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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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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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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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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5.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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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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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5장 내부의 적 (9)

DUMMY

“......팰론?”


대신전 지하에 마련된 고대 기록 관리실을 지나 도착한 형형한 방에 도착한 아레타는 방 중앙에서 웃는 이를 보며 당황했다.


“네가 시간이라고?”

“그렇다고 하더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아레타는 당황했으나 반대로 팰론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라.”


어느새 프레이뮬이 세 사람이 앉을 작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늘어놓았다.


권함을 받은 것도 있거니와, 마냥 서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뭐했던 아레타는 일단 가장 가까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첫 번째가 로앙, 두 번째는 본래 로앙이던 자, 세 번째는 뒤틀린 로앙. 이렇게까지 수호자 각성이 한 기사단에 연이어 일어나는 일은 역사적으로도 드물었지.”

“뒤틀린 로앙?”


두 번째까지는 영 이상해도 그런가 하던 아레타였지만 세 번째 표현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넌 잘 모르겠지만, 로앙은 겉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명백하게 다른 곳이야.”

‘내직과 외직에 대한 이야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하는지는 알았다. 허나 그렇기에 아레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로앙 기사단은, 소위 ‘내직’이라 불리는 이들은 가장 로앙 답다고 여겨져서 뽑힌 이들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이상함을 넘어 뒤틀렸고, 겉보기와 다르다니 말을 듣기는 들어도 가슴이 이해하지 못했다.


“로앙 기사단에 어울리는 건 내직들이다. 하지만 신전 기사다운 진정 고결한 이들은 외직이야.”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구나. 간단히 말해주마.”


혼란스러운 가운데 프레이뮬이 끼어들었다. 그는 팰론과 한번 눈을 마주쳐서 자신이 말해도 되겠냐고 의견을 구한 후 그대로 입을 열었다.


“초대 로앙, 그러니까 최초에 로앙 기사단을 세운 녀셕은 처음부터 신전 기사가 아니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레이한드로 발렌시아 로앙.


초대 로앙 기사단 단장이자 로앙이라는 이름을 남긴 이.


그가 신전 기사가 아니라 영주를 섬기는 이였으며, 그 자신 역시 영주였다가 모든 걸 버리고 대신전을 따른 이야기는 교국 내에서라면 길거리를 뛰노는 어린아이에게 물어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리고 말년, 그는 엄한 생각을 했지.”

“엄한 생각?”

“불사를 꿈꾸었다.”

“......하?”


프레이뮬의 말에 아레타는 한순간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이 무슨 동화 속 삼류 악당도 아니고, 가장 위대한 기사라는 평가 받는 레이한드로 발렌시아 로앙이 그런 걸 꿈꾸었다니 질 나쁜 농담처럼 들렸다.


“물론 그 녀석은, 아니 그자는 대단한 걸 꿈꾼 게 아니야. 그저 조금 더 살고 싶다, 그 생각을 했을 뿐이지.”


조금 더 살고 싶다. 그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생명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생각이다.


만약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하자. 그걸 누군가 알려주고, 본인도 체감하고 있다고 한들 내일은 보고 싶어하는 건 본능이다.


그러니 아주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이 들었건만, 이어진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라고 유지삼아 지키려고 든 자들이 있었지. 그게 초창기 로앙 기사단이다.”


여기까지 들은 순간, 아레타는 팰론이 말한 뒤틀림이라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동시에 외직에 대한 혐오감이 들었다.


“그들이 섬기는 건 오직 레이한드로 발렌시아 로앙뿐이군요.”

“정확해. 그리고 나는 그걸 알고 회의를 느끼던 중 각성했지.”


팰론의 말에 아레타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아레타의 시선에 씁쓸한 얼굴을 한 친구가 보였다.


그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랜 세월, 그들은 그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품었지. 물론 그게 허황되다고 느끼며 적당히 어울려주기만 하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기사단 수뇌부는 진심이다. 그런 이들만 골라서 채우고 있으니까.”

“......잠깐만.”


팰론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런 장황한 말을 굳이 프레이뮬을 통한 초대라는 형식으로 불러서 전할 이유가 짐작 가지 않았다.


아니, 짐작 가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그를 부른 건 한때의 동기가 아니라 시간의 수호자다.


그리고 시간의 수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단편적으로나마 체험한 아레타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들이......”


억지로 열었지만 차마 말을 잇기 힘들었다. 그러나 외면하려는 그를 닥달하듯 생각은 무럭무럭 자라서 압박했고, 아레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성공했고, 대신전에 등을 돌린다고?”

“성공했는지, 성공을 위해서인지는 나도 아직 몰라. 하지만 내가 본 환상에서는 분명히 그들이 대신전에 칼을 겨누었어.”


덤덤한 말에 이어서 팰론의 그들이라는 규정에 아레타는 오히려 그가 자신보다 덤덤히, 냉정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거 같았다.


불현듯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평생 외면당했다고 보아도 옳은 그 자신은 로앙이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며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건만, 정작 그가 바라던 곳에 있던 팰론은 이미 그들이 돌이킬 수 없다 여기고 있다.


“.....부러운걸.”

“부럽다고? 내가?”

“그래.”


아레타는 그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니 그가 부정한다고 달라지진 않으리라.


하지만 그게 그가 할 일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이건 말할 사람을 가리는 일이군? 누구에게만 허용되지?”

“당장은 수호자들에게만.”

“알았다. 하지만 언질 정도는 괜찮겠지? 가령 친한 이에게 수도에 변고가 생기면 도망치라는 정도는 말이야.”

“......그래.”


아레타의 말에 팰론은 그가 누구에게 말을 전할 생각인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칼뤽에게 전할 거라면 로앙을 믿지 말라고 전해도 돼. 그녀석이라면 입이 무거우니까.”

“그러지.”


아레타처럼 같은 마을 출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굴은 알고, 친분도 적지 않았던 팰론의 이 말은 최대한의 양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양보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안 아레타는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이것으로 끝이라면 실례하지. 이제 곧 출진이라.”

“아레타.”


팰론의 부름에 아레타는 고개만 돌려서 그를 보았다. 그의 시선에 팰론은 힘주어 말했다.


“너는 우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가 될 거야.”

“시간의 이적이냐?”

“아니, 내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야. 하지만 강고한 자는 대대로 가장 고결한, 가장 신실한 자였다.”

“......이번은 조금 부족한 놈이 뽑힌 걸 보니 다들 정진해야겠네.”

겸손인지 농인지 모를 말을 남긴 아레타는 몇 걸음 걸었다. 그런 그의 등을 향해 이제껏 지켜보고만 있던 프레이뮬이 한 마디 던졌다.


“건넨 거, 잘 보관해라.”

“알겠습니다.”



***



뒤돌지도 않고 손을 흔들며 걸어간 아레타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프레이뮬의 불평이 팰론의 귓전을 때렸다.


“저놈은 어른이 말하는데 돌아보지도 않나.”

“하하, 지금 심란할 겁니다. 그 정도야 이해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해를 해도 내가 한다, 어디서 건방지게 타인에게 이래라 저래라야? 하여간 시간을 본다는 것들은 지들이 모든 걸 아는 것처럼 굴지.”


고개를 흔든 프레이뮬은 팰론을 향해 그 역시 다르지 않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사실은 제일 모르는 게 많은 녀석들인데.”

“......”


프레이뮬의 말에 팰론은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그를 보며 생각하는 것과 스스로가 평가하는 자신에 대한 일이 괴리가 있음을 느끼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런 괴리 없이 그를 온전히 제대로 보고 있는 건 눈앞에 있는 노신관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칼뤽이라는 놈이 누군데 니들 맘대로 전하니 마니 하는 건데?”

“아레타의 친구이고, 저와는......”


안면도 있고 말도 편히하는 사이긴 한데 그와 자신이 친구인가 하니 영 어색했다.


“.....친분이 있는 녀석입니다.”

“두 놈 다 친구라는 말이군. 뭘 돌려서 말해.”


나름대로 고심해서 말을 꺼냈건만, 내면의 복잡함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일축한 프레이뮬은 몸을 일으켰다.


“수호자 둘과 친구라니, 그놈도 대단한 놈이구만. 어서 치우고 시작하자. 너는 저들을 도와야지.”

“알고 있습니다.”


프레이뮬의 말에 앉았던 의자를 손에 든 팰론은 한쪽에 잘 가져다 놓은 후 그의 뒷편, 한층 더 안쪽으로 향하는 문에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그들이 있던 방과 비슷하지만 더 큰 방이 보였다.


더불어 안쪽에는 신관 여럿이 앉아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앞에 있는 이가 팰론이 들어온 것을 알고 눈을 떴다.


“시간의 수호자시여,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몇 번이고 마주했지만 당신이 이러는 건 영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전 지금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가문을 위해 살던 시절에 비하면 편안합니다. 기도하고 보고 전하면 그게 끝이니까요.”


신관의 말에 팰론은 그를 빤히 보았다. 신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유능하고 신실하다. 모두에게 도리와 신앙에 따라 대한다.


한편으로는 가족을 아끼고 가문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범적인 신관이자 한때 최연소 신관장을 바라보던 이, 데일 신관의 이런 모습은 분명 한층 더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그간 그를 알던 팰론에게 있어서 데일 신관의 이런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제 동생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참 마음에 듭니다.”

“......그렇습니까.”


수호자가 되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데일 신관의 일 처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을 위해 물러나고, 시간 신관대에 지원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 동생은 신전병대로 보냈다.


그것이 나쁜 길은 아니다. 하지만 후계가 적은 유서 깊은 가문에서 할 일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하고 대담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시작하시겠습니까?”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데일 신관의 말에 바로 저 멀리 날아갔다.


의아하고 어색한 일이나 그런 건 나중에 성전이 끝난 뒤에 물어도 충분하다.


지금 그가 해야할 가장 중요하고 큰 일은 오직 하나, 곧 멀리 나갈 이들을 돕기 위해 의식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



“날이 좋군.”

“그러게 말입니다. 승전을 위한 축복,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가르침 가운데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말에 아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을 단지 우연으로 여길 것이냐, 아니면 신께서 안배하신 것으로 여길 것이냐입니까. 좋은 교훈입니다. 마음에 새기에 합당합니다.”


경전 구절 가운데 하나를 인용해서 말한 아레타는 호붼을 보며 웃었다.


지금 자신은 여러 짐을 지고 수도를 나서고 있으나 그의 말대로 이걸 인도하는 빛이라 생각하니 짐은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았다.


“출발합시다.”


아레타의 이 말을 시작으로 수도 바깥을 향해 완전 편성을 마친 강찰 신전병대가 말을 달렸다.


그들이 가는 곳은 백색 교단이 숨은 곳, 리가르 지역이었다.


작가의말

6장 두 번째 기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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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5장 내부의 적 (8) 22.05.27 51 3 12쪽
66 5장 내부의 적 (7) 22.05.26 60 3 13쪽
65 5장 내부의 적 (6) 22.05.24 52 3 11쪽
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7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2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0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2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4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3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6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2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2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4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2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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