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죽음 (5)
선불객잔이란 낯선 이름에 조인걸은 눈살을 찌푸렸다.
능운령에 현존하고 있는 객잔 이름은 모조리 외우다시피 파악하고 있지만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 것이다.
‘선불로 내라고 선불객잔이라 지은 것인가? 손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군.’
조인걸은 수하를 물러가게 한 뒤 다시 소교주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수북이 쌓여 있던 닭찜을 모두 먹어치운 후 자그마한 배를 두들기고 있었다.
“이리 배불리 먹어본 건 참으로 오랜만인데···.”
설주연은 아직도 여운이 남았는지 비워진 접시의 국물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차마 소교주 신분에 접시를 핥을 수는 없었다.
“지부장!”
설주연의 단호한 외침에 조인걸은 급히 달려와 그 앞에 부복했다.
“옛!”
“그대가 오늘을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말이야.”
감개무량한 칭찬에 조인걸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까지 배어 나왔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능운령에 도착하기 전부터 여러 계획을 짜왔는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배가 부르니 잠시 눈을 붙이고 내일은 능운상가에 가보겠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혹 찾고자 하시는 물건을 말씀해 주신다면 미리 준비를 하겠습니다.”
- 씨 익
설주연의 입가에서 황홀한 미소가 피어오르자 선계(仙界)에 온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무심한 성격의 무영조차도 정신을 빼앗길 것 같아 급히 시선을 돌려야 했다.
‘소교주님의 미색이 갈수록 빼어나 지는군.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아.’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을 품든 그것은 설주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능운령에는 중원 무림에 존재하지 않는 유별난 동물과 신비한 영물들이 많다고 들었다. 난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이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평범한 소녀 감성을 내보인 설주연은 음색을 냉정히 가다듬었다.
“지부장은 금수나 영물 중에서 성정이 포악하면서도 무위가 아주 강한 녀석을 찾아보도록 해.”
“전투에 적합한 것을 찾으란 말씀이십니까?”
설주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이면 사람 손길을 타지 않는 녀석이면 좋겠군. 눈앞에 보이는 먹잇감을 찢어발기는 잔인한 녀석 말이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조인걸은 다부지게 예를 표하며 조심히 내실을 빠져나왔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준비한 소교주 영접에 간신히 성공하자, 입에서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에휴···.”
그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상념에 빠져들었다.
‘본산에서는 소교주가 능운령으로 가는 일로 연회가 벌어졌다더니···. 왜 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가는군. 그녀가 온 지 한 시진밖에 안 되는데, 어서 빨리 십만대산(十萬大山)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 쏴아아아
아직도 장원에는 거센 빗줄기가 몰아쳤는데, 큼지막하게 형성된 빗줄기와 그 안에서 나뒹구는 다채로운 색상의 꽃잎들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단지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소교주의 지시로 생을 마감한 조인걸 수하의 핏물이 섞여서 기괴한 장관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터벅 터벅
일부러 기척을 내며 다가온 무영은 조인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솔직히 자네 목이 멀쩡히 붙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조인걸은 어색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그렇습니까?”
아무리 상대가 본산에서 내려온 높은 직책의 마교인이라고 해도, 이처럼 지부장을 맡고 있는 자신을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소교주님이 아량을 베푸신 것이지요.”
무영은 고개를 저으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원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그분께서는··· 본산에서 안 좋은 일을 겪으셨네.”
반갑지 않은 소리에 조인걸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변고가 있으셨던 겁니까?”
무영은 착잡히 안색을 굳히며 힘겹게 대답했다.
“가장 아끼는 것을 잃으셨지.”
조인걸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아···.”
안 그래도 성품이 악랄하다고 소문난 설주연인데, 끔찍한 일까지 겪었다면 지금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큰 변고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문득 조인걸은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 궁금해졌다.
“흠···.”
설주연을 낳은 어머니는 병마(病魔)로 일찍 생을 마감했고, 극마의 경지에 오른 교주님이 서거했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인걸은 소교주가 대체 무엇을 잃은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아끼시는 거라 하셨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무영은 처참한 그날의 악몽이 떠올랐는지 오만상을 찌푸렸다.
“소교주님께선···.”
“예.”
“가장 아끼시는···.”
“예.”
“거북이를 잃으셨네.”
“······?”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조인걸은 표정 관리도 못하고 심드렁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깟 거북이 하나 죽은 게 대체 뭐가 대수인 거지? 난 조금 전, 지금껏 생사를 함께했던 수하 십여 명을 허무하게 잃었는데?’
그런 조인걸의 의중을 눈치 챈 무영은 심각하게 안색을 굳혔다.
“자네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소교주님께서는 그 거북이에게 무척 애정을 쏟으셨어.”
무영은 슬쩍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 거북이 덕분에 본산에서 소교주님의 독수(毒手)에 화를 당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지. 헌데··· 그 거북이가 죽었네. 다음은 어떻게 됐겠는가?”
“결코 편안하지는 않았겠지요.”
무영은 무심히 고개를 저었다.
“편안하지 않은 정도가 아닐세. 십 일 만에 스물두 명이 화를 입었어.”
“허···.”
단지 거북이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에 격분해서 그토록 무서운 살행을 벌였으니, 이것은 정녕 이성이 있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주연은 현 사십 이대 교주인 극악마도(極惡魔道) 설량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여식이다.
교주가 그녀를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아꼈기에 어느 누구도 설주연을 제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우린 교주님의 특별 지시로 여기에 온 것이네. 반드시 소교주님 마음에 드는 동물이나 영물을 구해서 돌아오라고 하셨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함께 온 스무 명의 고수들은 마교의 최정예 집단인 수라대(修羅隊)라네.”
“수라대!”
조인걸은 마의인들의 신법과 기도를 보고 일류 고수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들이 천마신교에서 두 번째로 강한 무력 집단인 수라대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었다.
수라대는 총 이백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하고 의지가 굳건한 자들이었다.
그들 중 다섯 명 이상이 모여 펼치는 수라연환진(修羅連環陣)은 상대가 설사 절정 고수라 할지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강인한 합격진으로 평가받았다.
“능운상가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하면 직접 괴습지에 들어가신다고 하셨네. 오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미 생각하고 계시는 영물이 있더군.”
“그것이 무엇입니까?”
천금을 들고 능운상가에 간다면 웬만한 금수와 영물은 모두 구할 수가 있었다.
만약 능운상가에서 구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돈을 주고 살수 없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뜻했다.
“능사구미호네.”
“······!”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조인걸은 두통과 함께 속이 매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를 써서 찾아야 하는 것이 그 영물이라면 이미 자신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아, 정말 산 넘어 산이로군.’
능사구미호(能邪構美弧)는 능히 사람을 속이는 여우라는 뜻으로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환경과 동화시킬 수 있는 영물이었다.
이 여우는 사람들의 이목뿐 아니라 다른 금수들의 시선조차도 피해 다니는 영악한 영물이서 이를 잡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능사구미호가 거처하는 곳은 괴기습신지의 깊고 깊은 운무궤계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은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운무궤계는 근처에만 가도 극악한 맹수들이 살계를 펴오는 위험천만한 곳이어서 절정 고수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았다.
무영을 마주한 조인걸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소교주님이 마음에 들어하실만한 동물이 능운상가에 있기를 염원해야겠군요.”
“나도 그리 생각하네.”
하지만 무영은 다음 일도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만약 운무궤계로 가야 한다면 그에 걸맞는 안내인을 구할 수 있겠는가?”
질문을 받은 조인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운무궤계를 누빌 수 있는 안내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간혹 선관오위가 그곳을 간다고 듣기는 했으나, 그들도 어지간해서는 찾지 않는 땅입니다.”
“자네 말은 선관오위 중 한 명이 나서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로군?”
“꼭 그곳에 가야 한다면 그들이어야만 합니다.”
“그럼 그들을 부르게.”
조인걸은 깊게 고개를 숙이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노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목숨을 바꾸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제껏 많은 노력을 취하여 보았으나 선관오위와는 만나는 일조차 너무 어려웠습니다.”
확고한 그의 대답에 무영은 더욱 확신에 찬 어조로 위협을 가했다.
“정말로 자네 목숨과 바꾸어야 할 일이네.”
“······.”
진짜 목을 내놓으라고 하자 조인걸은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랬더니 왠지 가능할 것도 같았다.
“죽을 힘을 다해 다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죽을 각오로 해보게나. 우린 소교주님의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으니 말일세. 만약 소교주님이 빨리 본산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
- 휙
진법을 이루던 마지막 짱돌을 멀리 내다 버린 강대운은 해맑은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다 되었으니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바위 위에 돌 몇 개를 올려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진법이라 하니, 진령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흐음···.”
고심하던 진령은 살짝 강대운에게 다가가 그 진위를 물으려했는데 연화의 매서운 안광을 발견하고는 뒤로 얼른 물러섰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
뒤로 물러난 진령이 무안해서 한 말이었지만 정말로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고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들의 머리와 소맷자락을 간질이고 떠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화사한 미소를 피어 올리며 상쾌함을 만끽하는데, 일행 뒤에 선 소희의 안색이 점차 파랗게 질려갔다.
“응?”
고연은 이 같은 소희의 상태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서둘러 그녀의 맥을 짚어보았다.
“큰일이에요. 소희의 심맥이 매우 불안정해졌어요!”
놀란 고연의 외침에 모두가 소희에게로 몰려들었다.
“소희야, 괜찮아?”
“무슨 일이죠?”
그녀에게 다가선 연화는 걱정에 사무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겸단은 먹은 것이냐?”
“어제 먹었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아요.”
소희는 너무 오랜 기간 자겸단을 복용한 탓에 몸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판단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서 기혈이 끓어오르자, 그녀의 안색이 더욱 파랗게 질려갔다.
“으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연화는 서둘러 강대운을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괴석사지에 도착했을 뿐인데 지금 당장 청음초가 필요한 것이다.
소희는 오늘이 지난다면 폐인이 될 것이고, 내일까지 그냥 보낸다면 생명을 잃을 것이다.
“강 서생님, 오늘 내로 청음초를 구해야만 합니다. 저희는 위험해도 상관없으니, 수색할 곳을 어서 정해주십시오.”
“······.”
그녀를 마주한 강대운은 어떤 말도 해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한시가 급한 연화는 다급히 인상을 찡그리며 더욱 그를 재촉했다.
“어서요. 시간이 없습니다.”
상황을 주시하던 소계성이 돌연 허탈하게 고개를 저었다.
“허허··· 청음초는 만괴사침에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가 아닌데, 어찌 괴석사지에서 단시간 내에 구한단 말인가?”
연화도 그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대로 넋을 빼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늘이 돕는다면 오늘 내로 찾을지도 모릅니다.”
성질 급한 진령은 벌써부터 밖으로 뛰어 나가기 위해 몸을 움찔거렸다.
“어떻게든 구해 올 테니 위치만 알려주세요. 대충 어느 바위 기슭에 있다든지···.”
“······.”
하지만 강대운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며 소희를 뚫어지게 응시하기만 했다.
“흐음···.”
소희의 고운 입술에서 고통에 겨운 신음성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으으···.”
그녀의 심맥을 타고 다니는 혈명장 기운이 기세를 더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강대운은 허망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졌군요.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거든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강대운의 행동은 너무나 여유로웠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태도는 이화궁인들을 자극시킬만한 여지가 다분했다.
가장 인내력이 부족한 진령이 결국 노성을 터트렸다.
“빨리 말 좀 해봐요. 약조했잖아요? 괴석사지에서 청음초를 구해주겠다고!”
다그치는 진령의 호통은 모두의 다급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서 누구도 그녀를 막아서지 않았다.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마주한 강대운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언제 괴석사지에서 청음초를 구해 드리겠다고 했습니까?”
“······!”
“······!”
청천벽력 같은 대답에 이화궁인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제껏 그의 명성과 청음초를 구한다는 희망을 품고 여기까지 왔는데, 난데없이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강대운은 확고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제가 그런 말을 했다면 전 천하에 다시없을 사기꾼일 겁니다. 만괴사침을 한 달은 뒤져야 찾을 수 있는 것이 청음초입니다. 그보다 땅의 정기가 약한 이 괴석사지에서는 한 달이 아니라 몇 년을 뒤져도 찾을 수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연화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크게 경악하며 입술까지 떨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대체 왜 여기에 와 있는 겁니까?”
- 작가의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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