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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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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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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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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5.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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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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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5장 내부의 적 (8)

DUMMY

“자르달이 받아들였다.”

“......요즘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스틸롱의 말에 리발은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스틸롱은 흥미로운 듯한 얼굴로 물었다.


“어떤 게? 사람이 저렇게 여러 곳에 가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인가?”

“아니.”


바로 고개를 흔들어 그 말을 부정한 리발은 곧 품었던 생각을 입에 담았다.


“내가 제일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던 거.”

“......크흠.”


부정하자니 지금 도적 조합에서 하려는 짓이 그 짓거리니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인정하고 물러나기도 그랬던 스틸롱은 작게나마 항변했다.


“우리도 향후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공이 필요해. 자르달 정도 희생해서 얻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이지.”

“그런 점이 그렇다는 거다. 그 많은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알았다는 게 조금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리발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할 일과 필요한 정보들은 전했으니 그래도 상관없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알았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 스틸롱은 리발의 등에 대고 물었다.


“그런 점이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건가? 이제야 알았다니, 설마 나에 대한 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야. 그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린 리발은 무언가 말하길 주저하듯 하더니 이내에 입을 열었다.


“조직이라는 건 생각 이상이라는 걸 알았지. 개인 성품보다 조직이 더 강하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군.”


리발의 말에 스틸롱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조합 간부가 아니라 스틸롱이라는 개인이라면 확실히 이런 일을 꾸미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경멸했나?”

“아니. 다만 나도 주의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

“주의? 뭐라도 세울 생각인가?”

“당분간은 여러 조직의 연결점이니 나도 너 같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한 리발은 완전히 몸을 돌리고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두어 걸음 걸은 그는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찾는 녀석들도 개인은 아닐 테니 이런 생각 이상의 짓거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고 말이야.”


리발은 그렇게 말하고 안가를 나섰다. 안가를 나선 그의 눈에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 그를 보는 시선 여럿이 느껴졌다.


모습을 감출 생각도 없이 그를 보는 이들, 강철 신전병대의 시선에 리발은 어색하게 웃었다.


“크흠, 이제 돌아갑시다.”



***



“어라, 영감님 아직도 살아계셨네?”

“겉으로 보면 너도 나랑 동년배다. 말조심해.”

“흐흐, 지금 후배들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난 이렇게 부를 사람이 아직 살아있어서 좋은데.”


마티언의 말에 프레이뮬 신관은 마뜩잖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시선을 받으며 뻔뻔히 마주 보니 무어라 하기도 뭐 했는지 프레이뮬은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그래서, 이런 곳까진 어쩐 일이요? 아비톨람 아이들이라도 보러 오셨나?”

“그저 지나가다가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인사나 하러 들렸을 뿐이다.”


프레이뮬은 그리 말하며 너른 훈련장에서 제각각 병기를 휘두르며 단련하는 아비톨람 기사들을 보았다.


“시작의 기사들을 보는 건 참 오랜만이군.”

“여전히 많이도 알고 계시네. 나는 아비톨람에 가서나 알았는데 말이지. 대체 얼마나 사신 거요?”

“그건 비밀이지. 알고 싶으면 지금 산 만큼만 살아라. 그러면 알려주마.”

“하, 관심없수다. 사람이 갈 때가 되면 신의 곁으로 가야지.”


마티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투덜거리는 투로 그리 말하더니 문득 머릿속에 가설 하나를 떠올리고 프레이뮬을 훑어보았다.


“징그럽게 그 시선은 뭐여?”

“아니, 신께서 참 막중한 의무를 영감님께 지웠다 싶어서 말입니다.”

“......”


마티언의 말에 프레이뮬은 말문이 막혔다.


“주어진 재능과 시간은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라는 말이 있었지. 얼마나 큰 의무를 지셨기에 그리도 오래 계시는지 부러우면서 안타깝소이다.”

“하, 부럽다라. 그러면 대신해서 질 테냐?”

“사양한다니까. 나는 그런 걸 질 그릇이 못 돼.”

“나라고 되어서 하는 줄 아냐.”


반쯤 농을 담아 건넨 말에 진지한 거절이 돌아오자 마음이 살짝 상했는지 프레이뮬은 퉁명스레 그리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가십니까?”

“그냥 들린 거니까. 아, 너도 강고한 자와 함께 가느냐?”

“그 친구만 갑니다.”

“그러면 되었다.”


프레이뮬은 그 말을 끝으로 더 말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중 마티언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느끼고 눈을 돌렸다.


“케르뷜? 무슨 일인가?”

“다음 훈련에 대한 것을 여쭈려고 왔습니다. 헌데 방금 가신 분, 예전에 아시던 동기분이신가 봅니다.”

“동기?”


케르뷜의 말에 마티언은 프레이뮬이 간 방향을 다시 한번 본 후 피식 웃었다.


“저 사람이 동기라.”



****



마티언과 아비톨람 기사들이 있는 곳을 지나쳐서 한참을 걸은 프레이뮬은 목적지 바로 앞에 서 있는 일련의 무리를 발견했다.


복색으로 보아 그들 대다수가 누군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프레이뮬의 관심을 끈 것은 다수에 해당하는 이들이 아니라 소수에 해당하는 한 사람이었다.


“아니, 이건 나 혼자 들어가서 말해야 한다니까요?”

“의심스러운 짓을 하려는 건 아니고?”

“제길,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만족할 겁니까?”

“처음 보는 얼굴이군. 신전 기사는 물론이고 신관도 아닌 거 같은데, 뭐 하는 놈이신가?”


존대이긴 하나 도중에 끼어든 놈이라는 호칭 하나로 존대할 마음이 그다지 없음을 드러내는 말에 답답함에 가슴을 치던 리발은 물론이고 강철 신전병들이 고개를 돌렸다.


“프레이뮬 신관님.”


프레이뮬을 알아본 신전병 하나를 시작으로 신전병들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방금까지 리발에게 강압적으로 굴던 이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나, 어찌 보면 당연한 대접이기도 했다.


프레이뮬은 수호자들을 교육하는 자, 다시 말해 그들이 모시는 이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이였으니 말이다.


더불어 신전병들은 모두 프레이뮬에게 성전 역사에 대한 수업을 받았으니 그들 개개인의 스승이기도 했다.


“안에 계신가?”

“계십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부탁하지.”

“예. 수호자님, 프레이뮬 신관님께서 오셨습니다.”


신전병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프레이뮬은 조금 전까지 이들과 대립하던 이를 보았다.


“그래, 그쪽은 누구신가? 아, 난 보다시피 신관이지. 프레이뮬이라고 하네.”

“......리발이라고 합니다. 그, 수호자님께 전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용건이 나와 같군. 함께 들어가겠나?”

“그렇게 해주시면 매우 감사합니다만......”


프레이뮬의 말에 리발은 반색하면서 그게 될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껄끄러움에 말끝을 흐렸다. 리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곧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이제 들어오시라고 해도 됩니다.”

“들어가시죠.”


안쪽에서 들려온 아레타의 목소리에 이어 정중히 권하는 신전병의 말에 프레이뮬은 사양 하나 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쪽으로 탁자에 급히 치운 듯 말린 종이와 조형들 몇몇이 뭉쳐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는 호붼을 본 프레이뮬은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금세 알고 물었다.


“그 일인가?”

“프레이뮬 신관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지.”


가벼이 대답한 프레이뮬은 곧 탁자에 있는 의자에 적당히 앉았다. 그는 곧 용건을 꺼내려는 듯 입을 열다가 리발이 있음을 기억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쪽 젊은 친구 먼저 용무를 끝내고 보내는 게 좋겠군.”

“......크흠, 제가 이래뵈도 젊다는 소리 듣기에는 나이가 좀 있습니다만.”


조합에서 치이고 대신전에서 치이고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화가 쌓였는지 사소한 것에 매달린 리발은 아차 싶었다.


그러나 이미 낸 말을 주워 담을 방법은 없었고, 그의 말에 프레이뮬의 잔소리 비슷한 게 돌아왔다.


“나에 비하면 다 젊어. 심지어 그 대신관장도......으응?”


잔소리를 넘어 면박으로 진화하던 중 프레이뮬은 무엇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젊은이, 이름이 뭔가?”

“리발입니다.”

“리발? 성은?”

“뒷골목 출신이라 그런 건 없습니다.”

“그래? 이상하군.”


무엇이 이상하다고 하는지 모르지만 리발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조합에서 전언이 있습니다.”

“그래요? 뭡니까?”


프레이뮬이 있음에도 스스럼없이 묻는 아레타의 말에 리발은 잠시 눈치를 보았다. 그가 하려는 말을 들려주어도 문제가 없는 대상인지 확신히 서지 않았던 탓이었다.


조금 전 신전병들이 보인 태도나 아레타가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 말해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확신하고 이야기하기에는 그가 맡은 말은 중요했다.


대신전에게는 어떨지 모르나 조합은 사활이 달리는 셈이었으니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저할 거면 내가 간 다음에나 해라.”


리발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프레이뮬이 먼저 나섰다.


“내 용건을 먼저 전하지.”

“말씀하시죠.”

“이거, 같이 가지고 가시오.”


프레이뮬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전에 대신관장에게 받은 보함 정도는 아니지만 무언가 있어 보이는 상자에 아레타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는 전장으로 갑니다.”

“알고 있소. 그러니 이게 가장 안전하지. 시간이 그렇게 판단했으니까.”

“흐으음.”


프레이뮬의 말에 아레타는 고민스러운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그가 내민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얻은 짐을 맡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 그에게 이런 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허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거절하기도 그러했던 아레타는 프레이뮬을 보았다.


“이게 뭡니까?”

“기록 관리부에 남은 유물이지. 명칭은 ‘로앙의 눈물’이라고 하네.”

“‘로앙의 눈물’? 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그렇겠지. 아마 로앙 본부에서도 아는 녀석이 적을걸.”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한 프레이뮬은 물건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다만 이 존재를 아는 놈들은 보통 제정신이 아니라서 말이지.”

“제정신이 아니다?”


방금 이걸 아는 이들 가운데 로앙 본부, ‘내직’이라 불리는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째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정히 알고 싶으면 시간에게 물어보는 것도 답이겠지. 그대가 떠나기 전에 할 말이 있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한번 만나보았으면 하던 참인데, 가능할까요?”

“아직 못 봤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맡은 일이 일인지라 시간도 그리 여유롭지 않고요.”

“허, 이거참.”


의외라는 듯 말한 프레이뮬은 손을 까딱이며 몸을 돌렸다.


“지금이면 아래에 있을 테니 만나긴 쉽겠군. 따라오게나. 직접 안내해주지.”

“알겠습니다. 호붼 대장,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부재중은 맡겨주시길.”


아레타의 말에 호붼은 듬직하게 말했고, 그 대답을 듣고 두 사람은 곧장 방을 나섰다.


“어? 어!? 자, 잠시만요!”

“아, 미안하지만 거기서 잠깐 기다려요.”


졸지에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방에 남겨진 리발은 당황하며 방에서 멀어져 가는 아레타를 불렀으나 돌아오는 건 기다리는 말 뿐이었다.


“앉으시오. 차 정도는 내드리지.”


그에게 자리를 권하는 호붼의 말에 리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의자에 앉았다.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다냐.’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리발은 문득 조합에서 편히 있을 렉스를 떠올렸다.


맞은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화풀이한다는 말처럼, 괜스레 편히 있을 그가 미워진 리발은 멀리 렉스가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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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내부의 적 (8) 22.05.27 52 3 12쪽
66 5장 내부의 적 (7) 22.05.26 60 3 13쪽
65 5장 내부의 적 (6) 22.05.24 52 3 11쪽
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7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2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0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2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4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3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6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2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2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4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2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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