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차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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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운은 어느새 다가온 점소이에게 간단한 아침식사를 주문하고 마주한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저도 잘한 건 없습니다. 여성분을 그리 빤히 쳐다보았으니까요. 흠흠··· 아무튼 그 일은 더 이상 서로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순박한 인상의 도교교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게 좋겠어요. 그보다··· 두 분은 어딜 가시는 중인가요?”
“저희요?”
“네.”
강대운은 이 질문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낙양에 간다는 말을 분명 문 밖에서 들었을 텐데···.’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변을 기다리는 두 여인에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낙양으로 갈 계획입니다.”
“어머.”
“정말요?”
예상했던 전개를 맞이한 두 여인은 크게 화색을 띠었다.
“참 절묘하네요. 저희도 낙양에 가는 중이거든요.”
“인연이란 게 이런 건가요?”
서로 난리 치던 두 여인은 돌연 강대운을 보며 눈방울을 빛냈다.
“괜찮으시면··· 그곳까지 동행을 하면 어떨까요?”
“제 생각도 같아요. 저희와 같이 가면 손해 보실 게 전혀 없을 거예요.”
“······.”
강대운은 이 두 여인의 수상한 동행제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 모르니, 거절하는 게 좋겠지?’
그런데 그의 마음과 달리, 가만히 얌전을 떨던 의무연이 수락의 의사를 밝혀버렸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저희 형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
의무연은 전날 강대운이 앞에 자리한 여성의 얼굴을 빤히 훔쳐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몰래 그를 도와줄 계획이었다.
‘지금은 형 대신 내가 나서는 게 맞겠지? 흐음, 앞에 앉은 두 분의 미모가 정말 장난 아니긴 하다.’
의무연은 살짝 고개를 돌려 강대운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리 싫어하는 표정 같지는 않았다.
‘형에겐 갚아야 할 빚이 많으니, 서로 잘 되도록 중간에서 신경을 써야겠어.’
엉뚱한 계획을 품는 소년을 향해 강대운은 복잡한 시선을 내던졌다.
‘이 녀석··· 저 두 여인이 마음에 드는 건가? 뭐, 나 혼자 무연이를 돌보는 것 보다는 이게 더 좋겠지.’
강대운은 상념을 마치고 두 여인의 동행 제의를 받아들였다.
“저는 강대운이라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건 차차 알아 가면 되겠죠. 낙양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고마워요. 저는 도교교라고 해요.”
“남자와 동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제 이름은 정윤입니다.”
상대에게 정다운 인사를 건넨 정윤과 도교교는 강대운의 바램처럼 소년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넌 이름이 뭐야?”
“의무연이에요.”
“너 눈이 참 똘망똘망하다.”
강대운은 일행 맺은 두 여인의 차림새를 살펴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두 분은 모두 곤륜파의 문인이시죠?”
그러자 정윤이 대표로 말을 받았다.
“맞아요. 저흰 얼마 전에 곤륜산을 내려왔어요. 낙양에서 열리는 후지연의 입회시험 때문이죠.”
막 나온 만두 하나를 입에 문 의무연은 눈을 부릅떴다.
“곤륜파라면··· 과거 구대문파에 속한 명문이잖아요? 우와, 정말 대단해요.”
“······.”
과거에 속했다는 말에 정윤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나중에 곤륜산에 오면 한 번 들리도록 해. 내부를 구경시켜 줄테니.”
“와아, 정말요? 고마워요. 누나!”
그녀 곁에 앉은 도교교도 아이의 환심을 사려고 급히 입을 열었다.
“난 음식도 잘하니, 기대해도 좋아. 그보다··· 무연이는 몇 살이니?”
두 여인이 생각보다 소년에게 관심을 보이자, 강대운은 내심 크게 안도했다.
‘난감한 시기에 이들을 만나서 다행이군. 이참에 무연이를 이 두 사람에게 맡기면 어떨까?’
한참 고민하던 강대운은 작은 미소를 머금은 의무연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무연이는 이제 겨우 마음을 추슬렀는데, 내가 사라져버리면 큰 상처를 받고 말거야. 또 아직 이 두 여인의 속내도 모르겠고···.’
그는 한가로이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에휴, 이렇게 일일이 다른 사람 일에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강대운은 자신을 행동을 자책했지만 표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기분 좋아 보였다.
***
“분명 이쯤 일텐데···.”
강대운은 일행으로 맺은 두 여인과 의무연을 객잔에 두고 혼자서 진의문의 서녕 지부를 찾아갔다.
“아, 저기 인가?”
사층 전각 안에서 전서구 관리 부서를 찾아 돌아다니던 강대운은 이를 어렵사리 발견하였다.
“저기··· 서신을 보내고 싶어서 왔습니다.”
“······.”
그런데 담당직원은 두꺼운 서책과 양피지 종이를 뒤적거리느라 강대운의 출현도 의식하지 못했다.
“흠흠, 저기요? 서신을 보내고 싶어서 왔다니까요?”
“······?”
전서구 담당직원은 그제야 약관의 청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다른 일에 집중을 하느라··· 누가 온 줄도 몰랐네요.”
“서신 내용은 이미 작성을 마쳤습니다. 바로 보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서신?”
상대 청년을 샅샅이 훑어본 담당직원은 의심쩍은 음색으로 물었다.
“여긴 일반 서신을 취급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진의문 총단으로 전서구가 날아가지요.”
강대운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왔습니다. 이건 진의문 총단에 보낼 서신입니다.”
담당직원은 음침한 눈매로 다시 물었다.
“우리는 값어치 있는 정보만을 취급합니다. 서신을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 쓰윽
가져온 서신을 담당직원에게 건넨 강대운은 자리에 서서 상대 답변을 기다렸다.
“······.”
여러 번에 걸쳐 내용을 확인한 담당직원은 인상을 잔득 찌푸렸다.
“아니, 이건 별 내용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잘 있다··· 낙양으로 갈 거다··· 약조를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이건 개인적인 근황을 적은 서신입니다.”
담당직원은 상대에게 서신을 거칠게 돌려주며 고개를 내저었다.
“우린 중원 무림의 고급정보를 사고파는 기관입니다. 그러니 이런 쓸데없는 내용은 총단으로 보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정보대가비도 전혀 줄 수 없고요.”
진의문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사들였는데, 때로는 그들 지부로 정보를 팔려는 사람이 방문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보의 가치에 따라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목적으로 이곳 서녕 지부를 찾아왔다.
“뭔가 잘 모르시나 본데···.”
강대운은 돌려받은 서신을 붙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쓸데없는 내용이 아니라, 강대운이란 사람의 근황이 적힌 서신입니다.”
담당직원은 그 생소한 이름에 머리를 갸웃거려졌다.
“강대운이 누굽니까?”
“··· 바로 접니다.”
“이 사람이··· 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상대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자, 강대운은 차분한 설명을 덧붙였다.
“저는 진의문 문주님과 친분이 있고, 그분은 제 서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급보로 처리하여 총단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를 마주한 담당직원은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질 않았다.
“허허, 우리 문주님과 친분이 있다고요? 올해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웃긴 말이네요. 게다가··· 혹 당신이 정말 문주님과 친분이 있어도 저는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요?”
“문주님께서는 개인적인 서신은 일체 받지 않으시니까요. 그러니 시답지 않은 얘기 그만하고 돌아가십시오.”
“전 시답지 않은 얘기 한 적 없습니다.”
강대운은 상대가 납득할만한 설명을 덧붙였다.
“저는 진의문 총단에서 비정규직으로 삼년 가량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관흥령부에도 잠시 근무를 했었죠. 당신 말처럼 문주님이 따로 서신을 받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검증 절차를 걸치면 서신을 전달 받으십니다.”
“초, 총단에서 근무를 했다고요?”
감숙성에 위치한 진의문 총단은 그야말로 최고의 인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다시 말해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총단에서 근무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흐음···.”
눈앞에 선 약관의 청년을 하대하던 담당직원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제가 문주님을 수신자로 서신을 보내면 조관흥령부에서 분명히 걸러질 겁니다. 그리고 제게 책임을 묻겠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곳의 관리자인 백태조 부장님이 서신을 문주님께 곧바로 전해드릴 겁니다. 그러니 이 서신을 서둘러 보내주십시오.”
“······.”
담당직원은 정녕 이 일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진의문의 내부사정을 상세히 아는 이 청년의 말을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에휴, 그럼 어쩔 수가 없군요. 일단 보내보긴 하겠습니다. 허나 이후 이 서신이 폐기 되도 전 책임이 없습니다.”
“그럼요, 보내주기만 하십시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볼일을 마친 강대운은 일행이 머물고 있는 객잔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녕을 벗어나기로 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응? 벌써 나와 있네.’
시끌벅적한 객잔 대문 앞에는 두 여인과 소년이 봇짐을 메고 강대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래 걸렸죠? 대화가 좀 길어졌습니다.”
다가온 강대운을 향해 도교교는 해맑은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이제 출발 할까요?”
눈방울을 빛내는 일행에게 강대운은 단호히 말했다.
“갑시다. 낙양으로···.”
***
- 쿠쿠쿠쿵 콰콰콰콰쾅
폭우를 피하기 위해 산장(山莊)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에 하나같이 몸을 떨었다.
- 쿠쿠쿵 콰콰콰콰콰쾅
천둥을 동반한 먹구름은 현재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어서 아직 밤이 되지 않았음에도 천지가 어두웠다.
“······.”
하지만 다행이도 산장 내부에는 유등이 군데군데 걸려있어서 어둠에 잠식당할 위험이 없었다.
“귀청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천둥이로군.”
귓불이 커다란 중년사내가 입을 열자, 그 옆에 움츠려 앉은 왜소한 사내가 대답했다.
“아침부터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더니··· 이제는 천둥까지 미쳐버렸나봐.”
“······.”
“······.”
이들이 머무는 이층 구조의 산장은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데 폭우를 피해 이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난 이런 날이 너무 싫어.”
“맞아. 옷도 다 적을 것 같고···.”
“쉿, 조용히 하거라. 주변에 피해가 가잖니?”
“네···.”
산장에는 앳된 외모의 여인들과 일반인 그리고 병장기를 지닌 무림인이 약 서른 명 가량 자리하고 있었다.
- 번쩍
갑자기 두 눈을 멀게 할 섬광이 또다시 번뜩이자, 아까보다 더 커다란 천둥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 쿠르르르 콰콰과콰광광
그리고 이 소리에 맞춰 산장 안에 머물던 여인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
“꺄아아아!”
“캬캬아아아!”
그 소름끼치는 비명소리에 귓불이 커다란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크게 소리쳤다.
“거참, 소리 좀 그만 지르시오! 천둥소리보다 그 비명소리가 더 소름끼치니···.”
- 스스슥 스스슥
그런데 여인들의 이상행동은 비명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언가에 크게 겁을 먹고 일제히 몸을 뒤로 빼었다.
“여기 사, 사람이 죽었어요.”
“피가··· 피가···.”
귓불이 커다란 사내는 사건이 벌어진 장소로 얼른 신형을 옮기었다.
“허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산장의 구석진 자리로 다가간 사내는 끔찍한 현상을 마주했다.
바닥에 한 여인이 쓰러졌는데, 복부가 크게 찢겨져 내장과 핏물을 연신 쏟아내는 것이다.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혀를 차는 중년사내 뒤로 왜소한 사내가 따라붙었다.
“이봐, 무도기!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무도기라 불린 사내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아직 모르겠어. 이건 대체 무슨 수법이지?”
그는 사체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살갗이 모두 뜯겨나갔어.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절명한 걸 보면··· 막강한 내공력의 응조수(鷹爪手)에 당한 건가?”
“흐음, 내가 봐도 그래 보이는군. 무엇보다 손속이 아주 잔인한 자야. 사혈을 공략하면 더 쉽게 죽일 수 있을 텐데, 일부러 이런 짓을 벌여 모두에게 자신의 살행을 알리다니···.”
왜소한 체형의 사내는 산장 안 사람들을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나는 사천성에서 활동하는 잔상권 승존이라한다. 그리고 여기 선 이 친구는 신광불객 무도기라 하지.”
“······.”
“······.”
아무 대답도 없는 서른명 가량의 사람들을 향해 왜소한 승존이 다시 입을 벌렸다.
“내가 별호와 이름을 밝힌 이유는··· 이 끔찍한 살행을 저지른 범인이 분명 우리 중에 있기 때문이다.”
- 작가의말
어쩌면 소제목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밖에 진짜로 폭우가 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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