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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얼굴 님의 서재입니다.

호위무사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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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창백한얼굴
작품등록일 :
2022.03.24 16:00
최근연재일 :
2022.05.23 12:1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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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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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045

작성
22.03.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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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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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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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호위무사 추월 제1화 (서장) 궁궐에서 일어난 일

무협소설보다는, '소설무협'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수사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무협이라는 장르를 가진 소설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을 담은 표현입니다.




DUMMY

[호위무사 추월] 제1화 (서장) 궁궐에서 일어난 일



빗줄기가 거세게 뿌리고 있었다.


궁궐 내 깊은 곳, 귀비 백씨 거처인 숭덕전 석조물 앞에는 얼마 전부터 한 인영이 서 있었다.


쓰개치마나 족관(簇冠)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남자였다. 아무런 비 가리개도 없이 장대비 속에 선 그는 금세 흠뻑 젖어 있었다.


가뜩이나 삼경에 가까운 밤이었다. 이따금 번갯불이 번쩍이고 남자의 윤곽이 얼핏얼핏 드러났다. 그는 관복 차림이었다. 사모관대의 색이나 흉배(胸背)로 보아 제법 직위도 있어 보였다.


“엇!”


재차 뇌전이 번쩍였을 때 남자는 움찔 놀라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그의 앞에는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한 인물이 서 있었다. 묵색 긴 장포 차림에 넓은 어깨에는 도롱이를 걸치고 머리에는 대나무로 엮은 죽립을 쓰고 있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색을 추스른 관복의 남자가 깊이 읍(揖)을 하였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그의 관모에서 빗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귀비 마마는?”


죽립을 쓴 인물이 급히 물었다. 그러나 조급한 어조와는 달리 꾹 눌린 목소리였다.


“우선 들어가시지요.”


관복이 몸을 돌려 앞장을 섰다. 장승은 걸치고 있던 도롱이와 죽립을 벗어 그에게 건넸다. 노인이었다. 커다란 체구였고, 허연 백발에 길게 기른 흰 수염이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었다.


노인은 서둘러 복도를 걸어갔다. 마중나온 시녀들이 좌우로 물러서기도 전에 그녀들 뒤에서 중년의 미부가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조부님”


흔히 볼 수 없는 화려한 궁장(宮裝) 차림이었다. 어여머리에 나비 떨잠까지 한 것으로 보아 고귀한 신분임을 짐작하게 했다.


노인을 오래 기다렸던 듯 기품있는 음색에는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그런 심정을 몸으로 드러내듯이 그녀의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귀비 마마”


노인은 깊지도 얕지도 않게 상반신을 조아렸다. 한결 수척해진 귀비의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격동된 그의 목소리가 잠시 불안정하게 떨렸다.


무려 칠 년 만에 얼굴을 다시 대하는 손녀였다. 현 황상의 비(妃)로 입궐을 한다고 하였을 때도 그는 탐탁지 않았다.


강호의 물을 먹고 산 지 어언 한 갑자, 권력에는 늘상 암투가 따르고 더러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가 비록 강호를 오시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고는 하나, 황상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여 3 황자를 모셔 오너라”


귀비 역시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는 검지 끝으로 고인 눈물을 슬쩍 뭉개면서, 옆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시립하고 선 시녀에게 짤막하게 하명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참느라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린 아이를 모시고 온 이는 시녀가 아니라 검은 경장(經裝) 차림의 여자 호위무사였다.


“조부님 3 황자를 부탁해요”


귀비가 어린아이, 3 황자의 어깨를 돌려세워 노인 쪽으로 밀었고, 노인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당장 궁궐을 떠나야 할 만큼 그렇게 상황이 심각한 것이오?


“네, 이대로는 3 황자의 안위를 더는 장담할 수 없게 되었어요.”


노인이 재우쳐 물었고, 귀비는 가슴을 내밀며 대답했다. 그녀는 사가(私家)의 최고 어른에게 말보다 먼저 자신의 아프고 쓰라린 속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시도 지체할 때가 아니었다. 용맹한 2 황자보다 그의 생모 황비의 독수(毒手)를 숨긴 미소가 더 두려웠다.


“귀비 마마, 소녀도 함께 보내주소서”


3 황자를 모시고 온 호위무사가 귀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원한 눈매에 늘씬한 키를 한 여자였다.


이제 방년은 되었을까? 한껏 물이 오른 처녀의 몸이었으나, 그 기도는 자못 날카로워 호위무사로서 상당한 수련을 거쳤음을 알 수 있었다.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귀비 대신 노인이 나섰다. 이제부터 3 황자는 자신의 책임하에 있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고사리손으로 검을 잡은 지 어언 십수 년. 3 황자께서는 제 한 몸을 초개같이 버려 지켜야 할 분, 신명을 바치겠나이다”


순간 노인의 장포가 펄럭이는가 싶더니 그의 전신에서 생겨난 칠채서광의 무지갯빛이 여자 호위무사의 몸을 휘감아갔다.


그녀는 숨이 턱 막히는 거대한 압력을 견디려 호흡을 끊고 버텨냈다. 무릎을 꿇고 반쯤 앉은 자세인 그녀의 뒷덜미에 알땀이 몇 방울 맺혔다가 이윽고 척추골을 따라 등 뒤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이에 비해 제법 쓸만하군.”


“추월이라 부르소서”


이태 전 가을, 3 황자의 보령(寶齡)이 다섯 해에 접어든 때 호위무사로 들어온 이래 추월이라 불리게 되었다.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 가자”


노인이 3 황자를 안아 들자 아이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보령 겨우 7세. 4세에 사서삼경을 뗀 신동이라 궐내에 소문이 자자했으나, 아직은 세상의 근심 걱정을 모를 연치였다.


노인은 3 황자의 작은 몸을 도롱이로 조심스레 감싸 품에 안았다. 그리고 신형을 돌렸다.


문득 잊었다는 듯이 귀비를 돌아보며 고개를 주억거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노인의 몸이 꺼지듯 사라졌다. 당금 강호 천하제일인의 독문무공이라 알려진 천리환영신법(千里幻影身法)이었다.


추월도 황망히 몸을 날려 뒤를 따랐다.


늦가을 비는 삼경이 이슥하도록 멈출 기미도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황망한 마음에 처마 어귀까지 쫓아 나온 귀비는 털썩 맨땅에 주저앉았다.


온몸을 팽팽히 당기고 있던 긴장이 풀어지자 그녀의 척추는 더 이상 신체를 지탱하지 못하고 물에 젖은 저고리 고름처럼 무너져 내렸다.


뒤늦게 따라 나온 시비 둘이 양옆에서 귀비를 일으켜 세우려다가 힘에 부친 지 함께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아무도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대신,


우르릉 꽝!


비로소 귀청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캄캄한 밤하늘 저기 어디쯤에서 오열처럼 터져 나왔다.


조부님, 강하게 키워 주세요. 세상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만추의 어느 날 밤, 동서로 10만 리 남북으로 8만 리의 땅덩어리를 지배하는 대동국(大同國) 궁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얼마 뒤 강호에는 소문이 떠돌았다.


황자들 간의 권력 투쟁으로 태자 책봉식이 보류되었다. 전 황후 소생인 1 황자는 병석에 누웠고 현 황비 소생인 2 황자가 실권을 장악했다. 귀비 소생 3 황자가 실종되었다.


또 다른 소문도 있었다.


3 황자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외증조부인 천하제일인에게 절세의 무공을 전수받고 있다. 15년 후 황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는 황실에서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가장 최근의 풍문은 이러했다.


천하제일인이 3 황자와 함께 천년탑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버려진 석탑에 불과하던 천년탑은 천하제일의 성지가 되었다.


작가의말

무협소설이 아닌 소설무협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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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호위무사 추월 제66화 황도행 22.05.14 660 16 9쪽
65 호위무사 추월 제65화 22.05.13 690 17 10쪽
64 호위무사 추월 제64화 칙령 22.05.12 702 18 9쪽
63 호위무사 추월 제63화 칙령 22.05.11 737 19 9쪽
62 호위무사 추월 제62화 22.05.10 719 16 10쪽
61 [호위무사 추월] 제61화 22.05.09 753 19 9쪽
60 호위무사 추월 제60화 추월과 백봉 22.05.08 769 17 9쪽
59 호위무사 추월 제59화 추월과 백봉 22.05.07 747 17 9쪽
58 호위무사 추월 제58화 추월과 백봉 22.05.07 737 15 9쪽
57 호위무사 추월 제57화 22.05.06 735 17 9쪽
56 호위무사 추월 제56화 22.05.06 718 18 9쪽
55 호위무사 추월 제55화 22.05.05 726 20 9쪽
54 [호위무사 추월] 제54화 22.05.05 713 16 9쪽
53 호위무사 추월 제53화 부여성의 혈투 22.05.04 746 18 9쪽
52 호위무사 추월 제52화 22.05.02 770 20 9쪽
51 [호위무사 추월] 제51화 22.05.01 785 19 9쪽
50 [호위무사 추월] 제50화 부여성의 혈투 22.04.29 807 22 10쪽
49 호위무사 추월 제49화 부여성의 혈투 22.04.27 833 19 9쪽
48 호위무사 추월 제48화 부여성의 혈투 22.04.25 897 18 10쪽
47 호위무사 추월 제47화 +3 22.04.24 835 21 9쪽
46 호위무사 추월 제46화 22.04.22 876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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