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차이 (5)
홍설현을 두고 사위에 부복한 문인들은 기개와 위용이 실로 엄청났다.
“······.”
그런데 천혼신녀라 불리는 홍설현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가만히 왼손을 들어올렸다.
- 쓰윽
그러자 모든 문인들이 일제히 신형을 일으키며 자리에 우뚝 섰다.
“초봉님···.”
홍설현이 자그마한 음성을 내뱉자, 금관마차 곁에 선 초봉이 급히 그녀에게 다가섰다.
“예, 문주님. 하명하십시오.”
“갑작스런 외출인데,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칠 척의 거한 초봉은 한쪽 무릎을 꿇어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준비가 미진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일단 문주님의 안위를 생각하여 모든 십상시를 준비시켰습니다.”
“초봉님, 같이 가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문주님께서 가신다면 당연히 제가 따라가야지요.”
초봉이 예를 다해 인사를 올리자, 홍설현은 그제야 작은 미소를 머금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여러분은 각자 자신의 직무에 충실히 임해주세요. 전 금방 나갔다 오겠습니다.”
“존명!”
천여 명의 문인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홍설현은 그들을 얼른 일으키고 고급스런 마차 안으로 신형을 밀어 넣었다.
- 스르륵 딸깍
조심스런 손길로 금관 마차 문을 닫은 초봉은 마부 석에 앉아 육중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출!”
그 소리에 여섯 마리의 설리총이 마차를 이끌고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따그닥 따그닥
- 쉬시시식 쉬시시식
그리고 곧바로 마차 사위로 파황십상시가 절륜한 신법을 펼쳐 체계적인 경계 진영을 만들었다.
“흐음···.”
한편 멀찍이 떨어진 전각 위에서 모든 걸 지켜본 백태조는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셨다.
“흠, 결국 직접 가시기로 결정하셨군.”
그는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를 긁으며 한통의 서신을 떠올렸다.
‘죽은 줄 알았던 녀석이 다시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거구의 초봉이 모는 금관마차가 다른 거대 전각에 가려 모습을 감추자, 백태조는 바로 신형을 돌려세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중요한 연례회의가 코앞인데, 갑자기 자리를 비우시다니? 정말 문주님답지 않은 처사시다.’
얼마 전, 강대운이 보낸 서신을 받은 홍설현은 급작스럽게 강호행을 결정했다.
이제 곧 일 년에 한번 열리는 진의문 연례회의가 있지만 그녀는 이 일정을 막무가내로 한 달이나 미뤄버렸다.
홍설현은 이제까지 강대운이 약조대로 자신을 찾아올 날을 기다렸는데,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죽은 줄 알았던 오라버니가 다시 나타난 상황이어서 한시라도 빨리 그를 마주하고 싶었다.
- 꺄아 꺄아
- 끼끼 끼까끼끼
- 꺄우 꺄우꺄꺄우
“흐음···.”
조관흥령부로 날아든 전서구 상태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백태조는 괜히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거참··· 문주님은 그런 녀석이 뭐가 그리 좋다고 그러시는 걸까?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육년이 넘은 거 같은데··· 보통 그 정도 시간이면 좋았던 사람도 멀어지지 않나?’
백태조는 평생 연예경험을 해본 적 없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냉철한 판단을 내리시는 분이, 그 녀석만 언급되면 보통의 여자처럼 변하시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백태조는 연신 눈살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돌려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보다 정말 오랜만에 강호로 나가셨구나. 별일이 없으셔야 할 텐데···.’
근심어린 표정의 백태조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지? 무림 백대고수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초봉이 함께 갔는데 말이야.’
상념을 마친 백태조는 변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신의 일상으로 금세 돌아가 버렸다.
“이놈들아! 여기 새똥 좀 치워라!”
***
낙양 외곽에 위치한 낙녕(洛寧)에 도착한 강대운은 일행을 객잔에 머물게 하고 홀로 거리를 배회했다.
- 터벅 터벅
그런데 낙녕은 사방이 거대한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이어서 상권이 그리 번성하지 않았다.
‘어디보자, 이쯤에서 사람들한테 좀 물어볼까?’
강대운은 자신의 부모가 근무했던 객잔 소식을 듣기 위해 지나는 행인을 다짜고짜 붙잡았다.
“저기요. 혹시 완소객잔이라고 아십니까?”
“완소 객잔이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강대운은 거의 두 시진 동안 사방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행인에게 탐문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완소 객잔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구나. 하긴··· 벌써 십년이 넘었으니.’
그는 사라진 어머니의 행방을 쫓을 단서가 이것뿐이어서 어찌 해서든 완소객잔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객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좀 있는데, 그 원인 모를 화재와 주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다.’
붐비는 대로를 벗어나 한적한 골목으로 진입한 강대운은 곰 담배 피우는 노인을 발견했다.
“어르신, 잠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
노인은 젊은 청년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의외라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라··· 혹시 완소객잔이라고 아시나요?”
곰 담배를 입에 문 노인은 귀가 잘 안 들리는지, 연신 인상을 찌푸렸다.
“뭐어? 내가 완전 소중하다고?”
“그게 아니라.”
귀가 어두운 노인을 위해 강대운은 좀 더 분명한 음성을 발했다.
“완 소 객 잔을 아시냐고요!”
“아아아, 불에 타 사라진 완소객잔? 하하, 그 객잔에 대해서는 내가 좀 알지. 거기서 일하던 점소이랑 꽤 친했으니까.”
“네? 정말이요?”
강대운은 심상찮은 노인의 대답에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르신, 아시는 게 있으면 말씀 좀 해주십시오.”
“······.”
노인은 무심한 눈매로 담배 연기를 연거푸 내뿜었다.
“젊은 녀석이··· 이렇게 상도덕을 모르나?”
“네?”
“눈치가 없는 것이여? 아니면 순진한 것이여?”
“······.”
“인석아! 여기가 만약 낙양이었으면 넌 이미 욕 한바가지는 얻어먹었을 게다!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의당 그에 합당한 대가부터 논해야 할 게 아니냐?”
“대가요?”
중원 무림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낙양은 예로부터 장사꾼과 거래의 달인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이처럼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낙녕은 비록 낙양은 아니었지만 지도상의 거리가 서로 가까워서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남에게 선뜻 내어주지 않았다.
- 쓰윽
결국 강대운은 소맷자락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은자를 드릴 순 있는데··· 어르신이 해주실 이야기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곰 담배를 입에 문 노인은 은자를 보자,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무··· 물론이지!”
그는 부수입을 얻을 기대에 주름이 가득한 미소를 만들었다.
“완소객잔은 한 십년 전에 저기, 저 빨래방 옆에서 장사를 했다. 장사는 잘 되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인 내외가 사라져 버렸어. 그리고 다음날··· 객잔에서 큰 불이 났지.”
“······.”
노인은 음침한 눈매로 상대 청년의 눈치를 살폈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완소객잔을 찾지 않았다.”
“네에···.”
귀 기울여 듣던 강대운은 손에 든 은자를 다시 소맷자락으로 집어넣었다.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네요. 그러니 제가 저기 가서 담배 하나 사다 드릴게요.”
“아··· 아니야. 잠깐만!”
마음이 급해진 노인은 강대운을 잡아 세우고 거친 헛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쿨럭, 흠흠··· 사람 얘기를 끝까지 들어야지. 지금부터 해주는 이야기가 진짜다.”
“이번엔 확실한 겁니까?”
“그, 그럼!”
노인은 사위를 몇 번 돌아본 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완소객잔은 내가 자주 이용하던 곳이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예전에 소방인가 뭔가 하는 점소이가 있었는데, 그 녀석이 불의의 사고로 죽고 객잔이 하향세를 탔다.”
“강소방이요?”
“그래, 강소방! 흠흠, 그 녀석 입담이 참 좋았지.”
흥미가 돋는 상황설명에 강대운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세요.”
“그리고 그 객잔 주인에게 여식이 있었는데, 언제 부턴가 그녀도 모습이 보이질 않았어.”
“······”
“그런데 말이야, 내가 우연찮게 그 아이를 다시 봤지 뭔가?”
“아··· 대단히 흥미롭네요.”
“그치?”
상대 청년의 호응에 신이 난 노인은 주변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 아이는 객잔 주인 부부를 찾아왔는데, 어느 순간 그들과 함께 자취를 감춰버렸지. 그러고 나서 객잔이 사라져 버린 거야.”
“······.”
강대운은 그 말을 듣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 어머니가 이곳에 오긴 했구나. 그리고 그 뒤에 사라지셨어.’
긴장한 표정의 노인에게 강대운은 담담한 음성을 들려주었다.
“괜찮은 정보였습니다. 자, 받으세요.”
강대운은 은자를 노인에게 건넨 뒤, 객잔이 자리했던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인가?”
그곳은 현재 빨래방의 빨래를 너는 장소로 이용 중이었다.
‘어머니는 도대체 왜 실종 되신 걸까? 무림맹에서 손을 쓴 건가? 휴우··· 뒤를 쫓고 싶은데, 더는 단서가 없다.’
빨래터 주변에서 반 시진을 허비한 강대운은 일행이 머무는 객잔으로 다시 돌아갔다.
‘다들 잘 쉬고 있으려나?’
그는 객잔 이층 식당에서 일행을 발견했는데, 정윤과 도교교가 무언가 깊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 마음이 뭔지 확실히 말을 해봐. 낙양에 도착하면 이미 늦으니까.”
“윤아··· 이제 그만하자. 그가 왔어.”
서둘러 대화를 끝낸 도교교는 강대운에게 정답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에요. 나갔던 일은 잘 됐어요?”
강대운은 두 사람이 머무는 탁자로 다가가 빈자리에 걸터앉았다.
“큰 소득은 없었지만 언젠간 해결되겠죠. 그보다··· 내일이면 드디어 낙양에 도착하는 건가요?”
귀엽게 머리를 손질한 도교교는 입술을 내밀며 대답했다.
“아, 저기··· 강 공자님은 낙양에 가는 이유가 객잔 상권 조사를 위해서라고 하셨죠?”
“네. 나중에 큰 객잔을 지을 거라서 낙양에서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강대운은 어머니와 오두취의 행방을 알고 싶어서 낙양에 왔지만 굳이 이를 일행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무연이는 어디 갔습니까?”
“······.”
말없이 차를 들이키던 정윤이 돌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녀석··· 갑자기 교교에게 선물을 사겠다고 나갔어요.”
“선물이요?”
“네, 그동안 자신을 챙겨준 보답이라나?”
“······.”
강대운은 마주한 두 여인의 표정을 살피다가 차분한 음성을 발했다.
“두 분 덕에 무연이가 정말 많이 밝아졌습니다. 그 아이의 사연··· 이미 알고 계시죠?”
정윤은 착잡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씨세가의 암습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리 무차별한 살행을 저지르다니··· 분명 하늘이 천벌을 내릴 거예요.”
강대운은 동조의 눈빛을 보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무연이를 곤륜파에서 받아주실 수 있습니까?”
“······.”
“그건···.”
“아이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난감한 부탁에 정윤과 도교교는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무연이의 처지는 딱하나, 저희 곤륜파는 무조건 다섯 살 전에 입문을 해야 해요.”
“역시 안 되는군요. 그럼 할 수 없이 무연이 거처를 낙양에 마련해 줘야겠어요.”
“낙양에요?”
두 여인은 강대운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무연이와 헤어질 생각인가요?”
“그러지 말고, 계속 함께 다니면 되잖아요?”
강대운은 멋쩍게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생활이 불안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곤란합니다.”
순진한 눈방울을 한 도교교는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무연이는 어떻게?”
“아이는 낙양 중심부에 자리한 무림맹 총단으로 데려갈 생각입니다.”
정윤은 그 말을 듣고 바로 강대운의 의도를 눈치 챘다.
“무연이를··· 정도지향관에 보내시려는 거군요?”
- 작가의말
글이 주가 아니어서 그런지, 1일 1연재가 제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여러 의견 항상 감사합니다!! ^ ^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