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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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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나
작품등록일 :
2008.05.02 17:23
최근연재일 :
2008.05.02 17:2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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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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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글자수 :
510,481

작성
07.04.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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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나는 걸어갑니다 18화 (2)

DUMMY

다음날. 저녁이 다 된 시간.

한적한 시간이 집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나는 창가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중이었다. 여전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예의 그 책이다. 정빈이와 나린이는 휘미래와 함께 이야기를 했고, 황철규 대장은 부엌 근처의 바(bar)에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아마 작전 준비인 듯)


비는 어제부터 계속 내리는 중이었다. 어제보다야 좀 잦아들긴 했지만, 여전히 활동을 제약할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들어 창 밖을 보았다. 간혹 천둥을 동반한 번개가 시선을 잡아끌곤 했다. 방금도 번개가 내려쳤으니... 곧 천둥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


헌데 들려온 건 천둥소리가 아니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비 오는 날 올 사람도 없을 텐데.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닌 듯,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때 정빈이가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정빈씨, 접니다!”

“해경정 중위에요?!”

“네-! 문 좀 열어줘요!”


해경정 중위? 계급이 딸린 걸 보니 하늘의 사람인 모양이군.


“정빈아. 누구냐?”

“아... 고지(告知) 문제로 내려온 천우회의 장교에요.”

“천우회?”


난 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반문하며 시선을 황철규 대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정빈이에게 문을 열어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데 고지? 아. 앞바다에 모함 떨어진 것 때문이군.


“후아-!”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비옷 입은 남자 하나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현관에 서서 비옷을 벗고 질린 듯 밖을 바라보았다.


“걸어오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엄청 쏟아지는군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제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에 함대장님께서 일을 벌이셨더군요.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아마 오해하실 것 같아서... 응?!”


정빈이 앞에서 정신없이 말을 주워 삼키던 해경정 중위와 내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말을 끊고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당신, 설마...?!”

“뭡니까. 초면에.”


내가 기다렸다는 듯 쏘자 중위는 움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뒤따라온 정빈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분명 함대장님이 김현하 준장이 있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는데요?!”

“그게...”


정빈이는 멋쩍은 듯 웃기만 했고, 중위는 반대편의 황철규 대장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스카이피아의 참모총장님이 계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어쨌든 전 사과드리러 온 겁니다.”

“사과를요?”

“네. 일단 연유를 떠나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건 제 책임이니까요.”

“음... 솔직히 저희도 묻고 싶었어요. 사실 경정씨가 얘기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건 아닙니다. 그놈들, 여기가 스카이피아의 땅일 때부터 있던 녀석들이에요.”

“차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차를 가지고 온 나린이가 합석하면서 저쪽 테이블에는 세 명의 사람이 앉게 되었다. 휘미래는 딱히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는지 황철규 대장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야 계속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으니


“그런데 예전부터 있었다고요?”

“네. 소속이 달라서 자세한 건 저도 모르지만... 한동안 이 곳을 감시해왔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섬 동쪽에 은신처 비슷한 곳이 있었어요. 언니, 기억하지? 그때 이랑이 생일날 폐가에 들어갔던 적 있잖아.”

“응. 그럼 그게?”

“남아있는 사바소가 희미하긴 했었는데... 역시 거기였어. 아무튼 놈들이 은신하면서 정보를 얻었단 말이죠?”

“네. 그러다가 김현하 준장님과의 관계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맹세코, 제가 말한 건 아니에요.”


믿어달라는 해경정 중위의 말에 정빈이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내가, 사바소니언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렇죠? 게다가 전 김현하 준장님이 이곳과 관련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요.”


슬슬 대화가 정리되어가는 모양이었다. 다들 납득하면서 해경정 중위를 믿는 분위기였다. 그 역시 이런 분위기에 안도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딱히 사과하실 건 없는데요. 잘못한 게 없잖아요.”

“그래도 제가 땅에 내려와 있는데 저희 함대와 관련된 일은 제가 책임을 져야 되니까요.”

“괜찮아요. 어차피 큰일은 없었으니까...”

“휴. 감사합니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걸 보고 중위가 돌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해경정 중위는 나에게 다가왔고, 의자를 하나 당겨서 앞에 앉았다.


“김현하 준장님?”


나는 말없이 책 너머로 그를 살짝 바라봤다. 솔직히 처음부터 조금 마음에 안 들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들이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까는 제가 좀 무례했습니다. 그럼 제 소개를 드려도 될까요?”

“... 그러시죠.”

“전 천우회 9함대 대지상정보분석장교 중위 해경정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한 중위는 호기 있게 손을 쓱 내밀었다. 나는 약간 시간을 두고 손을 잡았다.


“카탈리스트 우주작전사령관, 준장 김현하요. 나도 반갑소.”

“그런데 정말 살아계셨군요. 실종되셨다고 들었는데...”

“뭐 이런 저런 사정이 있었으니까요.”

“헌데 500년 전과 똑같이 생기셨습니다. 자료랑 다르신 게 없군요.”

“뭐 이런 저런 사정이 있으니까요.”

“하하하.”


나름 노골적으로 대답을 피하자 해경정 중위는 크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먼저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답변 해 드리죠.”

“아직 카타클리즘이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놈 봐라.

어떻게 나에 대해 알던 놈들이 나를 만나면 묻는 게 하나같이 이 질문이지?(라고 해봤자 태림이와 중위가 전부이긴 했다)

어쨌든 내가 대답 없이 표정을 굳히자 정빈이가 급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분위기가 험악해질까봐 나와 중위 사이에서 전전긍긍했지만, 난 손을 들어 그럴 의도가 아님을 밝혔다.


“정빈아, 괜찮아. 기분 나쁜 거 아니니까. 간만에 듣는 질문이라 어리둥절해서 그래.”

“그럼 답변해 주시는 겁니까?”

“글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도망치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호오. 나는 중위에게서 의외의 말을 듣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기분이 상했다기 보다는 하늘의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분명 카타클리즘의 결과에 대해 나를 평할 때, ‘도망’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오직 땅 뿐이니까.


“자네, 나름대로 공부 많이 했군. 하늘의 사람이 카타클리즘을 놓고 도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바로 앞뒤 말 다 자르고 씨익 웃어 보였다. 중위는 바뀐 내 말투에 약간 당황하다가, 역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정도는 해야지 대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제가 만약 땅으로 온다면, 협상에 임해주실 수 있습니까?”


질문과 대답에 인터벌이 거의 없는 걸로 봐서는, 작정하고 온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녀석이 나를 본 건 지금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생각해 보면 오래 전부터 이런 상황을 상상해왔다는 말이 된다.


“글쎄. 나린이 때야 사정이 있었지만, 내가 자네를 구한 것도 아니잖나?”

“분명 그렇긴 합니다만... 잠깐, 강나린씨도 하늘의 사람이었습니까?!”


휘둥글 놀라는 중위를 보자 순간 아차 싶었다. 이러다가 불똥이라도 튀면 곤란할 텐데.


“그럼 손정빈양도 준장님이?”

“그건 아냐. 뭐 내가 데리고 있었긴 했지만. 그녀가 내려온 건 스스로의 의지였지.”

“...!!”


갑자기 나린이 이름이 나왔을 때보다 표정이 더 굳었다. 이거 내가 뭐 말을 잘못했나? 나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해경정 중위에게 물었다.


“왜 그러나?”


그러나 그는 대답도 없이 여전히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혼자서 결론을 냈는지 고개를 위 아래로 느리게 흔들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


해경정 중위는 그늘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돌아간다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자세를 보면 금방 돌아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해경정 중위는 아무 말도 없이 비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의 전송도 무시한 채로.


“쟤 왜 저래?”


그런데 의외로 좇아 나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정빈이었다. 그녀는 비옷도 입지 않은 채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러다 감기 걸릴 텐데. 잠시 뒤 문밖에서는 두 사람이 뭔가 얘기하는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거친 빗소리에 가려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굳이 들어야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작아서 대화를 한다는 것만 알았다. 그러다 점차 소리가 커져가면서 상당히 격앙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한 빗소리는 그 대화조차 묻어버릴 정도로 강했다.


‘싸우나?’


흘러 들어오는 분위기만 봐서는 싸운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 쪽 다 강한 어조로 자신의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조금 시간이 더 지나고 이러한 대화가 절정에 다다른 듯, 갑자기 말소리가 뚝 끊어졌다.


동시에 쾅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에 흠뻑 젖은 정빈이가 비틀거리듯 집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나린이가 놀란 듯 정빈이에게 다가갔다. 분명 비를 많이 맞은 정빈이가 걱정될 만도 하...

그런데 왜 또 울고 있는 거야.


“정빈아.”

“언니, 언니...”


그녀는 나린이 품에 안겨서 정신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슬쩍 창을 통해 밖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해경정 중위가 빗줄기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가자. 옷 갈아입고 쉬어.”


나린이가 정빈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아주, 아주 서럽게 울면서 나린이의 손에 이끌려 계단을 탔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었기에 저러는 걸까.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가장 알지 못했던 건 사람의 마음이었다. 500년 전에도, 이오타의 마음을 확인한 건 그녀가 죽기 직전에서였다. 만약 그걸 조금이라도 앞서 알았다면... 단 일초라도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무리해서 사람의 마음을 알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마음은 언젠가 전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걸 보완할 무언가가 나타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간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바뀌지 못했다. 오히려 바꾸어 말하면 바뀌지 않는 것이 본질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인간의 본질이겠지.


다시 책을 폈다. 나는 몸속에 살고 있는 이무아라이트를 느끼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화 : 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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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항상 건강하시길.


From PlasmaKNight.(I.N)

Written By PlasmaKNight.(I.N)


이상, 제 4의 기사 플라즈마 나이트였습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0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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