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는 달라진 일상 (5)
“이제 됐죠?”
“그,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내일까지는 편히 머무시면서 식사하십시오.”
“······.”
숙박비와 식사 값을 지불하고 단도를 되찾은 강대운은 자기 방에 들어와서 미소 지었다.
‘간단한 내기로 이리 쉽게 돈을 벌다니? 사는 게 편해졌어.’
강대운은 침상에 앉아 양손을 쥐었다 피었다.
그리고는 옆방에 머무는 의무연의 상태를 기감으로 점검해보았다.
‘아직도 자는 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그는 식당으로 사용하는 일층으로 내려와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백주(白酒) 한 병 주십시오.”
그는 눈에 익은 점소이에게 싸구려 술을 주문하고 가만히 탁자에 턱을 괴었다.
‘아무래도 여유 자금은 더 필요하겠지? 그건 어떻게 마련한다?’
창문으로 어두워진 거리를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던 강대운은 객잔으로 들어오는 낯익은 기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무공수위가 절정에 이른 강대운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오장 내에 들어온 사람의 내력은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객잔을 드나든 무림인 중에 그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아무도 사람이 없었다.
‘정체가 뭘까?’
하지만 방금 들어온 두 개의 기감은 다른 무림인보다 강하고 또 친근했다.
‘저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나 친숙하다···.’
강대운의 두 눈에 굴곡진 몸매를 뽐내며 걷는 두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 쓰윽
그들은 무언가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는데,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고 빈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그는 이미 떠나버린 거 같아. 우리가 확인하지 않은 객잔은 여기뿐이니까.”
도교교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자, 정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돌아다니느라, 완전히 지쳐버렸어. 오늘은 그만 여기서 쉬도록 하자.”
의문의 청년고수를 찾아다닌 정윤과 도교교는 마지막으로 들른 이 객잔에서도 대단한 기감을 발견하지 못하여 크게 실망한 상태였다.
“저기?”
“네네! 바로 가겠습니다!”
손을 들어 점소이를 호출한 정윤은 서둘러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어향육사(魚香肉絲)와 팔진두부(八珍豆腐)를 갖다 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손님···?”
“왜요?”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점소이는 어여쁜 외모의 두 여인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혹시 일행이 더 있으신 겁니까? 두 분이 드시기에는 양이 꽤 많을 것 같은데···.”
쓸데없는 점소이의 걱정에 도교교는 단호한 음성을 발했다.
“우린 지금 배가 고프니, 어서 음식이나 갖다 줘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 입이 방정이었네요.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주문을 마친 두 여인은 방금 전 점소이가 자신들에게 작업을 건 것인지, 아닌지 심각하게 대화했다.
“······.”
한편 창가 쪽 탁자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강대운은 그제야 두 여인을 기억해냈다.
‘이제 보니, 둘 다 전에 할아버지가 납치해온 여자잖아? 설마 저들이 날 기억하지는 않겠지?’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 여인의 기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신을 잃은 상태였으니, 날 기억하진 않을 거야. 그보다··· 두 사람 기운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그날의 여파인가?’
여러 상념을 품던 강대운은 그녀들이 착용한 검을 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검 자루에 곤류파를 상징하는 표식이 새겨져 있구나. 멸하신공의 근간이 되는 심법이 곤륜파에서 시작되었으니, 어찌 보면 저들은 나와 같은 사문인 건가?’
두 여인을 동문이라 여긴 강대운은 그윽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좀 어려보이니··· 그럼 내가 사형? 호오, 뭔가 나쁘지 않은 어감인데?’
도교교와 정윤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
“뭐지?”
낯선 청년의 불쾌한 시선을 느낀 두 여인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는데, 결국 정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쓰윽
“내가 가서 직접 확인해 볼게. 왜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지.”
그녀의 돌발행동에 크게 당황한 도교교는 서둘러 상대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윤아, 잠깐만···.”
“왜?”
“이런 일은 늘 있는 일인데,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잖아?”
정윤은 두 눈을 껌벅이다가 담담히 대답했다.
“그건 아는데, 왠지 모르게 저 녀석이 계속 신경 쓰여.”
“······.”
다급한 성품의 정윤은 최근 큰 무학의 성취를 이루어서 행동거지에 도통 거침이 없었다.
- 터벅 터벅
당당한 걸음으로 창가 자리에 앉은 강대운에게 다가간 정윤은 여유롭게 팔짱을 끼었다.
“실례지만··· 왜 자꾸 절 쳐다보시는 거죠?”
“네···?”
정윤은 상대 청년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라고 확신했다.
지척에 자리한 그에게서 어떠한 기감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쳐다보셨잖아요.”
“······.”
하지만 강대운은 반박귀진(返撲歸眞)이라 불리는 경지에 올라있어서 같은 수준의 절정고수조차 기감으로는 그의 무위를 알아볼 수 없었다.
“곤란하군요.”
그녀를 마주한 강대운은 황당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뭔가 잘못 알고 오신 거 아닌가요?”
그러자 정윤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뭘 잘못 알아요? 아까부터 절 계속 쳐다봤잖아요?”
강대운은 더욱 강하게 도리질을 쳤다.
“아니요. 전 당신은 쳐다본 적이 없습니다. 저기 앉은 다른 여자 분을 쳐다보긴 했지만요.”
“아···.”
갑자기 대화를 이어가기 민망해진 정윤은 돌연 신형을 돌려세웠다.
“아무튼 전 경고 했어요···.”
떠나가는 그녀에게 강대운은 능청스레 대답했다.
“경고 고마워요. 저쪽에 앉은 여자분 그만 쳐다볼게요!”
끝까지 상대 속을 뒤집어 놓은 강대운은 웃음을 참으려고 고개를 창가로 돌려버렸다.
‘딱 봐도 성격이 보통이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속이 부글부글 끓겠지?’
- 터벅 터벅
씩씩거리며 자기 자리에 돌아온 정윤은 미간을 잔득 찡그렸다.
“와··· 저 사람 날 완전 무안하게 만드는데?”
그런데 앉은 자리에서 두 사람 대화를 엿들은 도교교는 얼굴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내가 그랬잖아, 가지 말라고··· 아무튼 저 남자도 나쁜 의도로 쳐다본 건 아니니까, 우리 밥이나 먹자.”
“뭐? 너 지금 저 녀석의 당돌한 행동을 그냥 무시하자는 거야?”
차분한 심성의 도교교는 화가 난 정윤을 또다시 다독였다.
“우리 이번에는 후지연에 무사히 들어가야 하잖아? 그러니 괜한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가자.”
도교교가 언급한 후기지수연합회는 유능한 정파의 후기지수이 모여 다양한 무학을 배우는 기관이었다.
중원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는 대부분의 무인들은 이곳 출신이어서 구대문파를 포함한 모든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이곳에 들어가기를 원하였다.
“윤아, 서있지 말고 이리 앉아. 주문한 음식 온다.”
“······.”
정윤과 도교교는 추락한 곤륜파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이 후지연에 들어가 이름을 알릴 생각이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탁자에 주문한 음식이 깔리자, 정윤도 흥분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진짜 혼쭐 내야줘야 할 녀석들은 모산파 놈들이잖아? 작년에 우리한테 일부러 시비를 걸어서 후지연 입회시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으니.”
그 말을 들은 도교교는 평소답지 않게 안구에 힘을 주었다.
“맞아. 그들은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틀림없어.”
“그나마 다행인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큰 진전을 이뤘다는 거야.”
“훗, 이번에 다시 만나면 아주 본때를 보여주자.”
“당연하지!”
- 쓰윽 탁
창가에 앉아 백주를 홀짝이던 강대운은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파악해냈다.
‘저들도 무공이 크게 상승했나보구나? 그날의 일이 오히려 기연이 된 거야.’
그리고 곧바로 강대운은 이층 객방에 머무는 의무연의 뒤척이는 기감을 느꼈다.
‘한번 또 들여다봐야겠군. 위험한 시기이니···.’
- 꿀꺽 꿀꺽 쓰윽
남은 백주를 모두 들이킨 강대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이 머무는 객방으로 들어갔다.
“무연아?”
“······.”
넋이 나간 의무연은 침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형··· 나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요.”
몸을 떨어대는 소년을 위해 강대운은 가까이 다가가 그 손을 잡아주었다.
“진정해. 악몽일 뿐이야.”
하지만 소년은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현실이 더 끔찍해요. 꿈에서는 어머니가 살아 계셨거든요.”
강대운은 멸하신공의 오의를 운용해 아이의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무연아, 나도 네 나이 때 부모님 없이 자란 고아였어. 당연히 무척 힘들겠지만 그 감정에 굴복돼서는 안 돼.”
그러자 의무연은 다부지게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꼭 그럴게요. 형···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저를 이렇게 보살펴 주시고···.”
“다 돕고 사는 거지.”
강대운은 객방 문 밖에선 인물을 느끼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저 곤륜의 두 여인은 왜 남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거지?’
그는 마음만 먹으면 객잔 내부 전체의 기감을 한 번에 느낄 수도 있었다.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그 의도를 알 수가 없군.’
상념에 빠진 강대운을 쳐다보던 의무연은 결심을 마치고 단호한 음성을 내뱉었다.
“형, 저 결심했어요.”
“뭐를?”
“저··· 당분간 형의 호위무사가 될래요!”
“······?”
크게 당황한 강대운은 난감한 태도를 취했다.
“무슨 소리야? 호위무사라니?”
상대의 이런 반응을 예상한 의무연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형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전 꽤 강한 무인이에요. 어려서부터 가전무공(家傳武功)을 익혀 웬만한 무림인은 순식간에 쓰러뜨리죠.”
“그게 아니라, 난 호위무사가 굳이 필요치를 않아.”
의무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런 소리 마세요. 형도 언제 위험에 처할지 몰라요.”
“······.”
“무엇보다 제가 형한테 받은 은공이 많으니, 무급으로 일할게요.”
이 황당한 제안에 강대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누굴 호위한다는 거야? 흐음, 그런데 지금 무연이는··· 그저 다른 몰두할 곳이 필요한 것일 지도 몰라.’
강대운은 고아로 지낸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러면, 당분간만 그리 지내자.”
“정말요? 고마워요, 형!”
- 와락
마주한 강대운 품에 확 안긴 의무연은 내심 걱정이 많았는지,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 형은··· 어디로 가는 중이었어요?”
“··· 글쎄다.”
“네?”
“······.”
다음 행선지(行先地) 질문을 받은 강대운은 잠시 망설였다.
‘처리해야할 일이 몇 가지 있긴 한데, 뭘 먼저 하지?’
강대운은 자신이 처리해야할 사안을 순번별로 정리해보았다.
‘첫째로 사라진 어머니의 행적을 쫓아야하고, 둘째로는 설현이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야겠지. 또 오두취 형님도 찾아봐야 할 거야. 약속한 장소에 나가질 못했으니···.’
그는 고민 끝에 사라진 어머니의 행방을 먼저 쫓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면 나머지 사안은 자연히 해결될 거라 여긴 것이다.
“일단 낙양으로 간다.”
***
다음날 아침, 강대운과 의무연은 식사를 위해 일층으로 내려왔는데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정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걸어왔다.
“저기 우리 교교에게 반한 남자 분? 잠은 잘 잤나요?”
“······?”
처음 보는 미모의 여인이 말을 걸어오자, 의무연은 놀란 표정으로 콧등을 문질렀다.
“형, 아는 분들이에요?”
강대운은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안 다기 보다는 두 번 정도 본 사이랄까?”
그가 망설이는 사이, 얌전히 앉아있던 도교교도 손을 흔들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식사하시면 어떨까요?”
강대운은 주변에 빈 탁자가 많았음에도 이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그곳으로 다가갔다.
“알겠습니다. 무연아, 저리 가서 앉자.”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도교교는 길게 자란 자신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어제 밤에 저희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죠? 죄송해요.”
그러자 말을 맞춘 것처럼 정윤도 이에 동조(同調)를 해왔다.
“제 행동에 대해서 사과드릴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너무 무례했던 거 같아요.”
순종적인 태도의 두 여인을 마주한 강대운은 마른 입술을 혀로 젖혔다.
‘요것 봐라?’
- 작가의말
날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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