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민스크 님의 서재입니다.

휘명의 북극성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드라마

휘명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1
최근연재일 :
2021.08.12 23:38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3,100
추천수 :
150
글자수 :
456,238

작성
21.06.29 09:49
조회
30
추천
0
글자
15쪽

기원 -1

DUMMY

"하하하하~, 호호호~"


"자, 여길 보세요~ 웃으세요. 하나 둘~, 펑!"


1930년대초, 경성제국대학 곳곳에 검은 학사모와 학사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 중이다. 여기에 민간복장인 사람들도 함께하며 삼삼오오 정겹게 얘기를 나누기도했으니,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다들 환한 표정들이다.


부모로 보이는 중장년층과 형제자매로 보이는 젊은이들까지 멀쑥한 차림새로 축하해주고있으므로, 누가보더라도 졸업식이 거행되는 중이다. 코트와 목도리등, 겉으로 드러나는 복장들만봐도 계절이 겨울임을 그대로 드러내고있어서 얼추 예식이 이뤄지는 시기와 걸맞음도 추정할 수 있다.


다만, 햇살이 화창한데다가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각이어서인지 다소 덥게 느껴지기도했고 그때문인지 복장이 좀 흐트러진 인사들도 하나둘 눈에 띄었다. 상의의 단추 한두개쯤 푸는것은 기본이고 쓰고있던 중절모자등과함께 아예 벗어서 한손에 들고있는 사람들도 적지않게되었다.


이맘때쯤해서 찍을 사진들도 대부분 다 마쳐서 이런 모습에도 크게 개의치않은 모습들이다. 실제로 무거운 사진기등을 들고다니며 호객하던 기사들도 드문드문해지던 참이었고 점심식사를 하려는지 하나둘씩 교정을 벗어나기시작했다.


그렇게 들뜬 분위기가 많이 꺽일무렵, 때를 맞추어 단촐한 차림새를 한 어느 가족도 자리를 뜨려했다. 한데, 이런 그들을 막아서는 사내가 한명있다.


"희우형,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고 들었어요."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내쉬며 이마에 땀방울까지 살짝 맺혀있는것이다. 그 또한 학사복을 입고있어서 졸업생으로 보였으며 학사모는 벗겨질새라 한손에 잡고있는 채였다.


이런 그의 행태는 희우란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에게도 짐짓 무례로 비춰질 수도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치도록 달려온 모습은 정당성까지는 안되더라도 무언가 사정이 있을 수 있겠다는 이해까지는 바랠수 있을정도는 되어보였다.


때문에 그가 말을 건넨 대상 또한 불쾌한 기색보다는 오히려 조금은 쑥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화답해주었다.


"네. 며칠전 급하게 결정된 일이라, 미처 병석형껜 알려드리지못했네요. 참, 이쪽은 제 부모님과 동생이에요."


"아, 실례가 있었습니다. 전 정병석이라고 희우형과 같은 과에서 공부한 학우입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서로 친하다고... 나눌 말들이 있는것같으니, 희우야 우린 먼저 집에 가 있으마."


"아닙니다. 용건만 금방 전하고 갈거에요."


병석이 먼저 나서서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름 상황을 수습한다고 애를 썼지만,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된것만은 분명해보였다. 그에 많이 당황해하는 모습이나, 희우 부모들의 배려로 겨우 곤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 우린 천천히 구경이라도하면서 먼저 교문앞에 가 있으마."


"네. 금방 뒤따를게요."


"경황중이라지만, 무례를 저질렀네요."


겨우 둘만 남게되자, 병석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그에 희우는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폐를 끼친것도 아니니 개의치말라면서 용건을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절 이렇게 찾아오신것인지...?"


"아, 좀전에야 형이 유학간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자칫했으면 못보고 보낼뻔했네요. 떠나기전에 한번 모임이라도 가지는게 어떨까해서요."


"하하,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많지않아서 가기전에 병석형에게만 연락드리고 갈려고했었는데..."


"그 무슨 섭한 말입니까? 저도 방금 다른 학우에게 듣고서는 부랴부랴 오는 길인데요. 그러지말고 떠나기전에 조촐하게 송별회라도 벌이도록해요. 이제 가면 또 언제 만날지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럴까요?"


대충 날짜를 정하고나서 헤어진 둘은 며칠뒤, 작고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리와 빈대떡등을 놓고 얘기 꽃을 피워갔다. 희우와 병석외에도 두엇이 더 있었으나, 대화는 주로 둘 사이에서 이뤄졌다.


"역시나 희우형께서 평소에 관심을 두던 물리학을 공부하러 떠나시는거겠죠?"


"네. 역사학도가 물리학이라니, 좀 우습게 들리기도하겠군요."


"어디요? 일제가 이 반도를 차별하여 대학원과정은 커녕, 이공학부조차 제대로 개설을 하지않았으니, 별 수가 있겠습니까. 겨우 법학을 포함한 문과 몇개와 의학부가 전부인것을..."


"안그래도 형편만된다면, 멀리 미국이나 유럽같은데로 가고싶었어요. 한데, 그럴 처지가 못되어서..."


"이해합니다. 다들 마찬가지죠. 그런데도 희우형이 이리 용감히 나서주니, 동기로서 자부심이 생깁니다."


"별말씀을, 그나저나 해당 분야의 공부가 짧아서 걱정입니다."


"평소에도 도서관에 비치된 관련서적들을 충실히 탐독하지않았습니까? 그만하면, 왠만한 일본학생들보다는 나을겝니다."


"교양서정도에 불과한데다가 그나마도 충분치못해서 모르는게 많습니다. 제대로 따라가기나할런지..."


"아, 석사과정으로 간다고하셨죠?"


"네. 다행히 전공이 달라도 받아준다더군요."


"일본으로 유학간 선배나 사업차 가 있는 지인들을 통해서 전공책들을 구해보겠다고 종종 말하지않았습니까?"


"네. 그랬지만, 서너권정도에 불과해요. 오히려 그때문에 여러번 읽다보니, 탐독하게된 계기가되었기도하지만요."


"하하. 그정도로 좋아하시니, 반드시 성공할겁니다. 즐기는 자에겐 못당한다는 말도 있지않습니까. 그래서 이 반도에도 훌륭한 물리학자가 있슴을 저 일본에도 똑똑히 알려주세요."


여러 격려의 말들이 오가고 술자리를 파할때쯤해서 병석은 곱게 접은 봉투 하나를 희우에게 전하며말했다.


"동기들이 조금씩 모아서 만든 송별금입니다. 얼마안되니, 부담갖지마시고 유학비에 보태세요."


차마 거절치못하고 받아든 희우는 다음날 일본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확실히 각오한대로 유학생활은 힘들기만했다. 반도인에대한 차별이 일본내의 학계에서도 심하여 어려운 유학생활이 될수밖에없었던것이다.


숙소를 구하는 문제에서부터 장학금 수령 기회는 물론이고 조교등, 자잘한 학내 일자리에 있어서까지 그에겐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않았다.


그에 상당히 멀리 떨어진곳에서 통학을 해야했으며 부족한 생활비는 주말등에 야간경비등으로 충당해야했다. 이런 난관들을 하나둘 뚫고 30년대 중후반, 박사학위까지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그 차별은 여전히 심하였다.


교수로 나아갈 수 있는 관문인 조교수자리는 커녕, 일개 강사자리 또한 구하는게 쉽지않았고 심지어 어렵사리 작성한 논문 역시나 제대로 심사해주지않아서 성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계속 남아서 기회를 기다리느냐 모교로 돌아가서 자리를 알아보느냐를 놓고 고민중이던 그때, 미국에서 관련분야의 연구원을 구한다는 말에 두말않고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남아있어봐야 마땅한 돌파구가 보이지않았고 마침 경성에도 이공학부등이 생긴다하니, 돌아간다면 교수자리는 보장될터다. 그렇다해도 단순히 학생들을 가르치기만할뿐,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못함을 잘 알고있었기에 멀리 떠나기로 결정한것이다.


당시만해도 미국 또한 유색인종에대한 차별이 상당했지만, 일본과 친근한 관계가 이어져왔고 식자층에서 그들의 문화에대한 환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터라, 인식이 그리 나쁜편은 아니었다.


그 또한 식민지출신이긴해도 일단은 일본인으로 분류되므로, 이런 잇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봤고 앞선 지식들을 익히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좀더 나은 기회가 생기지않겠는가하는 계산에 건너갔던것이다.


확실히 기대대로였으나, 인종이 다름에따른 장벽은 존재했다. 일본에 있던것만큼은 아니었어도 백인과 경쟁이라도 붙게되면, 그가 선택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도 일본에 있던 때보다는 나아서 강사 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며 일본에서 제출했던 논문을 가다듬어서 선보여서 심사정도는 받을 수 있어서 학자로서 조금이나마 인지도를 높일 수도있었다.


또한 같은 조선인출신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가 작으나마 근처에 있어서 외로움을 풀 수 있었으며 여기서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려서 나름대로 행복한 시기였다.


그러다가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했으니, 바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맨해튼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부터였다. 어쨋거나 일본인으로 분류되던 장박사는 일단은 가족들과함께 수용소로 끌려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소식을 들은 교포들과 독립지사들의 탄원으로 풀려날 수 있었으며 핵폭탄개발에 열을 올리던 연방정부의 기획에도 참여하게되어 내부적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일전에 그가 제출한 논문이 관련 내용들을 상당수 포함하고있었으며 이를 심사했던 교수들 중 한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정부에 추천하여 끌어들이게된것이었다.


일본에서 강사겸 조교로서 노교수의 뒤치닥거리나하던 시절, 수고한다면서 선물로받은 골동품이 하나 있었다. 조선시대의 유물로, 장영실이 만들었다고 알려지던것. 마침 그 또한 장씨인데다가 역사를 공부한 경력이 있으며 후손이라고까지하니, 선뜻 건네주었던것이다.


당시에는 상당수의 유물들이 불법적인 매매나 도굴등으로 약탈당하다시피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반출되곤했다. 그 중 하나가 일본인 노교수에게까지 전해진것이고 그는 이에 별 흥미가 없었는지, 장박사에게 넘겨준것이다.


공부에 열중하다가도 쉬는 시간에 이를 쳐다보며 감상에 젖어서 스트레스를 풀곤했던 그다. 자신도 조상인 장영실처럼 뛰어난 과학자가 되겠다며 마음을 가다듬던 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조사하기시작했다.


결국에는 분해하기에 이르렀으니, 해체된 각 구성품들에는 이상한 표식들이 세밀하게 잔뜩 새겨져있는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는 그러지않아서 알 수 없었지만, 맞붙어서 안보이던 곳들에는 어김없이 빼곡하게 자리해있었다.


제한된 수량의 기호들이 반복되는 형태라서 해독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파악하고나니 엄청난 물리학적인 이론이 담겨있어 그를 놀라게했다.


이에 빠져서 한동안 연구했는데, 당시 최신의 물리학 이론이랄 수 있는 상대성이론을 뛰어넘는 바가 있어서 당장에 이해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정리하여 이를 논문으로 완성하여 담당교수등에게 제출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반도인에대한 차별이 심하여 묵혀만 둘뿐 심사는 커녕 거들떠도 보지않았다. 일단 그가 말하는 이론을 알아보는 이가 많지않았던 탓도 있지만, 무슨 허명이나 연구비명목으로 돈을 타내어 착복하려는 의도를 가진 부도덕한 이들이 심심찮아서 그런 의도로 오인했기때문이기도했다.


접수와 심사등, 자신들의 일거리가 늘어나서 귀찮아하는 면도 있었을것이나, 그 제출자가 반도인이라는 측면이 더 컸을터다. 이렇듯 차별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학내의 태도에 실망한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고 연구열을 해소코자 해외로 나갈 마음을 굳히게되었다.


당시는 미국보다는 유럽이 더 선진국으로 인식되어졌으나, 전세계를 휩쓰는 경제불황과함께 독일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혼란이 점차 확산되는 중이어서 비교적 안정적이랄 수 있는 미국을 택하게된다.


이때 미국 역시나 대공항으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극복코자하는 나름의 노력들이 진행중이었고 신기술등에대해서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고있기에 마음이 끌릴 수 밖에없었다.


아무튼 미국으로 건너온 장박사는 이를 새롭게 배운것들과함께 높아진 이해도를 바탕으로 다시 작성하여 발표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뒤에야, 이 내용들이 양자역학으로 불려지게됨을 알았으나 당시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여기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연구하여 새롭게 발표한 이론들이 하나 둘 나오던 시절이다. 실제로 핵폭탄은 이들의 접목으로 발명하게된것으로, 나중에 나온 이론들이 바로 초기 양자역학이론인 셈이며 장박사 역시나 이에 일조한셈이다.


아무튼, 그가 발표한 논문을 듣고 심사까지했던 교수 한명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포함되었고 막히는 부분이 생기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장박사의 논문속에 있었슴을 생각해내곤 그를 추천하게된것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논문을 몇해전 일본에도 제출한적이 있슴을 밝혔고 그 출처에대해서도 알렸슴에도 동료 연구자들은 장박사의 진술을 앞의 반만 믿었다. 그도그럴것이 관련된 핵물리학은 그야말로 최신인데다가 누구도 가보지못한 미지의 영역인데도 오래된 유물속에 기록되어있었다는 얘기를 하니,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잠시긴해도 수용소에 갇히는등으로인해 정신이 혼미해졌을거라는 이유를 들어서 무시하고는 논문에 담긴 이론들에대한 구체적인 설명만 요구할 뿐이어서 연구했던 것들만을 알려줄뿐이었다.


실제로 뛰어난 학자나 예술인들 중에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기벽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종류로 이해하고는 바쁘다는 이유로 단순하게 넘겼던것이다.


헛게보여서 남들이 볼때는 혼잣말을 심하게 한다든지, 성적취향이 독특해서 특정의 인종이나 외모 및 스타일등에 집착한다든지, 주변이 아주 깔끔하거나 오히려 너저분해야만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든지하는등으로 까다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할정도로 다양하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인물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거나 그에 준할정도로 입지를 세웠다면 동료들 역시나 보통은 인정해주거나 모른척 넘어가주는 경우도 많아서 장박사의 주장도 그런 일환으로 보고는 대수롭지않게 넘어갔던것이다.


아무튼, 그에따라 핵폭탄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웠슴에도 역시나 인종에따른 성과가 폄하되어 중요한 인물로 선정되지못하였다. 때문에 전후에 핵심 연구에서도 좀 배제되는듯했지만, 완전히 무시된건 아니었다.


적어도 동료들은 그 성과를 인정해주고 있었기에, 관련 학문을 다루는 대학교등에서 강의와 연구를 맡을 수 있도록 추천해주었으며 교수로 임용되도록 힘을 써주기도하는등, 나름대로 좋은 경력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다가 5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원자력을 도입하겠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정부관계자가 찾아와서는 삼고초려하다시피해서 스카웃제의를 하니, 못이긴척 들어와서 이를 주도했다.


전후의 조국에서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가되지않겠는가하는 애국심의 발로였으니, 이후 여러차례 정권등이 바뀌어도 관련산업이 확장일로라, 그의 위치는 확고해져만갔다.


후학들을 다 키워내고 관련산업 역시나 확실하게 자리잡고나자, 그의 나이도 어느새 칠십을 훌쩍넘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되었다. 그에 석좌교수로서 연구에만 몰두하고 몇개의 명예직을 거쳐서 여든에 접어들어서야 완전히 은퇴하게된다.


그러고 몇년뒤, 90년대초반에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집에서만 머물러있던 그가 드디어 밖으로나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휘명의 북극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사항 4 21.07.01 37 0 -
공지 공지사항 3 21.06.19 51 0 -
공지 공지사항 2 21.06.02 59 0 -
공지 공지사항 1 21.05.29 86 0 -
64 슈퍼솔져 +2 21.08.12 23 0 20쪽
63 납치 -2 21.08.04 12 0 15쪽
62 납치 -1 +1 21.07.22 10 2 20쪽
61 북해도 -2 21.07.15 17 0 12쪽
60 북해도 -1 +1 21.07.08 22 0 17쪽
59 목적 21.07.01 25 1 21쪽
58 기원 -2 +1 21.06.30 38 0 15쪽
» 기원 -1 21.06.29 31 0 15쪽
56 충원 21.06.28 28 0 11쪽
55 대호명 -2 21.06.27 12 0 11쪽
54 대호명 -1 21.06.26 11 0 12쪽
53 합류 -2 21.06.25 27 0 16쪽
52 합류 -1 21.06.24 16 0 14쪽
51 쇼케이스 -2 21.06.23 32 0 14쪽
50 쇼케이스 -1 21.06.22 32 0 14쪽
49 최종 연습 21.06.21 18 0 22쪽
48 원회 -2 21.06.20 16 0 16쪽
47 원회 -1 21.06.19 31 0 15쪽
46 후계 21.06.18 22 1 16쪽
45 도착 21.06.17 22 1 16쪽
44 인수합병 -2 21.06.16 23 0 21쪽
43 인수합병 -1 21.06.15 23 0 12쪽
42 성찰 -2 21.06.14 29 0 20쪽
41 성찰 -1 21.06.13 27 1 19쪽
40 디브리핑 21.06.12 44 1 16쪽
39 새로운 임무 개척 -2 21.06.11 36 1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