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과하면 대가도 과한 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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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길이 만들어지자 백신명의는 장묵을 부축하며 조심히 걸음을 옮기었다.
함부로 경신술을 시전했다가는 장묵의 상처가 더욱 벌어질까 싶어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
그런데 성문 앞을 둘러싼 상인들만이 이 광경을 지켜보는 게 아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망 높은 무림인들도 오융 열매와 장묵의 비참한 모습을 한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장묵과 같은 고수가 송장이 돼서 돌아오다니··· 이거 무서워서 어디 괴습지에 들어가겠나?”
“그러게 말이야. 나 같은 이류 고수는 여기서 얼굴도 못 내밀겠군.”
“근데, 저 오용열매가 정말 탐이 나긴 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진귀한 보물을 소지한 자가 큰 부상을 당했다고 해서 암습을 감행할 자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분명 이 순간에도 정사연맹의 감찰대가 은형술로 기척을 숨긴 채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능운령은 정사를 떠나 무력 사용이 철저히 통제되는 중립 지역이어서 무력을 사용하다 잡히면 큰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이야··· 오늘 좋은 구경을 다 하는구나.”
귀향문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에 위치한 와룡객잔은 최근 들어 오 층짜리 거루거각을 완성한 상태였다.
이곳은 하루 숙박비가 무려 은자 두 냥에 달해서 어지간한 재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발조차 들이기 어려웠다.
이런 와룡객잔의 사 층 객방에서 앞서 벌어진 모든 상황을 지켜본 청년은 또다시 탄성을 내뱉었다.
“이야··· 오융 열매라니? 괴습지가 정말 신비한 곳이긴 하구나. 어렸을 적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청의무복을 걸친 약관의 사내는 특유의 버릇인지 콧등을 문지르며 사라져가는 장묵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척
그의 뒤에서 기척을 내며 다가온 중년인 역시 청의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관자놀이의 양쪽 태양혈이 불룩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 내공이 대단한 자인 듯했다.
“은평아, 너는 오융 열매에 놀라는 게냐?”
약관의 청년에게 다가선 중년 사내는 차분한 눈빛으로 멀리 장묵을 바라보았다.
“난 대풍패도 장묵이 저런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것이 더 놀랍다.”
콧등을 문지르던 청년은 중년 사내의 출현에 자부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쎄요, 전 장묵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요.”
철없는 허식으로 가득 찬 조은평은 하북성을 진동시킨 장묵의 도법을 내심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자 처음 운을 뗐던 차분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묵을 우습게 보아선 안 된다. 그의 오호단문도는 매 초식이 패도적이고 강맹하기 그지없어서 너는 감히 삼 초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조은평은 그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당당히 두들겼다.
“네? 에이, 대사형. 아무리 그래도 삼 초는 너무하잖아요? 전 청성파 제일의 후기지수라고요. 그걸 잊으시면 안 되죠.”
중년사내는 조금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삼 초도 많이 봐준 거다. 나도 그와 겨뤄서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중년 사내의 약한 소리에 조은평이 눈을 부릅떴다.
“네? 아니, 대사형! 청성파의 자랑스러운 검의 귀재가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사천성 북서쪽에 위치한 청성파는 최근 무서운 검의 귀재를 배출해 내었는데, 그가 바로 이 중년사내였다.
그는 무공에 대한 집념이 강하고 어릴 적부터 정순한 내공을 쌓아서 장문인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 사내는 건곤신공(乾坤神功)을 극한으로 익혀 내공이 하늘 끝에 닿을 만큼 고강했고, 사문의 절기인 칠십이파검(七十二波劍) 또한 이 년 전에 그 오의를 모두 깨달아 일검에 팔방으로 검기를 날릴 수 있는 무공 수위를 갖추었다.
지금껏 수많은 비무를 치루면서 단 한 번의 패배도 경험하지 못한 검신운룡(劍神雲龍) 연평권은 자신의 사제인 조은평을 차분히 응시하였다.
“장묵은 내 밑이 아니래도.”
조은평은 다시 능글맞은 웃음을 만들어내며 열변을 토해냈다.
“청남파의 칠십이파검을 대성한 대사형의 무공 수위는 장묵 정도가 아니라 이미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감히 장묵이 대사형에게? 말도 안 되죠.”
나이에 비해 조금 늙어 보이는 외모의 연평권은 유년 시절부터 오직 무공만을 수련하였기에 이 같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그는 무학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서 검법뿐 아니라 장법에도 조예가 깊었다.
연평권의 심후한 내공이 실린 쇄비천수장(碎碑千手掌)은 수많은 무림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장법이었다.
청성파의 일대제자인 연평권이 이 능운령에 온 이유는 최근 유명을 달리한 사조의 비석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괴기습신지에는 각종 영약뿐 아니라 귀한 금속들도 많이 채굴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조의 비석으로 사용할 홍옥석(紅玉石)은 어지간해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어서 이 위험한 괴습지까지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은평아, 상대를 경히 여기는 습관은 반드시 버려야한다.”
연평권은 열변을 토하는 조은평의 말을 단번에 가로막았다.
“삼 년 전,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든 절정검의 패전 소식을 벌써 잊은 게냐?”
나직이 읊조리는 연평권의 언사에 조은평은 능글거리는 미소를 거두고 그때의 사건을 기억해 내려했다.
“아,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으로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화산파의 절정검 화독진 말이군요? 맞다. 그가 하북성에서 처음으로 패했다고 들었는데, 상대가···.”
돌연 섬뜩한 기억을 떠올린 조은평은 안색을 굳히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절정검을 꺾은 자가 하북팽가의 고수였어요. 그가··· 장묵이군요.”
당시 화산파의 절정검(切情劍) 화독진이 비무에서 패배한 일화는 중원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화산파는 구파일방 중 하나이면서, 또한 오악검파에 들어가는 검에 조예가 깊은 문파였다.
그 때문인지 화산파는 유독 검술에 능한 검귀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이 많은 검귀들 중에서도 특출한 무위를 발하는 세 명을 매화삼검수(梅花三劍手)라 불렀는데 화독진이 여기에 해당됐다.
이런 화산파의 초일류고수를 하북팽가의 장묵이 꺾었으니 일대에 난리가 난 것이다.
조은평은 그동안 자신이 쏟아낸 망언에 스스로 반성의 기미를 보여야 했다.
“그렇군요. 확실히 전 그의 삼 초도 받아내지 못할 거예요.”
그때 앙칼진 여인의 음성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네가 장묵의 삼 초나 받을 수 있다고? 일 초나 제대로 받으면 다행일 거다.”
굴곡진 몸매의 여인이 자신을 비하하며 다가오자, 조은평은 크게 인상을 찌푸렸다.
“화령 사저는 항상 나만 가지고 그래···.”
태의원으로 이동 중인 장묵에게 접근해 그의 상세를 자세히 살펴보고 돌아온 청성비봉(靑城飛鳳) 사화령은 깝죽거리는 사제에게 엄한 목소리를 돌려주었다.
“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그보다··· 대사형도 보셨어요? 세상에, 저런 괴물이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왔어요. 대체 그 안에서 무엇을 만난 걸까요?”
“글쎄, 아직은 알 수 없지.”
연평권과 달리 그녀는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성급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사화령은 치렁대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거 정말 걱정이에요.”
청성파의 문인들도 하북팽가의 고수들이 들어간 괴석사지에 발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녀는 돌연 걱정이 많아졌다.
겉늙은 인상의 연평권은 이런 사화령의 마음을 눈치 채고 진중히 말을 받았다.
“괴습지에는 천하의 보고들이 모여 있지만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사나운 금수와 영물들이 가득한 미지의 땅이다. 그곳이 위험하다는 것은 청성산을 떠나올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 않나?”
“물론 위험하다는 건 알았지만··· 괴석사지마저 이렇게 위험할 줄은 생각지 못했어요.”
사화령의 반론에 연평권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 역시도 괴석사지에서 장묵과 같은 초일류고수가 목숨만을 부지한 채 도망쳐 나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다.
“······.”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사층 객방 한편에서 죽은 듯이 침묵을 지키던 괴인이 입을 뗐다.
“장묵은 괴석사지에서 당한 게 아니다.”
청성파 문인들의 고개가 자연스레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돌아갔다.
- 쓰윽
그곳에는 정갈한 백의를 차려입은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안광에서 뻗쳐 나오는 기세가 여느 노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연평권은 자신의 사제들을 데리고 객방 안으로 들어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사백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시끄러웠군요?”
양 볼에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은 아무리 봐도 청성파의 문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백의를 차려입은 노인은 냉랭한 음성을 발하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장묵은 분명 뇌전혈견(雷電血犬)에게 당한 거다.”
거침없는 노인의 확답에 다시금 연평권의 질문이 이어졌다.
“뇌전혈견이 무엇입니까?”
노인은 뒤숭숭한 장내 분위기를 쇄신시킬 속셈인지 열려 있는 객방의 창을 닫도록 지시하고 모두를 탁자에 둘러앉혔다.
“뇌전혈견은 오융 열매를 지키는 호법 견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는 땅속에 들어가서 정기를 흡입하다가 때가 되면 땅 위로 기어 올라오는 녀석이지.”
노인의 말에 눈치 없는 조은평이 작게 히죽거렸다.
“쿡, 개라고요? 그럼 장묵은 고작 개한테 당한 거란 말입니까?”
허나 조은평을 마주하는 노인의 눈초리는 그것이 전혀 우습지 않은 듯했다.
싸늘한 눈총에 웃음을 멈춘 조은평은 죄인이 된 것처럼 몸을 움츠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개지. 헌데 아주 무서운 개다. 피부는 금강석처럼 단단해서 도검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웬만한 검기로도 상처조차 낼 수 없다. 거기다 신형은 또 번개처럼 빨라서 경공술의 달인이라 할지라도 그 녀석들을 떨쳐낼 수가 없지. 그래서 이 개들 이름에 뇌전(雷電)이란 말이 붙은 것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사화령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도검불침(刀劍不侵)에 뇌전과 같은 속도의 개라고요?”
노인은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좌중을 둘러보았다.
“진짜 무서운 건, 그 뇌전혈견이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인 조은평의 팔뚝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저··· 정말 무서운 녀석들이군요.”
“그렇다. 이들은 최소 열 마리에서 최대 삼십 마리까지 무리를 지어서 사냥을 한다. 만약 공격 대상 중에 약한 이가 보인다면 그를 집중 공략하는 영악한 습성도 가지고 있지.”
심각한 안색의 연평권은 탁자 밑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맹한 검기를 수십 번 연계해서 대항하지 못하면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겠군요.”
“바로 그거다. 아무리 장묵이라도 그런 혼란 속에서는 혼자서 몸을 피신하는 게 고작이었겠지.”
“······.”
“······.”
“······.”
청성파의 문인 중 누구도 대풍패도 장묵보다 높은 무위를 지니지 못했기에 표정이 싸늘해져갔다.
노인은 그들의 안색을 슬쩍 살피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장묵이 욕심 때문에 변고를 당했다는 거다.”
노인이 이를 확언하자, 청성파 문인 전부는 화들짝 놀라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아는 한 이 노인은 저녁 식사 이후로 계속 객방 안에만 머물렀기에 어떤 소식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조금 전 장묵의 등장으로 성문 앞이 한바탕 난리가 났을 때도 노인은 전혀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장묵이 욕심을 부렸다고 확언하고 있었다.
“하북팽가는 원래 괴석사지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헌데 오융 열매를 들고 나타나다니··· 이상하지 않느냐?”
문득 연평권은 자신이 괴습지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오융 열매의 효능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어도 그것이 어디서 자생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혹시 오융 열매는 괴석사지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겁니까?”
“그렇다. 오융 열매를 얻으려면 만괴사침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 오융나무가 있고, 뇌전혈견 또한 그곳에 있다.”
만괴사침(萬怪死浸)은 만가지 죽음이 스며든다는 이름답게 숱한 무림 고수의 목숨을 앗아간 위험 지역이었다.
상승 절학을 익힌 초일류 고수들조차 그곳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림 정사연맹은 가능한 한 만괴사침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던 조은평은 괜히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오융 열매와 뇌전혈견이 꼭 만괴사침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지 않나요? 뇌전혈견이 산책하듯 괴석사지로 건너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소리를 들은 백의 노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조은평을 쏘아보았다.
“너는 괴습지에 대한 기본지식이 너무 부족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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