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무너진 균형(4)
"너희들이 포기한다 해도 난 절대 포기 안해! 아니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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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선출마를 선언하신 신경제당 총재이자 로다 그룹 명예 회장님이신 신 차석 의원을 모셔서 이야기를 진행 하겠습니다."
카메라 앞에 모습을 비춘 남자.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근육들을 자랑하며 탄탄해 보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인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거셨는데, 요즘 서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금 수저론 부터 시작해서 헬 조선이라는 단어들이 파생 된지도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러갔는데요. 경제인으로써 우리나라에 찾아 온 이 비관론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시겠습니까?"
앵커의 질문을 받은 신 회장이 탁자에 놓아진 컵을 집어 한 모금 물을 들이 마신다.그리고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는 씩 웃는다.
"최초의 경제대통령..그 보다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더 잘 맞을 지도..허허허. 대한민국의 불투명한 미래. 극명하게 벌어진 빈부격차. 이런 문제들...저한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습니다. 25 년 전 제약바이오 산업에 뛰어들어 전 세계적으로 그 효력을 인정받은 신약만 3가지. 그 판매를 통해 축적한 부 가 로다 그룹 아니 저 신 차석을 세계 최고부자 3위의 자리에 앉혀 놓지 않았습니까? 저는 저의 이 축적된 부를 어떠한 형태로든 사회에 환원할 생각 입니다. 다 같이 잘 사는 대한민국 그건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신차석이라면 가능 합니다. 여러분 투표 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뽑아도 마찬가지라는 구시대적인 생각을 버리십시오. 나 신 차석은 분명히 다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소중한 한 표. 그 한 표가 모여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신 차석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앵커와 현장에 모든 스텝들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고착화 된 본질적인 문제. 대선후보 신 차석 회장님이라면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 합니다."
동식이 구치소로 들어 간지 어느 덧 3년. 그 세월동안 세상은 많이도 적지도 않게 변화 하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7777면회!!!"
동식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여인.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풍성한 웨이브 머리. 도드라지는 새빨간 입술. 교도관들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는 눈부신 미모. 시간이 지나도 여전한 지선의 외모였다.
"지선 씨!!!"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동식이 도가 지나치게 반가움을 표현한다.
"동식 씨는 교도소 생활이 몸에 잘 맞나 봐요. 올 때마다 얼굴이 좋아 지네요."
동식은 해맑게 웃으며 지선에게 말했다.
"삼 시 세끼 꼬박 챙겨주고, 건강에 좋은 콩밥을 매일 먹어서 그런가 봐 요. 아 그나저나 친구라는 놈들은 어째 얼굴 한 번 안 비추는데요... 잘들 지내죠? 아 진호는 결혼 했다는 데..식장도 못가고 자식...그래서 면회 안 오나? 식에 안 갔다고 분명히 엄청 삐졌을 거 에요."
"그렇지 않아도 동식 씨를 원망하고 있어요. 자신을 범죄자 단짝으로 만들었다고...그 꼬리표 때문에 보험도 그만뒀어요.“
지선의 말에 급 어두워지는 동식의 표정.
“아 맞다..동식 씨. 그리고."
말을 끊고 망설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지선.
"왜 그래요. 지선 씨 무슨 일 있어요? 빨리 말해 봐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지선은 동식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끌다가 이내 입을 연다.
"저 승범 씨랑..."
동식은 탁자를 강하게 치며 일어나 흥분한다.
"안 돼!!! 절대 그 것만은!!! 그러지 마요. 지선 씨 제발 우아아악.."
동식이 흥분을 하자 교도관이 그에게 주의를 준다.
"아..진짜 동식 씨...왜 그렇게 흥분을 해요.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거 몰라요?"
"뭔데요..빨리 말해 봐요.."
지선은 유리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는 심술 난 표정의 동식에게 다가오라 손짓한다.
"저 승범 씨랑 사업 시작 했어요.동식 씨를 이곳에서 꺼내주기 위한..."
"사...사업이요?"
지선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든다. 그리고는 명함을 꺼내 유리벽에 갖다 댄다.
"벼..변호사?? 와우!!!!대박.."
지선이 건넨 명함에는 변호사라 진하게 적혀 있었다.
"동식 씨 아직 놀라긴 일러요. 승범 씨는 회사 사장이 됐어요. 승범 씨가 그렇게 똑똑한 사람인 줄 미처 몰랐는데.."
동식은 환하게 웃으며 기뻐한다.
"그 자식 중학교 때 수재였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그러게요. 저도 놀랐어요. 동식 씨가 그렇게 감옥에 들어가고 2년 동안 컴퓨터 공부에 열을 올리더라고요. 저도 그런 승범 씨한테 뒤쳐지기 싫어서 그 때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그 때 교도관이 면회종료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지선은 겉옷을 챙겨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동식 씨 힘내요. 정의는 아직 대한민국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동식은 씩 웃으며 교도관에 이끌려 사라졌다.
"아 진짜 이 할아방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쳐 먹는 거야?"
비교적 젊은 사내가 머리가 새하얗게 샌 노인을 바닥에 힘차게 밀쳐 버린다.
"아이쿠..허리야.."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노인은 그 충격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여기는 내 자리라고 몇 번을 말해. 진짜 이 영감탱이가 노망이 들었나. 왜 선량한 시민에게 폭력을 쓰게 만들어?"
그들은 서울역 근처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이었다. 오래 전 부터 터를 잡아 온 선배격인 노숙자가 신입을 호되게 혼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리가...이렇게 많은 데..이 친구...좀 너무 하는 고만...자네 나한테 이러면 후회할 걸세..내가 이래 뵈도 왕년에...."
남자는 허리를 피며 일어서던 노인을 다시금 바닥에 눕히며 외쳤다.
"여기 왕년에 한 가닥 안한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한 때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는데...당신은 뭐가 그리 잘났는데? 뭐 한 나라의 재상 질이라도 했나보지?"
남자의 도발에 화가 난 노인이 욱하며 뭐라 크게 외친다.
"그래...내가 최근까지 이 나라의...."
노인은 아차 싶었는지 스스로 입을 봉인하고 등을 돌렸다.
"어? 그리고 보니 가만 있어봐..."
노인의 행동에 의구심을 가진 남자가 노인을 향해 고개를 들이민다. 그 모습에 당황하는 노인이 고개를 푹 숙이며 최대한 얼굴을 감춘다.
“그리고 보니....그....그 뭐냐...아....누구지....”
노인의 얼굴을 본 남자가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계속 해서 누구냐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 순간
“누구긴 개뿔 우리 집 앞에 살던 알콜 중독자 춘대 아범이랑 똑같이 생겼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노숙 생활 십 년차에 접어든 남자는 노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랬다. 남자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 나라의 대표 자리를 맡고 있던 대통령이었다. 그는 영빈관 폭발 사건이 후 이 세상에선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례없는 국가 장 10일을 지낸 대통령. 국민들은 이미 그를 가슴에 묻고, 사람이 아닌 존재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서울 한복판 노숙자의 천국이라는 서울역에서 생활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간 혹 구걸을 할 때면 그의 생김을 보고 물어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혹시..전직 대통령하고 무슨 사이 유?"
혹은
"캬..이상하네...관상은 대통령 감인데 왜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을까 쯧쯧..."
하지만 그는 어떠한 이유든 간에 절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없었다. 신 차석과 로다 그룹. 그들은 절대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라곤 로다 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 한두 명의 목숨을 수거해 가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라는 것.
'이들 중 로다 의 사람들이 있을지 도 모르지....'
대통령은 분통이 터졌지만 철저히 자신의 모습을 감췄다. 그 때였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이 십 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궁금증이 일어난 노인은 한 쪽 발을 절룩거리며 그 곳으로 이동했다. 그랬다. 노인은 영빈관의 폭발 사고로 다친 오른 허벅지를 치료하지 못했다. 아직도 유리 파편이 허벅지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와!!! 이건 뭐 게임이 안 되네....."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린 곳엔 TV가 한 대 설치되어 있었다.
"투표율 89% 개표율 29%라....게다가 저렇게 압도적인 표 차이라면...."
노인이 고개를 빼 곰 내밀어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노인은 자신의 눈에 들어 온 상황에 그대로 다리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 밤. 신 차석 회장이 압도적인 표 차이를 보이며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것이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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