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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걸어갑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완결

플나
작품등록일 :
2008.05.02 17:23
최근연재일 :
2008.05.02 17:2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113,811
추천수 :
265
글자수 :
510,481

작성
07.10.24 13:19
조회
717
추천
2
글자
11쪽

나는 걸어갑니다 -번외 (12)

DUMMY

‘배가 고픈가?’


나는 반 쯤 먹은 사과를 내려놓고 멀쩡한 사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몇 번 손에 튕긴 다음, 뒤돌아보지 않고 상대방을 향해 날렸다.


‘옛다!’


쏜살같이 날아간 사과가 찰싹 소리를 내며 뭔가에 부딪혔다. 소리로 봐서는 분명 손으로 잡은 것일 터. 여기까지 확인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뒤로 돌아섰다.


“누군지 얼굴이나 봅시다.”


그러자 사과를 받은 남자 - 준수한 용모의 청년 - 가 덤불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제법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챙기고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소.”

“누구를 찾는데 이런 곳에 있습니까?”

“얼굴은 잘 모르오. 이름만 알고 있소.”

“이름이 뭔데요? 알면 제가 도와드리죠.”

“[김현하]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오.”

“......”


놀라긴 했지만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하늘에 이름도 얼굴도 다시 팔렸으니까. 그런데 공격적인 임무라면 혼자 찾아올(것도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필요는 없을 텐데. 자못 목적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딱히 찾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전 그 사람과 싸워야 하오.”


골고루 하는군. 싸워야 된다고? 무덤을 찾으러 온 건 아닐 것이고.


“설마 그 사람을 알고 있소?”

“아뇨. 그냥 특별한 목적이 있나 해서 물어본 겁니다.”

“원래는 부산에 사는 사람인데, 며칠 전 북쪽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곳을 들릴 거라고 예상했소. 그래서 온 거요.”

“마냥 북쪽이라고 해서 여기가 아닐 수 있을 텐데...”

“내 감각이 이곳으로 날 향하게 만들었소. 하늘에 있어 내 상대가 없어진 지금, 내게 남은 상대로서 어울리는 자는 그 사람밖에 없소. 어느 정도의 강함을 지녔기에 그토록 대단한 일을 했고, 또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지. 물론 나이가 들었기에 젊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난 분명히 그와 싸워야 하오.”


이 말을 들은 나는 도대체 정보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있는지 생각해 봤다. 내부 정보 교환도 이 정도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고, 적어도 얼마 전 얼굴을 비친 스카이피아(하늘의 양 세력 중 하나)라면 내가 예전 그 모습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이 사람은...


“천우회에서 왔습니까?”

“그렇소.”


역시나.


“그래서 나는 그를 꺾고, 지구 최강의 인간으로 남을 것이오.”

“......”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사바소에 힘이 들어가오. 자료에서만 봐왔던 그의 강력함과 내 힘이 부딪힐 생각을 하면 흥분에 온 몸이 떨리오.”


솔직히 이런 형태로 날 찾아올 사람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적어도 듀얼(Dual)에 관해서는 카타클리즘 때부터 나름 공평했으니까. 그렇기에 하늘에서 전사(戰士)로서의 위명을 걸고 싸움을 하러 내려온 사람도 여럿 있었다. 다만 이 경우 상대의 목숨을 남기는 일은 절대 없었다.


“배고픈 것 같은데 일단은 그거 먹어요.”

“아, 고맙소. 그런데 이름이 뭐요? 난 [추신태]라고 하오.”


불쑥 손을 내미는데 약간 움찔 했다. 보통 가명 따위는 생각해놓지 않으니까. 더구나 왼손으로 악수하자는 건 또 뭐야.


“박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성 바꾸고 이름 한 자 떼고. 다만 손을 쥔 순간 녀석이 강하다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깨달았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사바소의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온 것이다. 다만 상대는 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를 것이다. 힘을 감추는 데에는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우적우적 사과를 먹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는 진지한 얘기를 혼자서 주절주절 -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 할 수 있다는 건, 나름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여하튼 간에 마을의 탐색조가 찾고 있는 사람은 이 추신태란 녀석이 분명했다. 귀찮아지기 전에 대충 위치 알려주고 끌고 가게 해야지.


‘이런 놈에게 방해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벌려 놓았던 걸 다시 싸고 가방을 둘러메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사과 잘 먹었소.”


왠지 순순히 보내주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봐서는 부탁 하나 더 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빨리빨리 마을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진짜’ 곤란한 상황은 이때 펼쳐졌다.


“중대장님-!”


어디선가 들려온 커다란 목소리. 감각에 걸쳐진 거리는 제법 멀었지만, 그‘들’은 빠른 속력으로 날 향해 - 정확히는 조금 떨어진 추신태 - 달려왔다. 잠시 뒤 나무를 박차는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이 바위 위에 착지했다. 여관에서 본 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중 선임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추신태를 한 번씩 본 후에 말했다.


“이러시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땅의 사람에게 강취(强取)라뇨!”

“뭐라고-?!”

“어떤 협박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는 없던 일로 해드리겠습니다!!”

“아냐, 이건...!!”


손에 든 사과와 날 번갈아 보던 추신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표정으로 봐서는 내게 뭔가 요구하는 모양이었지만, 굳이 결백을 증명해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느긋하게 구경이나 해 볼까.


“그러니까... 이건, 그...!!”


내가 말이 없자 녀석의 당황함은 더욱 커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추신태는 놀랍게도 칼을 - 사바소 소드 - 빼들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쇠막대의 끝에서 흑색의 검날이 번쩍이며 튀어 올랐다. 동시에 대치하던 둘 역시 칼을 빼들었다. 이로써 흑색 검 하나를 앞에 두고 적색 검 두 개가 맞붙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젠장-! 어쨌든 간에 난 돌아갈 수 없어!! 김현하와 싸우기 전 까지는-!”

“중대장님... 정녕 곱게 돌아가실 수는 없는 겁니까?!”

“데리고 가려면 날 쓰러트려!”


오우. 분위기 좋고. 싸움을 조장했다는 느낌이 조금은 들었지만 미안하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셋 다 상당한 실력자인데다가 1:2니 결과는 이변이 없는 한 추적조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다. 더구나 추신태는 절벽을 등지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의외로 대치상황은 오래 갔고, 그걸 깨트린 사람은 놀랍게도 추신태였다.


부드럽게 전환되는 공격자세. 이어지는 빠른 접근. 땅과 허공을 향해 퍼지는 전격(電激)과 흑색 사바소의 검광. 거리가 있는 두 명을 상대로 했음에도, 놀라운 속도는 적색 검 두 개를 동시에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우와~’


저 정도면 자신만만해 하던 이유는 되겠구먼.

그렇게 1초도 되지 않아 전투는 끝났다. 추신태는 손목을 잡고 움츠린 적을 보고 칼을 접어 넣었다. 무기가 사라져버린 추적조의 두 사람은 낭패감에 이빨을 깨물었고, 그는 여유 있게 둘 사이를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주... 중대장님!”

“부중대장에게 전해! 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산을 내려올 때는 풀죽은 두 명과 함께였다. 뭔가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하겠지만, 일단은 하늘과 상관없는 땅의 사람 행세를 하고 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 역시 딱히 상황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관으로 돌아와서 본 건 소문의 ‘부중대장’이었다. 누가 설명해준 건 아니고, 여관 카운터에서 돌아온 추적조를 보고 다짜고짜 달려들어 호되게 꾸짖을 사람이 부중대장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내가 기다리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부중대장님.”

“아무튼 내가 죽겠어 진짜!”


놀라운 건, 이 부중대장이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하늘의 여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것도 아주 아리따운. 검은 단발머리에 귀여운 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한참을 흥분하여 소리치다가 시선을 돌려 날 바라보았다.


“당신이 중대장님에게 강취 당했다는 땅의 사람인가요?”

“아뇨.”

“네?”

“강취당한 건 아니라는 거죠. 배고파 보여서 제가 사과를 준 건 맞습니다만.”

“......”

“변상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미리 할 말을 다 해버리자 부중대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안도하는 표정도 스쳐 지나갔다.


“알겠어요. 그 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네. 뭐 그다지. 그래도 말은 많이 하더군요.”

“땅에 온 이유도 설명하시던가요?”

“네.”


들었다는 내 말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차라리 그 사람을 찾아서 싸웠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승패에 관계없이 돌아갈 테니까요.”

“실력이 대단한가보죠?”

“사실 천우회 내에서 상대가 없는 건 확실하긴 한데... 제가 보기에 김현하란 사람과 맞대결은 어려울 거라고 봐요.”

“왜요?”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사람이 전설과 부딪히려면 실력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니까요. 그 사람에 대해 남은 자료를 보면... 아마 적으로 만났을 때 공포를 극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핸디캡이 될 걸요.”


말미에 쓴웃음이 묻어났다. 그걸 들은 난 내 위명이 남아 있다는 것에 자랑스럽다기 보다는, 여전히 하늘이 공포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싸움을 지속하기 위해서,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서 상대방에 대한 공포를 지녀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언제까지 이러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걸까.


“참. 이름이 뭐예요? 난 선우설란이라고 해요.”

“박현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고(이번에는 오른손이었다) 나 역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문득 카타클리즘 마지막에 했던 하늘 양 세력의 수장들과 했던 악수가 생각났다. 단순히 이름을 교환하고 악수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왜 그들은 이걸 거부하며 살아가는 걸까. 만약 눈앞의 사람이 내가 김현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칼을 꺼내어 싸우려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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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산실인데 너무 덥네요. 감기 조심하시길.




그럼. 항상 건강하시길.


From PlasmaKNight.(I.N)

Written By PlasmaKNight.(I.N)


이상, 제 4의 기사 플라즈마 나이트였습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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