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는 달라진 일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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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를 탈의한 호봉조는 도전 바구니에 내기 돈을 놓고 다가오는 남자를 보았다.
“허허, 이거 저보다 체격도 큰 장사가 도전을 하는군요. 혹시 무림인이십니까?”
우람한 근육을 지닌 거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옆 마을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마철이라하오. 무림인이 아니니, 일반인으로 도전하겠소.”
“힘 좋은 일반인이라··· 쉽지 않겠군요.”
자신을 이 척 이상 움직이면 상을 주겠다는 사내는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예시를 설명했다.
일반인은 그가 원하는 거리에서 장이나 주먹을 사용하면 됐고, 무림인은 자기 가슴에 손을 붙인 상태에서 내공력만으로 밀어내야했다.
“그럼 난 두 손으로 밀어 치겠소.”
어릴 때부터 대장간 일을 한 마철은 전신 근육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었다.
“잠시 몸 좀 풀고 바로 도전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앞으로 나선 거한이 손을 웅크린 자세로 도전을 준비하자, 구경꾼들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야, 저 정도 장사가 두 손으로 밀어 치면 적어도 일장 정도는 날아가지 않을까?”
“그러게 말이야. 첫 손님부터 거한이 나오다니··· 오늘 장사 다했군.”
하지만 막상 이 거한을 상대하는 호봉조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 어서 들어오시지요.”
“안 그래도 갑니다! 자아, 하아아압!”
- 쿵 쿵 쿵
멀리서부터 큰 보폭으로 뛰어온 거한은 있는 힘껏 상대 가슴팍을 밀어 쳤다.
- 처얼썩
그 거대한 손바닥이 맨살 근육에 맞부딪치는 소리는 진정 살벌했다.
“우와!”
“엄청나다!”
이 정도 충격이면 가슴을 가격당한 사내는 분명 피를 쏟고 바닥을 뒹굴어야했다.
“··· 흐음, 꽤 하시는군요.”
“······?”
체격이 웅장한 마철은 도저히 믿지 못할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저 멀리 날아갈 줄 알았던 상대는 겨우 일 척 정도밖에 밀려나지 않았다.
“과연 힘이 장사시네요. 지금까지 절 이만큼 움직인 일반인은 당신뿐입니다.”
마철은 양손에 찾아온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허허, 당신 사람이 맞긴 하오?”
“당연히 사람이지요. 아무튼 아깝게 도전에 실패하습니다. 그런데 혹시 한 번 더 도전하시겠습니까? 이번에는 일척만 움직여도 당신이 이긴 것으로 해드리겠습니다.”
“······.”
방금 전 전력을 다한 마철은 아픈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난 이만하면 됐소.”
“바로 포기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거구의 마철은 주변 시선이 거북스러워서 얼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러자 이를 구경하던 구경꾼들이 하나같이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아니, 저런 장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우리보고 도전하란 말이야?”
“상체를 탈의한 저 사람은 대단한 무림인이 틀림없어. 그리 세게 밀어 쳤는데, 거의 안 밀려나잖아?”
“그러게 말이야. 흠흠, 아무튼 다음 도전자는 아무도 없겠어.”
그들에게 삿대질까지 받게 된 호봉조는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아무래도 첫 손님을 잘 못 받은 것 같군. 그만 정리하고 들어가?’
그가 내심 조기영업 종료를 고민하는 사이 기대치 않은 도전자가 장내에 등장했다.
“제가 도전해 보지요.”
내기 바구니에 한 푼을 지불하고 나타난 사람은 앳된 얼굴을 막 벗은 여인이었다.
“벗은 남자 몸에 손을 대는 게 좀 신경 쓰이지만···.”
“으응?”
저잣거리에 나온 구경꾼들은 새로 도전한 여인의 미모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누군데, 저리 예쁜 거지?”
“설마 미인계로 이겨볼 생각인가?”
“아니, 방금 거한의 장사도 실패했는데··· 어찌 저런 아낙네가?”
“아무래도 돈이 남아도는 여인이 남정네 가슴 한 번 만져보려고 나온 거 같아.”
“무슨 소리야? 저리 예쁜 처자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그런가···.”
주변 구경꾼들의 잡담을 무시한 여인은 자신의 잘록한 허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저는 무림인이니, 당신 가슴에 손을 붙이고 도전하겠어요.”
“아··· 무림인이셨군요?”
호봉조는 상대에게 포권을 취한 뒤,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저는 감숙성에서 차력(借力)과 보표로 먹고사는 호봉조라 합니다. 귀하의 존성대명을 알려주시겠습니까?”
“······.”
차력을 주업으로 생활하는 호봉조는 스스로 한 가지 규칙을 정해놓았다.
그것은 구대문파와 같은 뛰어난 명가의 문인들에게는 도전의 기회를 절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칫 내공력이 고강한 상대와 겨뤘다가는 내가 큰 부상을 입고 말거야.’
호봉조는 긴장된 기색으로 상대의 답변을 기다렸다.
하지만 미모의 여인은 가만히 이를 거부했다.
“그건 밝히고 싶지 않네요.”
“하하, 정 원치 않으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봉조는 할 수 없이 자세를 다잡았다.
“내공력만으로 절 이촌 이상 밀어내시면 성공입니다.”
“알겠어요.”
그 긴장된 순간, 난데없이 등장한 한 인영이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
“윤아! 잠깐 기다려!”
“왜?”
“너··· 지금 뭘 하려는 거야?”
“······.”
도전에 나선 여인만큼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은 순박한 눈방울을 반짝였다.
“네가 갑자기 사라져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자신을 자식처럼 쳐다보는 여인에게 정윤은 냉랭한 음성을 돌려주었다.
“이건 개인적인 일이니까. 교교, 너는 빠져있어.”
“아니, 나보고 빠지라고? 그건 절대 안 될 소리야. 사문을 나왔을 땐 서로를 더 보살펴야지!”
“······.”
두 여인의 대화를 듣고 선 호봉조는 두터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저기요? 여긴 영업하는 장소거든요? 도전을 하시긴 할 건가요?”
어렵사리 도교교를 밖으로 밀어낸 정윤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시작할게요.”
“윤아···.”
차분히 자세 잡는 정윤을 바라보던 도교교는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재는 왜 자꾸 이런 일에 나서는 거지? 겨우 은자 두 냥 벌려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아마 자기 무공성취를 확인하고 싶어서 저러는 걸 거야.’
약 일년 전, 두 여인은 청명한 달빛이 내리쬐는 밤에 정신을 잃었는데, 그날 이후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미천했던 내공력은 금세 반갑자를 상회하게 되었고, 곤륜파의 무공도 거의 대부분 이해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는 태허도룡검법과 태청용형검법을 대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두 여인은 장문인과 사문의 어른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는 중이었다.
- 짝 짝 짝
상대가 다가오길 계속 기다리던 호봉조는 자신의 가슴을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압! 하압! 자자, 할 수 있다!”
이번 도전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림인이어서 그는 일말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자, 시작 하십시오.”
“네··· 갑니다!”
여유로운 표정의 정윤은 상대의 우람한 가슴 근육에 가냘픈 오른손을 갖다 되었다.
“하압!”
그녀가 손에 공력을 집중하자, 그 주변으로 미세한 기류의 파동이 생겨났다.
- 쉬시식
정윤은 순간적으로 끌어올린 공력을 발경(發勁)하여 상대를 밀어냈는데, 손이 상대 가슴과 바짝 밀착된 상태임에도 큰 폭음이 터져 나왔다.
- 퍼퍼퍼퍽
호봉조는 그 강력한 장력에 적중되자,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신음소리를 터트렸다.
“윽!”
그리고 그의 신형은 발경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 스스스슥
뒤로 반걸음 가량 밀려난 호봉조는 가까스로 신형을 멈추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움직인 거리를 재어보니, 이 척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야, 정말 놀라운 발경이네요. 제 몸을 여기까지 밀어내시다니···.”
“실팬가?”
“그렇습니다. 아쉽지만···.”
“······.”
도전에 실패한 정윤은 고운 미간을 살짝 찡그리다가 바로 신형을 돌려세웠다.
‘외공을 수련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호신강기를 다루는 구나.’
호신강기(護身罡氣)는 단전의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는 상승의 무학이었다.
그리고 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고도의 수련과 상당량의 내공력이 뒷받침 돼야만 했다.
“······.”
정윤은 자신을 기다리는 도교교를 지나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호신강기를 운용하는 일류고수가 이런 내기로 돈을 벌다니··· 정말 한심한 사람이야.’
그녀는 구경꾼사이에서 아직도 넋을 빼는 도교교를 재촉했다.
“가자, 어차피 이 내기에서 저 사내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응? 어, 그래. 가자.”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 나온 두 사람은 방금 전의 일전에 대해 대화했다.
“저 남자는 호신강기를 다루는데, 그런 사람을 발경만으로 어찌 이척이나 밀어낼 수 있겠어?”
분기에 찬 정윤과 나란히 걸어가던 도교교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장사꾼이지. 자기가 패배할 내기를 제안하겠어? 그래도 너무 분해하지는 마. 어차피 한 푼 손해 봤을 뿐이니.”
“쳇, 지금 그 돈이 아까운 게 아니야. 저 정도 수준의 고수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어이없을 뿐.”
두 여인은 대충 대화를 마무리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 와아아아아아
귓전을 파고드는 그 큰 환호성에 정윤의 고개가 자연히 돌아갔다.
“무슨 일이지?”
이 환호 소리의 근원지는 말도 안 되는 내기가 벌어지는 장소였다.
“흐음···.”
도교교는 의아한 기색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아까 그 장사꾼을 누가 이겼나본데? 그러니 이리 큰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
“하···.”
심각한 표정의 정윤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못 이긴다니까? 호신강기를 두룬 무인을 발경만으로 누가 이 척이나 물러나게 하겠어?”
“그야, 또 모르는 거지···.”
“······.”
의문에 사로잡힌 두 사람은 해답을 얻기 위해 걸어왔던 장소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정말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이구, 나 죽네···.”
상체를 탈의한 호봉조는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서, 설마··· 내 배가 뚫린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의 복부에는 선명한 성인의 손바닥 자국이 찍혀져 있었다.
“아이구, 어므이!”
“······.”
바닥을 뒹구는 호봉조를 지켜보던 정윤은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구경꾼을 붙잡았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응? 아, 자넨 아무것도 못 봤나?”
“네, 이제 왔어요.”
“허허, 그것 참 안타깝군. 방금 어떤 청년이 무림인으로 도전해서 손을 뻗었는데, 저 사내가 일 장이나 뒤로 날아갔어.”
“발경만으로··· 상대를 일 장이나 날려버렸다고요?”
“그렇다니까.”
정윤은 이 황당한 이야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괜한 과장 말고 사실대로 말해줘요.”
“잉? 진짠데···.”
그녀의 거친 반문에 다른 구경꾼이 증인을 자처했다.
“과장이 아니야. 진짜 일 장 정도는 날아갔다니까? 어쩌면··· 더 멀리 날아갔을 수도 있고.”
“그럼 그 청년은 어디?”
“그는 자기가 힘 조절에 실패해서 미안하다고 했어. 그리고는 상금의 반만 갖고 사라졌지.”
“상금의 반이라면··· 은자 한냥?”
“그렇다니까.”
정윤은 상대 청년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 청년이 어디로 갔는지··· 보신 분 없습니까?”
그러자 구경꾼중 하나가 그녀의 관심을 받으려고 손을 치켜 올렸다.
“저쪽으로 가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너무 빨라서 확실하지는···.”
“윤아?”
정윤의 곁으로 바짝 다가온 도교교는 그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내기에 이긴 청년을 찾아가려는 거야?”
“맞아.”
“왜?”
정윤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궁금하지 않아? 그토록 강한 내공을 보유한 청년이 있다는 게···.”
“······.”
도교교 역시 최근 큰 무학의 진보를 이뤄서 상대 청년의 정체가 궁금했다.
“근데··· 너 그와 인사를 하려는 거야? 아니면 비무를 하려는 거야?”
산뜻한 미소를 머금은 정윤은 여유롭게 팔짱을 꼈다.
“그거야···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 작가의말
주인공의 여자 복(?)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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