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신무적

낯선 손님의 방문 (5)

연화와 같은 상념에 빠졌던 고연이 볼을 긁적이며 강대운을 바라보았다.

“괴노야나 반면호리 도추란 사람은 처음 듣는 무림인들인데, 그들을 한눈에 알아보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전부터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진의문(眞意門)에서도 잠시 일한 적이 있거든요.”

진의문은 개방을 뛰어넘는다고 평가받는 중원무림 최고의 정보 수집 문파였다.

“······!”

멀뚱한 표정의 소희는 자신의 뇌리를 스치는 질문을 붙잡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누군지도 알고 있나요?”

연화 일행은 섬서성에서 이곳 능운령에 도착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신분과 출신을 밝힌 적이 없었다.

이번 사안은 기밀 엄수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한 것이었다.

이들은 당연히 상대 점소이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흠, 확실하진 않지만 손님들은 섬서성 이화궁(移花宮)의 궁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 번뜩

탁자에 둘러앉은 여인들의 안색이 일제히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변해버렸다.

그들은 이제껏 내력을 숨기기 위해 두터운 피풍의에 죽립을 눌러쓰고 외진 곳만을 찾아 이동해 온 것이다.

게다가 신분을 노출할 만한 물건은 그 어떤 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본 상대 점소이는 적대적인 세력에서 보낸 살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 스윽

진령은 본능적으로 옆에 걸쳐 둔 장검을 움켜쥐며 진땀을 흘렸다.

‘제길, 설마 음식에 독을 탄 건 아니겠지?’

탁자에 둘러앉은 여인들은 속에서 막심한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아무리 허기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의심도 없이 차려진 음식을 모두 먹어치운 것이다.

“반응을 보니 제가 정곡을 찔렀나 보군요. 혹시 오해하진 마십시오. 전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니까요.”

강대운은 중인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가장 살벌한 표정의 진령을 마주 보았다.

“행여나 섣부른 출수로 보잘것없는 제 목을 내려치는 경솔한 실수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눈빛을 마주한 진령은 크게 뜨끔했다.

자신의 사고이자 이번 여정의 수장인 연화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탁자를 걷어차고 살수로 의심되는 점소이를 두 동강 내려 한 것이다.

소희는 처음에 가졌던 웃음기를 거둔 채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우릴 알아본 거죠?”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 음식을 가져오다가 소저께서 자겸단을 복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자겸단을 복용하는 것은 무척 특이한 사항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자신들의 내력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강대운은 침착히 그들을 마주하며 속내를 모두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지금의 저는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 같으니 진지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진령은 싸늘하게 쌍심지를 켜며 위협조로 말했다.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각오해야 할 겁니다.”

강대운은 애착이 가득한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손님들께서는 객잔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철저하게 신분을 숨기셨죠. 아마 신분을 숨기기 위해 능운령의 변방에 위치한 이 객잔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강대운은 찬찬히 중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철저히 신분을 감추고자 했던 죽립인들이 사실 뛰어난 미모의 여협객이셨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째서 이 위험천만한 괴습지에 여인들끼리만 일행을 꾸려서 왔을까?”

강대운은 쉴 새 없이 자신의 목덜미를 힐끔거리는 진령의 시선을 피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손님들께서 소속된 문파가 여성들로만 구성된 곳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고연이 냉철하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일행이 더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요? 뒤늦게 다른 사내들이 합류할 수도 있잖아요?”

그녀를 마주한 강대운은 다부지게 고개를 저었다.

“일행이 있다면··· 이토록 철저하게 객잔 전체를 봉쇄하진 않았겠지요.”

“······.”

“······.”

아무도 입을 떼지 못하자 다시 강대운이 설명을 덧붙였다.

“자, 그래서 무림 대소 문파 중에 여인으로만 구성된 문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약 십여 개의 문파가 떠오르더군요. 헌데 이 위험천만한 괴습지에 자체 고수만을 파견하여 여정을 꾸릴 무력의 문파는 단 세 곳밖에 없었습니다. 그중에서 아미파(峨嵋派)는 불가에 소속된 비구니들이니 손님들의 머리카락이 진짜로 보이는 이 상황에서는 제외를 해야겠지요.”

진령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운남의 척살문(刺殺門)과 섬서의 이화궁인데, 척살문은 검이 아닌 암기와 비도술에 특화된 살수 집단이어서 또 제외를 했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이화궁밖에 없군요.”

“······.”

점소이의 추리가 너무나 논리 정연하고 타당하여서 진령은 입술을 잘게 깨물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전 궁금했죠. 이화궁은 사람들의 이목 끌기를 기피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이 멀고 먼 능운령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러자 가만히 사태를 주시하던 고연이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그 이유도 안단 말인가요?”

고연을 마주한 강대운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섬서성에는 미색으로 유명한 소녀가 있는데, 바로 이화궁주의 둘째 여식인 소희 소저지요. 단번에 이분이 그 소희 소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흠··· 그런데 무공 수위가 높지 않은 그녀가 왜 이 위험한 곳에 직접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해답은 소희 소저가 복용하는 자겸단에서 찾았습니다.”

추리가 계속될수록 연화는 치부를 모두 들켜버린 것만 같아 부끄러운 심정이었다.

오랜 강호 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노력을 기했는데도 하찮은 객잔의 점소이에게 모든 것을 간파당한 것이다.

“자겸단은 체내에 들끓는 기혈을 잠재우는 효능이 뛰어납니다. 만약 소희 소저가 이화궁과 적대 관계에 있는 적혈문(敵血門)의 절정 고수에게 혈명장을 적중당하지 않았다면 자겸단을 복용할 이유가 없지요.”

고연은 일행을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인정해야겠군요. 우릴 알아볼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되었어요.”

상대가 자신을 인정했음에도 이 말 많은 점소이의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자겸단은 단지 혈명장의 기세를 막기 위한 미봉책일 뿐, 심맥을 완전히 치유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음기를 깨끗이 씻어주는 청음초(靑陰草)가 필요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그것을 얻기 위해 이곳에 오신 거 같습니다.”

“······.”

“······.”

그때 주방에서 음식을 완성한 왕보가 눈치 없이 큰 소리를 외쳤다.

“선불객잔의 별미 완성입니다요!”

이 화통한 외침에 반응을 보인 이는 점소이 강대운밖에 없었다.

그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네네, 갑니다!”

방금까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을 내밀고 있던 강대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큰 접시를 들고 돌아왔다.

그런데 코를 자극하는 맛깔스러운 음식의 향내에도 이화궁인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간파 당했어! 겨우 점소이에게···.’

연화는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 탁

“······?”

강대운은 음식을 내려놨음에도 아무도 젓가락을 들지 않자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제가 공연한 얘기를 꺼내서 입맛을 빼앗았군요? 제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식사를 하십시오. 섬서에서 이곳까지 오셨으니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일행 중 가장 먼저 정신을 되찾은 소희는 다른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일단 별미라고 하니, 이 산채요리 맛 좀 봐야겠네요. 우리 어서 먹어봐요.”

그녀는 각자의 상념에 빠져 있는 이화궁인들을 계속 재촉했지만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과장되게 젓가락을 놀려 입속으로 산나물을 가져갔다.

“와아··· 정말 식후에 먹는 별미답네요. 맛도 맛이지만 소산초(小酸草)까지 들어가 있어서 소화를 돕는 효과도 있겠어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하지만 소산초는 기혈을 끓게 하는 음식이니 소저께서는 많이 드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소희는 자신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점소이를 향해 가만히 작은 미소를 되돌려주었다.

이제 구태여 자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강대운은 묵묵히 신형을 돌려세웠다.

“저는 미리 위층에 올라가 객방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식사를 마치시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하니까요.”

선불객잔에는 숙박객을 위한 객실이 단 세 개뿐이었다.

워낙 규모가 작아 처음에는 객방도 없었으나, 가끔 찾아오는 손님이 이 외진 곳까지 와서 식사만 하고 다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문에 왕보는 식당으로 쓰던 이층을 억지로 개조해서 객방 시설로 바꾼 상태였다.

- 쓰윽 터벅 터벅

점소이가 떠나가자, 소희는 더욱 적극적으로 연화를 재촉했다.

“연화 사고, 너무 깊게 생각하실 거 없어요.”

상념을 마친 고연도 이에 동의했다.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저희는 이미 무사히 능운령까지 도착했고 객잔도 모두 봉쇄했으니까요. 이제 서둘러 청음초를 구해 돌아가면 그만이에요.”

근심어린 표정의 연화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젓가락을 들어 나물을 뒤적거렸다.

- 끄적 끄적

그때 앞치마를 두른 왕보가 주방에서 나와 그들에게 다가왔다.

“흠흠, 제겐 너무 귀한 손님? 잠시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까무잡잡한 피부색의 진령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뭐죠?”

“아, 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객잔 전체를 봉쇄했는데요··· 이대로는 식재료를 구하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요.”

진령은 고운 아미를 살짝 찡그리며 손사래를 쳤다.

“재료를 더 사 오실 필요는 없어요. 지금 있는 걸로도 사흘 정도는 가능하죠?”

“그렇긴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금자를 선불로 주셨는데 어떻게 자투리 재료로 요리를 하겠습니까?”

그를 마주한 진령은 단호한 음성으로 확답을 주었다.

“상관없습니다. 우리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내력을 안다니요? 그건 오해십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아는 거라곤 손님들께서 굉장한 미인이란 것밖에는··· 헤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왕보는 냉랭해진 객잔의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휴우··· 제가 설명을 드리죠.”

유독 흰 속살을 지닌 고연은 한숨을 내쉰 뒤에 말을 이었다.

“우릴 추격하거나 쫓는 이들이 있어요. 그 때문에 답답하시더라도 당분간은 여기서 이렇게 지내셔야 할 겁니다.”

통통한 체형의 왕보는 고개를 급히 내저었다.

“하, 하지만 이렇게 다 막아놓으면 장내도 답답할뿐더러, 내일 아침에 해가 밝아와도 객잔 안이 칠흑같이 어두울 겁니다.”

객잔 주인 왕보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탁자에 둘러앉은 여인들의 미모가 화사한 햇볕 아래 드러났을 때는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건 저희가 바라던 바예요. 우린 며칠 쉬면서 원기를 회복할 것이니 다른 것은 일체 필요 없습니다.”

고연은 가져온 봇짐에서 은자 두 냥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 쓰윽

이를 마주한 왕보는 창백한 안색으로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이미 주신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손님들의 의중은 알아들었으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욕심 많은 왕보가 거저 준다는 은자를 굳이 거절한 이유는 그의 철칙 때문이었다.

‘자고로 강호에서 지나친 욕심은 곧 죽음을 의미하지···. 괜히 더 많은 은자를 받았다가 나중에 살해라도 당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다시 은자를 봇짐에 넣은 고연은 홀로 딴생각에 빠져 있는 소희를 바라보았다.

‘얘가 또 무슨 생각을 저리 곰곰이 하는 거지?’

초점이 흐려진 소희는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말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점소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는데 어째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지? 보통은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기 마련인데 말이야.’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의 시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소희는 엉뚱한 결론에 다다랐다.

‘아하, 객잔 내부가 너무 어두워서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나 보구나? 아무튼 젊은 남자와 이토록 오랫동안 대화해 나눠본 건 처음인데···.’

끝내 일행의 시선을 인식하지 못하는 소희를 위해 연화가 진중한 음성을 발했다.

“소희야,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 게냐?”

“네? 아··· 아니에요.”

놀란 소희는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내저었다.

- 쓰으으윽

그때 진령이 피곤한지 작게 기지개를 켰다.

“아흐, 오늘은 너무 피곤해요. 일단 쉬고 계획이나 일정은 내일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모두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듯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봇짐을 챙겼다.

아직 점소이가 정돈을 마쳤다고 알려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의 기척을 통해 정리가 끝났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객방으로 향하는 층계에서 연화를 마주한 강대운은 상투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 객방은 세 개이고 모두 준비됐습니다. 방 하나에는 침상이 두 개씩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한 만큼 쓰시면 됩니다.”

이화궁인들은 선불객잔을 통째로 빌렸기에 방을 몇 개 쓰든 그것은 이들의 마음이었다.

“내가 소희와 함께 이쪽 방을 쓰겠다.”

연화는 층계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선택해 소희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진령과 고연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망설임 없이 객방 하나씩을 잡아 들어가 버렸다.

‘흠, 쌍둥이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더니 사실인가 보군.’

방 안내를 마치고 밑으로 내려온 강대운은 탁자에 놓인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의 큼지막한 설거지통 안에는 빈 접시들이 여러 개 쌓여 있었는데, 설거지에 임하는 강대운의 표정은 무척이나 해맑았다.

- 딸그락 딸그락

“정말 오랜만에 설거지란 걸 다 해보네. 무려 한 달 만에 제대로 된 손님인가?”

강대운이 설거지를 마치자, 선불객잔의 내부는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다.

오로지 객잔 지붕을 때리는 요란한 빗방울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작가의말

설거지도 재미 있을 수 있군요.

[역전승]

재밌습니다. 건필하세요.

[은색의왕]

애가 또→얘가

[문생(門生)]

알려주시니 좋네요~

[텍스트베어]

천지신명님 소희가 절대 히로인이 되지 못하게 해주십사옵니다

[소주병]

건승하시길``````````

[물물방울]

건필하시어요.

[찌를거야]

힘없는자가 너무 튀면 목숨이 열개라도 부족하죠
내가 여자들 일행이면 일단 죽이고 고겠어요

[紅葉滿山]

입이 싸네요

[마아카로니]

건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