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는 달라진 일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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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운이 소년을 구해온 일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때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소년과 그를 쫒던 추격자의 존재도 눈치 채지 못했겠지.’
그는 어린 시절 파락호 같은 불량배에게 폭행당한 경험이 있어서 아까와 같은 소년의 처지를 그냥 묵과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정오가 되자, 죽은 듯 잠들었던 소년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으응? 여기가··· 어디죠?”
소년은 몽롱한 상태로 객방 창가 앞에 선 강대운을 바라보았다.
“다, 당신은 누굽니까?”
강대운은 침상에서 힘겹게 상체를 일으킨 소년에게 편안한 미소를 내보였다.
“너무 놀랄 거 없어.”
“네?”
“우연히 산길을 지나다가 쓰러진 널 발견해서 이리로 데리고 온 거야.”
“······.”
작은 미소를 머금은 강대운은 구태여 소년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내가 널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산 짐승들에게 뜯어 먹혔겠지.”
“아···.”
그제야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소년은 작금의 사태를 어렵게 받아들였다.
“그럼, 제 생명을 구해주신 은이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소년은 문득 추격자들에게 잡힌 기억이 떠올랐으나, 이후 상황은 알 수가 없었다.
- 쓰윽
단지 그는 상대가 자신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란 생각에 포권을 취하려고 아픈 몸을 일으켰다.
“저는 의씨세가의 의무연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생명을 구한 분의 존성대명을 알 수 있을까요?”
“응? 나? 아··· 나는 그냥 강대운이야.”
“강대운 대협이시군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받은 은공은 꼭 갚겠습니다.”
“뭘 어떻게 갚으려고?”
소년의 언사와 말하는 자세에는 진득한 격식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가 명문가의 교육을 받고 자랐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어찌 갚을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내게 사례를 할 생각이면 굳이 거부할 생각은 없어.”
“······.”
강대운은 의씨세가가 청해성 공화에서 꽤나 알아주는 부호 집안임을 알고 있었다.
“흠흠, 길에 쓰러진 아이를 발견하면 누구라도 나처럼 행동했겠지.”
“······.”
“그보다 너는 어째서 거기 쓰러져 있던 거야?”
“그건···.”
복면을 두른 추격자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강대운은 차분히 상대의 답변을 기다렸다.
“저는 쫓기고 있었어요··· 우, 우리··· 집안 식구를 모두 죽인 악적들에게···.”
소년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이내 그렁그렁한 눈물을 주르륵 흘려댔다.
“흑흑··· 죄, 죄송해요. 누, 눈물이··· 멈추지를 않네요.”
강대운은 대충 그 정황을 눈치 채고 담담한 음성을 토해냈다.
“울고 싶으면 울어.”
간신히 울음을 참던 소년은 격동하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크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에 함유된 울분으로 소년의 사정을 짐작한 강대운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흐음, 아무래도 간밤에 큰일을 겪었나보군.’
중원 무림에는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방파가 존재했는데, 하루아침에도 그 중 서너 개의 문파가 사라지고 또 만들어졌다.
- 드르르륵 탁
강대운은 소년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려고 나와서 바로 옆에 자리한 자신의 객방으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에 모든 걸 잃었으니, 눈물이 멈추질 않겠지. 허나 이것도 세상의 일부분··· 결국 받아들여야 할 거야.’
***
의무연은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데다가 밤새 신법까지 펼쳐서 뱃가죽이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 꼬르르르륵
그 지독한 허기에 울음을 멈춘 의무연은 고통에 겨워 배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옆방에서 이를 알아챈 강대운이 음식을 주문했다.
- 우걱 우걱 쩝쩝
강대운은 주문한 음식을 정신없이 먹어치우는 의무연을 보며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좀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네··· 넵, 이것까지만 먹고요.”
정신없이 음식을 집어삼키던 의무연은 접시를 완전히 비우고 나서야 자세를 바로 했다.
“우와, 이제 배가 부르네요.”
“그래, 그 정도 먹었으면 인간적으로 배가 불러야지.”
소년과 달린 강대운은 주문한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태청존의심의결을 익힌 이후로는 그다지 허기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 심법은 천지만물의 영기를 체내에 받아들일 수 있어서 계속 수련하면 작은 이슬만으로도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전부터 세력을 키워온 표씨세가가 독을 품고 너희 가문 사람을 모두 죽였단 말이지?”
“네, 맞아요. 그들은 오밤중 갑자기 쳐들어와서 제 부모님과 세가 사람들을 모조리 도륙했어요. 이들은··· 정말 죽어 마땅한 악적이에요!”
강대운은 상대가 흥분하려 하자, 머리를 긁으며 시선을 끌었다.
“그 표씨세가라는 곳도 참 대단하다. 아직 세력을 키워야할 신생 방파인거 같은데, 그토록 대담한 짓을 벌이다니.”
의무연이 속한 의씨세가는 청해성 공화에서 나름 이름을 날린 명문세가였다.
그런 곳을 하루 밤에 멸문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세력의 도움이 필요했다.
“······!”
의무연은 분기에 찬 눈빛으로 강대운을 바라보았다.
“이게 다 오조무라방(汚嘲武拏幇) 때문이에요. 우리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표씨세가 편에 붙어 우리를 공격했어요.”
중원 무림에서 이런 유의 배신은 매우 흔하고 흔했다.
그 때문에 강대운은 착잡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배신으로 부모님과 모든 걸 잃었구나? 네가 왜 그리 슬피 울었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부모의 죽음이 언급되자, 의무연은 또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님은 마지막까지 저와 어머님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셨어요. 하지만 그들의 손속이 너무나 잔인했죠. 아마 저희 세가의 고수들이 퇴로를 확보해주지 않았다면 저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모든 정황을 알게 된 강대운은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냐?”
“······.”
의무연은 매서운 눈매로 단호히 대답했다.
“반드시 복수할거에요. 그들 모두에게··· 제가 겪은 좌절감과 상실감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겠어요!”
소년의 살기를 흩어트린 강대운은 담담히 말을 받았다.
“정말 그럴 생각이라면··· 앞으로 네 인생을 복수하는 데에 모두 바쳐야 할 거다.”
“네?”
“어찌되었건 그들은 공화에서 명성을 떨친 너희 의씨세가를 하루아침에 멸문시킨 세력이야. 그러니 절대 만만치 않을 거란 말이지.”
“······.”
의무연은 전혀 상관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래도 꼭 복수할 거예요! 돌아가신 부모님과 세가 사람들을 위해서!”
흥분한 소년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강대운은 그를 진정시켰다.
“알았으니까, 일단 좀 진정해.”
“······.”
어렵사리 소년을 진정시킨 강대운은 다 먹은 빈 접시를 치우고 객방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는 침상에 앉은 소년을 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무연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아무래도 지금은 좀 이르겠지?’
강대운은 복수를 꿈꾸는 이의 삶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연이가 너무 어려서··· 지금은 무슨 조언을 해줘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진의문에서 활동한 강대운은 유명한 중소문파의 내력들을 대충 다 꿰고 있었다.
그래서 소년이 속한 의씨세가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과거 내력을 알았다.
‘그들은 비단사업에 뒤늦게 발을 들인 뒤, 그 세력을 키웠는데··· 그 과정이 절대 청렴하지 않았지.’
의씨세가는 청해성 공화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당시 비단 시장을 장악한 한 오씨세가를 제거해야만 했다.
비단의 질이나 가격 등의 시장 경쟁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씨세가도 사람을 고용해 오씨세가를 멸문시키는 악행을 저질렀었다. 물론 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강대운은 의무연이 속한 세가의 악행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무연아··· 일단 다른 생각은 뒤로 미루고 좀 쉬는 게 좋겠다. 넌 지금 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고마워요. 형··· 복수를 위해 좀 쉬도록 할게요.”
“그래. 난 잠시 나갔다 올 테니, 한숨 자도록 해.”
“네···.”
힘없는 목소리의 의무연을 한번 내려다본 강대운은 객방을 나와 그 문을 조심히 닫았다.
- 드르르륵 탁
그가 방에서 나오자, 복도를 지나던 점소이가 급히 말을 걸어왔다.
“저기 손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점소이는 비굴한 웃음을 흘려댔다.
“손님의 행색이 워낙 고급지셔서 미리 객방 값을 받지 않았는데··· 저희 객잔의 규칙상 식사 시에는 바로 대가를 지불해 주셔야 합니다.”
“아, 그런가요? 얼마나 드리면 되는 거죠?”
“숙소 값까지 해서 은자 한 냥이면 충분합니다.”
- 쓰윽
별생각 없이 가슴자락에 손을 넣은 강대운은 그 안에 잡히는 은자가 없자, 당혹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아차, 그동안 모은 은자를 할아버지께 모두 드렸지? 허허, 이를 어쩐다?’
강대운은 현재 수중에 가진 돈이 전혀 없어서 빈손으로 점소이를 마주보았다.
‘원래 공화에 들려서 용돈을 벌 생각이었는데, 소년을 구하느라 일이 꼬여버렸어.’
“······?”
한편 호룡객잔의 점소이는 상대 청년이 빈손으로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자,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손님··· 설마 돈이 없으신 건 아니지요?”
“흠흠, 그게 말입니다···.”
“외상이란 말을 꺼내실 생각이라면 제 입장이 매우 곤란해집니다. 게다가 객방도 두 개나 잡으셨잖아요? 식사도 시키시고···.”
“그게···.”
강대운은 복도를 지나는 몇몇 무림인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저기 물건도 받아 줍니까?”
“네? 곤란하네요. 물건이라니···.”
강대운은 허리춤에 달아놓은 유선형 단도를 꺼내 들었다.
“이건 귀하디귀한 현철로 제작된 단도입니다. 금방 값을 치를 테니, 잠시 맡아 주십시오.”
“잠시라면 얼마나?”
“오늘 자정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
얼굴에 죽은 깨가 가득한 점소이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참 어쩐다···.”
그러자 강대운이 눈빛에 힘을 주며 상대를 압박했다.
“자정까지도 못 기다리겠다는 겁니까? 그럼, 뭐··· 지금 당장 방이라도 빼란 거예요?”
“아, 아닙니다.”
점소이는 자신의 책임 하에 음식 값도 받아야 해서 할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정까지만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값을 치루지 않으시면··· 뒷일을 저도 책임 못 집니다.”
“좋습니다.”
어렵사리 협상을 마치고 점소이를 떠나보낸 강대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 이제 어쩐다?”
***
상의를 탈의한 남자는 구경꾼이 모여든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크게 소리쳤다.
“자, 누구든 자신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이 남자는 거대한 체격을 지녔는데, 근육 또한 가득해서 한눈에도 힘이 장사처럼 보였다.
“일반인도 되고, 무림인도 상관없습니다. 누구든 저, 호봉조를 이 자리에서 이 척(二尺) 이상 움직이게 하면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호탕한 인상의 호봉조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습니까? 허허, 이리 겁이 많으시면 어떡합니까? 이건 단돈 한 푼으로 은자 두 냥을 벌어가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은자 두 냥이면 일반 가족이 한 달을 먹고 지낼 수 있는 큰 액수였다.
구미가 당기는 내기 제안에 구경꾼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작은 소란을 만들어냈다.
“네가 한번 나가보지, 그래?”
“내가 어떻게 나가? 저 남자··· 힘이 장사라고.”
“그냥 해봐.”
“싫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도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그때 한편에 서서 고민을 거듭하던 거구의 사내가 결국 손을 들어올렸다.
“그럼, 내가 한번 도전해 보겠소.”
- 작가의말
3연참 정도가 제겐 한계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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