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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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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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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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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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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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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5장 내부의 적 (7)

DUMMY

“후, 정신이 하나도 없군.”


단장이라는 직책은 한가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듯 그의 앞으로 종일 쏟아진 서류를 정리한 아톨리우스 바나한 케텔은 눈가를 어루만지며 의자를 돌렸다.


“충원에 대피에 전투 준비까지. 이렇게 바쁜 적이 있었던가?”

“없었지.”

“......칼롱, 예의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단장이라는 직책을 노름으로 딴 게 아니니 당연히 기척이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렇게 스스럼없이, 그것도 일부러 소리 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와 대뜸 말을 받는 모습은 빈말로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펠사 기사단 단장 칼롱 넥터스 펠사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다는 곳 의자를 끌어다 앉고는 제 용건을 꺼냈다.


“알톤이 오늘 돌아왔더군.”

“그래? 이제야 제대로 된 구성이 가능하겠군. 피난 유도 쪽 외에도 손을 벌릴 수 있겠어.”


부재중이던 로앙 기사단 단장이 돌아왔다는 말에 아톨리우스는 그리 말하며 업무 중 마시려고 내려놓았던 찻잔을 들었다.


이미 한참 전에 만든 거라 식어서 특유의 향은 덜했지만 아직 맛이 괜찮다 여긴 아톨리우스는 한 모금 마시곤 시선을 느끼며 칼롱을 보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모습에 아톨리우스는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알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좀 아니지.”

“뭔가 잘못 알고 있군.”

“잘못 알고 있다?”


그렇게 티를 팍팍 내두고 아니라고 할 셈인가 싶어 아톨리우스는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이어진 말을 들은 그는 칼롱의 말대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알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게 아니야. 직설적으로 말해서 싫어하지. 조금 더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경멸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

“그리고 하나 더, 난 그놈이 아니라 로앙에 있는 것들이 다 싫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하니 무어라 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 그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롱은 깜박했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아, 그 ‘외직’이라는 녀석들은 빼고 말이야. 그 녀석들을 보면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니까.”

“......그러냐.”


신전 기사단 간에는 개입이 불가능하다.


오래도록 내려온 전통인지 구습인지 모를 규칙을 떠올린 아톨리우스는 입가에 쓴맛이 감도는 걸 느끼며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 있는 작은 상자를 꺼낸 그는 곧 씁쓸함을 달래듯 작은 사탕을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너도 하나 먹을 테냐?”

“사양은 안 한다.”


권유라 하기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말에 칼롱은 냉큼 손을 내밀었다.


단장이 되어서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생각한 아톨리우스는 곧장 사탕을 하나 건넸고, 칼롱 역시 바로 입에 넣어 달콤함을 만끽했다.


잠시 조용히 달달함으로 입가를 가득 채운 아톨리우스는 곧 눈빛을 진지하게 하고 물었다.


“투정이나 부리러 올 정도로 한가하진 않을 거고, 진짜로 온 용건이 뭐야?”

“간단하지. 로앙은 그냥 둬라.”

“뭐?”

“믿을 수 없는 아군 따위, 따로 움직이는 게 더 낫다.”


이해하지 못 할 말은 아니나 이해하기 힘든 말이기도 했다.


유능한 적군보다 무능한 아군이 위험하고, 그보다 더 위험한 건 딴생각을 품은 아군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칼롱의 말은 타당했으나, 당장 그러한 정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예 저렇게 보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직 못 들었나?”

“뭘?”


그런데 정작 아톨리우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칼롱이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아톨리우스의 무슨 소리냐는 반응에 칼롱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못 들었군. 전에 분실 사건, 그건 기억하고 있겠지?”

“당연하지.”


그가 이끄는 케텔 기사단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언급되지 아톨리우스의 미간에 대번 주름이 잡혔다.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여긴 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끈이 매우 희미했기에 의심만 남겨두고 넘긴 일이다.


그런데 이 일에 본격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던 칼롱이 무언갈 아는 듯 말하다니, 상당히 신경 쓰였다.


“이 일에 관심이 있었나?”

“기억해둘 가치 정도는 있었지.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내가 찾은 거 아니야. 대신전에 흘러들어온 이야기를 귀동냥한 거지.”

“귀동냥? 누구에게?”

“클레하스 신관장.”


칼롱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아톨리우스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한층 깊어졌다.


안식년을 미루고 이번 성전에 필요한 사무 대부분을 총괄하는 클레하스의 이름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로앙이 그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하더군.”

“뭐?”

빠직


이렇게까지 했으니 예상은 했다.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들으니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게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로앙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그런 상태로 그놈들이랑 함께 움직이라고? 시민들을 인질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옳은 말이군.”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잠깐이나마 진지하게 고민했다.


방금 들은 사실로 인해 로앙에 대한 신뢰나 신용이라고 할 가치가 한순간에 거기까지 떨어진 것이다.


“휴, 차라리 다른 지방에 있는 친구들이 오면 나으련만.”

“그건 동감이지만, 바라긴 힘들지. 우리만 일이 있는 게 아니야.”


칼롱의 말에 아톨리우스는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로 경험 있는 이들이 빠져나간 것과 별개로 신전 기사단은 보통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일손 부족이다.


여기서 자유로운 이들은 없다.


심지어 외직을 포함하면 교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로앙이라고 해도 이는 다르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이 한가득, 살기 힘들군.”

“인생, 그런 법이지. 난 이만 가보마.”

“간다고?”

“로앙에 대한 자세를 어떻게 할 건가, 이게 용건이었다.”


칼롱은 그리 말하고는 아무런 미련도 보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아톨리우스는 그가 앉아있던 의자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더는 무리군.”


범인은 알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대적인 조사는 무리다. 그런 현실에 부딪친 아톨리우스는 다시 일을 잡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중요한 일들은 거진 끝내놓았다. 그가 답답함을 풀며 오늘 밤 정도는 쉬어도 될 정도로 말이다.


“가만있자, 그 친구가 멀리 갔으려나?”


이런 때는 역시나 방금 나간 칼롱이 상대로 최고라 여긴 아톨리우스는 곧장 바깥으로 그를 찾아서 걸음을 옮겼다.



***



“인생.”


달빛이 내리는 수감소 안에서 자르달은 축 처진 어조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빛이 들어오는 창살을 보았다.


그 너머에 있는 달을 보는 것만으로 전에 아비톨람에서 해도 달도 보지 못했던 시절에 비하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곧 영영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게 될 처지가 된다고 해도 똑같이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적어도 자르달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탈그락


“응?”


멍하니 창살과 그 너머 달을 보고 있던 자르달의 귀에 복도에 있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오밤중에 오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참 대단한 이다 싶었던 자르달은 한껏 비꼬아줄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그의 앞길은 어두컴컴 그 자체니 순간순간이라도 즐기는 게 맞다 싶어서 그리 생각했지만, 고개를 돌린 그는 복도 창살 너머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어?”

“아비톨람이라는 곳에 다녀오고 이제는 다시 재판. 화려한 행적치고는 신색이 괜찮네.”

“쿠, 쿨레마?”

“나이가 내가 아래긴 한데, 간부에 대한 예의는 좀 지키시지?”


조합 간부 가운데 하나 쿨레마는 그렇게 말하더니 동행한 신전 기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위쪽에서 도와주라는 명이 있으니까 해준 겁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잠깐 자리를 피해주는 게 다니 이상한 일은 하지 마세요.”


동행한 신전 기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멀찍이 떨어졌다.


바깥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속닥이면 못 들을 거리까지 물러난 걸 보니 저 신전 기사도 쿨레마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거 같았다.


“양지의 연줄까지 써서 개인적으로 만나러 오다니, 무슨 일이지?”

“사실 여러 가지가 있긴 했지. 가장 중요한 건 우리를 끌고 들어가지 말라는 거였는데......”


슬쩍 말끝을 흐린 쿨레마는 멀리 있는 신전 기사의 눈치를 보더니 창살에 가까이 가서 속삭였다.


“스틸롱 그 형님이 힘 써준 덕에 그럴 필요는 없게 되었지.”

“스틸롱? 그렇군. 리발이 어떻게 그런 곳까지 왔나 싶었다.”

간부는 아니지만 조합에서 나름대로 경력이 길고 잔뼈가 굵은 자르달이다. 몇 마디 말로 이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난 제물인가?”

“지금은. 당신 하나로 끝낼 생각이긴 한데.”

“그거 다행이군.”


아비톨람이라는 지긋지긋한 곳에 있기는 해도 적어도 그가 데리고 있던 부하들은 같이 끌고 들어가지 않게 되었으니 그거 하나는 다행이다 싶었다.


“근데 나도 사람인지라 당신을 외면하지 못하겠단 말이지.”

“네가?”


쿨레마의 말에 자르달은 실로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반응에 마음이 상한 듯 쿨레마는 짐짓 상처받은 얼굴이 되었으나 자르달은 그걸 믿지 않았다.


“무얼 바라고?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거 따위, 아무것도 없다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하?”


쿨레마의 그 말을 들은 순간, 자르달은 등을 타고 자르르 흐르는 소름을 느꼈다.


몇 번이고 느꼈던 감각, 위험한 곳에 가기 전에나 위험한 거래를 하기 전에 느꼈던 감각이었다.


많은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감각이었으나 최근에는 그렇지 못했던 감각이기도 했다.


‘감각을 탓할 일이 아니긴 했지.’


최근에 있었던 일 가운데 가도에서 신전 기사 일행을 습격한 일이야 욕심이 앞서서 실패했다고 치부해도 된다.


하지만 그 후에 백색 교단의 그 늙은이의 제안은 달랐다.


위험과 더 큰 위험이라는, 터무니없는 기로에서 선택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짐작이긴 하지만, 거기서 늙은이의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무사히 넘어가고 형을 치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비톨람에서 직접 그들이 하는 일을 목도한 자르달은 확신했다.


거절했으면 다른 형태로 그들에게 이용당해 더 못한 꼴이 되었을 거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지금 쿨레마에게서도 그때와 같은 기색이 풍기고 있었다.


어디를 골라도 위험, 중요한 건 어디가 더 이익인지 아니면 더 손해가 없는지다.


“조합은 살아남아야 하거든. 그런 의미에서 목숨 걸고 한번 달려들어 볼 생각이 없나?”

“무엇을 위해?”

“글쎄, 뒤에 남을 이름과 당신 부하들?”


전자는 솔직히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만 후자는 지금도 마음에 두고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자르달은 쿨레마의 제안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단 한번 들어볼까 하는 유혹을 느꼈다.


“......이야기는 들어보지.”

“듣고 나면 거절하는 순간 댁 그대로 형장의 이슬인데, 괜찮겠어?”


그나마 양심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아예 작은 흔들림도 용납지 않고 싶은 건지 쿨레마는 말을 늦췄다.


누군가는 그 말에 위험을 느끼고 물러날지 모르나 자르달은 달랐다.


나아가도 끝이고 물러나도 끝.


이런 상황에서 자르달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 해볼 생각이었다.


“상관없으니 얼른 말해.”

“흐흐, 좋은 선택이야.”


자르달의 말에 쿨레마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늘어놓았다. 속닥이는 목소리로 건넨 말을 다 듣고 난 자르달은 조합의 생각에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지독한 것들 같으니.”

“칭찬으로 듣지. 우리는 살아남는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 같은 이 한둘로 끝나면 가벼운 대가가 아니겠어?”

“......고민해도 되나?”

“미안하지만 지금 결정해야 돼.”


쿨레마의 냉정한 말에 자르달은 잠시 고개를 들어서 바깥을 향해 난 창을 통해 달을 보았다. 지금도 지하에서 저 달조차 보지 못하는 부하들을 생각한 그는 곧 고개를 돌리더니 쿨레마를 보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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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5장 내부의 적 (6) 22.05.24 53 3 11쪽
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8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5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1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7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3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3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2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3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7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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