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계산 착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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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걸은 고개를 더욱 수그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께서 전에 흡족히 드셨던 규화동계를 만든 곳이 바로 그 선불객잔입니다. 객잔의 위치를 아는 수하를 불렀으니, 이곳에 곧 도착할 것입니다.”
그를 내려보는 설주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물렸다.
“음, 그래? 그거 맛이 괜찮았지···.”
그녀는 방립을 슬며시 벗고 환상적인 미색을 드러냈다.
“그 객잔에 운학서생에 대한 단서가 있을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고 이런 외딴 곳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
힘차게 대답한 조인걸은 돌연 설주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섬뜩한 기분에 몸을 작게 움찔거렸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설주연은 냉랭한 음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동물 죽이는 것을 무척 싫어하지만··· 이를 죽임으로써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망설이지도 않지.”
“······.”
조인걸은 운집대에서 벌어진 참사가 생각나 급히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다.
“그, 그것이···.”
그런데 그보다 앞서 뇌전(雷電)이 번뜩였다.
- 퍼퍽
소교주 옆에 시립해 있던 무영이 오른쪽 다리를 들어 조인걸의 머리를 내리찍어 버린 것이다.
“윽!”
조인걸은 달아나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는데, 멀쩡했던 앞니 두 개가 어디론가로 종적을 감춰버렸다.
게다가 바닥과 부딪친 충격의 여파로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
설주연은 착잡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곰은 비무대 위에서 명예롭게 죽지 못하고 비도에 의해 치졸한 죽음을 맞았다. 어째서 아무런 약점이 없다던 경갑흑웅이 그토록 허무하게 패배한 거지?”
진력을 짜낸 조인걸이 다시 부복하며 대답했다.
“소, 소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가장 강하고 난폭한 금수를 구한 것인데, 어떤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그 경갑흑웅을 판 상인이 말하기를, 약점이 전혀 없어서 능운령의 신선이 와도 그 취약점을 찾을 수 없을 거라 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설주연의 음성에 조인걸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상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이득을 챙기려는 얄팍한 상술이니까.”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설주연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라대는 나오라.”
- 파파팟
“존명!”
이십여 명의 흑의인들은 전광석화가 무색할 신법을 발휘하며 설주연의 주변을 둘러쌌다.
수라대는 개개인의 무위가 대단한 수준이어서 절정고수에 속한 무영조차 이들이 연합진을 펼쳐내면 이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극악마도 설량의 엄명으로 설주연을 주군으로 모시는 이십 명의 수라대원들은 하나같이 정갈한 기도를 내보였다.
“너희에게 지시를 내리겠다.”
설주연은 좋은 목적으로 운학서생을 찾아온 것이나 만약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했다.
“여기서부터 천라금쇄진(天羅禁鎖陣)을 펼친다. 누구도 죽여서는 안 되며, 위협될 자가 나타나면 주의를 끌기만 해라.”
“존명!”
일을 그르칠 경우를 대비해 이처럼 차선책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자 철칙이었다.
혹, 계획이 틀어져 상대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자신의 소행이란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설주연은 조금 전 운집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마교가 감찰대에 적의를 가진 것처럼 포석(布石)을 깔아놨으니, 앞으로 혈봉궁은 기세가 등등해져서 더욱 날뛸 것이다. 그러면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겠지···.’
설주연이 능운령에 온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금 흑도 무림의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혈봉궁을 견제하기 위해 마교 제일의 지략가가 투입된 것이다.
그녀는 수라대를 배치시킨 뒤, 질책하듯 조인걸에게 말을 건넸다.
“객잔 위치를 아는 수하는 아직 멀었나?”
“도,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약 일다경이 지나자, 온화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를 알아본 조인걸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어서 오라고 급히 손짓했다.
“이리 와서 객잔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거라!”
“예, 그리 하겠습니다.”
마룡보의 식재료 담당인 중년 사내는 이 수림 지대를 자주 다녀본 탓에 어렵지 않게 작은 소로를 찾아냈다.
“이쪽으로 가셔야 하는데, 한참을 벗어나셨습니다.”
중년 사내의 길 안내 덕분에 설주연 일행은 기괴스런 형상의 객잔을 반 시진 만에 발견했다.
“객잔이 폐가처럼 생겼군···.”
선불객잔의 그 음침한 모습은 방문객의 발길을 돌릴 정도로 처참했다.
하지만 설주연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면식이 있는 네가 먼저 가서 상황을 살펴보도록.”
“존명!”
온화한 인상의 중년 사내는 사명을 짊어진 병사처럼 비장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선불객잔 지척에 당도한 사내는 봉쇄된 문을 주먹으로 힘차게 두들겼다.
- 쿵 쿵 쿵
“······?”
“······?”
연회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던 이화궁과 청성의 문인들은 낯선 인기척에 거짓말처럼 신형을 우뚝 세웠다.
“누구지?”
“이리 늦은 시간에 여길 찾아올 사람이 있었나?”
그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경각심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문밖에 선 중년사내가 다시 문을 두들기며 힘찬 육성을 내질렀다.
- 쿵 쿵 쿵
“이봐, 왕 씨! 어서 문 좀 열어보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주방에서 왕보가 뛰쳐나왔다.
“하하, 이사람 또 왔군··· 응?”
왕보는 중앙 탁자에 둘러앉은 손님들이 크게 경계심을 내보이자, 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아··· 저 음성의 주인은 내 음식 맛을 알아보는 친구 녀석입니다. 적이 아니니, 그렇게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왕보는 봉쇄된 문으로 다가가 모두에게 양해를 구한 뒤, 판자를 떼어내고 문을 열어젖혔다.
“어허, 이 사람···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왔어?”
문 앞에 선 선량한 인상의 사내는 어색한 미소로 되물었다.
“설마 객잔 안에 다른 손님이 있나?”
슬쩍 객잔 내부를 훔쳐본 사내는 얼핏 봐도 몇몇 인물들의 모습이 보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거 난감하구먼··· 오늘은 내가 귀한 손님을 모셔왔거든.”
“손님?”
생전 이런 적이 없었기에 왕보도 호기심을 내보이며 사내의 뒤를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세 개의 인영이 자신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손님을 받을 수가 없어.”
“그게 무슨 말인가?”
“이미 객잔 전체를 임대한 분이 있거든.”
“허···.”
왕보에게 있어 손님이란 존재는 언제나 환영해야할 대상이지만, 지금은 이화궁에서 객잔 전체를 임대한 상황이었다.
“미안하게 됐네. 미리 언질이라도 해주지 않고···.”
“아니, 어떻게 안 되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멀리서 왔단 말일세. 거기다··· 내가 모시고 온 분은 신분이 고귀하신 분이라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허허, 거참··· 잠시 기다려 보게.”
곤란한 대화 주제를 대충 정리한 왕보는 소심하게 몸을 돌려세웠다.
이미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챈 진령은 모두를 대표해서 다부지게 도리질을 쳤다.
자기들끼리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상대의 정체도 모르는데 무작정 그들의 사정이 딱하다고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왕보는 어떻게든 상황을 정리해야했다.
“흠흠, 정말 죄송합니다만 딱 네 분의 손님을 받으면···.”
결국 진령은 확고한 음성을 발했다.
“절대 안 됩니다. 이런 경우를 배제하려고 객잔을 통째로 빌린 거니까요.”
“그야, 그렇지요. 하하, 어쩔 수 없군요.”
왕보가 단념하고 몸을 돌리는데, 객잔 밖에서 낭랑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객잔을 통째로 빌린 탓에 우리가 못 들어가는 거라면··· 그러면 나는 지금 이 객잔을 통째로 사도록 하겠다. 그럼 모두 해결된 거지?”
“······.”
말로 형용키 힘든 여인의 미성이었다.
이화궁과 청성의 문인들은 한쪽에 내려둔 병장기를 수중에 갈무리하며 긴장감을 내보였다.
밖에서 느껴지는 기감으로 볼 때 상대는 무림인이 틀림없는 것이다.
“나는 객잔을 구매하는 일로 주인을 만나야겠으니, 지금 안으로 들어가겠다.”
무영은 객잔 안에 머무는 무림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내보였다.
“혹 우리에게 불만이 있거든 언제든 출수해도 좋네.”
정체불명의 상대가 막무가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왕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표정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오호, 객잔을 사시겠다고요? 그거 귀가 솔깃한데요?”
더 이상 장사를 이어갈 자신이 없던 왕보는 지금이 골머리 앓던 객잔을 팔 기회라 여기고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흥정을 하는 것은 좋으나, 객잔의 겉모습이 좀 그렇다고 허튼 가격을 부를 생각은 마십시오. 이래봬도 매일 손질하고 정비해서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거기다 나름대로 손님 유치에도 공을 들였고, 또···.”
고연은 미간을 구기며 왕보를 옆으로 살짝 밀쳐냈다.
“정신 차리고 옆으로 물러나세요.”
내부 상황은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사람이 객잔 내부로 당도한 상태였다.
방립을 깊게 눌러쓴 설주연은 한가로이 고개를 돌려 사위를 살폈다.
“다행히 내부 시설은 괜찮아 보이는데?”
그녀 곁에 선 조인걸은 정중한 태도로 말을 받았다.
“시설의 위생 상태는 그리 좋지 않으니,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이화궁과 청성의 문인은 상대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들에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었다.
그들의 저력이라면 웬만한 중소문파에 소속된 고수 모두를 상대할 정도로 강맹하기 때문이다.
“흐음···.”
요염한 자태로 내부에 들어선 설주연은 그들의 굳은 표정을 마주하고 불쾌한 음성을 발했다.
“환대받는 분위기는 아니군.”
객잔에 새로 들어선 이는 총 세 명으로 처음 객잔 문을 두드렸던 인상 좋은 중년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놈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요절을 내버릴까요?”
허름한 마의를 입은 무영의 안광에서 신광(神光)이 새어 나오자, 중인들은 그가 절정 고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연평권은 긴장된 음색으로 급히 입을 열었다.
“초면에 그런 말씀을 입에 담으시니, 무척 당황스럽군요.”
그를 마주한 무영은 크게 노성을 내질렀다.
“네놈들이 먼저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더냐!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겉늙은 인상의 연평권은 신광을 뿜어내는 노인의 무위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작게 위축된 상태였다.
“적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경각심을 가졌을 뿐입니다. 저희는 현재 외부인과의 만남을 원치 않기 때문이지요.”
연평권의 단호한 태도에 무영은 주름진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정작 입을 연 사람은 방립을 고쳐 쓴 설주연이었다.
“당신은 청성파의 연평권이로군?”
“······.”
얼핏 봐도 연배가 한참 어려보이는 여인이 자신을 하대하자, 연평권은 격동하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상대가 자신의 내력을 단번에 알아본 것도 대단했지만, 그 정체를 알면서도 위축되지 않는 태도가 더 마음에 걸렸다.
‘대체 저 여인은 누구지?’
그때 유달리 흥분을 참지 못하는 조은평이 앞으로 나서며 괴성을 내질렀다.
“감히 대사형의 존함을 시정잡배 부르듯 하는 것이냐! 청성파가 우습게 보이는 게냐?”
그는 수백 번의 비무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자신의 대사형에 대해 무궁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화령은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눈짓을 보내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미 뱉은 말인지라 되돌릴 수도 없었고, 그녀 역시 청성파가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시답잖은 녀석이 사리 분간을 못하고 나서는구나.”
우람한 체구의 조인걸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 여기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 스스슥
그에게서 강맹한 위압감이 풍겨 나오자, 마치 주변의 공기마저 내리눌리는 것만 같았다.
“애송아, 좋은 말로 할 때 그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할 때마다 엿보이는 빠져나간 앞니의 부재는 마주한 조은평의 웃음을 터트리는데 너무나 충분했다.
“하하하, 도대체 앞 이빨은 어디에 두고 오신 겁니까?”
상대의 노골적인 도발에 조인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은평아, 그만하고 물러서라.”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연평권이 즉시 자신의 사제를 제재했다.
아직 적아(敵我)도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자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중년 사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살기를 피워 내기 시작했다.
“두고 보자···.”
가까스로 분기를 참아낸 조인걸을 대신해서 설주연이 작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무척 진귀한 광경이군. 이화궁과 청성파가 이런 은밀한 장소에 모여 비밀 모임을 갖고 있다니? 누가 보면 서로 밀애라도 나누고 있는 줄 알겠어.”
- 작가의말
오늘도 내일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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