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걸어갑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완결

플나
작품등록일 :
2008.05.02 17:23
최근연재일 :
2008.05.02 17:2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113,829
추천수 :
265
글자수 :
510,481

작성
07.08.11 21:45
조회
806
추천
2
글자
12쪽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7)

DUMMY

1화 : 긴 걸음.


“어디 가냐?”

“북쪽으로. 조금 멀리 가볼까 해서.”

“그런가. 그럼 언제쯤 돌아오는데?”

“한 일주일 걸릴 거야. 나린이에게는 말 잘 해줘.”

“오냐.”


한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간단히 꾸린 배낭을 메고서 나는 집 현관을 나섰다. 이제부터 가고자 하는 곳은 이곳 부산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한때는 상당수의 사람이 살았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축소되어 - 다른 도시들이 그렇듯 - 작은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기억은 10년이 더 된 것이므로 지금은 어쩌면... 사람이 없을 수도 있었다.


‘이건 또 이것대로 걱정이군.’


평균기온이 곤두박질치고 인간의 수가 급격히 줄어가는 지금. 사람의 거리는 빛바래가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거의 7개월간 계속되는 겨울과 그에 따른 혹한, 그리고 출산율의 감소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멸종(滅種)을 이끌어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놀라운 점은, 인간이 그들의 멸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듯이, 인간은 스러져가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평온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어이, 현하-!”


멀어진 집 저편에서 날 배웅했던 할머니가 소리 질렀다. 그리고 돌아선 나를 향해 그녀가 재차 소리쳤다.


“올 때 선물 사와-!!”

“알겠어, 알겠다고-!!”


그녀의 이름은 휘미래. 몇 안 되는 친구로 70대 중반으로 치닫는 나이의 할머니였다.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이 나와 휘미래와의 관계에 많은 의문을 표했다. 분명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서로 ‘반말’을 쓰는 건 이상하니까. 이때 얼마 전 휘미래와 한 대화가 생각났다.


‘휘미래.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말투를 바꿔볼까?’

‘왜?’

‘분명히 생긴 것만으로 본다면 우리 대화는 어색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대충 다 눈치는 채고 있을 텐데. 네가 단순히 젊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러면 좋겠지만 가끔 물어오는 사람이 있어서... 그때는 설명하기 난감하거든.’

‘뭘 걱정하고 그래. 나이 사천이라고 솔직히 말해. 핫핫핫.’


그랬다. 이제 정확히 세는 것조차 포기한 내 나이는 사천이 넘어 있었다. 물론 이걸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500년 전 쯤에 꽤나 이름 팔리는 짓을 해서 500살 정도까지는 설득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한 시간 정도를 걸어 섬에서 나온 나는 눈앞에 펼쳐진 산과 바다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어디로 갈까나.’


화려한 대도시였던 부산. 그러나 지금의 부산은 작은 소도시 이상은 아니었다. 시가지의 크기는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로 줄어들었고, 그 빈 공간을 메운 것은 다름 아닌 풀과 나무들이었다. 난 그렇게 사그라져 가는 인간의 장소를 보면서 짧게 웃음 지었다. 사실 미안한 얘기지만 이곳의 주인은 원래 그들이었으니.


잠깐의 생각을 끝낸 나는 오른쪽을 - 해안 - 택했다. 차를 타는 것이 아닌 걷는 것이기에, 지형을 잘 모르는 내륙은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땅을 향해 쭉 뻗은 길을 뒤로하고 바다와 평행하게 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길을 가다보면 예전에 철도역으로 사용했던 큰 건물 하나가 나온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 항상 지나가는 곳이었지만, 막상 떠올려 보니 제대로 가 본 기억이 없었다. 언제나 그냥 지나쳤을 뿐. 그래서 결심했다. 시간이 별로 구애받지 않는 지금 가봐야겠다고.


먼저 도착한 곳은 차량 기지로 사용된 것 같은 건물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철길 위로 얹어진 긴 건물. 행여나 싶어 안으로 들어가 봤지만 열차는 찾을 수 없었다. 깨어진 유리 아래로 햇빛의 줄기가 쏟아졌다. 밖과는 다르게 오래된 습기를 머금은 공기. 녹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붉은 기가 도는 사방의 벽과 지붕은, 이곳이 인간의 땅이었음을 말하는 마지막 흔적이었다. 아마도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피를 다 흘린 강철의 기둥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터였다.


의외로 긴 시간이 걸려서야 차량 기지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다시금 햇볕을 손으로 덜며 앞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서인지 철길은 자세히 봐야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성한 풀은 건물 밖이 더 심했다. 그리고 이러한 풀과 나무에 휩쓸려서인지 철길은 형태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검붉은 두 갈래의 길은 여러 갈래로 퍼지고, 합쳐지고, 연결되며 마음속의 괘도를 앞질러갔다.


철길 건너편으로는 빈 건물들이 가득했다. 역 주변이 원래 그랬지만, 오래전 이곳은 도시의 번화한 구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비와 바람과 세월에 녹아 결국은 자연으로 녹아들어가는 어떤 구조물들이 있을 뿐이었다.


부드럽게 꺾인 하나의 모퉁이를 돌자 날 맞이한 건 거대한 역(驛)이었다. 물론 철길만큼이나 낡은 역은 주변의 건물과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역을 올려다보았다. 철길 위로 세워진 플랫폼에는 인간 대신 담쟁이덩굴이 가득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위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남아 있는 걸 확인했다.


힘겹게 남아있는 계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무도 오지 않을 역. 아득한 옛날에 이곳을 이용한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이 많던 그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기억을 뒤로 보내며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온톤 투명한 재질로 되어있는 플랫폼 2층은 세월과 먼지를 뒤집어 써 온통 칙칙하게 변해 있었다. 이제 나는 그 2층 통로를 지나 역사(驛舍)로 들어서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이때 어딘가 높은 곳에서 들린 소리에 시선이 옮겨졌다. 그리고 소리의 진원을 깨닫자 나는 입을 크게 벌릴 수밖에 없었다. 멀리 크레인에 다닥다닥 앉아 있던 새들이 일제히 비행을 시작한 것. 날아오른 거대한 무리의 새들은 나를 바라보듯 플랫폼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대단한데.”


그렇게 하늘을 날던 새들은 다시 크레인으로 날아갔다. 역과 바다 사이는 예전 항구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그렇게 항구에서 짐을 나르던 크레인은 지금 와서 새들의 거처가 되어 있었다. 한눈에도 녹이 잔뜩 슬고 거칠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그 주변에는 옮겨지지 못한 컨테이너들이 멈춘 시간처럼 땅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흐르는 시계는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거대한 무쇠 솥에 끓는 죽처럼. 그러나 그 속도는 결코 인간만큼 빠르지 않았다. 돌이 물에 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결과를 보여줬다. 지금까지 봐온 인간의 시간이 짧고 격렬하지만 허무했다면, 자연의 시간은 길고 부드러우며 은은했다. 물론 사라지는 입장의 인간이라면 그 둘의 차이점을 조용히 음미하는 건 힘들지도 몰랐다.


플랫폼을 지나 역사 2층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홀은 이곳을 이용했던 사람의 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좀 더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자욱이 쌓인 먼지가 발에 채여 눈처럼 휘날렸다. 이때 3층으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그냥 봐서는 보통의 계단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쌓인 먼지. 가라앉은 정적. 한때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그것은 이제 다른 구조물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녹아가고 있었다.


전면부의 벽은 플랫폼 지붕과 마찬가지로, 투명한 재질과 그것을 지지하는 격자무늬의 골조로 되어 있었다. 지면과 수직으로 서 있기에 플랫폼의 그것보다는 깨끗했다. 하지만 바람을 받는 구조이기도 해서 일부 파손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구멍을 통해 옅은 바람이 흘러들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역의 정적을 흔들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움직이는 존재는 나 하나뿐이었다. 순간 내가 이곳의 잠을 깨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귀찮은 듯 움직이지 않는 역은 내가 있듯 없든, 그저 깊은 잠을 계속할 뿐이었다.


결국 혼자 멋대로 불청객이라는 결론을 지은 난 역 밖으로 나갔다. 분명 역사에 담겨있는 인간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괜찮은 일이었지만, 역이 귀찮아하지 않을 정도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큭큭큭...”


가끔 이런 나의 제멋대로에 나 자신이 우스울 때가 있었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냥 이런저런 나만의 기준에 나를 맞춘다는 것. 어쩌면 내가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영원히 산다는 건 나로 하여금 인간이 아닌 자연에 가깝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플랫폼 반대쪽의 역에는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뭐에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는 몇몇의 철골 구조물과 물이 끊어진 분수만이 자리를 지켰다. 그것들을 보자 왠지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용히 방향을 틀어 광장을 벗어났다.


이제 역에서 완전히 나와 철길을 오른쪽에 두고 걷기 시작했다. 원래 철길과 일반 도로를 구분 짓는 담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였다. 그러다 따라가던 철로가 내륙으로 약간 꺾이자마자 나는 기찻길을 버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나섰다.


잠시 걷자 항구로 보이는 지역은 끝나고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작은 돌출부가 나타났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섬으로 갈 때 사용하는 길이다. 멀리 돌출부의 끝에는 성(城)과 비슷한 느낌의 아파트가 밀집대형으로 서 있었다. 주변부의 언덕과 비교해 한눈에도 높은, 인간의 탑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받으며 묵묵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 낮아진 바다 덕분에 파도의 영향을 덜 받아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무의 숲과 건물의 숲이 혼재한 언덕길을 지나 돌출부를 가로질러갔다. 그리고 바닥의 경사가 반대로 바뀌었다고 여긴 순간. 정면에 거대한 다리가 나타났다.


“밤에 올 걸 그랬나?”


거대한 현수교. 물론 지금은 진입로와 출구가 끊어져 홀로 서 있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밤이 되면 그 현란한 조명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왜 켜는지 알 수 없는 다리의 조명. 하지만 서울에서 내려올 때면 하루 종일 버스를 탄 나를 향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같은 시선에서 본 밤의 다리를 떠올렸다. 지금은 바다 위가 아닌 땅 위에 서 있는 다리. 그리고 최근에는 다리 밑을 걸어본 적이 있기에, 멀리 있어도 그 존재감은 확실했다. 그때의 감각이 머리를 통과하며 다시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갈 길이 멀기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의 씁쓸함에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부산에서 벗어날 거리가 되었다.




-------------------------------------------------------

안녕하세요. 간만에 돌아온 플나.입니다.


새로 쓰는 글의 진도는 지지부진하고, 글은 써야겠고, 결국 최근에 느낀 점 몇 가지를 모아 중편 정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뭐 찔끔찔끔 쓰는 거라 역시나 연재는 느리겠습니다만...


그리고 본편을 보지 않아도 되도록 쓰고 있어요. 주변부 설정 등은 간략히 다시 나올 예정입니다.




그럼. 항상 건강하시길.


From PlasmaKNight.(I.N)

Written By PlasmaKNight.(I.N)


이상, 제 4의 기사 플라즈마 나이트였습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3 00:39)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걸어갑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4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20) +12 08.05.02 1,116 2 9쪽
83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9) +17 08.05.01 622 2 11쪽
82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8) +7 08.01.20 754 2 10쪽
81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7) +9 07.12.25 777 3 10쪽
80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6) +11 07.11.17 761 2 11쪽
79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5) +7 07.11.11 653 2 14쪽
78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4) +8 07.11.03 744 2 13쪽
77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3) +5 07.10.27 707 2 13쪽
76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2) +8 07.10.24 718 2 11쪽
75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1) +11 07.10.22 817 2 13쪽
74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0) +15 07.08.28 796 2 13쪽
73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9) +6 07.08.17 872 2 12쪽
72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8) +5 07.08.13 662 2 12쪽
»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7) +6 07.08.11 807 2 12쪽
70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6) +7 07.06.03 913 2 12쪽
69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5) +3 07.06.03 821 2 11쪽
68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4) +4 07.06.03 860 2 15쪽
67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3) +3 07.05.20 876 2 15쪽
66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2) +5 07.05.17 930 4 17쪽
65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 +6 07.05.14 1,203 2 20쪽
64 나는 걸어갑니다 (에필로그) -完 +30 07.04.15 2,123 2 12쪽
63 나는 걸어갑니다 최종화 (4) +3 07.04.15 1,226 2 15쪽
62 나는 걸어갑니다 최종화 (3) +3 07.04.14 1,008 2 12쪽
61 나는 걸어갑니다 최종화 (2) +4 07.04.11 993 2 14쪽
60 나는 걸어갑니다 최종화 (1) +5 07.04.10 1,081 2 19쪽
59 나는 걸어갑니다 19화 (2) +4 07.04.06 1,067 2 26쪽
58 나는 걸어갑니다 19화 (1) +4 07.04.04 1,020 2 17쪽
57 나는 걸어갑니다 18화 (2) +6 07.04.02 1,023 2 12쪽
56 나는 걸어갑니다 18화 (1) +5 07.04.01 1,137 3 29쪽
55 나는 걸어갑니다 17화 (3) +6 07.03.30 1,044 2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