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여정의 조건 (1)
“흐음···.”
조귀는 이들이 그저 시비를 벌이러온 무리가 아님을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북팽가라면 얼마 전, 자신이 암습한 대풍패도 장묵의 사문이었다.
‘이거 위험하군.’
이 하북팽가의 도객들은 결코 만만히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 아니다.
조귀는 퇴로를 막아선 그들의 합격진과 앞으로 나선 사내의 기도를 보고, 이 같은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감찰대장과 내통한 것이냐?”
일단 격전이 시작되면 조귀는 살아날 방도가 없다 여겼다.
그렇기에 괜스레 질문을 던져 시간을 끌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동생들을 희생시키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리 허무하게 죽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의 의중을 읽은 추뢰광도 마호진은 기수식(起手式)을 준비하며 자신의 애도를 비스듬히 세워 들었다.
“언젠가 성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나온다면 그자가 살괴삼마라는 언질을 받긴 했지··· 그날이 오늘 일지는 몰랐지만 말이야.”
“허허, 그런···.”
하북팽가의 가주인 자전군자 팽백리는 미리 감찰대장 진해광을 만나 살괴삼마를 자신들의 수중에 넘겨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장묵을 암습한 흉수를 자신들 손으로 죽여서 피의 보복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평상시의 진해광이라면 절대 이를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혈봉궁을 탄압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에 진해광은 그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대신 흉수에 대한 언급과 하북팽가가 전면에 나서는 행동을 자제하기로 말을 맞추었다.
마호진은 일말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자세로 상대에게 엄포를 놓았다.
“네놈 손에 죽은 장묵의 복수를 위해 사흘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오늘 우리는 하북팽가의 도법으로 네놈의 사지를 찢고, 잘게 도려낸 살점들을 모아다가 장묵의 영전에 바칠 것이다!”
섬뜩한 위협을 마주한 조귀는 음흉한 눈매를 번뜩였다.
“과연··· 네게 그런 역량이 있을까?”
- 파팟 팟
조귀는 마호진을 향해 빠르게 쏘아져 들어가며 쌍수를 내밀었다.
기습적인 선공을 가해 우위를 점할 생각인 것이다.
- 이이이잉
그는 미리부터 암경을 끌어올려서 이미 구 성에 육박하는 내공력이 손에 주입되어 있었다.
“하압!”
그 위협적인 장력에 살짝 놀란 마호진은 번개같이 신형을 뒤로 무르며 도를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살괴삼마는 혼자 상대할 수 없는 마두여서, 하북팽가의 다른 고수들과 연합술을 펼치려는 동작이었다.
- 차차차창 채채챙
사방에서 휘둘러진 십여 개의 도들이 수북한 잔영을 남기며 조귀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그의 하체를 노리는 이가 세 명, 상체를 노리는 이가 세 명, 전신 요혈을 노리는 이가 세 명이었다.
그리고 자리가 없어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몇몇 인원은 그 주변을 맴돌며 혹시 생길지 모르는 조귀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하하압!”
조귀는 이 촌(二寸)에 이르는 장경(掌勁)을 뿜어내며 잔혹한 절기를 수차례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의 강맹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하북팽가의 합격진을 상대로는 조금도 우위를 점할 수가 없었다.
‘쳇, 역시 만만찮은 놈들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진력은 고갈되어 갔고, 상대의 연합술은 더욱 예리하게 자신의 사혈을 노리고 들어왔다.
“크크, 고작 이 정도로 노부를 죽이려고?”
조귀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허세를 부렸지만, 그를 마주한 하북팽가의 고수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 채채챙 챙챙
그들이 만든 합격진의 위세가 대단해서 마두들 중에서도 상위에 해당하는 조귀조차 도저히 그 공세를 뚫을 수가 없었다.
결국 빈틈을 파고든 도기에 종아리를 베인 조귀는 있는 대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이놈들! 모두 다 쳐 죽이고 말겠다!!”
- 파팟 파팟
조귀가 자신의 성명절기를 사용하자, 가죽 북 터지는 음향이 장내를 수놓으며 몇몇 하북팽가의 고수들의 뒤로 물러났다.
이 순간, 조귀는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는 착각에 빠졌다.
‘오호라, 이제야?’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다른 고수가 빈자리를 채워 들어오며 더욱 강력한 합격진으로 그를 압박했다.
“크윽···.”
강맹한 경력이 담긴 도법이 사방에서 펼쳐지자, 조귀의 상반신 이곳저곳이 길게 찢어지며 진득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비겁한 놈들··· 하나씩 덤벼랏!”
“······.”
이들이 그와 일대일로 격전을 치렀다면 가장 무위가 출중한 마호진조차 조귀의 장법을 백초 이상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
마호진은 신광을 번뜩이며 손에 쥔 장도를 휘둘러 눈부신 도광(刀光)을 뿌렸다.
그러자 조귀의 옆구리가 길게 찢어지며 회복하기 힘든 깊은 상처가 만들어졌다.
“네놈들이 장묵을 암습할 때도 합공이지 않았느냐!”
“우린 세 명이었지, 열 명이 아니었다!”
“닥쳐라!”
조귀를 에워싼 하북팽가의 고수들은 분기가 차올라서 더욱 위협적인 절초들을 쏟아냈다.
수없이 많은 도영(刀影)에 둘러싸인 조귀는 이를 악물며 합격진의 빈틈을 찾아 벼락같이 눈알을 굴려댔다.
“이, 이···.”
“이놈아, 도망갈 생각은 버려라. 네놈은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
단호한 그들의 외침처럼 빈틈이라고는 정말 전혀 생기질 않았다.
조귀는 자신의 전신을 휘감아오는 장도를 정신없이 피해내고는 있었지만 딱 한순간에 온몸이 난도질당할 것만 같았다.
‘틀렸다··· 살아나갈 방도가 없어!’
죽음에 직면한 조귀의 눈빛이 광폭하게 불타올랐다.
“죽어야 한다면··· 내가 혼자 갈 성 싶으냐!”
생을 포기한 조귀는 전신 공력을 끌어올리며 지옥으로 함께 끌고 갈 희생자를 찾기 사위를 쏘아보았다.
- 흠칫
침착한 연합술을 펼치던 하북팽가의 고수들은 자신들을 쏘아보는 그 소름 끼치는 살기에 처음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 쓰윽
그들의 머뭇거림을 발견한 마호진은 스스로 표적이 되기 위해 일부러 반 발자국 더 앞으로 나섰다.
‘더 이상의 희생은 허락되지 않는다. 반드시 저 악적을 죽이고 모두 살아서 돌아가야 해!’
마호진은 모든 공력을 도에 주입하며 오호단문도의 절초를 연달아 펼쳐냈다.
그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한 하북팽가의 고수들은 다시 전의를 불태우며 저마다 맡은 자리로 몸을 날렸다.
- 파팟 팟 팟
전신공력을 끌어올린 조귀의 장과 이들의 연합진이 맞부딪치는 순간, 주변 일대를 쓸어버리는 막강한 경력(經力)의 회오리가 생성되며 거대한 먼지바람이 대나무 숲을 뒤덮어버렸다.
- 콰과과과과광
자욱한 흙덩어리는 하늘로 치솟고 사방으로 뻗은 대나무는 충격을 견디지 못해 그대로 터져나갔다.
- 채채챙 챙챙 퍼퍽 퍽퍽
수백 초에 달하는 격전이 끝나자, 자욱한 먼지 구름이 제자리를 찾아 차분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격전의 현장이 들어났는데,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유혈이 낭자한 모습이었다.
- 쓰으윽
하북팽가 문인들의 단정했던 의복은 가슴팍 부근부터 발끝까지 누더기로 변한 채 간신히 형체만을 유지했다.
“헉헉···.”
“헉, 헉···.”
그런데 이제 대나무 숲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험악한 흙덩이 지대에 널브러진 인영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그곳에 서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윤곽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그는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붙어있는 괴형상이었다.
“······.”
괴인은 팔이 남들보다 두 개가 더 많은 대신 두 다리와 목이 떨어져 나간 끔찍한 형상이었다.
이 괴형상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다가 결국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 털썩
뒤늦게 바닥에 엎어진 괴형상은 바로 조귀였다.
그는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에 손을 빛살처럼 뻗어내어 공세를 펼쳐오는 하북팽가 고수 두 명의 팔을 뜯어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조귀는 양쪽 다리와 목이 잘려 나갔는데, 바닥을 구르는 그의 얼굴에는 섬뜩한 미소가 가득했다.
“하아···.”
마호진은 팔이 뜯겨 나간 이들을 급히 지혈하고 이를 악물었다.
“독한 놈!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끝까지 그냥 가질 않는구나.”
대나무 숲은 처참한 격전을 맞아 청아했던 제 모습을 잃고 여기저기 깊은 구덩이가 파헤쳐진 상태였다.
- 데굴 데굴
잘려나간 조귀의 머리는 불어오는 바람에 이끌려 움푹 파인 구덩이 중 하나로 들어가 버렸다.
- 쓰 윽
마호진은 구덩이에 빠진 조귀의 머리로 들어 올렸는데, 인육을 좋아하던 생전과는 다르게 입 안 가득 흙덩이를 문 모습이었다.
“짐승만도 못한 놈!”
마호진은 잘려나간 조귀의 머리를 챙겨 왕래문을 지키고 선 감찰대에게 넘겼다.
그러고는 조귀의 남은 몸뚱이를 목조함에 넣고 중원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 스스슥 터벅 터벅
마호진과 하북팽가의 고수들은 한 많은 사연을 뒤로한 채, 가주 팽백리가 기다리는 하북성을 향해 발걸음을 다잡았다.
***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고목 위에서 밤의 한기를 만끽하던 수라대 정예 대원 사호(四號)는 낯선 인기척에 숨을 죽였다.
- 프득 프득
“······.”
잔디를 밟는 걸음 소리가 무척 가볍고 신속한 것으로 보아 상대는 절정의 신법을 익힌 고수가 틀림없었다.
‘이 시간에 누굴까?’
사호는 숨소리뿐 아니라 심장 박동마저 뛰지 않게끔 조절하며 극한의 은형술을 펼쳤다.
그의 은형술은 수라대원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어서 지금껏 어떤 고수에게도 발각된 적이 없었다.
“거기 자네··· 미안하지만 뭣 좀 물어봐도 되겠나?”
“······.”
사호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헛바람을 삼킬 뻔했다.
고목 아래로 다가온 낯선 인영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젖히며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천라금쇄진의 한 방위를 지키고선 사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낯선 인영이 다시 음성을 건네 왔다.
“물론 자네도 자네의 입장이 있겠지··· 허나 노부가 조금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그렇다네.”
멈췄던 심장을 다시 소생시킨 사호는 할 수 없이 말을 받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상대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무시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또, 자신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차린 노인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난감한 상황에 처했어. 여기까지 와서 설마 길을 잃을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사호는 상대의 말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려고 입을 다물었다.
“······.”
지긋한 연배의 노인은 분명 상승 절학을 익힌 절정 고수가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귀신같이 숨어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이처럼 간단히 알아낼 리가 없는 것이다.
헌데 그런 절정 고수가 숲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니··· 의심이 들 만한 상황이었다.
‘저 노인에게서 살기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음, 그렇다면 정말 길을 잃은 걸까?’
말이 없는 사호에게 노인은 수줍은 헛기침을 토해냈다.
“흠흠, 능운령의 번화가를 못 찾는 게 아니라··· 이 근처에 객잔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보이질 않는군. 벌써 이 주변을 세 번이나 돌았다네.”
“세 번을 돌았다고요?”
사호는 그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노인이 자신의 주변을 세 번이나 돌고 있을 동안 그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찌 그런?”
흑의를 입은 사호가 계속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노인은 가만히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노부가 가만히 보니, 주변 수백 장이 넘는 구역을 자네와 같은 사람이 지키고 섰더군? 혹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겐가?”
“······!”
이제 사호는 노인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장소에 매복 중인 수라대원이 저 노인을 발견했다면 분명 신호를 보내왔을 것인데 지금껏 아무런 신호도 받지 못한 것이다.
‘이 노인은 진정 뛰어난 절정고수다. 무공 수위가 무영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겠어. 절대···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한 사호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 객잔은 왜 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왜 가려고 하기는? 당연히 볼일이 있으니까 가려는 게지.”
“그런데··· 꼭 지금 가셔야겠습니까?”
그 말에 노인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혹시, 자네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유가 그 객잔을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
사호가 입을 다물자, 노인이 섬광처럼 신형을 날려 그가 몸을 의지한 고목의 나뭇가지 위로 내려섰다.
- 턱
그 속도가 상상을 불허할 만큼 가공스러워서 사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시, 실로 엄청난 고수로구나!’
노인과 마주한 사호는 조심히 방어 자세를 갖췄다.
“그것은 발설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백의를 입은 노인은 작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자네는 운학서생을 호위하는 감찰대인가 보군? 그러지 말고 객잔으로 안내를 좀 해주게. 그를 만나기로 했는데··· 도통 찾을 수가 있어야지.”
사호는 자신을 감찰대로 오해한 노인을 앞에 두고 이를 어찌 처리할지 고심했다.
‘소교주님께서는 아무도 객잔에 들이지 말라 하셨는데···.’
사호는 노인의 부담스런 시선에 일단 다른 수라대원과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일단 절 따라오십시오.”
- 작가의말
소교주 설주연을 싫어하는 분이 많으신데, 나름 그녀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ㅠ_ㅠ)
그녀를 바로 처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처음 이 글을 적을때, 뭔가 시원한 해방감을 나타내려는 의도보다는...
주인공도 온갖 궤계가 난무하는 중원 무림에서 작은 실수 하나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긴장감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그 취지와 형식이 요새 트렌드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저도 그저 묵묵히 성실 연재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님들의 소중한 의견과 댓글 모두 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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