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기습신지를 지배하는 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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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신의 막내 서열인 두 사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객잔으로 부리나케 들어와 애써 탁자를 선점했는데, 역시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백발의 고두심은 불편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매복을 안 할 리가 없지···.”
선불객잔은 약 서른명 정도만 들어가도 꽉 차는 크기여서 객잔 주위로 일단의 무리가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은 상태였다.
“크크, 이번에도 먼저 매복을 하러 가는 구만?”
“있다가 봐서 교대해 줄 테니, 수고해라.”
“식사 후에 갈 거니까.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
“크크크··· 한 숨 자고 가마!"
다른 귀수신의 비아냥거림에 고두심과 사후칠은 신법을 펼쳐 얼른 객잔 공터를 벗어났다.
- 팟 팟
하늘로 뻗어난 고목 위에 오른 고두심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서 큰 성취를 이뤄야겠어! 그래야 그놈들 주둥이를 모두 뭉개버리지.”
그를 마주한 사후칠은 전음을 통해 불만을 표시했다.
/ 내 이번에 수련하고 있는 취팔일기공(醉八一氣功)을 대성하면, 저 놈들을 깡그리 눌러버릴 수 있어. /
두 사람은 무위가 혈봉궁 최고수 반열에 이르렀음에도 귀수신 내에서는 서열이 가장 낮았다.
그 때문에 늘상 이런 고약한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귀수신은 두 달에 한 번씩 자체 비무 대회를 여는데, 이곳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면 서열이 상승하게 되는 구조였다.
사후칠은 비굴한 인상으로 전음을 날렸다.
/ 근데, 네가 보기엔 이번 임무가 어떤 거 같아? /
“뭐, 말이야? 마교 소교주를 치는 거?”
/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솔직히 난 두려워, 임무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이 일이 우리의 소행이란 게 발각되면 천마신교와 전면전을 치러야 하잖아? /
파죽지세처럼 성장한 혈봉궁은 천마신교의 성세를 바싹 따라잡았으나 아직까지 그들의 자리를 넘볼 정도는 아니었다.
마교 제일의 무력집단인 마왕성과 자신들만 비교 해봐도 아직 그들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무덤덤한 표정의 고두심은 한가로이 손을 내저었다.
“걱정 하지마, 이번에 우리가 상대할 녀석들은 고작 수라대니까. 거기다 숫자도 그리 많지 않으니···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거야.”
/ 그야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룡보를 직접 쳐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한 거 같아. 그곳이 능운령 번화가에서 떨어져 있기는 해도 혹 암습 소식이 감찰대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
“이 사람이··· 끔찍한 소리 말아!”
만약 귀수신의 습격을 감찰대가 미리 알아차린다면 그들은 능운령에서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사후칠은 귓구멍을 후벼 그곳에서 나온 귓밥을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
/ 이런 음침한 수림지대에서 소교주를 암습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말이야. 여기선 어떤 소동이 일어도 누구도 모를 테니. /
“그야 그렇지.”
지긋한 나이의 고두심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대장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이곳에 모일 때도 우리 존재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잖아? 그러니 대놓고 일을 벌이진 않을 거야.”
/ 그러고 보니··· 삼 년 전, 검각(劍閣)을 암습했을 때가 떠오르는군. /
사후칠이 검각을 언급하자, 고두심은 이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검각이라면 운남성에서 꽤나 큰 명성을 떨쳤던 대형문파잖아? 크크, 난 그때 폐관수련에 들어가서 작전에 참여하지 못했었지··· 듣자하니, 그때 대단했다고 하던데?”
사후칠은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 암, 대단했지. 나도 그때야 비로써 대장의 진짜 실력을 봤으니까. /
“어느 정도였는데?”
사후칠은 자신을 재촉하는 고두심의 성화를 즐기듯 대답했다.
/ 과연 무림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릴 만하더군. 검각의 수호자로 칭송받는 오대장로를 단신으로 제압했으니··· 거기다 다른 놈들의 무위도 경이로웠어. 날고 긴다는 검각의 일대제자들을 어린아이 다루듯 했으니 말이야. /
검각의 오대장로는 모두가 상승절학을 익힌 초일류 고수였다.
그들을 단신의 힘으로 제압한다는 것은 절정의 무위에 오른 고수들조차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였다.
사후칠은 자부심어린 미소를 감아올렸다.
/ 사실 나도 우리 귀수신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는데, 운남성의 검각을 하룻밤사이에 멸문시킨 걸 보고 크게 놀랐어. /
고목에 등을 기댄 고두심은 팔짱을 끼고 입을 열었다.
“크크, 같은 귀수신으로써 어깨가 조금 펴지는군. 혈봉궁의 제일가는 악귀(惡鬼)들이 모였으니, 이 정돈 당연한 건가?”
/ 하하, 그렇지. 거기다 검각의 멸문이 우리들 소행이란 걸 사람들은 아직도 모르잖아. /
잠시 주변을 훑어보던 고두심은 괴이한 웃음을 발했다.
“그러면 이번엔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겠군? 흐흐···.”
/ 두 말하면 잔소리고 세말하면 입만 아프지. /
“흐흐흐.”
/ 크크크. /
***
- 스슥 스스슥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신수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신수의 비위를 상하게 할 생각이 없는 강대운은 서둘러 신형을 미끄러트렸다.
그러다 몇 번 넘어지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동혈을 가로지르는 신비한 빛줄기의 근원지로 다가서자, 놀라운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신비한 빛의 정체는 동혈 틈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같은 것이 아니라 영롱한 꽃 한 송이가 발산하는 빛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강대운이 얼음 속에 피어난 새하얀 꽃을 바라보는데, 돌연 뒤쪽에서 한 생명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쓰르륵
“귀찮군.”
“아···.”
이 미상의 생명체가 누운 장소엔 웬 바구니가 놓여 있었는데, 그 크기가 매우 아담했다.
“흐음··· 실로 오랜만에 움직여 보는군.”
“······?”
강대운은 갑작스런 신수의 출현에 놀라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상대가 육중한 음성으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난 항상 명상과 운공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깨달음과 지식을 얻지. 몸을 움직이며 진력을 소비하는 일은 하찮은 생명체나 하는 일이야.”
“······.”
“그래, 이제야 알겠구나. 네가 기억을 못한다고 들어서 의아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럴 만하다.”
신수는 바구니에서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아직 빛에 노출된 장소에 서지 않아 그 형태가 보이지 않았다.
강대운은 의문에 찬 눈방울을 연신 껌벅거렸다.
“아, 제 상태를 아시는 건가요?”
“알다마다. 네 기억은 지금 봉인(封印)되어있다. 그것도 아주 신묘한 자연의 영기(靈氣)에 의해서 말이야.”
“봉, 봉인이요?”
충격전인 소식을 접한 강대운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그는 열두 살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지만 그저 우연한 사고에 의한 것이라 여기고 살았기 때문이다.
“봉인이라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강대운은 은근슬쩍 자신의 처지를 소개했다.
“전 그저 천애 고아일 뿐입니다.”
“내가 아는 한 넌 고아가 아니야. 그보다···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구나.”
“네?”
바구니 위에 선 신수는 당혹스런 표정의 강대운에게 걸음을 옮겨왔다.
- 터벅 터벅
영롱한 꽃에서 발산된 빛이 그의 신체를 비추자, 자그마한 뒷발로 서있는 신수의 전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흠흠.”
강대운은 생각지도 못한 신수의 아담한 모습에 입을 쩍 벌려버렸다.
“시··· 신수님 맞으시죠?”
신수는 어둠을 떨쳐버린 자신의 전신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몸에 빛을 쬐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구나.”
“······.”
강대운이 사술에 현혹된 것이 아니라면 무황백호가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신수의 모습은 흡사 토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 바로 동혈을 나가서 산속을 뛰어다니는 토끼를 잡아와도 바로 저 모습일 것이었다.
신수를 마주한 강대운은 조심스레 말끝을 흐렸다.
“혹시··· 토끼···?”
신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혀를 날름거렸다.
“편하게 신수토끼라고 불러라.”
전혀 편하지 않은 어감에 강대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신수님이 맞네요?”
“신수의 모습이 고작 자그마한 토끼라서 놀랐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백호님이 신수님을 무척 두려워하기에···.”
“아, 그 호랭이 말이냐?”
신수토끼는 한가로이 걸으며 자그마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오백 년 전만 해도 나도 그런 호랭이에게 쫓겨 다녔지. 그보다···.”
말을 이어가던 토끼는 뻘겋게 충열된 눈으로 강대운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아?”
무언의 눈짓에서 그 의중을 알아차린 강대운은 재빨리 자세를 낮춰 쪼그려 앉았다.
신수토끼는 강대운의 무릎 밖에 안 오는 작은 체형이어서 이제야 서로 눈을 마주보게 되었다.
“눈치는 빠르구나.”
“가··· 감사합니다.”
신수토끼는 어색하게 자란 자신의 콧수염을 앞발로 쓰다듬었다.
“거기다 네게 봉인 되어있는 건 기억뿐만이 아니다.”
“예?”
강대운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의구심을 표출했다.
“아까부터 자꾸 봉인이라고 하시는데···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신수토끼는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뽐내며 콧등을 움찔거렸다.
“오행의 이치를 관통한 영기(靈氣)가 네 전신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막아놓고 있다. 이런 신위를 펼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정녕 놀랍구나.”
토끼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자그마한 앞발로 턱을 괴었다.
“나도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네게 이런 일을 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는데···.”
“한 사람이요?”
“그래, 이런 신위를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세상에 두 명이나 있겠느냐? 당연히 그 노인의 짓이겠지.”
“그 노인이 대체 누굽니까?”
불필요한 질문에 신수토끼는 미간을 굳히며 튀어나온 앞니를 움찔거렸다.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구나. 어련히 말해주련만···.”
“죄송해요···.”
토끼는 뒷짐을 지고 주변을 작게 서성였다.
“이 같은 상황이 무척 생소하고 이해가 되질 않을 것이다. 기억을 모두 잃어 버렸으니 말이다. 내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데까지는 말해주마.”
“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낯선 생명체가 이곳에 왔었다. 호랭이 녀석 말고 다른 생명체는 실로 오랜만이라 나는 흥미를 보였지.”
토끼는 그윽한 시선으로 강대운과 눈을 맞췄다.
“이곳에 오른 생명체는 둘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너였다.”
“저요?”
“그래, 흐음··· 그러고 보니, 이젠 소년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자라버렸구나? 청년이 되었어.”
“맞습니다.”
강대운은 토끼 말이 도무지 믿기질 않았는데, 그렇다고 이를 무작정 거짓으로 여길 수도 없었다.
십년 전이라면 그의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이곳에 왔었나? 이곳은 인간의 출입이 극히 제한된 지역인데 어찌···.’
강대운은 조급한 심정에 다리를 동동거렸다.
“······.”
신수토끼는 그의 반응을 힐끔 살피다가 자그마한 입술을 들썩였다.
“넌 소년이었어. 지금과 달리 아주 조그마했지. 나와 별반 키 차이가 나질 않았어.”
토끼는 가슴 아픈 비화가 떠오른 사람처럼 돌연 자신의 심장에 앞발을 갖다 되었다.
“처음 무공수련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르는구나. 난 그저 작은 키를 키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영약을 섭취했지. 그러다 차차 깨달음을 얻었고 마침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건 키가 아니라는 사실에 도달했다!”
궁금하지 않은 사안까지 일일이 토해내던 토끼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너와 함께 온 인간은 백발이 무성한 늙은이였다. 오랫동안 인간을 봐왔기에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 그 노인은 오른쪽 팔이 없었고, 얼굴은 흘러가는 세월을 잡지 못해 주름이 가득했다.”
“한 쪽 팔이 없었다고요? 흐음···.”
토끼는 가느다란 눈썹을 움찔거린 뒤, 냉랭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올라온 그 노인은 날 발견하자마자 내 내장기관을 내놓으라고 했다.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직접 뜯어가겠다며 검도 뽑았지.”
“네?”
갑작스런 이야기 전개에 강대운은 눈을 부릅떴다.
“백호님을 수하로 부리는 신수토끼님께 누가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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