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신무적

스며드는 음모의 먹이사슬 (5)

단호하면서도 험악한 음성을 발한 이는 창룡제왕 귀춘이었다.

그는 무림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절정 고수로 무위로는 감찰대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다.

“우리가 빤히 보고 있는데,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귀춘은 감찰대를 농락한 이 상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

그의 시선을 받은 이는 비도를 던진 무영이었다.

“나는 말을 듣지 않는 미물을 죽였을 뿐, 사람을 죽인 게 아니네.”

무영의 거리낌 없는 대답에 귀춘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벌인 살행이 그저 미물을 죽인 행위란 말입니까?”

“그렇네.”

귀춘은 상대의 신분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서 그를 하대하지 않았다.

“흐음···.”

그런데 지금 운집대에는 능운령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이 사안을 그냥 넘어가면 이후에 큰 말썽이 생길지도 몰랐다.

“현재 능운령은 비상운행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사소한 행동거지도 조사를 받을 수 있지요.”

결국 물의를 일으켰으니, 감찰대가 당신을 조사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무영은 난색을 표하며 비무대로 올라가 군중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 감찰대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은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잡아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귀춘이 그의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자, 무영이 다시 소리쳤다.

“내가 흑곰을 죽인 것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그러면 무슨 명분으로 날 조사하겠다는 건가?”

“······.”

무영의 태도가 이리 당당한 것은 천마옥녀 설주연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곤란하군.”

상황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자, 귀춘은 입술을 작게 깨물며 신형을 돌려 세웠다.

“이번 사안이 아니라도 감찰대는 모든 사람을 심문할 권한이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마룡보로 찾아가도록 하지요.”

“내 기다리지···.”

감찰대가 모두 물러나자, 무영은 괴이한 미소를 흘리며 아직 비무대에 남아 있는 조은평을 쏘아보았다.

“청성파의 조은평이라 했나? 잊지 못할 이름이군.”

조은평은 말라가는 자신의 입술을 혀로 적시며 그 부담스런 시선을 회피했다.

표독스런 인상의 무영이 신법을 발휘해 장내에서 사라지자, 구경꾼들은 그제야 각자의 생활 처로 해산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무황조의 귀춘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다니?”

“아까 그가 마룡보를 언급했지? 그렇다면 마의를 입은 노인은 분명 마교인이네.”

“어쩐지 그래서 기도가 보통 무인과는 확연히 달랐구먼?”

“··· 자네는 기도도 느끼지 못하면서 왜 만날 그런 소리를 늘어놓나?”

“······.”

벌떼처럼 몰려들었던 인파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자, 비무대에 멀뚱히 남은 조은평이 홀로 콧등을 매만졌다.

“흐흐···.”

그는 자신을 향해 외쳐진 사람들의 환호성을 떠올리고 맛깔스런 웃음에 취했다.

“흐흐, 이런 영화를 누비다니···.”

“승리는 언제나 달콤한 법이지요.”

자신에게 바짝 다가온 강대운을 뒤늦게 발견한 조은평은 몸에서 나는 악취도 생각지 않고 그를 껴안았다.

- 와락

“강 서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일로 저와 청성파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아, 알았습니다. 그러니 쫌···.”

어렵사리 조은평을 떼어낸 강대운은 어색한 미소를 선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나를 얻고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에 조은평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강대운은 사라져버린 설주연의 자취를 쫒다가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일단 제가 아는 객잔으로 이동하시죠.”

드디어 객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조은평의 마음이 다시 다급해졌다.

더 이상의 노숙은 사양인 것이다.

“제 사형과 사저도 데려가셔야죠?”

“그럼요, 먼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십시오.”

강대운은 비무대를 떠나기 전에 비도에 맞아 절명한 흑곰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어차피 죽을 놈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경갑흑웅을 죽음으로 내몰아 감찰대를 자극하려 한 거야···.’

조은평을 따라 걸어가던 강대운은 말없이 상념에 빠져들었다.

‘현재 마교를 대표하는 그녀가 이처럼 무모하게 일을 벌이다니? 이번 일로 어떤 처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감찰대와의 관계가 무척 껄끄러워질 텐데··· 흠, 설마 마교도 연맹에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걸까?’

강대운이 천마옥녀 설주연의 모든 의중을 알아차리기에는 아직 정보가 부족했다.

- 스슥 스슥

능운령의 변방 수림지대로 들어가자, 녹색 수풀이 크게 우거지며 길이라 불릴만한 지형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수풀을 헤치며 걸어가는 두 청년 앞에 갑자기 왠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 쓰윽

“앗! 깜짝 놀랐잖아요?”

“무슨 소리? 내가 더 놀랐다.”

조은평은 갑자기 고개를 내밀며 나타난 사화령 때문에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

반면 다른 상념에 빠져 있었던 강대운은 그다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이 근방에서 노숙을 하고 계신 거군요?”

강대운을 발견한 사화령은 작게 고개를 조아리며 포권을 취했다.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강 서생님을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정녕 몰랐네요.”

강대운은 그녀를 향해 상투적인 미소를 선보였다.

“모르시는 것이 더 있습니다.”

“······?”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객잔이 하나 나오는데, 지내시기에 불편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 정말요? 이런 외지에 객잔이 있다고요?”

사화령은 변방에 자리한 선불객잔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전해 들었다.

“그렇군요. 제 사형이 저 수풀 너머에서 불을 지피고 있으니, 제가 모시고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그쪽은 객잔으로 가는 방향이니, 같이 가시지요.”

“네, 좋아요.”

그런데 한편에 늠름한 자세로 선 조은평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작게 삐죽거렸다.

“사저님, 내가 오늘 큰일을 해냈어요!”

그의 들뜬 음색에 사화령이 미간을 구겨왔다.

“큰일이고 자시고 간에 넌 항상 왜 이리 늦게 다니는 거야? 식재료 하나 사 오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사화령은 상대를 한바탕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 상태이나 운학서생의 존재 때문에 본래 성격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눈치 없는 조은평은 더욱 깝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저는 청성파의 명성을 드높이는 엄청난 일을 수행하고 왔으니까요.”

“뭐? 너 설마 또 사고 친 거야?”

“사고가 아니라니까요!”

“웃기지 마. 에휴··· 아무튼 넌 이따 죽을 줄 알아.”

***

정사연맹 총단의 가장 깊고 은밀한 위치에는 운무신전이라 불리는 뇌옥(牢獄)이 존재했다.

중죄를 범한 죄인들이나 사건의 용의자들을 잡아다 심문하는 곳으로, 능운령의 모든 이들이 이 운무신전에 잡혀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감찰대의 직할 구역이기도 한 운무신전은 지하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층마다 수십여 개의 뇌옥들이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중 지하 삼 층에 위치한 뇌옥은 가장 악독하고 흉악한 죄인들만을 가두는 곳으로, 이곳의 죄수들은 무위가 출중하고 성품이 매우 포악해서 최고 수준의 방비를 갖춰 놓아야만 했다.

그런 지하 삼 층 뇌옥들 중에서도 가장 그늘진 뇌옥에 체형이 기형(畸形)적으로 움츠러든 노인이 기거하고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거칠게 노성을 발했다.

“왜 날 죽이지 않는 것이냐!”

그를 바라본 운영지존 진해광은 담담히 시선을 맞추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죽는 것도 때가 있는 것이다.”

노인은 노린내 나는 더러운 이빨을 손가락으로 쑤셔댔다.

“이제 보니 감찰 대장도 참 웃기는 놈이군. 날 잡겠다고 능운령 전체에 금지령을 선포할 때는 언제고, 잡고 나니 쥐도 새도 모르게 감금만 할 뿐 처벌을 미루니 말이야.”

뇌옥에 갇힌 노인은 더러운 가래침을 바닥에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퉷, 결국 네놈들의 다른 속셈 때문에 날 이용한 거겠지. 더러운 놈들···.”

“······.”

진해광은 무심한 눈길로 그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살괴일수 조귀, 참 말이 많은 마두로구나. 보통 노마두들은 죽을 때가 오면 말이 없어지던데?”

조귀는 괴이한 미소를 머금으며 크게 소리쳤다.

“어차피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다! 죽이려면 빨리 죽여라!”

“그리 죽고 싶으면 스스로 자결을 해라.”

괴석사지에서 홀로 도망쳐 나온 조귀는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자신의 두 형제를 희생시킨 대가로 목숨을 부지했건만, 능운령 전역에 비상운행 금지령이 발동되어 한바탕 난리가 난 것이다.

전에 대풍패도 장묵을 없애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평소라면 극한의 경공으로 성벽을 뛰어넘었겠지만, 금지령이 선포된 이후는 감찰대원이 사방에 깔려있어서 그곳을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뭔가 이상했다.

철저한 경계 태세를 갖춘 감찰대의 방어선에 빈틈이 존재하는 것이다.

상황 판단이 빠른 조귀는 이것이 자신을 위한 배려임을 알아차리고는 큰 의문을 품었다.

이들은 자신을 도울 어떤 이유나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계의 빈틈이 자신을 잡기위한 함정이라고 여겼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능운령에서도 흉수를 잡는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자신의 신상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돌지 않았다.

능운령을 멋대로 돌아다니던 조귀는 이 의문의 해답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감찰대에 자수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감찰대장을 불러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으헤헤, 감찰대장? 보아하니, 목적은 내가 아닌 듯한데··· 노부를 이용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굳이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겠군.”

“으흐흐흐, 그래? 그럼 내가 한번 말해 볼까?”

조귀는 자신의 겨드랑이를 긁으며 입술을 들썩였다.

“내가 자수하기 전에 쭉 지켜보니, 감찰대에서 많은 무림인을 잡아가더군? 그들 중에는 나와 면식이 있던 놈들도 여럿 있었어··· 그 녀석들 내력을 면밀히 살펴보면 답이 무척 간단하지.”

“그렇던가?”

“그래, 아주 쉬웠어. 너희가 잡아간 무림인들은 대부분이 혈봉궁에 소속된 녀석들이야. 너희 감찰대는 흉수를 잡겠다는 명분으로 지금 혈봉궁인을 색출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진해광은 말없이 굳게 닫힌 옥문(獄門)을 열고 조귀에게 다가갔다.

- 끼이이 터벅 터벅

냉랭한 눈빛의 진해광이 살벌한 살기를 내보이자, 조귀의 짤막한 신형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뭐, 뭐야?”

그가 아무리 악명을 떨치는 마두라 해도 감찰대장의 무위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다.

조귀는 연신 뒤로 물러서며 경각심을 일으켜 세웠다.

“무슨 속셈이냐?”

“아까 죽고 싶다고 했으니··· 그 말을 들어주려는 거다.”

무심히 다가오는 진해광을 피해 조귀는 귀신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괴습지에서 살행을 행한 자는 공개 처형하는 것이 법도임을 알고 있다! 날 죽이려거든··· 만인들 앞에서 죽여라!”

- 멈칫

진해광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 어떤 사안이든 공명정대한 사리판단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자신들의 치부를 조금 안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살수를 펼치는 일은 그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조귀의 말대로 그는 이곳이 아닌 처형대에서 죽어야 마땅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죽이진 않겠다. 그보다···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뭔가?”

뇌옥의 차디찬 벽에 바싹 붙은 조귀는 겨우 안정을 찾으며 말을 받았다.

“헤헤, 난 그다지 혈봉궁과 친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걸 준다면 자네와 거래를 하도록 하지.”

조귀는 주변 눈치를 살피며 전과 달리 작게 소곤거렸다.

“날 능운령 밖으로 내보내줘, 그러면 혈봉궁 책사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겠네.”

“······!”

진중한 표정의 진해광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네가 혈봉궁 책사의 위치를 안다고?”

“그렇다니까.”

감찰대는 수많은 혈봉궁인을 잡아들여 심문했지만 핵심 수뇌부인 그들의 책사를 찾지 못했다.

흉수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심문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모든 혈봉궁인들은 자궁(自宮)의 사대책사에 대한 완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감찰대는 현재 수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혈봉궁 책사의 위치를 알고 있다? 흠···.”

비상운행 금지령이 오래 지속되면 천하 무림인들의 원성이 더욱 커져갈 것이어서 진해광은 상황을 조속히 마무리 하고 싶었다.

“네가 알려줄 책사의 정체가 진짜로 판명난다면··· 내 이름을 걸고 자넬 놓아주겠네.”

“이름을 걸겠다고?”

“그래, 이름을 걸겠다. 그게 내가 보장할 수 있는 최대의 조건이다.”

“······.”

작가의말

그저 성실히 연재할게요~

[은색의왕]

잘 보고 가요

[ga******]

ㄳ

[소주병]

즐건 주말 되시길`````````

[통금시간]

잘 보고 갑니다.

[정생활남아]

이기면 금자 주기로 한 것 같은데?

[문생(門生)]

그걸 기억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물물방울]

99번째 추천. 대박입니다.

[마아카로니]

건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