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이를 반기는 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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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가 된 건가?’
의무연까지 떠나보내고 홀로 취향저격관으로 돌아온 강대운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뭐, 익숙한 일이지···.’
그는 객실로 들어가 바로 침상에 드러누웠다.
‘나중에 번듯한 객잔을 차리면 무연이를 데려와야겠어. 믿을 만한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 쓰스슥 쓰스슥
강대운은 침상에서 몸을 뒤척였다.
‘설현이에게 두취형님의 위치도 파악해 달랄 걸 그랬나?’
공상에 빠져있던 강대운은 갑자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에이··· 기분도 찝찝한데,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객실을 빠져나온 강대운은 낙양의 유명 주점을 가려고 취향저격관의 대나무 숲을 가로질렀다.
“손님?”
그때 웬일일지, 진중한 표정의 지배인 대랑이 그에게 급히 다가왔다.
“강 대운 공자님이시죠?”
“······?”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하자, 강대운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예사롭지 않은 눈매의 대랑은 예의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진의문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아, 진의문의 문인이십니까?”
“예, 그리고··· 일전에 저희 문주님께 부탁하신 일이 있으시죠?”
강대운은 자세를 바로하며 지배인 대랑을 마주보았다.
“부탁한 일이 있긴 한데··· 벌써 답이 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랑은 마주한 청년을 진의문의 최고 수뇌부처럼 깍듯이 대했다.
“문주님께서 직접 지시를 내린 사안이라서 일처리가 보다 빠르게 진행된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겨우 사흘 만에···.”
“······.”
대랑은 가슴자락에 손을 넣어 두터운 서신을 꺼내들었다.
“이 서신을 받으십시오. 저는 지시에 따라 내용을 보지 않았습니다.”
- 쓰윽
강대운은 붉은색 촛농으로 봉인된 서신을 전달 받았다.
“빠른 일처리가 정말 놀랍네요. 게다가 이 관저도 진의문의 영향권 아래 있다니···.”
지배인 대랑은 전과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보통 무림에 몸을 담은 사람은 황실과 인연이 없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들의 조력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의문은 암묵적으로 이런 시설을 비싼 가격에 사들여 친분을 맺고 있습니다.”
과도한 친절로 본연의 임무를 마친 대랑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지배인인 떠나가자, 강대운은 무심히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이 관저 지하에 설치된 석실에 대해서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질 않는군.’
강대운은 주변 오십 장에 달하는 지역을 기감으로 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취향저격관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지면 밑에 자리한 지하대전(地下大殿)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지하대전에 항상 사람이 없는 걸로 봐서는 아직 이용 시기가 아닌 것 같은데.’
취향저격관의 자연친화적인 장원과 객실은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한 단순한 장치일 뿐이었다.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강대운은 다시 자신의 객실로 돌아가 동봉된 서신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흐음, 워낙 오래전 일어난 사건이라 면밀한 내부 사정까지는 알아내지 못했군. 하지만··· 아주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어.’
홍설현이 보낸 서신에는 객잔 주인의 행적을 쫓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완소객잔의 주인 부부는 중원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후기지수연합회의 공식 급식업체로 선정돼 영업 중이다?’
무림맹이 주관하는 후지연은 명망 높은 정도세력의 후기지수들이 모여 무학을 배우고 서로 얼굴을 익혀 연을 맺는 자리였다.
게다가 이곳은 절대적인 위세의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적극적으로 제자를 파견하는 기관이어서 해당 급식소를 운영하려는 사람도 밤하늘의 별빛처럼 많았다.
‘이건 말이 안 돼. 너무 수상하다.’
그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장소에서 일개 객잔의 부부내외가 운영권을 지속하고 있다는 건 정말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무림맹과 그들 사이에 묘연의 계약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아, 설마··· 그곳에 어머니가 계신 걸까?’
- 꾸깃
강대운은 들고 있던 서신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설현이는 자신이 조금 더 뒤를 조사해 보겠다고 적었지만··· 난 당장 확인을 해봐야겠어!’
결심을 마친 강대운은 내실을 나와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이 저물려면 아직 멀었군. 어쩌면 오늘··· 어머니를 만날지도.”
***
무림맹의 본부는 그 크기가 혀를 내두를 만큼 거대했다.
그래서 전체를 둘러보려면 말을 타고 반 시진은 돌아 다녀야했다.
또 이 본부에는 낙양 중심가의 고층 전각에 밀리지 않는 화려한 전각들이 즐비하게 지어져 있었다.
그 중 최고는 단연 무림맹 중앙에 자리한 초대형 전각이었다.
사람들은 이 전각을 광폭십층전각(廣幅十層殿閣)이라 불렀는데, 층수가 열 개에 달하고 각 층의 폭과 높이가 실로 거대했다.
- 웅성 웅성
광폭십층전각은 무림맹 본부에서 근무하는 수천 명의 정예 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을 제공했다.
“······.”
“······.”
그리고 이 거대 전각의 꼭대기 층은 무림맹주의 집무실이 자리했는데, 그 내실의 분위기가 오늘 따라 매우 어두웠다.
“······.”
이년 전 무림맹주로 추대된 포동포동한 인상의 주원장이 어렵사리 침묵을 깼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하군요.”
그러자 옆에 앉은 족제비 인상의 중년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마교와 혈봉궁은 능운령에서 크게 부딪친 뒤, 점차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중년사내는 잠형객(潛形客) 백린이라 불리는 은형술의 달인이었다.
그는 또 뛰어난 신법과 함께 중원무림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무림맹주의 간사(幹事)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서로 물고 뜯던 놈들이··· 이제는 은밀한 밀회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리로써는 손해가 크지요.”
백린의 발언에 주원장은 크게 인상을 찡그렸다.
“전에 그 둘이 적대적일 때가 참 좋았지··· 지금 상황을 보면 천마신교의 통치 아래 흩어졌던 마도 세력이 다시 규합되는 것만 같아.”
“만약 마도 무림이 하나로 합쳐지면···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
그때 건너편에 앉아 말없이 둘을 바라보던 사내가 한참 만에 입을 벌렸다.
“혈봉궁이 순순히 마교 밑으로 들어갈 리 없습니다.”
당차게 서두를 꺼낸 사내는 앞에 앉은 주원장과 백린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백여 년 전··· 마교가 봉문을 선포했을 때, 힘겹게 세력을 키운 곳이 혈봉궁입니다. 그들은 오직 양육강식이라는 규율하나로 모든 마도인들을 끌어 모았지요.”
건장한 체형의 사내는 머리에 희끗한 머리카락이 꽤 많아 보였다.
“무엇보다 혈봉궁은 마교를 집어삼킬 욕망으로 사로잡힌 집단입니다. 지금은 마교가 천마신보령을 되찾아 잠시 잠잠해졌지만 이는 두고 볼 문제지요.”
“지금 상황을 그리 보시는 겁니까?”
무림맹주 주원장은 상대의 말을 조금도 흘려듣지 않았다.
“백린, 자네 생각은 어떤가?”
“··· 과거 무림맹주를 역임하시고, 능운령 정사연맹의 총관까지 지내신 분 의견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백린은 비굴한 미소로 건장한 노인을 마주보았다.
“천하의 능천신위(凌天信威) 서량님이 의견을 말씀하셨는데, 누가 감히 토를 달겠습니까?”
“······.”
서량은 진중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저를 또 띄워주시는 군요. 그 의도가 이미 짐작이 갑니다.”
주원장은 포동포동한 볼 살을 튕기며 진중한 음성을 발했다.
“서량님, 이건 띄워드리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그만한 능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이제껏 무림맹주와 정사연맹의 총관으로 일하신 분은 서량님 밖에 없습니다.”
주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린이 급히 뒷말을 달았다.
“게다가 능운령에 계실 때는 까다로운 혈봉궁 사안을 아주 깔끔히 해결하셨지요.”
“······.”
침묵으로 그들의 행태를 지켜본 서량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다른 말 않겠습니다. 전 이제 더 이상 공직을 맡지 않겠습니다. 열정적인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허허, 그건 좀 곤란합니다.”
“서량님, 다시 한 번 생각하셔야 합니다.”
누가 봐도 건강한 모습의 서량은 기력이 부족한 사람처럼 목소리에 힘을 뺐다.
“흠흠,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사천성 무림맹부를 맡을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이를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가 단호한 태도로 일관하자, 주원장과 백린은 곤란하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
주원장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서량님, 이번에 일 년 가까이 휴식을 취하셨지요?”
“그랬지요.”
“그렇다면 지금쯤 기력이 회복 되셨을 텐데요···.”
족제비 인상의 백린은 말을 맞춘 것처럼 서둘러 차선책을 제시했다.
“어쩌면 서량님은 머리 아프고 신경 쓸 일 많은 무림맹부직이 싫으신 거 아닐까요?”
“오호,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러면 서로 백번 양보해서 단순한 업무를 부탁드리면 될 것같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당사자를 앞에 두고 자기 말만 주고받은 두 사람은 이후 서량의 눈치를 살폈다.
“······.”
그러자 서량은 정말 곤란하다는 듯이 큼지막한 손을 내저었다.
“허허, 거참··· 두 분도 참 끈질기십니다. 사람이 이토록 강경히 거절 하면 포기하실 줄도 아셔야지요?”
주도방은 살이 차오른 볼을 뽐내며 살갑게 대답했다.
“서량님도 공직에 계셨으니, 이 곳 생리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무공이 강하고 열정 넘치는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계가 깊고 완전히 신뢰할만한 사람은 찾기가 매우 어렵지요.”
“······.”
무거운 침묵으로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던 서량은 결국 어렵사리 말을 받았다.
“단순하다는 일은 무엇입니까?”
물고기가 미끼를 물자, 주원장은 신이 나서 크게 대답했다.
“아주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냥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계셔도 일이 진행되지요.”
이번에도 족제비 같은 백린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혹시 우리 무림맹에서 주관하는 후기지수연합회라고 아십니까?”
서량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지연 말입니까?”
“맞습니다.”
주원장은 단호한 음성으로 본론을 꺼냈다.
“새로운 기수를 받아야 할 시기인데··· 현재 후지연의 회령자리가 공석으로 있습니다. 회령직을 맡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봉변을 당하는 바람에 이리 되었지요.”
대충 돌아가는 정황을 알아차린 서량은 퉁명스레 입술을 내밀었다.
“지금 저보고 새파란 어린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란 말씀입니까?”
작게 격분한 상대에게 주원장은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후지연의 회령은 아이들의 뒤를 봐주는 직책이 아닙니다. 큰 연례행사가 있을 때, 간단히 연설만 해주시면 됩니다.”
주원장 옆에 앉은 백린이 또다시 그 말에 동조했다.
“사천성 무림맹부 자리처럼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제안은··· 대성원존회에서 제안한 서량님의 마지막 사무입니다.”
“마지막?”
끝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에 서량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대성원존회에서 결정된?”
“그럼요.”
“참입니다.”
대성원존회(大成遠尊會)는 무림맹의 정책과 인사를 결정하는 핵심 기관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임원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최고 결정권자가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실제적인 무림맹의 주체가 그들이기에 여기서 결정된 사안대로 차기 무림맹주와 모든 무림맹의 정책이 결정되었다.
“흠흠.”
대성원존회에 의해 무림맹주로 추대된 주원장은 진중한 시선처리로 서량을 마주했다.
“이번 후지연 회령직만 맡아주십시오. 그러면 무림맹과 대성원존회는 서량님의 편안한 노후를 약속합니다.”
“······.”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고 이곳을 찾은 서량은 마지막 요청이란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차피 애써 거절해봐야 이들은 매년 나를 찾아와 귀찮게 굴겠지··· 그럼 차라리 이번 일을 받아들이고, 당당히 퇴직의 길을 걸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서량은 마지못해 이를 수락했다.
“좋습니다. 대신···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낭보(朗報)를 맞이한 주원장은 볼 살 늘어지는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번 일을 끝으로 어떠한 부탁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주원장은 연신 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런 말씀 드리긴 좀 뭐하지만··· 내일부터 후지연의 입회시험이 있습니다. 바로 일을 맡아 주셔야···.”
“아니···.”
서량은 장기체류를 위한 준비를 해오지 않아서 이 제안이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내일부터 바로 말입니까?”
“흠흠, 지내실 거처와 필요한 물품은 저희가 모두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니 편히 몸만 오시면 됩니다.”
“······?”
전혀 편하지 않은 상대의 배려에 서량은 불편한 심경을 곱씹었다.
‘결국 이 회령자리도··· 편하진 않을 것 같군.’
- 작가의말
- 즐거운 주말입니다. 내일은... 헉!!! 워..월..
songnam님 후원 감사합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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