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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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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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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64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2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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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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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4장 시작의 땅(4)

DUMMY

아레타와 마티언은 그 후로도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 대단한 주제는 아니었다.


그저 살아오며 고생했던 걸 서로 나누고 인정해주는, 일종의 자존감을 높이는 형식의 대화였을 뿐이다.


이윽고 시간이 오래되어 아레타를 찾아온 호붼으로 인해 대화는 끝났고, 홀로 남은 마티언은 어둑어둑해진 바깥을 보며 침잠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놈의 로앙은 대체 언제쯤 변할런지.”


로앙 출신, 더 정확히 말해서 로앙 외직 기사들은 다들 마음 한켠에 무어라 하기 힘든 감정을 품고 있다.


그 자신도 로앙 외직으로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보통은 이런 감정, 그냥 내버려 두어도 어지간하면 별다른 일이 생기진 않는다.


어떤 이는 자신이 그런 감정을 품고 있는지 모르고 일평생을 사는 경우도 허다할 정도로 대단치 않은 작은 감정이다.


허나 앞으로 수호자들이 가야 할 곳들, 해야 할 일들은 그 어지간함을 가볍게 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명백하게 알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약점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둘 경우 어떻게 되는지 마티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내가 조금 더 담대했다면, 그랬다면......’


사상자가 아예 없지는 않았을 거다. 그만한 적이고 군세였다.


다만 어쩌면 반절, 못해도 3할은 줄어들었을 거라는 게 그가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저놈의 기사단은 무언가 잘못되었건만, 대체 언제가 되어야 변한단 말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달한 곳은 그가 신전 기사가 되기 전에도 그랬고 그가 수호자가 되고도 여전했으며 아직도 그러고 있는 로앙 기사단이었다.


처음에는 몰랐고 젊을 때는 불만이었으나 이제 늙어서 보는 로앙은 괴상 그 자체였다.


피킥


“뭐지?”


무언가 거슬리는 감각에 마티언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바깥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에 거슬리는 감각의 정체를 알아낸 그는 안색을 굳히며 몸을 돌렸다.


“같잖은 짓을.”



***



“이건?”


호붼과 함께 아비톨람에서 내어준 거처로 가던 중 아레타는 마티언보다 조금 늦게 거슬리는 감각을 느끼고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레타 경? 무슨 일이십니까?”

“무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요.”

“적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아레타의 말에 호응하듯 곧 종소리가 울리며 상황을 요새 전체에 알렸다. 종소리를 들은 호붼은 굳은 얼굴로 아레타를 보았다.


“신전병들을 움직이겠습니다.”

“아니, 우리는 적고 온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았으니 방해일 뿐입니다. 가서 대기하도록 하세요.”


호붼의 말에 고개를 저은 아레타는 곧 고개를 돌려서 조금 전까지 그가 있었던 장소를 보았다.


‘중계라.’


썩 좋은 방식은 아니나 당장은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바꾸기 힘든 현실에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 아레타는 시선을 따라서 몸을 돌렸다.


“마티언 경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성벽 위가 아니라 말입니까?”

“예.”


아레타의 말에 호붼은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곧 그 의문을 머리에서 지우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전한 후 저도 가겠습니다.”


호붼의 말에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여 의사를 표한 아레타는 곧 마티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에 있었던 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나, 만약 이게 마티언이 언급한 ‘그 공세’라면 한시라도 서둘러야 했다.



***



“온다! 화살 준비!”


호령에 맞추어 아비톨람 기사들은 일제히 화살을 재고 허공을 겨누었다. 그러나 이미 해가 진 데다가 오늘은 구름이 심해 달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표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까아악

끼이익


그러나 언뜻언뜻 드러나는 움직임과 기분 나쁜 음성은 하늘에 무언가 있음을 분명히 알게 했기에 그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까마귀에 박쥐인가?”

“눈도 좋다. 그걸 어떻게 봤대.”

“눈은 무슨. 소리로 대충 찍은 거지.”


동료의 말에 퉁명스레 대답한 케르뷜은 눈살을 찌푸리며 허공을 보았다.


‘빌어먹을, 졸라 기분 나쁜데.’


달빛이 적어서 잘 비치지 않는 드러난 일부는 마치 거대한 부정형 물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수많은 마수가 함께 뭉쳐있어서 그런 거였지만, 이런 상황이니 마치 거대하고 부정한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정신 차려. 어차피 할 일은 똑같아. 집중하고, 쏜다.’


주요 표적이 지상에서 하늘로 옮겨졌지만 다를 건 없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긴장된 마음을 다독이던 케르뷜은 곧 그의 전신에 깃드는 이적을 느꼈다.


헌데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조금 달랐다.


태우고 싶은 것만 태우는 불이 화살촉에 붙은 건 같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여?’

“어라, 갑자기 저것들이 잘 보이는 거 같은데.”

“나도 그런데. 눈이 좀 적응됐나 보다.”


주변에서 같은 변화를 느낀 듯 동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게 들렸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케르뷜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몸이 가볍다.’


시도 때도 없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수들에게 맞섰다.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고 있긴 하나 그것만으로는 모든 피로를 풀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마치 첫날, 아니 그 전에 대단할 거 없던 나날이......아니야.’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지금 몸에 넘치는 활력은 그랬던 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충만했다.


“조준!”


생각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 호령이 울리며 그를 깨웠다. 케르뷜은 곧 상념을 털어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구름이 조금 개었는지 달빛을 인해 수많이 뭉친 까마귀와 박쥐 마수들이 보였다.


‘징그럽네.’


까마귀와 박쥐가 몰려서 날개짓을 하니 보였음에도 징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반대로 조금 있으면 저 모든 게 타오를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발사!”


호령이 내려지자마자 수많은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불을 머금고 날아간 화살은 곧 하늘에 있는 마수 무리에 박혔고, 곧 불이 그것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케르뷜의 예상과 같았으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의 예측은 온전히 맞았다고 하기 힘들었다.


“놈들이 이리로 온다!”

“재장전 서둘러!”


하늘에는 성벽이 없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그간 치렀던 전투로 인해 잠시 망각했던 대가는 성벽 위로 날아드는 마수 무리를 무방비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제길, 다들 무기 들어! 활로 어쩌고 할 때가 아니야!”


불행 중 다행으로 이미 화살로 어쩌기에는 너무 가깝다는 걸 인지한 케르뷜은 곧장 그렇게 외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아 든 순간, 손에 착 감기는 게 그간 활을 더 많이 다루며 녹슨 건 아닐까 했던 걱정이 한순간에 씻겨 나갔다.


“죽어!”


끼이익


“케르뷜! 뒤다!”

“뭐!?”


케르뷜이 호기롭게 휘두른 검에 박쥐의 날개가 잘려 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대단치 않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동료의 경고에 케르뷜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가 몸을 돌리고 자세를 취하는 것보다 까마귀가 그에게 발톱을 내미는 게 더 빨랐다.


‘제길, 팔 한쪽으로......어라?’


까앙


검으로 받아내는 건 어렵겠지만 주로 쓰는 손이 아닌 쪽을 대신 내밀어서 막을 순 있겠다 싶었던 케르뷜은 차선을,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차악을 택했다.


그런데 이어서 들린 소리가 이상했다. 아니, 소리만이 아니라 팔의 감촉 역시 그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멀쩡하잖아?”

“뭐, 뭐야? 너 팔에 뭐라도 둘렀, 아니 맨 팔인데?”


경고했던 동료 역시 생각지도 못하게 멀쩡한 그를 보며 놀랐는지 말을 더듬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그는 자신에게 다가드는 박쥐를 보지 못했고, 그 대가는 몸으로 치르게 되었다.


따앙

끼기익!


“나, 나도 그러네?”


그러나 그도 케르뷜처럼 예상치 못한 소리를 내며 상처 입지 않았다.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도 멀쩡한 걸 본 케르뷜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움을 표했다.


“정신 차리고 마수들을 몰아내라! 요새 안쪽에 들어가게 두지 마!”

‘그래, 이럴 때가 아니지!’


멀찍이서 들리는 호령에 케르뷜은 정신을 차렸다. 확실히 지금은 좋은 게 좋은 거지 따지며 궁구할 때가 아니었다.


“간다! 등 맞대!”

“어, 어!”



***



“이런.”


마수들을 보내고 멀리서 마수 가운데 하나를 통해서 전장을 보던 퀜달렌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불에 타는 것이야 상정 내였으나, 다른 마수들을 방패 삼아 요새에 급강하 공격을 건 일이 이리 가볍게 무위로 돌아가게 된 건 그닥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강철이 합류했나. 생각보다 이르군. 고작해야 반나절, 그 정도의 텀만 있을 뿐인데 그사이에 들어오다니.”


요새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한 퀜달렌은 아쉬운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이래서야 목적은 반만 달성하겠구나.”


시선을 받은 이, 팔레삭은 그와 마찬가지로 아비톨람 요새 전황을 보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그 역시 잘 알았다. 딱딱한 얼굴로 요새를 보던 팔레삭은 곧 몸을 깊이 숙이며 사죄의 말을 입에 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하난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잡아두는 게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그 말에 퀜달렌은 고개를 젓더니 인자히 웃었다.


“네가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저들의 손상은 아쉬우나 그것보다는 남은 절반의 목표가 더 중요하니 상관없다.”


퀜달렌은 그리 말하고는 아비톨람 요새 내부로 떨어져 가는 마수들을 보았다.


‘이거면 충분하지.’


이번은 공세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진정으로 준비한 마지막 공세를 위한 밑거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밑거름은 훌륭하게 뿌려지고 있었다.


“그렇지. 테펠리움 녀석도 쓸만해 졌더냐?”

“비보가 없다면 여전히 자만심 가득한 멍청이일 뿐입니다.”

“쓸만해 졌다는 말이구나.”


신랄한 말에도 퀜달렌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제 판단대로 말했다. 그리고 그건 틀리지 않았다. 그는 테펠리움에게 대단한 걸 바라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끼. 다음에도 미끼.


일회용이라 여겼는데 재활용해서 한 번 더 쓸 수 있게 된 뜻하게 않게 얻은 작은 이득. 그게 퀜달렌이 테펠리움을 보는 시선의 전부였다.


제 주제를 모르고 숭고한 목적을 잃은 이에게는 그 정도가 딱 어울렸다.


“데리고 와라. 물건은 끝까지 알차게 써야지.”

“알겠습니다.”


대놓고 물건 취급하는 말에 팔레삭은 아무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테펠리움이 한때 그와 함께 퀜달렌에게 이쁨을 받으며 배웠던 사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도 언제든 그리될 수 있다는 불안이 한 줌은 있을 법도 하건만, 그는 그런 걸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눈치였다.


어쩌면 염두에 두고는 있으나 개의치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퀜달렌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곧 백색 교단이 목표한 끝, 그 모든 것의 끝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었으니까.


“태초의 두개골.”


아비톨람 지하 깊숙한 곳에 있을 물건이자 백색 교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을 떠올린 퀜달렌의 얼굴에는 교단 가운데서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황홀감이 떠올라 있었다.


“야성이시여, 이제 곧 당신의 첫 번째 사도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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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8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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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1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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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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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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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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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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