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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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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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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3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5.0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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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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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4장 시작의 땅(13)

DUMMY

“허억, 허억, 허억.”

“이봐, 그쪽은 막다른 길이야!”

“예?”


숨이 가쁘도록 도망치던 렉스는 그를 제지하는 목소리에 그제야 속도를 늦추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따라온 주블랑이 마찬가지로 거친 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으로 가야 해!”

“그쪽이요?”


주블랑의 말에 렉스는 그가 뛰어온 거리와 들어올 때 살폈던 지형을 머릿속에서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어.’


정신을 차리니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들었다.


“너무 마음에 쓰지 마시오. 그자도 그렇게 말했거니와, 잘은 모르지만 쉬이 죽을 분은 아닌 거 같던데.”

“......그렇죠.”


렉스의 마음을 안듯 주블랑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말에 대답하긴 했으나 어두운 얼굴을 보건대 받아들인 건 아닌 거 같았다. 그저 말을 건넨 주블랑에 대한 예의로 그리 대답했을 뿐이다.


“저, 신전 기사님.”

“고마운 말이나, 나는 신전 기사는 물론이고 기사도 아니요.”

“네? 그게 무슨......”

“아까는 말할 기회가 없어서 넘겼는데, 나는 단순한 감독관이라오. 기사 실격이라고 낙인찍혀서 밀려난 자들 가운데 하나지.”


주블랑은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따라잡은 렉스를 지나쳐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허나 그렇다고 그게 손 놓고 보고 있을 거라는 말은 아니지. 음?”


장비를 챙기고 동료들을 깨워 함께 돌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하던 주블랑은 앞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여럿에 안색을 굳혔다. 본래라면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이들이라면 그를 포함한 감독관들이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오늘 그는 예외에 해당하는 이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죄수 하나가 몰래 빠져나온 것에 더해서 리발과 렉스라는 외부인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잘 모르는 이들까지 벌써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부류가 셋이다.


그런 상황에서 앞에 느껴지는 인기척이 감독관들이리라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굴 수 없었다.


자연스레 걸음은 멈추었고, 렉스 역시 상황을 알고 조심스럽게 전방을 주시했다.


“주블랑? 오랜만이구나.”

“마, 마티언님!?”


긴장하며 전방을 보고 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인기척들의 정체는 불의 수호자 마티언을 필두로 한 감독관 무리였다.



***



“드디어......”


눈앞에 징글징글한 대신전의 표식이 보임에도 퀜달렌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봉인 너머로도 확연히 느껴지는 존재, 위대한 야성의 힘에 퀜달렌은 문을 향해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파직


“아, 그래. 아직은 아니란 말이지.”


번개가 일면서 그를 거부하는 의사를 보였으나 퀜달렌은 그마저도 달가웠다.


“시간이 필요하다. 누가 오면 알아서들 시간을 끌어라.”


퀜달렌의 말에 토렌의 시신을 맡은 이 둘을 제외하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물러났다. 물러난 이들 사이로 보이는 이, 자르달을 본 퀜달렌은 깜빡했다는 듯 그에게 다가갔다.


“오오, 이거 내가 큰일을 해낸 친구의 공을 잊을 뻔했군.”

“아, 아닙니다. 전 대단한 놈이 아닙니다.”


한껏 살가운 말에도 자르달은 도무지 퀜달렌을 편히 대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리발을 돌창으로 아예 묻어버린 광경이 떠오르니 도무지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즉에 은퇴할 것을.’


일을 어서 하길 바란 이유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썩기 싫었기 때문이고, 오늘 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자신과 부하들을 이곳에 처박은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 자르달의 머리와 가슴에 남은 건 오직 하나, 처음 퀜달렌을 비롯한 이들이 하는 일을 보았을 때 느낀 경계심 뿐이었다.


“겸손할 필요 없네.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게 맞거든. 그러니 속 시원히 말해보게. 뭐 바라는 거라도 있나? 의뢰를 잘해주었으니 추가금을 줘야지.”

“괜찮습니다.”

“그래? 아쉽군. 억지로 부려 먹고 싶진 않았는데.”

“!”

진심으로 아쉽다고 말하는 퀜달렌의 말에 자르달의 등을 타고 소름이 흘렀다.


이 느낌, 전에도 자주 느껴보았다. 그가 이름을 알린 후에는 줄었지만, 그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느꼈던 그 감각.


의뢰주의 배반. 조합에서 제대로 일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가장 고민하고 곤란한 상황을 지금 그의 감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르달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이 가장 위험한 배반의 때라고.


이럴 경우 선택지는 보통 둘이다. 싸우거나, 망치거나.


그러나 자르달은 두 가지 모두 죽음의 선택처럼 느껴졌다.


‘세, 세 번째는 없나?’


싸우려고 해도 그 리발도 그 꼴이 되었다. 아무리 그가 잘 싸워도 그것보다 나은 꼴은 기대하기 힘들다. 망치려고 드는 건 처음부터 논외다. 이들에게 깽판을 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한다는 건 목숨을 내려놓겠다는 말이다.


자르달은 아직 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상황에 가깝기에 후자도 마음은 기울긴 했다. 그러나 사람의 살고자 하는 마음이 뭔지 이성이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고해도 그는 애써 부정하며 다른 길을 찾았다.


“그, 무슨 더 시키실 일이라도?”

“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마침 그런 일이 있던 참이야. 보수, 더 줄 테니 하겠나?”


잘되었다는 듯 반색하는 퀜달렌의 말에 자르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부류, 의뢰주는 아니지만 동업자나 적으로는 만나보았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보면 이런 이들은 의외로 구애되는 게 있었으니, 바로 그들 자신이 스스로 뱉은 말이었다.


“하겠습니다. 대신 보수로 하나만 약속해주십쇼.”

“어렵지 않지.”

“저와 부하들이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게 해주십쇼.”

“......흠.”


자르달의 말에 퀜달렌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더니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침묵을 지킬수록 자르달은 긴장의 끈이 더욱 팽팽해지다 못해 끊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거기 멈춰라!”


그런 긴장감 속, 새로운 이가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



“마티언님!”

“빌어먹을, 다들 무기 들어라!”


시작의 방 바로 앞에 있는 퀜달렌을 본 마티언은 그렇게 말하며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쉬쉿


“마수? 어딜 감히!”


화륵


철봉에 불꽃이 감돈다 싶더니 곧 불은 그늘에 숨어서 기습하려고 노려보던 뱀 마수들의 몸을 휘감았다.


삽시간에 몸을 키운 불은 그대로 비명 지를 새도 없이 뱀 마수들을 재로 만들었다. 나눠주는 게 아니라 직접 쓰는 힘은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듯한 모습에 백색 교단 사람들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뿐, 다들 지체 없이 다음 마수를 소환해서 마티언과 감독관들을 막았다.


“꺼져!”

“이래뵈도 단련은 매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딜 감히!”


무슨 마수를 소환해도 곧장 베어내고, 내리치고, 분쇄한다.


감독관들이라는 이들은 아비톨람 기사들 못지않은 움직임으로 마수들을 상대했다. 곁눈질로 그를 확인한 마티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렇군.’


감독관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흔히들 우려하는 점이 있다. 그들의 심성이 뒤틀리고, 억울함을 품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아비톨람에 있는 이라면, 감독관이 어떠한 존재라는 걸 안다면 모두가 그리 여겼다.


이는 마티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나 이적을 다시 찾은 날, 그는 요새에 있는 전원에게 이적을 나누며 깨달았다.


저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 요새에서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이들이다. 마티언은 그걸 알았으나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 감지력만은 수호자들의 영역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답답함을 금치 못했는데, 강철이 온 덕에 이 일에 대해서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을 수 있었다.


그럴 틈도 없이 저들이 마지막 공세를 걸고 끝장을 보려고 든 것은 운이 없었다.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를 일도 있다. 이곳 아비톨람 요새의 최후 관문지기 역할을 그들이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들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그 와중에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이들도 모르는 오해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다.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이들을 다시 기사로......저놈은!?’

“아직도 살아있었나!”



***



화륵


“아, 뜨거!”

“세월이 그만큼 흘렀음에도 그 성미는 여전하군. 자르달.”

“예, 예!”


다가오는 불꽃에 자르달은 기겁하며 몸을 피하다가 퀜달렌의 부름에 곧 멈추고 그를 보았다. 냉막을 넘어서 무언가 더한 것이 서린 눈에 자르달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말을 기다렸다.


부디 그에게 나쁜 쪽이 아니길 빌면서 기다린 것이 효험이 있었는지 퀜달렌의 입에서는 그토록 바라던 말이 나왔다.


“근력을, 힘을 늘려주지. 네 힘으로 저 문을 열어라. 그러면 네가 바라는데로 손대지 않겠다.”

“가, 감사합니다!”

“좋아.”


자르달의 말에 퀜달렌은 곧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더니 자르달의 팔과 다리에 둥글게 원을 형성했다.


“1분 주겠다. 그 안에 열어.”

“1, 1분!?”

“5초 지났다.”


퀜달렌의 말에 자르달은 놀라며 반문할 새도 없이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문이 크긴 했지만 그래봐야 문이다. 더욱이 밀어서 여는 것이 명백한 모습에 자르달은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문으로 다가갔다.


‘설마 죽겠냐!’

“흐라압!”


이미 더 나은 선택 따위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다. 저기서 오는 이들에게 붙는다는 선택지? 그런 건 옛적에 불가능했다. 자르달은 살고 싶었고, 남들이 어리석다고 여길지언정 이쪽에 걸었다.


그으응


문이 제법 무거웠던듯, 굉음을 내며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생각보다 별일 없이 열리는 문에 자르달은 한발 늦게 조금 전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안 튀네?’


분명 퀜달렌이 손을 대었을 때는 당장이라고 사람 하나를 그대로 구워버릴 듯 번개가 번쩍였건만 지금 그가 밀 때는 그런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제길, 이거 진짜 위험한 일 같은데.’


평범한 일이 아니고 평범한 문이 아니며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 뒤에서 무엇이 기다릴지 생각하니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일을 되돌릴 수 없다.


“멈춰!”

“어딜 감히.”


등 뒤에서 열기가 느껴지나 퀜달렌의 말과 동시에 열기가 사그라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지금이라도 고개를 돌려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는 끊임없는 경고가 속에서 울렸다.


‘빌어먹을, 대체 내가 왜 이런 꼴을 보는 거야!’


근원을 따지면 그의 자업자득이다. 욕심으로 신전 기사를 습격하고 잡혔다. 심지어 한둘도 아니고 아예 조직적으로 여럿과 싸우려 들었으니 그의 죄는 작지 않다.


하지만 그의 죄만으로 이곳에 올 정도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니니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그들, 자르달과 그 부하들의 죄는 신전 기사 살해 미수, 공무 방해에 더해 신전 물품을 훔쳤다는 혐의도 합한 죄다.


이 가운데 마지막, 신전 물품이 말이라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이들은 군수물자 횡령 혹은 강탈이란 죄가 적용되었기에 이곳까지 오는 죄질을 완성했다.


그러니 조금은, 한 1할 정도는 그들도 억울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1할은 때때로 크기를 키워서 5할, 이따금 9할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마침 지금이 딱 그러했다.


10할, 그러니까 모든 걸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잡을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으나 그래도 이런 꼴을 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은 그를 좀 먹었고, 곧 그 억울함은 그의 팔에 드러났다.


“으아압! 난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구그그긍


오랜 세월, 닫혀서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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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5장 내부의 적 (7) 22.05.26 6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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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7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0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6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2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2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2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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