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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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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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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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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26 19:05
조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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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4장 시작의 땅(3)

DUMMY

“이상하군.”


아비톨람 요새 안쪽에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노인, 마티언은 평소와 다른 감각에 눈을 뜨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깥 풍경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아비톨람 기사들은 모두 훈련하고 경계에 힘쓴다.


단지 그것만이었으니 이상한 점은 없을지 모르나, 그건 마수들의 습격이 시작되기 전 이야기였다.


이제 그들의 일상은 훈련과 경계 그리고 전쟁이었다.


그런데 그 일상 가운데 하나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긴 했지만 마티언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놈들이 이렇게 포기할 리가 없는데.”


아비톨람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마티언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기껏 이렇게 끊임없이 이쪽을 노리다가 힘이 부족해서 물러난다? 그가 아는 백색 교단은 그런 놈들이 아니다.


“불길하군.”


오래전 저들과 전쟁하던 때를 떠올린 마티언은 전에도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던 걸 떠올렸다. 당시에는 시간도 아직 눈을 뜨지 않아서 저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저들이 힘에 부쳐서 공세를 포기했다 여기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착각은 수일이 지나지 않아 깨어졌다.


‘그때 놈들은 끝난 듯 보이더니 우리가 풀어진 순간 대공세를 취했다.’


수호자들은 모두 무사했으나 신관과 신전병 다수가 상하고 죽었다.


그 치열하던 때를 떠올린 마티언은 침잠한 눈으로 창밖을, 그가 오전에 태워버렸던 땅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는다.”


똑똑


“실례합니다.”

“들어오게.”


익숙한 목소리, 제컬티안의 목소리에 마티언은 생각에서 빠져나와 몸을 돌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제컬티안은 곧 예를 취하더니 용건을 입에 담았다.


“기다리시던 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호오.”


마티언은 그 말에 진심으로 웃어 보였다. 이건 좋은 징조였다. 이제 강철과 불이 한 곳에 있으니, 어지간한 일은 뛰어넘을 수 있을 터였다.


‘아니, 방심은 금물이지.’

“여기로, 아니지. 직접 보러 가겠네.”

“알겠습니다.”



***



굳건한 아비톨람 요새의 정문이 서서히 열렸다. 이윽고 사람 여럿이 통과하기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열린 문을 통해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오긴 들어왔네요?”

“거봐, 운이 좋잖아?”


아비톨람 요새로 들어서며 렉스가 중얼거리니 리발은 보란 듯 당당하게 말했다. 허나 렉스가 보기에 이건 그렇게 자랑할 일이 아니었던지라 곧 입에서 빈정거리는 말이 나왔다.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찰그락


양손에 채워진 쇠사슬 수갑을 들어 보이니 리발도 양심은 있는지 작게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렉스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래서, 이다음은요?”

“나야 모르지.”

“......아, 진짜.”


뻔뻔한 리발의 말에 렉스는 머리가 절로 아파져 오는 걸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 너무 떠들지 마라.”


그들이 너무 소근거린 탓인지 신전병 하나가 다가와서 창끝으로 쿡 찌르며 경고했다. 그 말에 렉스는 일단 입을 닫았으나 대신 리발을 향한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에 리발은 모른 척하며 주변을 살폈다.


바깥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극한 황무지건만 안쪽에는 놀랍게도 푸른 풀들이 보였다. 바깥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면 이곳은 초원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생명력이 있다.


‘놀랍군. 여기가 아비톨람 요새? 바깥과 안쪽이 전혀 달라.’


놀란 것과 별개로 리발의 눈은 바삐 돌아가며 내부 지형을 빠짐없이 뇌에 새겨두었다.


“형님, 노려봅니다.”


슬쩍 건네는 귀엣말에 리발은 곁눈질로 주변에 있는 이들을 살폈다. 그러자 그를 향해 강한 의심을 드러내는 호붼이 보였다.


“어차피 볼 건 다 봤어. 여기선 얌전히 굴자고.”

“전 죽기 싫어서라도 그럴 거니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형님이나 자중해주세요.”

“고려하지.”


불안함을 가중하는 말에 렉스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으나 이제는 노려보는 걸 넘어서 창에 손을 대고 있는 호붼을 보고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제길, 여기서 나가면 형님 요리에 듬뿍 장난칠 거야.’



***



“지금이라도 처리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식량이 떨어졌다? 그건 사실일지 모르나 굳이 우리가 받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것도 거짓일 수도 있고요.”


리발과 렉스를 노려보던 호붼이 하는 말에 아레타 역시 동감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허나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아예 넘길 수도 없습니다. 저들에게 접촉할, 아니면 저들이 접촉할 이들을 찾아야합니다.”

“......죄수 가운데 백색 교단이 있다는 거, 전 믿기 힘듭니다.”

“나도 마찬가집니다. 허나 적어도 저들은 백색 교단과 달랐으니 일단은 두고 볼 가치가 있겠죠.”


참 마음에 들지 않게도 이건 사실이었다. 이적을 일으키고 살피니 놀랍게도 리발에게서는 검은 연기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렉스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저자가 재생하던 능력은 백색 교단과 근본을 달리하는 힘이었다.


‘궁금한데.’


대체 어떤 일이 있으면, 혹은 어떤 짓을 하면 저런 걸 얻을 수 있는지 심히 궁금했다.


“마티언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느 분이 수호자님이신지요?”


대단히 공손한 말로 다가와 묻는 이, 케르뷜의 물음에 아레타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제가 강고한 자, 수호자 아레타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비톨람 기사 케르뷜입니다. 마티언님께서 안쪽에서......”

“나왔으니 그럴 필요 없다.”

“마, 마티언님!?”


케르뷜은 자신이 들었던 것과 달리 마티언이 이곳까지 나온 것에 놀라며 경악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는 곧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대신전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 자네도 알지 않나?”

“말씀하신 대롭니다.”


마티언이 아레타를 바라보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게도 서로를 보니 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다.


눈앞에 있는 마티언을 보고 있자면 일렁이는 불과 이적의 강렬함이 느껴졌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단단함, 강철의 든든함이군.”


이는 마티언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는 곧 두 눈을 감고 추억에 잠겼다. 그와 달리 아레타는 자신을 돌아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도 다른 이들에게 저렇게 보이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보이는 건지 상당히 궁금했다. 그러나 거울 없이는 사람은 스스로를 볼 수 없듯, 아레타는 자신이 다른 수호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감상적이었군. 아비톨람에 어서 오게.”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헌데 바깥에 있는 흔적, 역시 심각한 겁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대신전에 연락해서 자네를 부르지도 않았겠지.”

“허면......”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마저하지. 다들 좀 쉬어야 할 거 아닌가. 그리고......”


말끝을 흐린 마티언은 고개를 돌려서 포박된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저들은 뭔가?”

“믿을 수 없는 정보원입니다.”

“호오.”


아레타의 꾸밈없는 대답에 마티언은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당장 캐어물을 정도로 어리지 않았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할 이야기가 많겠어.”



***



“곧 대규모 공세가 있을 거네.”


방으로 돌아온 마티언이 가장 먼저 입에 담은 건 그가 예상하고 있는 대규모 공세였다. 그 말에 아레타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규모라고 하심은?”

“오면서 자네도 바깥 흔적을 보았지?”

“예.”

“아마도 그 열 배는 태워야 할 걸세. 최소로 잡아서 말이지.”


흔적만 남아서 얼마나 많은 마수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대성전은 물론이고 그가 마하난 분지에서 마주한 것 이상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 이제 그보다 열 배는 많은 마수를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니, 우려가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을까요?”

“어떤 의미에서? 승리? 아니면 희생?”

“둘 다입니다.”

“전자는 나 혼자라도 가능했고, 후자는 자네가 있으니 이제 한시름 덜었다고 하면 편하겠나?”

“확실하진 않다, 그거군요.”

“당연하지. 무엇보다도, 여기에 있는 기사들은 다 여기서 나고 자란 것들이야. 나라면 모를까 외부인이나 다름없는 자네를 확실히 믿진 않겠지.”


믿음은 이적을 공유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아레타도 아는 걸 전대 수호자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티언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리 말하니 아레타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스러웠다.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 내가 중계할 거니까.”

“허나 그러면.....”


직접 나누어주는 것과 한 다리 건너서 주는 건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 게 가능하고, 아직 그런 상황이었던 적은 없지만 대신전에서는 분명히 그리 말했었다.


“자네를 내가 믿으니 괜찮아.”

“......좋은 판단은 아닙니다.”

“허나 자네가 저들에게 믿음을 얻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네.”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말에 아레타는 더 무어라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입을 다물었을 뿐, 아레타의 눈은 이리저리 돌고 있는 게 홀로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여러 의미에서 후배인 그의 모습이 기꺼웠던지 마티언은 푸근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래, 요즘 로앙 기사단은 좀 어떤가.”

“예?”

“아, 말하는 게 늦었군. 내 이름은 마티언 로앙이네.”


로앙.


그 이름에 아레타의 두 눈이 커졌다. 그 반응이 못내 재밌었는지 마티언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다만 외직이었으니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군.”

“......저도 외직입니다.”

“자네도?”


긴장을 풀어주듯 던진 말에 돌아온 대답에 마티언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군. 이미 아는지는 모르지만, 역대 수호자 가운데 가장 많은 게 우리와 같은 로앙 외직 출신이라는 거 알고 있나?”

“그건 처음 들었습니다.”


정식으로 임명되고 바로 마하난 평원으로 가야 했기에 꼭 필요한 것들만 꾹꾹 눌러 담아 배웠던 아레타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수호자의 출신에 대한 건 따로 알지 못했다.


또한 그다지 필요 없는 일이기도 했다. 보통은 신전 기사의 이름을 들으면 그가 어디에 속한 이인지 금세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름을 듣고도 한 번 더 물어봐야 하는 이들은 아레타와 마티언이 속한 로앙 기사단이 유일했다.


‘이상한 기사단이라니까.’


예전에 느꼈던 섭섭함을 담아서 제가 속한 기사단에게 쓴소리를 낸 아레타는 이어서 들린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럼 이건 알고 있나? 역대 수호자 가운데 가장 적은 이들을 배출한 곳이 어디일지?”

“모릅니다만, 관심은 있습니다.”


로앙 외직이라는 건 어느 의미 낙인과 비슷한 말이었기에 미묘하게 유쾌해진 아레타는 곧 흥미를 보였다. 그런 아레타의 반응에 마티언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씩 웃었다.


“로앙이네.”

“예? 방금 로앙이 가장 많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로앙 외직 출신이 가장 많다고 했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잠시 생각하던 아레타는 마티언이 한 말의 속뜻을 알아채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순수한 로앙? 진정한 로앙? 웃기는 일이지. 그저 인간의 구분이자 높임에 불과해.”


마티언은 그렇게 말하고는 멀찍이 수도가 있는 방향, 더 정확히는 그곳에 있을 로앙 기사단 본부가 있을 방향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수호자가 되고 나서 수십 년, 확실하게 알았지. 신께선 그들이 하는 일을 좋게 보시지 않아.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게. 자네는 그 순수함을 주장하는 것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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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8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0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6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3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2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 4장 시작의 땅(3) 22.04.26 73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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