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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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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조회수 :
16,462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5.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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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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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4장 시작의 땅(15)

DUMMY

“기분 나쁜데.”


공중에 떠오른 둥그런 구체를 본 순간 아레타는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검은 구체에 일렁이는 촉수와 같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 비위가 상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눈앞에 있는 존재가 상대하기 쉽다는 건 아니었다.


‘공중이라.’


그리 높진 않으나 철봉이 닿을 정도로 가깝진 않다.


이것만이라면 비수로 해결해보겠는데, 이적으로 감지하는 바 핵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앞에 있는 검은 구체는 자체가 핵이라고 해도 좋을 밀도가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밀도를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짙은 느낌에 아레타는 미간에 주름을 한층 더 잡았다.


“정말 기분 나쁘군.”


단순히 외형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 자체가 거슬리고 기분 나빴다.


“응?”


그 순간, 멀리 있음에도 요새 내에서 강력한 이적이 준동하는 걸 느낀 아레타는 고개를 돌렸다.


‘지하?’


요새 내부라고 생각했던 건 엄밀히 말해 틀렸다. 지금 느껴지는 감각은 이적이 요새 내부가 아니라 그 아래, 마티언과 함께 보았던 그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동시에 아레타는 한 가지 더 느낄 수 있었다.


요새 아래쪽에서 무언가, 지금 눈앞에 있는 기분 나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감을 자랑하는 무언가가 있다는걸.


“시간이 없군.”


다시 시선을 구체로 돌린 아레타는 철봉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다른 손으로 비수를 꺼내 들었다.


기분 나쁨에 더해 급한 일이 생겼으니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해 정리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



“씨발, 텄네.”


마수 강화술을 이용해 강화한 그림자 마수는 약하지 않았다. 요새 내부에서 기사들의 분신들, 그들이 복제 마수라 여겼던 건 그림자 마수의 촉수다.


일종의 단말로서 움직였던 그것들은 상대의 기술을 흉내 냈고, 그 흉내 낸 것들은 지식이라는 형태로 그림자 마수 본체에 쌓였다.


그 결과 강화한 그림자 마수는 홀로 여러 촉수를 이용해 다양한 무기술이나 전투 방식을 보여주는 일이 가능했다.


말하자면 1인, 아니 1체 군단이라고 해도 좋은 능력이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그 능력은 우습게 볼 수 없으나 안타깝게도 상대가 좋지 않았다.


“다가가는 촉수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군. 저 강도, 대체 어떻게 해야 뚫을 수 있는 거지?”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름과 동시에 허탈함을 느껴 되는대로 소리를 낸 테펠리움과 달리 차분히 말한 팔레삭이었으나 내심은 그도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기사들의 전투 방식을 흡수한 다양한 공격 방식이 있으면 무엇을 하는가.


그 공격 가운데 어느 하나 아레타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는데 말이다.


“찌르기, 부수기, 물기, 후려치기. 뭐 하나 통하는 게 없어. 대체 어떻게 싸워왔던 거지?”


답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보며 팔레삭은 진심으로 선진들이 대처한 방식이 궁금해졌다.


분명 저들에게 대항할 방법이 있을 텐데, 도무지 그 방식이라는 게 짐작 가지 않았다.


“오래 못 버틴다. 얼마나 더 끌어야 하지?”


테펠리움의 말에 팔레삭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아레타를 바라보던 그는 곧 요새에 시선을 돌리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저 자에게 정신이 팔려서 미처 몰랐군. 이만 물러나도 될 거 같다.”


팔레삭의 말에 테펠리움은 알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재빨리 뱀 마수를 소환했다.


뱀 마수에 올라탄 그는 팔레삭에게 소환해주거나 가자는 말도 없이 바로 전장에서 달아났다.


“정 없는 친구라니까.”


그 모습에 가볍게 불평 하나 던진 팔레삭은 마찬가지로 뱀 마수 하나를 불러내서 올라탔다.


“나는 모르지만 퀜달렌님이라면 아시겠지. 다음에는 다를 거다.”



***



“오오, 위대한 야성이시어.”


온 힘을 다해 문은 연 자르달에게 수고했다고 겉치레라도 한번 말할 법하건만, 퀜달렌은 그가 있는 것도 잊은 듯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자르달은 불평을 말하기는커녕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게 뭐지?’


처음에는 막연한 거부감이었다. 이윽고 그 거부감의 원인을 머리가 찾아낸 순간 자르달은 다리가 떨리는 걸 느끼며 천천히 뒷걸음쳤다.


‘왜, 왜 안 보이는 건데?’


안쪽이 보인다. 생각기에 따라서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다. 문을 열었으니 안쪽이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이 당연하지 않았다.


안쪽에 가득 쌓여 켜켜이 쌓인 검은 연기는 시야를 방해하고 보이는 걸 막아야 정상이건만, 검은 연기 내부에 있는 사물이 온전히 보였다.


아니, 온전히 보였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었다. 사물 모두가 흑백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만이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듯 검은빛을 내고 있는 거대한 이빨이 드러내는 존재감은 빛남에도 불구하고 불길 그 자체였다.


터억


“엄청난 짓을 벌였구나.”


뒷걸음치던 자르달은 그의 몸을 붙잡듯 어깨에 올려진 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금 전 온몸에서 불을 피우며 달려들던 노인이 보였다.


‘이놈의 세상, 노인이 되면 뭔가 엄청난 게 생기나?’


퀜달렌도 그렇고 이 자도 그렇고 혹시 나이를 먹으면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 새로운 힘이 생기나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죽는 건 좀 억울하다, 그런 두 사람이 알았다면 피식 웃을 감상을 품은 자르달의 눈에 노인의 어깨 너머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 그와 다른 이들을 막던 이들이 숯덩이가 된 게 보이니 급히 정신이 돌아온 자르달은 재빨리 엎드렸다.


“살려주세요!”

“그건 나중에 정할 일이니 비켜라.”


엎드린 자르달을 곧장 옆으로 밀치고 열린 문 앞에 선 노인, 마티언은 심호흡하며 불꽃을 한쪽 손에 모았다.


“후우.”


화르르륵


점점 커지는 불길에 자르달은 이러다 타죽을까 걱정하며 황급히 기어서 도망쳤다.


네발로 기어서 도망치는 그 모습은 상당히 볼썽사나웠지만 그래도 현명한 일이기는 했다.


그가 비켜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 마티언이 곧장 축적한 불꽃을 그대로 방 안쪽으로, 자르달이 있던 경로로 던졌다.


콰앙!


불꽃은 곧 그 힘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안쪽에 있는 모든 것을 태우며 폭발했다. 불꽃이 일으킨 연기와 재는 검은 연기와 달리 정상적으로 시야를 가렸다.


이윽고 연기와 재가 가라앉자 보이기 시작한 내부를 확인한 마티언은 딱딱한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가 일으킨 것들과 달리 이치에서 벗어난 검은 연기 속 퀜달렌은 멀쩡했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방 안에 있는 것 가운데 어느 하나 상하지 않았다.


“아, 참으로 따뜻한 환영이었네. 하는 김에 더 알려주지 않겠나.”


느긋하게 손자에게 말하듯 입을 연 퀜달렌은 곧 흉악한 얼굴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어쩌면 그 이상일지 모르는 표정으로 험악하게 말을 이었다.


“‘눈’은 어디에 있지?”

“눈?”


그러나 마티언은 퀜달렌의 말에 도리어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말이지?’


솔직히 이제 틀렸다고 생각했다. 안쪽에 있는 비보를 저들에게 빼앗겼으니 남은 건 총력을 기울인 전면전뿐이다.


이미 성전을 한번 치렀기에 잘 알고 있었고, 마티언의 머리는 퀜달렌이 이빨을 손에 쥔 후로 민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수호자들은 얼마나 각성했지?

-대신전에 준비는 얼마나 되었을까?

-전장은 이곳인가? 그도 아니면 다른 곳이 되는가?


강고한 자, 강철의 수호자가 깨어난 것이야 그가 오기도 전에 이적을 되찾음으로써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그렇게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대신전과 주고받은 마지막 연락은 아레타를 올 거라는 이야기에 대한 것이 끝이기에 아는 것이 적었다.


여기에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점으로, 이곳 아비톨람은 확실하게 끝이라는 점이 있었다.


이곳은 이제 결전장 혹은 저들의 근거지가 되리라 여겼다. 그만큼 저걸 손에 넣게 된 백색 교단은 위협이라는 말로 부족한 재앙이 될 터, 안타깝지만 이는 기정사실로 보였다.


헌데 퀜달렌의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저 비보는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거 같았다.


“네놈도 모른다? 하, 그러면 알고 있을 건 그 녀석 뿐이군.”


마티언의 반응을 보고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은 퀜달렌은 흥미 없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짓에 방에 가득 찬 검은 연기가 한곳에 응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머물렀던 곳에 있던 사물들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껏 시간을 붙잡아두기라도 했다는 듯이 검은 연기가 사라진 자리에 있던 물건들이 일제히 녹슬고 가루가 되어 수많은 세월을 한 번에 맞은 것처럼 변했다.


이윽고 제단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방에서 검은 연기가 그 형상을 온전히 하며 그 정체를 드러냈다.


“.....수인?”


개의 머리를 한 인간 형상. 오래 전, 아니 그런 말로도 부족해 태고적에 사라졌다고 들은 존재를 입에 담은 마티언에게 퀜달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엔 용무가 없으니 실례하지. 아, 내 아이들은 데려가겠네.”

“뭐?”


퀜달렌의 말에 마티언은 의혹 어린 얼굴이 되었다. 그가 말하는 아이들이 누군지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재가 되었으니 데려갈 수 없는 게 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식을 무시하듯 곧 경악하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뭐, 뭐야!?”


오랫동안 듣지 못했으나 예전에는 가까이 지내서 잘 알고 있는 주블랑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무언가 이변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말들이 연이어서 들려왔다.


“죽었던 놈들이 움직인다!?”

“잿더미가 움직인다!”

“제길, 부숴서 못 움직이게 해!”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는 말들에 시선을 주니 그곳에는 정말로 방금 마티언과 감독관들이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이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네놈들은 항상 상상을 뛰어넘는군.”

“칭찬 고맙네. 항상 그렇지만 발전이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래 봬도 우리는 발전하고 변한다네. 하긴 항상 자네들이 이겼으니 그런 거에 그리 관심이 없으려나?”


느긋하게 말한 퀜달렌은 다시금 손을 들더니 마티언을 가리켰다.


“마수 기사여, 우리를 위해 저자를 붙들어라.”


크릉


수인 형상을 한 마수는 곧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티언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마티언은 철봉을 고쳐잡았다.


“전에는 이런 거 못 봤는데, 이것도 발전인가?”

“발전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건 고전적인 수법이네. 잃어버린 수법을 복원한 것이니 복고라는 표현이 어울리겠군.”


웃으며 마티언의 말에 대답한 퀜달렌이 손짓하니 잿더미가 되어서 움직이던 백색 교단원들이 천천히 걸어서 마티언을 지나쳐갔다.


그 모습에 제지해야 하나 싶었지만 당장 눈앞에 심상치 않은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는 마수 기사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신?’


그런 와중에 잿더미가 된 이들이 비교적 멀쩡한 시신 한 구를 옮기는 걸 목격한 마티언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내에 그걸 가슴 한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아우우우-


“개 대가리가 늑대라고 주장할 셈이냐?”

“둘이 같은 종, 그러니까 같은 부류라는 건 꽤나 오래전에 나온 연구 결과지. 자, 고대에 우리가 자네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마수 기사네 찬찬히 맛보시게.”


도발하는 마티언의 말에 부드럽게 응수한 퀜달렌은 곧 잿더미가 된 이들에 더해 시신 한 구를 데리고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습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마수 기사라 칭해진 존재가 빠르게 마티언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개 대가리가 어딜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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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8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1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6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3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3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3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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