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전개 (3)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강대운은 가만히 있으라는 듯 일행을 안정시키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멀리 집어 던졌다.
- 휙
- 퀘퀘퀘퀘퀘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는 그 나뭇가지를 주우려고 늪 속으로 다시 들어가 멀리 사라져버렸다.
“······.”
강대운은 그제야 속삭이듯 말했다.
“저건 무퇴두기의 일종인데 관심을 받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습니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물건을 던져주면 좋아하더군요.”
설주연은 지금은 말해도 되는 때인 것 같아 급히 입을 열었다.
“무퇴두기라면 두더지 말인가요?”
“예, 늪에 사는 두더지입니다.”
“저건 귀엽게 생겼나요?”
“······.”
강대운은 점점 말이 많아지는 이 여인의 입을 막을 생각으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못생긴 놈입니다··· 그보다 이제부터는 더욱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와 좀 더 대화를 하고 싶은 설주연은 아쉬운 마음에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치···.”
강대운은 일행은 이끌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는데 이후로는 정말 단 한마디도 하질 않았다.
- 터벅 터벅
조심스레 앞서 걷던 강대운은 안개 속에서 적당한 크기의 동혈 하나를 발견하고는 모두를 불러 모았다.
“소 노사님, 안쪽을 살펴주시겠습니까?”
“알겠네.”
일다경의 시간 동안 동혈 정찰을 마친 소계성은 일행이 머무는 장소로 돌아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 모두가 동혈 속으로 들어오자, 그제야 오랜 침묵이 막을 내렸다.
“이 동혈은 안전하군요. 가끔 인면지주(人面蜘蛛)가 사는 곳이 있는데, 그놈은 무척 위험한 녀석입니다.”
그 말에 소계성이 작은 반박을 가해왔다.
“강 서생이 위험한 적은 없지 않았나? 살펴보던 나만 죽을 뻔했지···.”
“소 노사님이 위험한 것이 제가 위험한 것이지요.”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설주연은 메고 있던 봇짐을 내려놓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이리 재미없고 피곤한 여정일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예요.”
강대운은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그녀에게 슬쩍 다가섰다.
“어떤 여정을 기대하신 겁니까?”
“당연히 신비한 동물들이 가득한 숲 속에서 기이한 영약과 약초를 발견하게 될 줄 알았죠. 또 만약 진귀한 영물이 머리를 살포시 내밀면 살짝 다가가서 안아주려고 했고요.”
설주연은 실망어린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강 오라버니, 이제까지 마주한 동물 중에 귀여운 녀석은 하나도 없었던 거 아시나요?”
“하하하, 그래서 제가 미리 경고했지 않습니까? 그리 편안한 여정은 아닐 거라고.”
“······.”
설주연은 그동안 불만을 크게 표하진 않았으나 사실 이런 여정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가혹한 것이었다.
그녀는 어디를 가든 네 마리의 한혈마가 끄는 사두마차(四頭馬車)안에서 편안한 여정을 즐겨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머나먼 곳으로 여정을 가더라도 심신이 이처럼 피곤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벌써 보름이 넘도록 노숙과 강행군을 반복했고, 목욕은 고사하고 세안조차 하지 못한 찝찝한 상태였다.
“아, 답답해···.”
게다가 머리에 쓴 방립은 점차 갑갑해져 갔고, 불쾌한 촉감에 냄새마저 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고··· 강 오라버니, 그 능사구미호는 언제쯤 포획할 수 있을까요?”
설주연의 진득한 물음에 강대운은 볼 주위를 긁적였다.
“글쎄요, 저도 그 여우는 몇 번 본 것이 고작이어서요.”
“흐음, 그래도 다행이네요. 실존하기는 한다는 말이니···.”
강대운은 일행의 상태를 둘러보다가 나직한 음성을 발했다.
“하루 이틀 여기서 푹 쉬면서 원기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많이 지치신 것 같으니까요.”
사실 무영과 수라대의 일 호, 이 호는 뼈를 깎는 수련으로 단련된 무인이어서 이 정도의 강행군으로 지칠 체력이 아니었다.
“예···.”
그런데 일 호는 아직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군을 벌여 몸에 이상이 온듯했다.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무영이 입을 열었다.
“잠시 이리 와 보거라.”
무영은 일 호의 상세를 살펴보고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제대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너는 가능하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회복에 집중하도록 해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일 호는 소교주를 지키려다 대신 다친 것임에도 무척 죄송해했다.
- 쓰삭 쓰삭
그때 강대운이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소계성에게 은밀한 수신호를 보냈다.
‘응?’
침낭을 정리하다가 이를 우연히 발견한 설주연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제 말을 해도 되는데··· 왜 굳이 수신호를 보내는 거지?’
수신호를 받은 소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전음을 보내는 듯했다.
‘뭔가 수작을 부리는 중인가?’
그러다 갑자기 강대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동혈 입구에 진법을 설치해야겠습니다. 이번에도 환류금제진을 설치할 것이니, 모두 동혈 안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강대운은 가만히 설주연을 바라보았다.
“금방 다녀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네···.”
- 터벅 터벅
소계성은 걱정스런 시선으로 동혈 밖으로 걸어가는 강대운을 바라보았다.
“······.”
방금 그가 보내온 수신호는 괴습지로 들어오기 전 말을 맞춘 계획의 실행을 뜻했는데, 이는 일행을 진법 속에 가둔 뒤 혼자서 무황백호를 찾아간다는 작전이었다.
“흐음···.”
너무 위험한 발상이지만 소계성은 그를 막아설 수가 없었다.
‘무사히 다녀오게···.’
동혈 입구로 나온 강대운은 동서남북을 구별한 뒤, 각 방위에 나뭇가지와 돌덩이를 이용해 음양(陰陽), 오행(五行), 간지(干支), 팔괘(八卦)를 계산한 진법 설치에 착수했다.
- 탁탁탁
이제 몇 가지 사물의 위치만 조정하면 환류금제진이 발동되어 진 안에 들어가려는 자들과 나오려는 자들을 환각에 빠트리는 조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게 마지막인가?”
이는 어찌 되었건 마교인과 설주연을 속이는 것이어서 강대운은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
“쩝···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녀와의 여정은 처음부터 그리 달갑지 않았었고, 또 능사구미호를 잡는 일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 탁
마지막 진식 자리에 돌을 맞춰놓자, 눈앞에서 신비한 조화가 일어나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강대운은 이 진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뒤로 두 발짝, 옆으로 세 발짝 이동한 뒤, 몸을 회전하고 눈을 떴다.
“······.”
그러자 그의 시야에 안개로 뒤덮인 운무궤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됐구나···.”
강대운은 자리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혈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금방 돌아올 테니, 다들 사이좋게 지내고 계세요.”
- 휘릭
“······?”
그렇게 몸을 돌린 강대운은 눈앞에 나타난 괴생명체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사람마냥 넋을 뺐다.
“혼자서 어딜 가시려나 봐요?”
“아···.”
강대운 앞에 나타난 괴생명체는 다름 아닌 설주연이었다.
***
보기 싫은 손님을 마주한 사마진은 억지 미소를 만들어 냈다.
“허허,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야 할 일이 있으니까, 찾아왔지요.”
“자리에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지금 천금보상단의 장원을 찾아온 이는 칠 척(七尺)이 넘는 체격에 짙은 눈썹을 가졌는데, 안광에서 나오는 기도가 여느 무림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제가 갑자기 찾아와서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당금 무림정사연맹의 총관 서량은 격조 있는 자태로 시비가 가져다준 철관음(鐵觀音)의 향기를 음미했다.
“향이 무척 좋군요.”
사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히 대답했다.
“시기를 맞춰 딴 찻잎을 적당히 발효시켜 만든 것이라서 드시기에 괜찮으실 겁니다.”
사마진의 부연 설명에 서량도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사실 철관음은 향과 맛이 강해서 공복에 먹으면 위와 창자에 무리가 가고 심하면 현기증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시각은 자시(子時)여서 이런 종류의 차를 먹을 때가 아니었다.
평소 차에 관심이 많은 서량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에 대한 작은 시위인가?’
- 탁
찻잔을 내려놓은 서량은 진중히 자신의 방문 목적을 알렸다.
“연맹에 많은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압니다. 지금껏 제대로 된 회신을 받지 못하셨지요? 그래서 답변을 위해 제가 직접 왔습니다.”
천금보의 항의를 단지 민원으로 치부하는 서량의 언행에 사마진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왜 그리 회신이 없나 했더니··· 총관님께서 직접 답변을 하려고 그랬던 것이군요?”
사마진은 잔뜩 경각심을 일으켜 세웠다.
불공정한 처사에 대해 그들이 따로 회신을 하지 않은 이유는 혈봉궁에 대한 무조건적인 탄압을 나타내는 의도일 것이 뻔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총관이 이렇게 찾아왔으니, 그 의도가 매우 의심스러웠다.
‘날 도발하려는 목적으로 온 것인가? 아니면 혈봉궁과 연관됐다는 심증만 있는 상태여서 물증을 찾으러?’
무엇이 되었든 간에 사마진은 답변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어디 제대로 된 이유가 있는지 볼까요?”
천금보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이유에 대해서 떠들어 보라는 재촉이었다.
서량은 다시금 철관음의 차 맛을 음미하다가 상대의 눈을 응시했다.
“말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말해 드릴 상대가 틀렸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천금보상단의 능운령 분타주입니다. 제가 아니면 누구에게 말을 하겠다는 겁니까?”
그때 서량의 안광이 번뜩였다.
“제가 말을 전할 사람은 혈봉궁의 책사 진혈미책(嗔血媚責) 방회입니다.”
“······.”
사마진은 당혹감을 내보였다.
‘이미 모든 증거를 확보한 거 같은데, 날 떠보려고 하는군?’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총관님은 짓궂은 분이시군요.”
“확실히 해두고 싶을 뿐입니다.”
멸치인상의 사마진은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음침한 음성을 토해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방회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처음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서량의 언행에는 그동안 정체를 숨기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
이에 방회는 싸늘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제가 혈봉궁의 책사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두 가지 신분을 지닌 사람이 중원무림에 어디 저뿐입니까?”
“두 가지 신분을 가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요. 단지 혈봉궁의 의도가 불순한 것이 문제입니다.”
방회는 냉랭한 콧방귀를 날렸다.
“흥, 뭐가 불순하단 겁니까? 혈봉궁은 상권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단 말입니까?”
“끝까지 숨기시는군요.”
“숨기는 거 없습니다.”
서량은 격동하는 심정을 잠재우며 다시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 말씀하셔봐야···.”
총관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방회는 돌연 음흉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솔직히 총관님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총관님은 임기가 얼마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방회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상대를 타일렀다.
“무엇 때문에 저희를 이리 탄압하시는 겁니까? 총관님께 이득 될 것이 없을 텐데요.”
이에 서량은 엄격한 눈초리로 대답했다.
“능운령은 백 년 전부터 정사양도의 합의에 따라 중립지역으로 정해진 신성한 장소입니다. 헌데 최근 들어서 혈봉궁이 파죽지세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니··· 이를 경계하는 것은 총관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어떤 잘못을 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서량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하시긴요. 혈봉궁은 숱한 무력사용으로 능운령의 위계질서를 흩트려 놓았을 뿐만 아니라, 연맹과 감찰대의 위상에도 큰 상처를 냈습니다.”
그를 마주한 방회는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말을 받았다.
“그렇게 따지면 마교의 소교주도 운집대에서 큰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위는 어찌하여 크게 제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순간 서량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 작가의말
당황하면 지는 싸움...?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