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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걸어갑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라이트노벨

완결

플나
작품등록일 :
2008.05.02 17:23
최근연재일 :
2008.05.02 17:2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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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13
추천수 :
265
글자수 :
510,481

작성
07.02.26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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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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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0쪽

나는 걸어갑니다 1화 (1)

DUMMY

=나는 걸어갑니다=


몇 번의 똑같은 계절이 지나갔을까요.


지금에 와서는 셀 수도 없지만, 그것이 백 단위를 넘어간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수천 번이 지나갔을 겁니다.


물론 정확한 건 아니랍니다.


그동안 바라보았던 많은 삶들 속에서 저는 다시 눈을 떴습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느껴온 햇빛이었건만, 그것은 새롭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눈꺼풀 위의 강한 빛을 손으로 덜며 생각합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고. 어떻게 살아갔으며.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저에게 있어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 고리.”


그가 그렇게 바라던 고리의 끝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결국 영원할 것 같았던 흘러감도 끝은 존재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제가 살아가면서 볼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마치 조용한 달빛과도 같은 시간의 노을 속에서.


마지막 고리의 끝에서.


모두의 여행이 끝난 지금 여기에서.


나의 여행이 이제 시작됩니다.





1화 : 영원의 존재.


“부산 한 장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여유 있는 목소리와 함께 작은 종이 하나가 손에 잡혔다. 나는 그 위에 ‘서울-부산 편도 450km’이라고 적힌 글씨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지갑을 꺼내서 안에 넣었다. 반으로 접게 되어 있는 지갑의 표면에는 잔 상처가 가득했다. 이때 건물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확성기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1시 30분 서울 발 부산 행 버스에 승차할 손님은 지금 4번 출구로 나와 주십시오...


“당연하지.”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4번 출구’라고 적힌 문을 향해서 움직였다. 지갑의 상처는 나에게 있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확실히 난 물건을 험하게 다루는 편이기에, 손에 쭉 있는 지갑이 지저분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출구 밖으로 나온 난 눈앞의 버스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25인승 정도의 중간 크기의 버스는 여전히 석유의 힘으로 움직였다. 덜덜덜 소리와 함께 버스 뒤쪽에서는 검회색의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읏챠.”


트랩에 발을 올리면서 문득 날씨를 느꼈다. 착 보기에도 좋은 날씨는 부드럽게 가라앉은 상태였다. 맑은 가을 하늘은 푸른 구름을 담고 쭉 뻗어 있었고,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도 꽤 상쾌했다. 인간에 의해서 고통 받던 대기가 지금 그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처럼.

난 버스 가운데 복도를 지나 좋아하는 뒷좌석을 -정해진 좌석은 없다- 골라 앉았다. 이때 기사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표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네. 여기 있습니다.”


남자는 내가 건네준 표를 한번 쓱 보고는 다시 돌려줬다. 어차피 의례적인 절차임은 서로가 알고 있었다. 이제 운전석으로 움직이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내가 질문을 던졌다.


“손님은 제가 전부인가요?”

“예.”

“호오. 확실히 많이 줄었네요.”

“그렇죠. 뭐 이제 여행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가요...”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차가 뒷걸음질 쳤다. 난 최대한 편안히 자세를 잡은 후 차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차는 몇 번의 코너를 돌다가 직선주로로 들어선 듯, 안정을 찾았다.


기사 아저씨께는 죄송하지만 지금부터 이 차에는 5시간 정도의 침묵이 감돌 것이다. 난 잘 모르는 남과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열정도 없었을 뿐더러, 혼자서 생각하는 걸 즐겼기 때문이다.


창틀에 손을 올리고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듬성듬성 서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러나 수십 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들의 땅은 묻히고 있었다. 대도시였던 서울조차 그 화려했던 과거만을 남기고 있을 정도로. 지금 향하는 부산 역시 지금은 ‘해넘이의 도시’라고 불리고 있었다.


지는 해가 남기는 마지막 하늘. 노을.


넓은 뒷좌석에서 몸을 눕히고 상체를 창에 기댔다. 이래선 등이 아픈데다가 밖이 보이지 않겠지만, 이럴 경우를 대비해 항상 베개를 가지고 다녔다. 그렇게 베개를 이용해서 대충 자세를 잡은 나는 가방에서 작은 랩 탑 컴퓨터를 꺼냈다. 까맣고 광택을 띤 작은 책 크기의 물건이다. 왜 내가 아직까지 이것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잘 몰랐다. 그러나 이 작은 컴퓨터로 뭔가를 하고 있기에 아직은 필요했다. 새삼 하나의 물건에 집착하는 모습에 작게 웃었다.


어쨌든 파워를 올리자 디스플레이 패널에 로그인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현하(金賢河)님.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암호를 넣으려던 난 순간 손을 멈추고 말았다. 왠지 다르게 다가오는 시간과 화면들.


‘김현하... 라.’


내 이름.


언제부터 이런 이름을 가지고 남에게 불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내 이름은 확실히 이것이었다.


현명한 강이란 뜻의 현하. 아마 제법 오래되었을 터.


‘......’


약간의 어지러운 생각 뒤에 암호를 넣고 로그인을 했다. 확실히 지금에 와서 이런 컴퓨터가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난 손보다 자판이 빠르기에 이걸 가지고 다녔다.


이미 화면은 글을 쓰기 위한 준비가 된 상태였다. 하얀색 바탕 위에 깜빡이는 커서. 난 화살표 키를 움직여 문서의 앞과 뒤를 살펴보았고, 다시금 그 문서의 내용에 빠져 들어갔다. 어쩌면 과거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을 적는 것이지만... 왠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관둘까나.’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적은 마당에 빨리 써야하는 유인은 없었다. 결국 난 랩 탑의 뚜껑을 덮고 말았다. 딸깍 소리와 함께 절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검은색의 판은 이제 가방 안으로 돌아갔다.


“하아.”


짧은 한숨 뒤에 난 버스의 창문을 살짝 열었다. 다시 하늘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포장된 도로와 그렇지 않은 도로를 번갈아 달리는 버스의 움직임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상했다. 원래 이런 비포장도로는 거의 없었는데? 경부선 관리는 나름대로 잘 되고 있을 텐데...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기사 아저씨가 설명에 나섰다. 뒤쪽의 나를 배려하듯이 소리를 높여서.


“얼마 전에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중이에요.”

“아.”

“그것들은 싸우려면 곱게 싸우지 도로를 날려버릴 건 또 뭐랍니까.”

“하하하...”


거의 한시간만에 이루어진 대화는 다시 나의 웃음과 함께 멈추고 말았다. 어차피 기사 아저씨도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고, 나도 더 이상의 대화를 바란 건 아니었기에.


잠시 뒤 버스는 다시 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이 딴 데 가 있는 사이에 그랬는지 난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뭐 생각해보면 흔들림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다.


‘구름이다.’


가을의 구름은 푸른 하늘과 더더욱 비교되었다. 여름과 가을이 극히 짧아진 지금 시원한 구름을 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구름을 보고 온도를 구분하는 건 내 주변에 흐르는 공기의 역할이겠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의 감각과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의 삼박자는 확실히 시원함을 가져왔다.


‘이제 곧 가을인가.’


아마 한 달 후에는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이제 9월에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후년 4월 초에 끝난다는 것 또한.


지금은 8월 초.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막힌 한 달이다.


또한 저 구름의 수명도 이번 한 달이겠지.


버스는 어느덧 노을을 등지고 달리고 있었다. 동남쪽을 향한 버스의 움직임은 자연 해를 오른쪽 뒤로 넘겼고, 해는 땅에 가까워질수록 그 붉은색을 넓게 흩뿌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측면의 창이 아닌 버스 뒤쪽의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바뀐 자세로는 하늘과 땅을 오래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서서히 깎여 나가는 산과 대지 위로 지나가는 어스름한 바람. 그리고 낮은 산과 산 사이로 부드러운 모닥불을 지피는 태양. 그 태양빛의 길을 하늘에 그리며 얼굴을 홍조로 물들인 구름.


아래로 보이는 도로는 황금의 길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천천히 흔들리는 버스의 창은 이런 풍경들을 묘하게 뒤틀어 놓는다. 마치 자연을 재해석했던 인간의 모습처럼.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고리를 향하는 인간의 모습처럼...


눈을 감는다.


갑자기 뚜렷하게 형체를 띄고 다가오던 풍경들이 사라진다... 아니다, 사라진 게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가 되어 다가오고 있다. 산과, 바람과, 태양빛과, 구름과 땅은 하나가 되어 다가오고 있다. 나는 그저, 그저... 그걸 분간하는 인간의 눈을 닫았을 뿐이다.


다시 눈을 떴다.

해는 거의 땅에 모습을 감추기 직전이었다.

버스 역시 종착지를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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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읽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 내용을 수정본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편 수를 맞출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버전과 비교하면 차이가 제법 나서요.(물론 기본 스토리나 그런 것 등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추가적인 디테일이라던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설명 등이 추가/수정 되었습니다)




그럼. 항상 건강하시길.


From PlasmaKNight.(I.N)

Written By PlasmaKNight.(I.N)


이상, 제 4의 기사 플라즈마 나이트였습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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