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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걸어갑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완결

플나
작품등록일 :
2008.05.02 17:23
최근연재일 :
2008.05.02 17:2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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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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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글자수 :
510,481

작성
08.05.0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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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20)

DUMMY

‘바라볼 인간이 사라지면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샤워기의 물을 틀면서 마음속의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옅은 웃음으로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머리위에서 쏟아진 뜨거운 물은 몸을 타고 욕실 바닥으로 흘렀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바라보았다. 흡사 눈물 같았다.


‘답은 나에게 없다. 오직 너에게 있을 뿐.’


물소리 가득한 와중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제가 그 답을 내야 합니까?!’

‘길었던 너의 도피기간동안 인간은 모든 걸 체념하고 의지를 놓아버렸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눈이 사라졌다는 것을. 무언가를 이야기할 상대가 사라졌다는 것을.’

‘...!!’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이 되어서 다시 생각했다. 너라는 나와, 나라는 너에게 자신들의 마지막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기로.’

‘궤변입니다! 그건!’


보이지 않는 목소리는 웃고 있었다.


‘혼자이면서 모두이고, 하나의 삶이면서 전체의 삶을 지닌 자여.’

‘그건 당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까?!’


먼 옛날. 그는 모든 삶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결국 나는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가 바라보고 기록한 모든 것을 베어 넘길 수 없었다.


‘넌 이미 되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전 단지 인간일 뿐입니다! 제게 인간의 감정이 있다고 가르쳐 준 건 당신이었습니다!’

‘인간이기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아직 모르느냐?’


분노할 수 없었던 삶. 기뻐할 수 없었던 삶. 인간이기에 가지는 감정이 사라졌던 삶. 인간으로서 살아가지 못했던 삶.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영생을 얻었다.


‘그래서 저를 영원히 고민하는 자로 만든 겁니까?!’

‘수많은 인간 중에 하나 정도는 필요하겠지.’

‘필요 때문입니까-?!’

‘아니. 너 스스로가 말하지 않았더냐? 누군가 한 사람은, 끝까지 인간을 믿어줘야 한다고.’


먼 옛날. 나는 인간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모든 삶을 지우려고 한 자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었다.


‘그 끝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을 꼭 끝이라고 생각하느냐?’

‘?!’

‘끝이 되고 그렇지 않고는 너의 손에 달렸다. 물론 인류의 멸망을 피한다는 얘기가 아냐. 어쩌면 그 끝 이후에, 너는 또 다른 세계의 신이 되겠지.’

‘......’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무아르!!’

‘외로움도 언젠가 끝날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의 삶이 끝나는 것처럼.’


누군가의 손길이 어깨 위로 느껴졌다. 그것은 강하고, 넓고, 부드러웠다.


‘사랑하는 아들아, 계속 나아가거라. 나는 너의 그 발걸음이 어딘가 의미 있는 곳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하염없는 눈물은 뜨거운 물에 섞여 그대로 흘러 내려갔다.


끼익 소리를 내며 샤워기의 물이 멈췄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외로움을 두려워하며 울어본 기억이 있었던가. 그는 피할 수 없는 이 외로움이 정녕 끝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하지만 그 뒤로 목소리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가르침이었다. 외로움조차 긴 걸음 속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답은 없지만, 영원히 고민하고 짊어지고 가야 하는.


믿었던 인간의 삶은 결국 변화 없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음은 전해질 거라고, 좀 더 나아질 거라고, 그렇게 믿었고 그 믿음을 위해 노력하고 행동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그의 말 대로 변화 없는 이러한 모습이 진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진실이지.’


결국 나는 그것을 인정하며 그저 바라보는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간을 믿고 있다. 막연한 의무감을 가지고서.





이후 하늘과의 접촉이 있은 이래 두 번째 카타클리즘이 일어난다. 인간의 본질을 그대로 지니고 변화 없이 긴 세월을 살아온 하늘이 마침내 붕괴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하늘의 ‘변화’조차 땅의 인간들을 바꾸지는 못했다. 땅은 착실히 얼음에 묻혀 사라져갔고 동시에 인간도 사라져갔다.


이런 과정은 현재도 계속되는 중이다. 조금 더 있으면 적도까지 완전히 묻힐 터.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닌 한 타인을 위해 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서는 중이다. 물론 당장 살 수 있다고 해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내 눈 앞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건 역시 볼 수 없기에.


“괜찮아? 조금 쉬었다 갈까?”

“현하님의 걸음속도는 여전하시군요.”

“이거 미안한데.”

“아뇨. 전 이렇게 당신이 끌어주는 것만 해도 행복하니까요.”


끝은 멀지 않았다. 외로움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중이다. 그만큼 나의 고민과 슬픔도 짙어진다. 하지만 오래 전 아버지의 말 대로, 나는 이 끝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시기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


영원한 고민과, 믿음과, 바라보았던 기억을 지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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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 올렸습니다... 다행히 회수는 면하게 되었군요.


일단 끝이라고 쓰긴 했는데요. 참 쓰고 나서도 맘에 들지 않는 부분입니다. 본편의 답습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이래 저래 기분이 개운하지는 않네요.ㅎㅎ 마지막 대화의 상대는 당연하게도 손정빈양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못했던 설정 이야기나 조금 해 볼게요.


사실 먼 옛날의 이야기(현하가 영생을 얻기까지의 이야기)는 본편에서 거의 나오질 않습니다. 살짝살짝 필요할 때만 나오는 정도죠. 카타클리즘 이야기도 있는데 뭔가 더해지면 혼란스러울 것 같아서 상당히 자제를 했거든요. 괜히 복선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구요.(사실 아닌데)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인간을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싸움이라고 할까요. 전자는 인간의 역사가 피로 점철되고 또 그것이 반복되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걸 믿는 사람이었고, 후자는 전쟁과 살육으로 가득찬 인간의 역사를 보았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갈 여지가 없기에, 인간 자체를 몰살시키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뭐 결과는 아시는 대로 입니다만... ^^;;


'존재가 없으면, 슬픔도 없다.'

'존재가 있기에, 슬퍼할 수도 있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정녕 기뻐하며 사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거냐?!'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7명만은 믿어 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난 그 7명 중 한명이기에, 이 슬픔의 고리를 끊으려 하는 것이다!'

'고리를 없애면서까지요?'

'그렇지. 존재 자체가 슬픔이고 거짓이라면, 있을 이유도 없을 테니까.'(본편의 누구랑 주장이 비슷하죠? ^^;;)

'전하... 전 당신을 막겠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혈기왕성한 시절의 현하입니다. 저도 요새는 상상이 잘 안가요)


(솔직히 이 내용으로 1000장을 넘게 썼는데... 어디 내 놓으려면 몽땅 고쳐야 되기 땜시 공개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현하가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편과 번외에도 내용이 제법 나옵니다.


칼 역시 그 옛날 얻은 거예요. 칼의 설정 역시 애당초 '존재라는 것에 묶여있는 물질'이라는 거라... 뭐 본편에서 '칼은 의지대로 움직인다'라는 부분이 나오죠.


현하가 혼잣말로 대화할 때 나오는 사람(?)은 그냥 부모에 가까운 존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현하에게 영생을 준 존재이기도 하죠.(요것도 쓰자니 설명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에 뭔가 쓸 필요가 생기면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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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주말 즈음해서 다음 번외편이 시작될 듯 싶습니다. 카타클리즘 직후부터 황철규 대장이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의 내용이 될 것 같아요. 인칭은 고민중이고... 내용이 정리되는 대로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죄송스럽게도 인류 멸망 이후를 묘사해볼 생각은 그다지 하고 있지 않아요. 이 부분은 그냥 여백으로 두고 싶다고 할까요? 사실 딱히 뭘 어떻게 써야 될지 감이 안오거든요.;;;




그럼. 항상 건강하시길.


From PlasmaKNight.(I.N)

Written By PlasmaKNight.(I.N)


이상, 제 4의 기사 플라즈마 나이트였습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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