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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얼굴 님의 서재입니다.

호위무사 추월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로맨스

완결

창백한얼굴
작품등록일 :
2022.03.24 16:00
최근연재일 :
2022.05.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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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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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호위무사 추월 제46화

무협소설보다는, '소설무협'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수사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무협이라는 장르를 가진 소설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을 담은 표현입니다.




DUMMY

[호위무사 추월] 제46화 (제10장) 천라지망


사뭇 과감한 추월의 발언에 월후는 눈이 둥그레졌다. 추월은 처녀로서는 하기 힘든 말을 던지듯 해놓고 종종걸음으로 그를 지나쳐 앞서갔다.


그녀는 여전히 청초하고 순결한 말리꽃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미 당당한 강호의 여걸이었던 것이다.


“뭔 재미난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뒤늦게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타노의 팔을 잡아끌며 추월이 삼매진화를 일으키려면요, 하고 교육하기 시작했다.


길은 외줄기로 끝없이 이어졌다. 얼마 전 정자에서 내려다보았던 강이 세 사람 옆에 성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강나루 근처에는 풍막을 치고 손님을 받는 간이 주막도 보였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朴木月)의 시(詩) 『나그네』를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풍광(風光)이었다.


“회가 동하는 걸 보니 어디 주막이 가까이 있나 봅니다.”


슬쩍 곁눈으로 주막을 보았으면서도 타노가 짐짓 눙치고 들었다.


회(蛔)는 회충을 말했고, 동(動)하다는 움직인다는 뜻이니, 뱃속에서 회충이 꿈틀거린다는 말이었고, 이는 곧 구미가 당겨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라는 말이었다.


염천(炎天)에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놀잇배를 얻어 탔다가 폭발하는 기습을 당했다는 꺼림칙한 기억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냥 주막에 잠시 들러는 거니까. 셋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럼 잠시 목만 좀 축이도록 하지.”


월후가 결정하자 모두 날개라도 단 듯이 주막으로 갔다. 막 장돌뱅이 차림의 남정네가 일어서 나간 긴 나무 의자에 셋이 나란히 걸터 앉았다.


“주모, 술 한 동이부터 내어 오시오.”


자리에 앉자마자 타노는 주모부터 찾았다. 예 – 하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뒤이어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온 주모는 의외로 새파랗게 젊은 각시였다.


젊은 각시는 행주로 탁자를 몇 번 훔치고는 술동이를 내려놓고 갔다. 셋은 서로 마주 보았고, 타노는 철죽을 뽑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산골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미색이었다.


무심코 술을 따라 마시려는 월후를 제지하고 추월이 은침을 꺼내 술동이에 집어넣었다가 뺐다.


아무런 색 변화가 없었다. 추월은 월후의 잔을 들어 먼저 반 모금쯤 입에 머금었다가 넘기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도 쉽사리 술잔에 손이 가지 않았다. 무형지독 같은 것은 무색무취가 아닌가? 타노가 젊은 각시를 불러 이것저것 캐물었으나 그녀는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덮어놓고 마시자니 켕기고, 안 마시자니 좀스럽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야야, 인제 집에 들어가거라.”


머리에 인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쭈글쭈글하게 늙은 노파가 젊은 각시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는 아이고 무신 날씨가 이리 더운지 얼룩소 불알이 다 떨어지겠네, 어쩌고 하며 혼자 씨불거렸다.


불알은 남자나 동물 수컷의 정자를 만들어내는 음낭(陰囊)을 말했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열을 발산시키기 위해 소 불알이 축 늘어져 끊어질 듯 가늘어지는데 이를 빗댄 말이었다.


“임자가 주모시오?”


타노가 무언가를 탐색하는 눈빛으로 묻자,


“아, 주모 아니면 설마 부지깽이겠소? 젊은 각시 보고 침일랑 흘리지 마소. 갸는 주모가 아니고 딸인께. 말 못하는 버버리라도 노인 같은 손님 열 하고도 안 바꿀라요.”


누가 뭐라고도 하지 않았건만 혼자 열불을 내는 주모였다. 벙어리라고 한 달 만에 소박맞고 오기는 하였지만, 천금 같은 딸이 행여 주정꾼들 안주거리가 될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내가 무슨 못 할 말을 했다고 초면에 그리 타박이시오, 어쩌고 변명하며 타노는 슬그머니 술잔을 들어 한 잔 걸게 들이켰다.


“국수도 있으면 찬물에 좀 말아 주시오.”


비로소 마음을 여는 타노였다. 쫓기는 신세란 것이 항상 조심하고 의심해야 했다. 혹 오해를 받더라도 감수해야 했다.


말문을 턴 김에 아기까지 맡겼다. 키우든지, 관아에 갖다 주든지 알아서 하소, 라고 책임을 털어내는 타노의 옆에서 추월은 은자 몇 냥을 아기 배 위에 올려주었다.


아이고 이 나이에 어린 것을 우짜꼬, 하면서도 주막 노파는 아기와 은자를 받아 챙겼다.


강나루 근처는 온통 밀밭이었다. 밀이삭은 제법 여물어 가고 있었다. 타노가 밀이삭을 몇 개 꺾어 양 손바닥 사이에 놓고 비벼 후– 불었다.


벗겨진 밀 껍질이 날아가고 밀 알곡이 드러나자 타노는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덜 익은 밀은 쫀득쫀득하고 찰진 맛이 났다.


추월과 월후가 밀밭에서 깜부기를 뽑아 들고 서로의 얼굴에 깜장 칠을 하려고 장난을 쳤다. 화경에 이른 고수라 그런지 마치 칼싸움하는 것 같았다.


밀밭을 지나고도 길은 외줄기로 끝없이 이어졌다. 세 사람은 마치 방랑자라도 된 것처럼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음력 유월의 땡볕도 지쳐가는 유시(酉時) 무렵, 일녀이남은 관도 옆 주인 없는 원두막 아래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있었다.


본래 원두막은 사다리를 올라가 2층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나, 주인도 없는데 무례를 범할 수 없어 그냥 그 아래 땅바닥에 앉은 것이다.


“몇 시진 전에 아기 안은 여자 살수가 왔었으니 오늘은 더는 안 오겠죠?”


추월이 노느니 염불한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툭 던졌다. 그러나 다분히 희망 섞인 어조였다.


몰라, 하며 월후가 원두막 기둥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웠다. 몰라? 하며 추월이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되물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추월은 남자가 축 처져있는 게 보기에 마땅찮았다. 여자인 자신은 약한 척하고 힘들어해도 남자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기는 온실 같은 천년탑이 아니라 험한 강호가 아닌가?


“타노-”


습관적으로 타노를 찾았으나 옆에 없었다.


타노는 원두막 옆 참외밭을 둘러보고 있었다. 참외 줄기의 덩굴손이 뻗어나간 곳마다 노란 꽃이 예쁘게 피었고, 더러는 이미 시들고 있었다. 열매가 맺히려면 꽃은 시드는 게 자연의 이치였다.


“예, 아씨.”


뒤늦게 타노가 대답하자 추월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매가리를 놓은 채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젊은 남자와 구색 맞추기로 타노를 같이 끌어다가 앉혀놓고 그녀는 문초하듯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해요.”


그때 어디선가 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도 저쪽 셋이 가야 할 방향이었다. 잔소리를 피하려는 아이처럼 남자 둘이 벌떡 일어났다.


“칼부림 소리 같은데, 가 볼까?”


월후가 앞장서자 타노는 군말 없이 뒤따랐다. 추월도 아니 갈 수 없었다.


표국(鏢局) 행렬이 산적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일전에 만났던 천하표국 깃발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표두와 표사가 다른 걸 보니 같은 표국의 다른 표행(鏢行)인 모양이었다.


표물을 실은 마차가 다섯 대였고, 표행에 필요한 용품을 운반하는 달구지가 둘이었다. 벌써 표사와 쟁자수 십여 명이 죽거나 부상 당해 너부러져 있고,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도와야겠지?”


월후가 선뜻 나서지는 않고 의중을 물었다. 함정에 빠졌던 경험 때문이었다. 타노가 먼저 수긍했다


“산적에게 당하고 있는데, 당연히 구해야 합니다. 더구나 천하표국에게 신세를 진 적 있으니 보답해야지요.”


“너무 공교롭지 않아요? 불과 얼마 전에 만났던 표국을 또 만난다는 게.”


아마 타노가 반대했다면 추월은 찬성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둘 다 괜찮다고 하니 그녀는 신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른바 역할 분담이었다


“천하표국의 주 관할이 이 지역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는 해요. 그런데 한적한 곳이라지만 산과 가깝지도 않은 관도에서 산적이라니 이상하지 않나요?”


“표물이 큰돈이 되는 거라면 유혹이 클 테니까.”


그렇게 보면 더 그렇게 보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점점 아니라는 쪽으로 기우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지금 추월이 그랬다.


“정차된 마차 모습도 석연치 않아요. 보통 길에 일렬로 세우기 마련인데 반원을 그리며 서 있어요. 그리고 대적하는 쌍방이 모두 그 반원 안쪽에 있구요.”


“그야 산적의 습격에 방어하려고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함정이라기엔 희생자가 너무 많아 보입니다.”


타노의 마지막 말에 추월도 흔들렸다. 게다가 지금도 표사와 쟁자수들이 희생되고 있었다. 목숨을 두고 고집을 피우기에는 덫이라고 볼만한 것이 부족했다. 일단 사람부터 구하고 볼 일이었다.


산적 무리를 처치하는 데는 타노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가 이리 번쩍 저리 번쩍 몇 번을 하고 나니 7, 8명의 산적이 나가떨어졌다. 두목까지 목이 잘리자 나머지는 우르르 도망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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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호위무사 추월 제71화 천하의 주인 22.05.19 707 16 10쪽
70 호위무사 추월 제70화 천하의 주인 22.05.18 670 17 10쪽
69 호위무사 추월 제69화 황도행 22.05.17 677 17 9쪽
68 호위무사 추월 제68화 황도행 22.05.16 669 18 9쪽
67 [호위무사 추월] 제67화 황도행 22.05.15 664 17 10쪽
66 호위무사 추월 제66화 황도행 22.05.14 660 16 9쪽
65 호위무사 추월 제65화 22.05.13 690 17 10쪽
64 호위무사 추월 제64화 칙령 22.05.12 702 18 9쪽
63 호위무사 추월 제63화 칙령 22.05.11 737 19 9쪽
62 호위무사 추월 제62화 22.05.10 719 16 10쪽
61 [호위무사 추월] 제61화 22.05.09 753 19 9쪽
60 호위무사 추월 제60화 추월과 백봉 22.05.08 768 17 9쪽
59 호위무사 추월 제59화 추월과 백봉 22.05.07 747 17 9쪽
58 호위무사 추월 제58화 추월과 백봉 22.05.07 737 15 9쪽
57 호위무사 추월 제57화 22.05.06 734 17 9쪽
56 호위무사 추월 제56화 22.05.06 718 18 9쪽
55 호위무사 추월 제55화 22.05.05 726 20 9쪽
54 [호위무사 추월] 제54화 22.05.05 712 16 9쪽
53 호위무사 추월 제53화 부여성의 혈투 22.05.04 745 18 9쪽
52 호위무사 추월 제52화 22.05.02 769 20 9쪽
51 [호위무사 추월] 제51화 22.05.01 784 19 9쪽
50 [호위무사 추월] 제50화 부여성의 혈투 22.04.29 806 22 10쪽
49 호위무사 추월 제49화 부여성의 혈투 22.04.27 832 19 9쪽
48 호위무사 추월 제48화 부여성의 혈투 22.04.25 897 18 10쪽
47 호위무사 추월 제47화 +3 22.04.24 834 21 9쪽
» 호위무사 추월 제46화 22.04.22 876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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