싶다 라는... 그게 꼬마 동식이 유일하게 희망하는 전부였다.
"이 것이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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