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전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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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운은 묵묵히 언덕 아래 위치한 물웅덩이를 가리켰다.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겁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이서를 위해 강대운이 친절한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저 웅덩이는 배설하는 금수들의 종류에 따라서 각기 그 냄새와 기운이 다릅니다. 이서님이 과거 그 웅덩이 안에 들어갔었을 때의 기감을 기억하신다면 오융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런가?”
하지만 확인해야할 사항도 존재했다.
“그런데 내가 그 웅덩이에 들어간 것은 삼십 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기감이 그대로일까?”
강대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이곳 금수들은 쉽게 안식처를 바꾸지 않거든요. 오용나무가 있는 부근에 측간을 써야 하니까··· 먼저 저 웅덩이부터 확인해 볼까요?”
“알겠네.”
- 휘릭
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언덕 아래 자리한 웅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 풍덩
그렇게 숱한 늪지대를 지나면서도 정갈했던 이서의 복장이 단번에 물에 빠진 생쥐의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 쓰르륵
웅덩이를 헤치고 나온 이서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차가운 느낌이 아니었네.”
정말 다행인 것은 이서가 과거 웅덩이에 빠졌을 때에도 기감을 느끼는 수준에 올랐단 점이었다.
이후 일행은 오융나무가 아닌 배변 웅덩이만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어서, 수십 개의 웅덩이를 찾아도 이서는 매번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도 아니네.”
이서는 며칠 동안 수십 차례 배변 웅덩이를 넘나들었는데 다행히 추위나 불쾌한 감각을 느끼진 않았다.
- 쓰스슥
주변을 둘러보고 온 무영이 또 하나의 웅덩이를 발견하고 이서에게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에도 있네.”
“고맙네.”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웅덩이에 몸을 담근 이서는 크게 놀라며 돌연 무시무시한 현광(顯光)을 터트렸다.
“그래, 바로 이곳이야!”
삼일 만에 그날의 웅덩이를 찾게 된 강대운은 크게 화색을 띠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았네요. 이제 이 주변을 뒤져보면 오융나무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날의 뇌전혈견도 마주하게 되겠지요.”
- 스르륵 터벅 터벅
웅덩이에서 올라온 이서는 한 차례 신형을 흔들며 강맹한 무형지기와 열기를 방출해 냈다.
- 쉬이이이이
그 기운과 열기가 실로 전율스러워서 지척에 서 있던 무영과 소계성이 크게 놀라 뒤로 물러났다.
“허허···.”
“흠.”
설주연을 지키고 선 일 호와 이 호는 몸이 얼어붙었는지, 발조차 떼지 못하고 작게 입을 벌렸다.
“······.”
이서가 이 같은 신위를 보인 이유는 의복을 젖힌 수분을 날려버릴 목적에서였는데, 점차 그날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제 되었네··· 이젠 나 혼자서 볼일을 마칠 테니, 모두 가보게나.”
“네?”
그를 마주한 강대운이 서둘러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오융나무를 찾아 뇌전혈견을 격퇴하신 다음엔 어찌하려 하십니까? 정말 옥비녀를 찾아 계속 머무실 겁니까?”
무형신검 이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존재의 의미는 그것을 다시 되찾는 것이네. 옥비녀를 찾지 못한다면··· 난 그날 죽는 게 나았어. 그러니 그것을 찾기 전엔 절대 이곳을 나가지 않을 거야.”
“······.”
강대운은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삼십 년 전에 잃어버린 옥비녀를 되찾겠다니?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침울해진 일행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
그중에서도 무영은 이 같은 상황에 기가 차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조금 전 느꼈던 기도로 보건대 그의 무공은 화경(化境)에 근접해 있다. 헌데 그깟 옥비녀 때문에 목숨을 버리겠다고?’
아무리 절정의 무위를 갖춘 고수라 할지라도 만괴사침에서 혼자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했다.
운학서생이 떠나 버린다면 그의 목숨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흐음···.”
강대운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혹, 그가 옥비녀를 찾는다 해도 자신이 없다면 살아서 능운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에휴, 어차피 설득도 불가하니···.’
일행의 안내인인 강대운은 가장 합리적인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서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꼭 다시 살아서 뵐 수 있기를 소원하겠습니다.”
이서는 그를 향해 담담히 포권을 취했다.
“나도 자넬 만나서 무척 기뻤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야.”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별을 맞이한 강대운은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 쓰윽
슬쩍 설주연을 훔쳐본 강대운은 속으로 단단히 결의를 다졌다.
‘능사구미호를 잡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운무궤계를 향해 발길을 잡은 강대운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가 피어났다.
***
운무궤계를 향해 이틀 동안 걸어온 강대운은 점차 주변 지형이 변하며 짙은 안개가 덮쳐오자,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알아차렸다.
“거의 다 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은 긴장감이 가득 밴 표정으로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이제 곧 운무궤계의 영역 안입니다. 이곳의 안개에는 미약하지만 정신을 혼미케하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모두들 이 청심환을 복용하십시오.”
일행 모두가 환약을 하나씩 입에 털어 넣었는데, 유독 무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흠···.”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며 침음성을 흘렸다.
만괴사침도 만만한 장소가 아닌데, 그보다 더 위험한 운무궤계를 들어가려니 내키지가 않는 것이다.
무영은 행여나 소교주의 안위를 지키지 못할까봐 걱정이 태산처럼 불어났다.
‘이서··· 그 인간의 부재가 무척 아쉽군.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무위만큼은 믿을만 했는데···.’
근심에 싸인 무영의 입에서 심경을 드러내는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강 서생, 정말 이대로 괜찮겠나?”
나무덩굴을 치우며 길을 개척하던 강대운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걱정이 되시나 보군요?”
무영은 소교주 때문에 이 여정에 동행하긴 하였으나 만만찮은 금수들의 무위에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인정했다.
“솔직히 그렇다네. 만괴사침도 힘에 부쳤는데, 더 위험한 곳으로 가려니···.”
강대운은 새삼스런 눈빛으로 무영을 응시했다.
독불장군처럼 꽉 막힌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난처한 상황에서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대장부인 것이다.
“사람들은 운무궤계가 괴습지 깊숙한 곳에 있어서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히려 잘못된 상식입니다.”
그러자 그의 곁으로 바짝 붙은 설주연이 의문을 표해왔다.
“그게 무슨 말이죠? 당연히 운무궤계가 더 위험하지 않나요?”
그들이 소속된 천마신교는 백여 년 전 괴습지를 정벌하려한 전례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 마교는 이 괴습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뼈저리게 체험한 당사자였다.
무엇보다 마교 역사상 두 번째로 강했던 혈마대제가 죽은 곳이 운무궤계여서 모든 마교인은 이 장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무영은 소교주말에 동의를 표하며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운무궤계가 매우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강대운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강대운은 일행을 향해 몸을 돌려 세우고 입을 열었다.
“분명 운무궤계의 금수는 매우 강합니다. 다른 지역의 금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지요. 하지만··· 위험하기로만 따진다면 만괴사침이 더 위험합니다.”
그를 지켜보던 소계성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강대운은 조심히 일행을 이끌며 작게 중얼거렸다.
“해가 지고 있으니, 가면서 설명하지요.”
모두가 자신의 뒤를 따르자, 강대운이 다시 말을 이었다.
“보통 삼류 고수가 일류 고수보다 호승심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그처럼 운무궤계의 금수들은 막강한 자신의 무위에 심취해 있어서 선공을 가하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몇 가지 사안만 지킨다면 큰 위험은 없을 겁니다.”
설주연은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질문을 낚아챘다.
“무리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 말인가요?”
“그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겁니다. 운무궤계에서는 먼저 어떤 금수를 만나더라도 절대 살기나 적의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자기에게 도전하는 생명체로 인식하면 바로 공격을 해오니까요.”
강대운은 일행을 둘러보며 계속 당부의 말을 전했다.
“또 단순히 눈을 맞추는 행위만으로도 상대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눈을 내리깔고 다녀야 하지요. 전에 종남삼검과 비연천림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너무 땅만 바라보고 다니다가 혈광아귀와(血光餓鬼蛙)라 불리는 미친 개구리에게 시비가 붙어 죽을 뻔 했습니다.”
“······.”
“······.”
무림명숙으로 평가받는 종남삼검이 고작 개구리에게 고전했다는 이야기에 마교인들은 하나같이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지만 무영은 고심 끝에 이를 진중하게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조심하면 되겠군.”
“······.”
“······.”
그리고 이번에도 일호와 이호는 말없이 강대운이 건네는 말을 경청하기만 했다.
‘흐음?’
강대운은 문득 그들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져서 잠시 입맛을 다셨다.
“쩝··· 그리고 다음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주변 기물과 지형지물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철저히 구별해 놓아서 자기 물건에 손을 대면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때 설주연이 가벼운 농을 던져왔다.
“저도 제 물건을 남이 만지지 못하게 하는데··· 그들도 저와 같은 마음일까요?”
그녀를 마주한 강대운은 농을 받아줄 마음이 없는지, 단호히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금수입니다. 그러니 똑같은 수준으로 행동하면 안 되겠죠?”
“강 오라버니? 혹시 전에 제가 말한 경고를 잊으신 건 아니시죠?”
당당한 설주연의 되물음에 강대운은 착잡히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히 기억하지요. 그 일로 잠까지 설치고 있습니다.”
“과연 명석한 제 오라버니는 다르군요.”
강대운은 화제를 돌리려고 오른손을 들어 일행을 멈춰 세웠다.
“사실 여기부터가 진짜 운무궤계입니다.”
- 휘이이이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음산한 바람이 불어와 그들의 옷자락을 헤집고 지나갔다.
사위로 보이는 것은 온통 허연 안개와 희끗한 형상들뿐이었다.
설주연은 일 장 앞도 구별이 되지 않아 쓰고 있던 방립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가시거리가 무척 짧군요. 혹시 이 운무가 어디서 오는지 아시나요?”
강대운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얼마 전에 알게 된 것인데, 운무궤계의 가장자리에 거대한 폭포가 있더군요. 그 폭은 오 리에 달하는데 거기서 떨어져 내리는 막대한 양의 폭포수가 운무로 피어오르며 운무궤계 전체를 감싸버린 것 같습니다.”
안력에 공력을 집중시킨 무영은 놀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폭포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이 드넓은 지역을 뒤덮었단 말인가? 그런 황당한 소리는 처음이군.”
“뭐, 괴습지의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 한 두 가지인가요?”
짙은 안개에 뒤덮인 운무궤계는 축축한 수림과 늪으로 이루어진 습지,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이곳은 일반 동물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 탓에 수풀이 매우 우거지고 길이라 부를 만한 지대조차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강대운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며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지금부터는 잡담을 금하고 오로지 몸짓과 손짓, 그리고 전음으로만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대화 소리조차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 그런···.”
이런 상황에 가장 난처한 사람은 바로 설주연이었다.
그녀는 무공 수위가 미천하여 전음술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강대운도 전음술은 쓰지 못했지만 그는 필요시마다 우스꽝스런 몸짓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하아···”
설주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푸념을 곱씹었다.
‘쳇, 당분간 묵언수행이나 해야겠네···.’
강대운은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걸음을 옮겨 나갔다.
- 터벅 터벅
사실 운무궤계의 몇몇 지역에서만 대화 소리를 조심하면 되는데, 설주연의 질문이 귀찮은 강대운이 이를 막아선 것이었다.
이를 아는 사람은 오직 소계성뿐이어서 그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 씨익
강대운은 의미심장한 몸짓으로 소계성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
그러자 소계성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 보지도 못한 헛동작을 제외하고 보면 결국 조용히 모른 척 있으라는 말이군.’
강대운이 보낸 몸짓은 그저 설주연에게 이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무언가 긴장된 상황이라 생각하고 주변을 잔뜩 경계했다.
그때 일행의 앞쪽에서 날카로운 괴성이 들려왔다.
- 퀘퀘퀘퀘
“······!”
“······!”
모두의 신형이 돌처럼 굳어버렸는데, 안개로 뒤덮인 늪지대 속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 작가의말
실제로 보면 매우 공포스럽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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