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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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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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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7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2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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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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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장 시작의 땅(5)

DUMMY

마티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아레타는 곧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끝난 거 같습니다.”

“그런 거 같군. 으흠, 쿨럭.”


아레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던 마티언은 기침을 참으려다가 참지 못하고 바깥으로 냈다. 그 모습에 아레타는 걱정이 들어서 그를 살폈으나, 마티언은 한손으로 가리며 다른 손으로 내저을 뿐이었다.


“괜찮아.”

“정말입니까?”


겉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는 안심하기 힘들었던 아레타는 재차 물었고, 마티언은 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 믿음이 가지 않은 반응이었으나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사이에 따지고 보면 신전 기사나 수호자로서 따지면 한참 선배였으니 무어라 캐어묻기 힘들었다.


때문에 잠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마티언을 바라보던 아레타는 일단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이것에 전에 말한 그 대공세일까요?”

“아니, 아직은 아니야.”


하늘을 나는 마수만 있었다고는 하나 그 수는 적지 않았다. 오히려 전에 아비톨람 요새에서 상대했던 마수들에 비교하면 몇 배는 되는 규모였다.


그런데 이걸로도 아니라고 하니 마티언이 우려하는 대규모 공세는 대체 어느 규모로 이루어질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게. 규모는 분명 전에 없을 정도였고, 저번 성전 당시 이보다 큰 규모는 손에 꼽을 정도야.”

“그 말씀은?”

“숫자가 더 늘어나진 않을 거라는 말이네. 이번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간단해. 너무 어설퍼.”


어설프다. 그렇게 말하니 아레타도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확실히 준비해서 한 방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들은 것과 달리 간극이 너무 짧았다.


오전과 오후로 두세 번씩 들이닥치던 것에 비하자면 횟수는 줄었지만 이쪽이 방심할 정도로 큰 간극이 있지는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방식도 석연치 않았다. 굳이 저만한 숫자를 모으고 힘으로만 정면에서 우직하게 오다니, 설령 아레타가 이곳에 없었을지라도 피해가 있을지언정 막아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준으로 여겨졌다.


“어설프다.”

“그래, 어설프지. 후우, 아마도 지금은 그저 또 다른 준비에......이런.”

“마티언 경?”

“당했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갑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말에 아레타는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에 마티언은 고심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도 아는 게 좋겠지. 따라오게. 아마도 대신전에서도 아는 이가 극소수일 사실을 내가 알려주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걷던 마티언은 재밌는 게 생각났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곳 아비톨람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러니 그쪽에 있는 신전병 친구 역시 함께해도 괜찮아. 나도 여기 제컬티안과 동행할 거라서.”



***



이번에도 케르뷜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아비톨람 요새와 기사들 역시 전투에서 이겼다.


그러나 케르뷜은 전투가 끝난 후 도무지 기뻐할 수 없었다.


“제길, 하필 안쪽까지 넘어와서 이 고생이냐.”


본래 마수들은 아비톨람 요새 성벽을 넘지 못했기에 그 잔해는 바깥에만 있었다. 죽으면 연기로 돌아가는 것들이 무슨 잔해인가 싶겠지만 그러기 전에 타버린 흔적은 남아서 그들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증거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굳이 알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가능하면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케르뷜은 물론이고 다수의 아비톨람 기사에게 있어서 그 존재흔적은 그저 다 타버린 나무토막만도 못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 별가치없는 것들이 이제는 요새 내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다.


성벽을 넘어 안쪽으로 들이친 마수들의 흔적은 여전히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가치는 없어도 문제는 있었으니, 사방천지에 뿌려진 흔적이 식물에 닿은 순간 그 식물이 시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제길, 저건 내가 좋아하는 건데.”


개중에는 그들이 먹는 채소 등을 기르는 텃밭에도 떨어졌다. 좋아하는 나물이 잔해에 덮여서 못 쓰게 된 걸 본 케르뷜은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본래 아비톨람은 풍요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그나마 그 단어에 가까운 곳이 이곳 아비톨람 요새 내부지만 이래서야 당분간은 더욱 멀리 지내게 될 거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당장 굶을 지경은 아니었으나 매번 이러면 견디기 힘드니 아무래도 무언가 대책이 필요할 듯싶었다.


“케르뷜!”

“응? 엇!”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 빗자루를 던졌다. 반사적으로 받아들긴 했으나 의도를 알기 힘든 일에 케르뷜은 저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이거 뭔데?”

“뭐긴, 다들 알아서 저 거지 같은 잿더미 좀 긁어모아서 바깥에 버리라고 하더라.”

“......에휴.”


무언가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뱉을까 했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건 한숨이었다.


“망할 놈들 같으니. 이 요새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우릴 힘들게 하는 거야?”


어쩌면 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첫날에 진즉했어야 할 말을 입에 담은 케르뷜은 투덜거리며 빗자루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케르뷜은 멀찍이 그가 존경하는 이, 마티언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방향은......”



***



“지금 대신전이 두 번째라는 건 알고 있나?”

“역사로 배우긴 했습니다.”


요새를 가로질러 가며 묻는 말에 아레타는 견습 시절 이것저것 읽다가 보았던 걸 떠올리며 대답했다.


신전 기사가 되면 무엇이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한때는 기사단 내부에 있는 책이나 소식지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던 시절이 있다.


다만 견습에게 요구되는 것이나 허락되는 것은 뻔한 수준이었기에 대단한 건 없었다.


그나마 본 것도 잘도 기억하고 있다 싶을 정도로 짦고 별것 없는 구절이었다.


-현재의 대신전는 두 번째로, 첫 번째를 모방하여 똑같이 만들어졌다.


‘무슨 동화책 같은 거였던 거 같은데.’


가벼운 교육을 위해 둔 것들 가운데 하나로, 두 번째라는 말에 첫 번째가 살짝 궁금해지긴 했었다. 그러나 바쁜 나날 가운데 잊어버렸던 그 구절이 지금 마티언의 질문 덕에 도로 살아났다.


“그래? 생각보다 많이 아는군. 그럼 첫 번째 대신전이 어디에 있었는지, 왜 두 번째 대신전이 필요했는지는 알고 있나?”

“모릅니다. 첫 번째가 어딘지도 모르는걸요.”

“하하, 그렇겠지.”


가벼이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마티언은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한 곳을 가리켰다.


딱 보아도 무언가 엄중하게 다루어진다고 하는 듯한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그걸 본 아레타는 어디서 본 거 같다고 생각했고, 곧 그의 기억 속에서 한 가지 기억이 솟아올랐다.


“......닫히지 않는 문?”

“그래, 대성전에 있는 그거랑 같은 걸세.”


마티언의 말에 아레타는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둘러볼 때마다 대신전의 구조가 아비톨람 요새 곳곳에 덮어씌워졌고, 곧 그는 이 위치가 정문부터 보면 대신전과 판박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기가 첫 번째입니까?”

“여, 여기가요? 대신전이 있는 곳은 축복으로 인해 풍요 그 자체를 자랑하지 않습니까?”


아레타의 물음에 잠자코 따라오던 호붼이 놀라서 물었다. 그의 반응이 상당히 달가웠는지 마티언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반응이야. 말을 하면 이런 재미가 있어야지. 자, 그러면 들어가 볼까.”


마티언은 그리 말하며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에게 맞추듯 제컬티안 역시 열쇠를 꺼내어 함께 섰는데, 동시에 넣고 돌리는 걸 보니 그렇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구조인 거 같았다.


“아, 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보게 될 테니 미리 말해두지. 안에는 죄인들의 작업장 그리고 더 안에는 내가 자네에게 보여줄 것이 있네.”

“작업장? 보여줄 것?”


끼이이익


아레타의 궁금함을 지우듯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마티언은 그의 말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답해주는 말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나 말해주자면, 여기에 ‘죽음이 넘치는 황야’가 아니라 ‘생명력이 없는 황야’인 것은 본래 이곳이 첫 번째 대신전 자리였기 때문이네.”



***



파칵


“제길, 이놈의 암반은 파도파도 끝이 없네.”


오전에 암반으로 인해 감독관을 호출하고 그의 감독하에 온갖 고생을 하며 해결한 것보다 더한 것을 마주한 자르달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놈의 생활, 정말 지긋지긋하다.’


매번 확인 연락이든 지시 연락이든 받을 때마다 몸서리치는 감각에 줄을 잘못 섰나 싶지만 이렇게 고생 거리가 생기면 당장이라도 그들이 움직여서 이곳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나 그 시일도 이제 머지 않았다. 다만 가능하면 그 소란에서 몰래 내빼는 것보다 전에 조합에서 사람이 와서 그들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놈들하고 함께 묶여서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아무리 죄수된 몸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소식을 모르진 않았다. 적어도 이곳에서 노동에 동원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알음알음 듣는 게 있었다.


물론 지금은 죄 끊겼지만 그래도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기에 그가 아는 세상이 뒤집히지 않았고, 아직은 경험과 판단이 먹힌다고 자부하는 자르달이다.


자유도 좋지만 그 자유가 자유가 아니게 될 수 있는 함정이 뻔히 보이는 데 알아서 걸어 들어가는 건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대장, 저기 좀 보세요.”

“뭔데?”


같이 일하는 부하이자 지금은 감방 동기가 된 이의 말에 자르달은 별 생각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들이 있는 갱도 위쪽으로 난 계단을 통해서 내려가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 영주님 행차인가.”


선두에 선 이, 마티언이 이곳 아비톨람에서 가장 높은 이라는 걸 알고 있는 자르달은 마뜩잖은 얼굴로 빈정거렸다.


딱히 개인적인 원한 같은 건 없지만 그를 가두고 중노동시키는 곳의 우두머리가 마음에 들 이유도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니, 그 자식 말고 뒤에 있는 놈이요. 저거, 그때 그 자식 아닙니까?”

“그때 그 자식?”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하던 자르달은 곧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마티언의 뒤에 있는 이를 살폈다. 잠시 후, 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그 새끼구나!’


그가, 그의 부하들이 이 뭣 같은 지하 광산에 처박히게 된 이유라 할 수 있는 이를 보니 자르달의 가슴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꺼림칙함이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한 가지 생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덕분에 이 개고생을 하고 하지도 않아도 될 의뢰까지 받았다. 그래, 네놈도 신전 기사였지. 무슨 직책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놈들도 다 같이 엿먹으면 네놈도 같이 엿을 먹겠지.’


객관적으로 모든 사실을 살펴보면 자르달이나 그의 부하들이 잘못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만,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그의 눈에서는 복수를 위한 불꽃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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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0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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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2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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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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