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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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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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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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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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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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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4장 시작의 땅(1)

DUMMY

가도 가도 보이는 거라고는 오직 마른 흙과 모래뿐인 땅.

풀포기 하나 자라지 않는 메마른 황야.

작은 동물은 물론 벌레 한 마리 찾기 힘든 버림받는 장소.


이 모두 세계 최고의 황무지이자 생명력 없는 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진 아비톨람을 가리키는 문장들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서도 살아간다는 걸 증명하듯 아비톨람 황야 한가운데는 거대한 요새가 있었다.


새하얀 벽이 특징인 이 요새의 이름은 아비톨람 요새.


교국에서 가장 큰 교화소이자 통칭 교국에서 가장 삼엄한 감옥이라 불리는 장소다.


본래라면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해야 대단치 않다. 요새에 주둔하는 이들이 훈련하는 소리, 죄인들이 노동하는 소리가 대부분이고 가끔 설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전부인 조용한 장소였다.


그러나 그런 일상은 어디로 갔는지 최근 아비톨람 요새는 하루하루가 요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또 온다!”

“경계 종 울려!”

“당장 수비 준비해!”


댕댕댕댕댕


간신히 점심 좀 먹고 쉬나 싶었던 아비톨람 요새 사람들은 오늘만 벌써 세 번째 달려드는 무리를 보며 빠르게 움직였다.


급한 마음을 대변하듯 종소리가 빠르게 울렸고, 그에 맞추어서 요새 위에 있던 이들은 금방 활과 쇠뇌로 응전을 준비했다.


또한 아랫쪽에서도 금세 사람들이 올라와서 빈자리를 채웠다. 이윽고 그들을 지겹도록 괴롭히는 무리가 요새 지근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응전 준비가 끝났다.


“빌어먹을 마수들 같으니.”

“마티언님의 신호가 아직이다! 섣불리 응사해서 낭비하지 마라!”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의 투덜거린 이, 케르뷜의 귀에 몇 번이고 들었던 경고가 들려왔다.


첫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항상 듣는 말이라 이마저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으나, 케르뷜은 그 말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처음 몇 번에 저 말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쏘다가 틈을 찔러서 벽을 오른 마수에게 당한 동료도 있다.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보았던 이로써 저 말이 아무리 지겹고 당연한 말이라고 해도 흘릴 수가 없었다.


‘후우.’


벌써 수십 번.


저기 아래에서 꾸물거리는 마수들과 싸워왔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서늘함과 긴장감은 영 익숙해지기 쉽지 않았다.


문득 케르뷜은 예전의, 그러니까 이 일이 벌어지기 전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런지 궁금해졌다.


‘놀라겠지.’


잠시 상상해본 케르뷜은 어렵지 않게 놀랄 자신의 얼굴을 상상하며 웃었다.


혈기가 넘쳐서 하루가 멀다고 동료들과 주먹다짐을 벌이던 녀석이 이리 긴장하는 모습이라니, 확실히 놀랄 일이다. 아니면 철이 들었거나.


‘그러고 보니 교관들은 우리가 야성이 넘친다고 했었나.’


별생각 없이 넘긴 표현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상당히 특이한 표현이었다.


‘이런 생각도 하는 걸 보니 나도 제법 여유가 생겼나. 좋은 일, 이겠지?’


화륵


상념에 빠진 그를 깨우듯 들고 있는 활에 걸어둔 화살 끝에서 불꽃이 저절로 피어올랐다.


불이 있건만 화살은 전혀 타고 있지 않았다. 자연현상이라는 말을 무시하듯 무엇도 대가로 요구하지 않고 홀로 타오르는 불꽃이라는 존재는 기이함이 선사했으나 케르뷜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몸을 일으켜 활을 마수들에게 겨눌 뿐이었다.


“조준!”


이미 숙달된 상태라 케르뷜을 포함한 이들 다수가 자세를 잡는 것이 조준이라는 말보다 조금 빨랐다.


그러나 그것뿐, 누구도 호령 없이 손에 쥔 화살을 놓거나 쇠뇌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크르릉!


수많은 마수가 같이 우니 그 소리는 실로 위압감이 있었다. 그러나 케르뷜은 더는 떨지 않았다.


불꽃이, 거기에 깃든 불과 빛이 그를 강하게 하고 있었다.


“발사!”



***



요새 위에서 날아간 화살들은 곧 마수들에게 박혔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박힌 화살에 잠시 주춤했던 마수들이나, 곧 맞은 부위를 재생하듯 온몸을 떨었다.


그 떨림에 이기지 못한 화살들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으나 불은 달랐다. 화살이 실어 온 불은 그대로 마수들의 몸에 붙어서 일렁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 건 알았는지 마수들은 더 크게 몸을 흔들었으나 여전히 불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은 돌연 몸을 키워서 마수들을 잡아먹었다.


화르륵


커허엉!

끼기익!

까악!


가장 먼저 덩치가 큰 호랑이 마수가 불에 휩싸여 재가 되어버리고, 뒤이어 손으로 불을 몇 번이고 털어내려고 시도하던 원숭이 마수가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 마수라고 멀쩡하진 않았다. 다른 마수들을 태우며 그 크기를 키운 불은 그대로 허공으로 솟아서 하늘에서 도망치던 까마귀 마수들을 살라버렸다.


커허엉


힘없는 소리와 함께 타버린 늑대 마수를 마지막으로 모든 걸 태운 불은 그러고도 부족한지 황야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일렁이며 태울 것을 찾듯 움직였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던 이, 퀜달렌은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슬슬 물러난다.”

“알겠습니다.”


팔레삭을 대신해 그를 보조하는 이, 토렌은 곧장 고개를 숙이며 다른 이들에게 손짓을 전했다. 그에 마수들을 더 풀 준비를 하고 있던 백색 교단원들이 곧 고개를 숙이며 제각각 마수에 타고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보던 토렌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작은 까마귀 마수를 보고 눈을 빛냈다.


그가 팔을 드니 곧 까마귀 마수는 팔에 앉더니 어깨로 뛰어올라 토렌의 귀에 무언갈 속삭였다.


잠시 그 말을 듣던 토렌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퀜달렌을 보았다. 시선을 느낀 퀜달렌은 곧 그를 돌아보았고, 당황과 별개로 존경하는 이를 기다리게 할 수 없다 생각한 토렌은 곧 입을 열었다.


“팔레삭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래. 그 녀석치곤 제법 오래 걸렸군.”

“저......”

“무슨 일이 있나?”

“테펠리움과 같이 왔다고 합니다.”


평온한 얼굴로 아비톨람 요새를 바라보던 퀜달렌의 얼굴이 그 말에 잠시 놀람이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내에 표정을 돌린 그는 덤덤히 물었다.


“어쩐 일로?”

“상세한 건 직접 보고하겠으나, 먼저 전한 말에 따르면 그쪽에 말씀하신 수호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수호자가? 그렇게 빨리 말인가?”


믿기 힘들다는 투로 이야기한 퀜달렌에게 무어라도 말해주고 싶었으나 모르기는 토렌이 더 몰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곧 퀜달렌은 홀로 답을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강고한 자인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나 제법이군. 가만, 설마 벌써 시간이 깨어났나? 그러면 곤란한데. 아니, 아니겠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퀜달렌은 고고히 존재감을 자랑하는 아비톨람 요새를 보더니 표정을 풀었다.


“돌아간다.”

“다음 공격은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흠.”


하루에도 많으면 몇 번이고 아비톨람에 들이닥쳤고, 오늘은 아직 평소의 반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하지.”


그러나 퀜달렌은 오늘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마수를 제물로 써서 사기를 뿌렸다. 이제 필요한 건 큰 공세 한번과 저번에 얻은 이들을 이용한 양동이었다.


“며칠 내로 결판을 볼테니, 사기를 다들 모아두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퀜달렌의 말에 토렌은 곧 본인이 마음에 들어하는 마수를 소환했다.


악어 형상의 마수는 그가 따로 준비한 건지 안장도 달려있었다.


“타시죠.”


토렌의 말에 퀜달렌은 곧장 안장에 올랐다. 그리고는 아비톨람 요새에 시선을 준 그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머지 않았다. 다음 공세로 끝이야.’

“출발하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퀜달렌은 새하얀 요새가 멀어지는 걸 보면서 그 위에 다른 환상을 그렸다.


새하얀 요새가 무너지고 검은 연기가 그곳을 가득 채운 환상을.



***



“오늘은 좀 이른데.”


마수들이 모두 재가 되고 난 후 추가적인 공세가 더 없자 이번은 여기까지라는 걸 알았지만 영 믿기지 않았던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귓가에 들려온 그 말에 케르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평소에 비하면 너무나도 간소한 공세였다.


“전원, 전투 태세 해제! 경계 태세로!”

“경계 태세로!”

“경계 태세로!”


호령에 복창한 이들은 바지런히 움직였다. 어떤 이는 무기를 손질하고, 어떤 이는 내려가서 바깥으로 나가서 화살을 수거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호령을 내리며 지휘하던 이, 제컬티안은 굳은 얼굴로 마수들이 있던 곳을 보더니 곧 걸음을 옮겼다.



***



걸음을 옮긴 그는 아비톨람 요새 안쪽 높은 장소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교차하는 철봉과 그를 감싼 불꽃이라는 상징이 새겨진 방문을 본 그는 심호흡을 하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실례합니다. 전후 보고로 들렸습니다.”

“들어오게.”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니 갑옷을 챙겨 입은 노인이 그를 맞이했다. 노인은 제컬티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자네가 고생이 많군.”

“마티언님께 비하면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노인, 마티언의 치하에 제컬티안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마티언이 지금 아비톨람 요새 최고 책임자이긴 하나, 그가 이렇게 예를 취하는 건 그보다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제컬티안에게 있어서 마티언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돌보아준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공손하게 숙였던 고개가 들린 후 보인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으후, 이 나이 먹고 또 이 짓을 하려니 몸이 못 따라주는군. 라렉시안 녀석이 참 그리워.”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앓는 소리하는 마티언을 보며 제컬티안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몸은 어떠십니까.”

“걱정 받을 정도는 아니다.”


마티언은 곧장 손을 내저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으나 제컬티안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괜한 걱정하지 마라. 대신전에서 곧 지원이 오기로 했으니 끝날 거다.”

“지원?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만.”


지금 아비톨람 요새를 지키는 건 제컬티안이 보기에 마티언 한 사람의 힘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죽지 않는 마수를 일거에 태워버리는 이적이 이곳 아비톨람 요새를 지키는 근본적인 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이랍시고 오게 되면 그게 설령 신전 기사단이라 할지라도 도움보다는 짐이 될 거 같았다.


‘짐으로 끝나면 다행인가.’


자의식이 조금만 높은 이가 오면 지휘권을 두고 다투는 일이 생기거나 지금의 방식에 이견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면 오지 않느니만 못한 지원이었다.


제컬티안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자니 마티언은 곧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걱정하면 머리 벗겨진다.”

“......농담으로 넘기실 때가 아닙니다. 벌써 수십 번에 이르는 전투로 인해 다들 만전이 아닙니다. 당장은 몰라도 계속 이 상황이 지속되면 큰일이 날겁니다.”

“큰일이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러다가 교화소에 있는 인원들이라도 빼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상황이 이럼에도 아비톨람은 여전히 교화소라는 이름의 감옥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에 있는 죄수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당장 수많은 죄수를 옮길 장소를 구하는 것도 일이거니와 그들을 호송할 인원도 부족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습격하는 마수들이 그들이라고 가만히 보내줄 거란 바람은 너무나도 무른 생각이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던 제컬티안에게 마티언의 말이 이어서 들렸다.


“지원은 나와 같은 이가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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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8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5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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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1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6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3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3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2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3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 4장 시작의 땅(1) 22.04.24 87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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