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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걸어갑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완결

플나
작품등록일 :
2008.05.02 17:23
최근연재일 :
2008.05.02 17:2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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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17
추천수 :
265
글자수 :
510,481

작성
08.01.20 16:46
조회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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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8)

DUMMY

챙그렁 소리와 함께 사바소 소드가 땅으로 떨어졌다. 놀란 표정의 추신태는 한동안 비틀거리다가 모래가 되어버린 바닥에 양 손을 짚고 쓰러졌다.


‘휴.’


검이 관통한 구멍으로 푸른 사바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상처의 구멍을 다 메우고 이내 멈췄다. 추신태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 장면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암튼 끝났나.”

“이제 어떻게 할 거요?”

“승패의 처분을 말하는 건가?”


하긴 내 입으로 듀얼의 결과에 있어 목숨을 거론했으니... 그러나 승패를 따지기에 그 결과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 찰나의 생각. 그리고 추신태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무승부로 하면 어때?”

“?!”

“분명 일반적인 상대라면 결정적인 일격이 되었을 거야. 어쨌든 그건 분명하니까 자네의 승이라고 해놓고. 하지만 그것이 나이기에 통하지 않았으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나의 승리. 그렇게 본다면 무승부가 되지 않을까?”


사실 이런 제안(?)을 던지는 지금도 내 마음 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저 자존심 강하고 딱딱한 추신태가 거부하지는 않을까 하고. 만약 자신의 패배를 주장하며 목숨을 가져갈 것을 고집한다면, 그야말로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제발.’


죽인다. 죽이지 않는다. 분명 이 두 행위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이러한 선택은 너무나도 멀고 힘든 것이 되어 있었다. 단순히 오랫동안 하지 않았기에 익숙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지금 와서야 깨달았기 때문일까.


“......”


추신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이 길어진다는 건 나로서는 좋았다. 적어도 ‘목숨을 취해라’라는 말이 나올 확률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추신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좋소.”


내색하지는 못하고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승부에 대한 서로간의 합의가 끝났으니 듀얼도 끝이 났다. 그럼 슬슬 마무리를 지을 차례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수송기 한 대가 날아오더니 1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끝나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착륙한 뒤 트랩이 열리고 부중대장과 의료팀으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이 달려 나왔다. 가슴 쪽에 붕대를 감은 부중대장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카포...!!”

“이걸 아시나요?”


흔적만을 보고 기술을 알아낸 부중대장에게 내가 묻자, 그녀는 격양된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에 대해서는 연구를 많이 했죠.”

“그렇군요.”


하지만 끝에 덧붙인 말이 그녀의 마음을 짐작케 했다.


“행여나 이길 수 있을까 해서 말이죠.”


억양에서 묻어나는 일말의 아쉬움. 아마도 그녀는 조금이나마 중대장이 이기길 바랐을 것이다. 물론 부중대장 스스로가 말한 바와 같이 ‘전설’이라는 핸디캡은 결국 극복하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지만.


이때 부중대장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추신태가 나에게 다가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습니까?”

“듀얼을 원하는 거라면 사양이네만.”

“그냥 술이나 한 잔 하는 거라면 어떻습니까?”

“그거야 나쁘지 않지.”

“알겠습니다.”


이제 모래를 날리며 그들은 돌아갔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는 전투를 끝내고서. 내 주변으로 엉망이 된 주변을 보며 나는 쓰게 웃었지만, 이런 표정을 볼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 돌아간 안동 시내는 의외로 말끔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꽤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얼핏 봐서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공포에 떨던 사람들도 하나 둘 나와 다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하늘은 압도적인 힘을 가졌고, 또 가끔 거기에 휘둘리는 땅의 사람을 볼 때면 화가 났지만, 다친 사람 하나 없다는 결과는 여전히 그들이 룰에 충실한 - 그렇기에 더더욱 땅으로 내려올 리 없는 - 사람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다행히 내가 왔다간 것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며칠 더 머물면서 조금 더 멀리 가봐야지.





5화 : 머나먼 거리.


꽤 많은 일이 있었던 여행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하늘과의 얽힘은 긴장과 함께 내 힘을 쫙 빼놓았고, 돌아가는 길에 대한 걱정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래도 며칠 더 안동에 머무르는 동안 폭풍 같았던 사바소의 손맛(?)도 차츰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사흘 뒤가 되자 마음은 처음 올 때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왔던 길과 달리 돌아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역시나 루트는 해안을 통한 것이었지만, 비도 오지 않았고 익숙해진 풍경 역시 빠르게만 지나갔다. 어쩌면 빨리 돌아가길 바랐기에 그랬는지도 몰랐다.


이윽고 부산의 입구에 도착한 것은 출발 사흘째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어스름한 해와 서쪽에서부터 짙어지는 하늘의 색.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실루엣. 잘 정리되었지만, 누군가 불어버리면 쓰러질 것 같은 사각형의 박스들은 자줏빛 커튼을 뒤에 두고 변하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둠으로 향하는. 그러나 빛이 공존하는 이 시간대에 보는 도시의 풍경은 잠시 잊고 있었던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을 일깨워주었다. 그나마 시간을 맞추었다는 안도감에 미소 지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역사를 지나 오른쪽 길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저 멀리 낮은 산 끝에 서 있는 높은 탑이 이번에 들릴 곳이었다. 저런 탑은 큰 도시였다면 하나쯤은 있었다. 서울에도 하나가 있고(물론 대학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가끔 지나가다 하나 둘 본 적도 있었다. 아마도 랜드 마크로 삼기 위해 지었을 테지만, 지금은 방향과 거리를 가늠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표식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돌아갈까.’


최단거리로 가는 길이 아닌 조금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커다란 길을 따라 쭉 나아가길 20분여. 내 발걸음은 이미 좁은 거리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시가(市街)라고는 했지만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하지만 가로등은 이미 켜져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밝혀 나갔다. 운이 없는지는 몰라도, 가로등이 켜지는 장면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뒤늦은 등 몇 개가 깜빡이는 것을 본 기억뿐.


세 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든 좁은 거리를 나 홀로 걷는다. 가로등의 인공광과 떨어지는 해의 자연광은 거의 같은 비율로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서로가 인사를 하며 역할을 교대하는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벽의 색 역시 차분히 가라앉고 있었다. 붉게 상기되었던 건물의 첨단(尖端)은 서서히 눈을 감듯 푸른빛으로 바뀌어 나갔다.


빛바랜 거리.

구불구불한 거리는 제법 길게 이어지며 자신이 직선임을 증명하려 든다. 그러나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앞의 형태는, 결국 인간의 선긋기가 실패했음을 말하는 것 같다. 목을 구부려 가려진 앞을 바라보고 벽에 손을 기대어 방향을 바꾼다.


포석 위로 쌓인 흙먼지가 발길에 채여 흐트러졌다. 어느 순간부터 멈추어버린 인간의 손길은, 그 뒤를 그저 지나가는 시간에만 맡겨놓았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손에서 멀어진 거리는 창조주의 속박에서 벗어나 바람처럼 날아갔다.


분명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한 저 가로등의 빛 아래에서, 이제 거리는 인간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렸다. 나는 세월과 세월이 가져다준 결과를 바라보며 쓸쓸함에 마음을 맡겼다.


좁은 거리 중간 중간 보이는 차 없는 주차구획. 더 이상 석유 타는 냄새를 내뿜지 않는 검은 연통. 수거해가지 않는 쓰레기통.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붉게 녹슬어버린 철문. 작은 화분에서 시작되어, 지붕 저쪽까지 올라간 담쟁이덩굴.


내가 과연 노래를 알았다면. 이런 풍경을 향해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인간이 만들고 버린 빛바래고 멀어진 거리는 과연 어떤 음을 지녔을까.


저쪽 굽이친 골목을 돌아서면 사람이 나올 것 같은데. 문 안쪽으로 가족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데. 언젠가 그것을 느꼈고 기억한 적이 있기에, 이러한 풍광의 차이는 내 가슴을 살며시 쥐고 놓질 않았다. 조금은 답답하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있는 감정. 눈물이 스며 나올 것 같은 아스라함에 눈을 감아보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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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거리를 걷다가 보면 일순 인적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인데 말이죠.


그때 받은 감정을 떠올리며 써봤습니다. 인간의 흔적이 가득한 곳에서 인간을 찾을 수 없다는 괴리감은 묘한 것 같아요.





늦은 것도 죄송한데 짧은 것도 죄송하네요;;;


오전 학원 오후 알바... 변명인 줄 알지만 바쁘긴 바빠서요.ㅡㅜ;





그럼. 항상 건강하시길.


From PlasmaKNight.(I.N)

Written By PlasmaKNight.(I.N)


이상, 제 4의 기사 플라즈마 나이트였습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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